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56화 (56/366)

56화 레이라

새하얀 방.

벽에는 루아스교의 상징인, 빛을 형상화한 장식물이 걸려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흘러들어 온 따스한 빛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신성이 가득한 이곳에는 어떠한 어둠도 없었다.

……스르륵.

조용히 눈을 뜬 레이라가 몸을 일으켰다.

한동안 멍하니 빛을 응시하다가 침대에서 내려갔다.

탁자 위에 놓인 새하얀 가면.

일상생활에서 그녀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도시 안에서 하루 종일 전신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다니는 건 여러모로 시선을 끌었으니.

뭐, 이쪽도 눈길을 끄는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주목도가 떨어지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편하기도 하고.’

레이라가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귀족이 입을 법한, 흰색을 기조로 한 옷을 입고는 방을 나섰다.

이곳은 로리엔의 교회.

복도를 지나며 다른 방을 스쳐 지나갔다. 그중엔 며칠 전 악마의 숲에서 구출하는 데 성공했던 투사 바르델이 기분 좋게 잠을 자는 방도 있었다.

소울 트리에게 생명력을 꽤나 빼앗긴 터라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걸 이유 삼아 이참에 제대로 쉴 생각인 모양이다.

교회에 있는 동안은 의식주를 알아서 해결해 주니. 레이라와 마찬가지로 바르델 또한 교회에 적지 않는 돈을 헌금해 왔기에 딱히 눈치 볼 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는 견습 성직자, 뷔나와 마주쳤다.

“아, 레이라 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아니, 점심이에요!”

“좋은 점심이에요, 뷔나.”

레이라가 로리엔에 머문 지 벌써 수개월이다.

그동안 교회에서 생활한 터라 교회 사람들하고는 안면을 튼 상태.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는 레이라였기에 대부분 그녀를 어려워했으나 뷔나는 달랐다.

어린 성직자는 누구에게나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다.

둘은 자연스레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오늘 점심은 생선구이래요! 저는 가시 때문에 싫은데, 사제님이 먹고 싶은 것만 먹고 편한 것만 찾다 보면 엄청 게을러진다고 그랬어요. 그럼 훌륭한 성직자가 될 수 없다고……. 그래서, 불편해도 참고 먹으려고요! 그렇게 하면 루아스 님도 좋아하시겠죠?”

“분명 그러시겠죠.”

레이라가 뷔나의 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오래전 잃어버린 순수함 그리고 꿈. 레이라는 어린 성직자를 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기에, 결코 되찾지 못할 그 행복한 순간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뷔나가 밖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레이라 님, 저분은 누굴까요?”

레이라도 뷔나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은…….’

베르덴.

소울 트리를 토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법사.

창문 너머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간편한 복장을 하고 양손 가득 음식을 포장해 왔는데, 아무리 봐도 혼자 먹을 양으로 보이진 않았다. 시선을 느낀 베르덴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

가면을 쓴 레이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 * *

베르덴은 시민들에게서 받은 음식을 대부분 교회에 기부했다.

루아스교의 교리에는 딱히 금기시되는 음식은 없었기에 성직자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침 식사 준비를 하려던 참이였다고.

물론 외부인이 주는 음식을 무턱대고 신뢰할 순 없었기에, 베르덴에게 허락을 구하고 간단히 독이나 신선도 검사를 마쳤다.

‘그나저나…….’

베르덴이 스테이크를 자르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레이라가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교회에서 감사하다며 식사를 하고 가라고 권유했고, 딱히 거절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직자들 틈에서 홀로 고급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레이라와 베르덴, 둘이 같은 방에서 점심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레이라가 파스타를 돌돌 말아, 가면을 살짝 들춰 입에 넣었다.

문득 시선을 느낀 그녀가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포크를 내려놓고 나지막이 말했다.

“……음식값은 나중에 드리죠.”

“필요 없습니다. 돈 주고 사온 건 아니니.”

“그럼 왜 그러시죠?”

“가면이 불편해 보여서 그럽니다.”

익숙한 반응이다.

레이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조금 불편하긴 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걸 벗으면 여러모로 시선이 끌리거든요.”

“시선?”

“제가 너무 예뻐서요.”

……정적이 흘렀다.

분위기가 한층 차가워지자 레이라가 뒤늦게 말을 이었다.

“농담이에요.”

“그렇군요.”

“분위기가 어색해서 한번 해 본 건데, 아무래도 역효과였나 보네요.”

확실히.

솔직히 뭐라고 반응해야 될지 몰라서 난감했다.

분위기가 더 악화되기 전에 레이라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시련을 극복한 게 이번이 처음인가요?”

“예.”

“그런가요. 드문 일이네요. 보통 첫 시련은 비교적 쉬운 편인데 시작부터 소울 트리라니…….”

레이라가 베르덴을 유심히 쳐다봤다.

방주의 후보 중 하나라는 것부터 특별한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지만 눈앞의 마법사는 뭔가 다르다.

외모로 보이는 나이에 맞지 않는 방대한 마력과 강력한 마법 그리고 소울 트리의 정신 파괴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까지.

‘그런데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어.’

하다못해 저 외모에 대한 특징조차도.

최소한 공국 주변에서 활동하던 건 아닐 것이다.

아마 멀리 있는 타국에서 리스너가 영입해 온 마법사란 거겠지.

‘어쩌면…….’

“애셔,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그러시죠.”

“당신은 어째서 방주에 들어왔죠?”

레이라의 물음에 베르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주에 들어간 적은 없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주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야 리스너의 의뢰로 소울 트리라는 시련에 도전하기도 했고, 방주와 적대하는 글러트니와 대립하기도 했었으니.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베르덴이 방주의 후보라고 오해할 법했다.

‘……뭐, 상관없나.’

애초에 레이라와 시련을 함께한 이상, 그런 오해를 살 거라는 건 리스너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거슬렸다면 경고라도 했겠지. 그러나 그러긴커녕 어떠한 언급도 없었으니 암묵적으로 방주와 연관되는 걸 용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리스너가 말한 호의의 일부일지도.

어쨌든 굳이 직접 오해를 풀 이유는 없다.

자칫 속았다고 생각한 레이라가 적대적으로 돌변할 위험이 있으니,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내는 건 어리석은 판단이다.

베르덴이 간단히 답했다.

“내게 도움이 되니까.”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리스너가 준 만드레이크 추출액은 성장에 있어 큰 도움이 될 테니.

“이거면 대답이 됐습니까?”

“네, 충분히.”

레이라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예요. 방주가 추구하는 이상과 이념, 그런 거창한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죠. 제가 원하는 건 바로 이 가면 뒤에 있는…… ‘저주’를 없애 버릴 방법이에요.”

저주(詛呪).

그것은 총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흑마법으로 분류된, 사령 계열 마법의 한 종류.

일시적으로 상대방의 정신을 흩트려 놓거나 육체 능력 또는 감각 기능을 저하시키는 등 디버프적인 마법이 대다수인데, 부여 마법과 반대되는 효과를 지닌 마법이 많다.

그리고 둘째는 이형종의 하나인 ‘악마’의 저주다.

이건 루아스교의 축복과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영구적으로 서서히 육체를 썩게 만들거나 생명력을 앗아 가는 등 강력한 악마일수록 위험한 저주를 품고 있다.

레이라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런데 루아스교의 추기경까지 찾아가 봤지만 지금으로선 해주할 방법이 없다더군요. 주기적으로 교회에서 축복을 받아 저주의 효과를 억누르는 게 전부라고. 제가 교회에 머물고 있는 게 바로 그 이유죠.”

“그래서 방주의 후보가 된 겁니까? 저주를 풀기 위해서?”

“당신도 알다시피 방주란 집단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집단이에요, 가늠할 수 없는 힘과 정보력을 가진. 그래서 후보 제의가 왔을 때, 방주를 통해 제 가족을…… 죽이고 저에게 저주를 남긴 악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렇게 물으니 리스너가 그러더군요. 주어진 시련을 넘고 또 넘다 보면 제게 걸린 저주를 해주할 수 있을 거라고.”

“리스너가?”

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방주를 완전히 믿고 있는 건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의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여러 시련을 이겨 냈기 때문이었으니까.

방주의 인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방주에 들어가도 상관없는 건가.’

방주의 목적은 인류를 이끌 ‘선장’을 키우는 것.

다만, 레이라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 베르덴은 그들이 말하는 선장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듯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거지?’

같이 소울 트리를 토벌하긴 했다만 사적인 얘기까지 할 정도로 친분을 나눈 기억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레이라가 말했다.

“제 이야기를 털어놓은 건 동정 따위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아직 찾지 못한 악마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죠.”

먼 타국에서 온 마법사, 애셔.

어쩌면 그는 레이라가 원하는 정보를 갖고 있을지도 몰랐기에.

“애셔, 당신이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악마에 대한 것이 있나요?”

“사령계 쪽은 조금 알지만…… 솔직히 말해 악마는 잘 모릅니다. 제가 공부하던 분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거라서.”

악마가 가진 힘은 명확히 마법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물론 마탑에서 연구를 진행하긴 했으나 쓸 만한 정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루아스교에서 악마에 대한 지식을 쌓는 걸 몹시 언짢아했기 때문.

무시하고 진행했다간 악마 숭배자라고 오해받으면 상당히 피곤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가요…….”

레이라의 목소리가 실망으로 물들었다.

조금이나마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하긴 그토록 찾던 것이 형편 좋게 손에 들어올 리가 없겠지.

그렇다면 차선책이다.

“애셔, 저랑 거래 안 할래요?”

“거래 말입니까?”

“가능성은 적겠지만…… 혹시 악마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모험가 길드를 통해 보내 주세요. 세간에 퍼져 있는 게 아니라면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돈이든 뭐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죠.”

그 또한 레이라와 마찬가지로 긴 여행을 다닐 터.

그저 한 줌이라도 단서를 얻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그녀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베르덴이 생각했다.

‘나쁠 건 없어 보이는데.’

당장 찾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얻게 되면 알려 달라는 거니까.

손익을 가늠한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저로선 손해 보는 일은 없으니.”

“좋아요. 정보의 가치는 제가 판단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후려치는 일은 없을 테니 그 부분에선 걱정 안 하셔도 좋을 거예요.”

이걸로 용건은 끝났다.

그리고 마침 식사도 마쳤다.

“식기는 사용인이 와서 정리할 테니 그대로 두면 될 거예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애셔.”

레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베르덴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가기 전에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어떤 거죠?”

“다음 시련은 언제 오는 겁니까?”

“아, 처음이라 모르셨군요. 정해진 시간 같은 건 없어요. 언제나처럼 갑자기 찾아와 시련에 대해 말하죠. 도전할 거냐, 아니면 포기할 거냐. 방주는 그게 무엇이든 절대 강요하지 않아요. 선택은 항상 저희의 몫이죠, 그 결과까지도.”

대답을 한 레이라가 방을 나섰다.

문을 닫기 직전, 그녀가 베르덴을 바라봤다.

“식사 즐거웠어요.”

탁.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렇게 베르덴과 레이라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모험가 길드에서 소울 트리 토벌에 대한 보수 산정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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