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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53화 (53/366)
  • 53화 소울 트리 (2)

    투둑.

    불에 탄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가루가 되었다.

    코끝을 스치는 매캐한 냄새. 모험가들은 입을 벌린 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주시했다.

    그중 마법사들은 베르덴에게 시선이 멈춰 있었다.

    ‘4위계……?’

    방금 전 마법은 범위로 보나 파괴력으로 보나 4위계의 것임이 분명했다. 그것도 마법의 한계치까지 마력을 담은.

    그리고 시각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거대한 마력량과 일순간 스쳐 지나간 마력의 파동까지.

    ‘설마 이 일대에 마력 감지를 펼친 건가?’

    구해야 할 모험가가 있다는 건 이미 전달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광범위한 마법을 썼다는 건 이미 범위에 대한 계산을 마쳤다는 뜻. 마법사들은 4위계라는 힘보단, 그 연산력과 그걸 가능케 한 방대한 마력량에 경악했다.

    모험가나, 용병은커녕 작은 소문조차 듣지 못했던 잿빛의 젊은 마법사. 어디서 이런 존재가 갑자기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레이라는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복잡했다.

    그녀는 방주의 후보 중 하나로서, 저런 마법사가 있다는 건 전혀 듣지 못했으니까.

    ‘……설마 다른 후보?’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됐든 상관없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눈앞에 닥친 시련을 이겨 내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안 갈 겁니까?”

    그런 베르덴의 말에 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이곤 모험가들에게 말했다.

    “서두르죠.”

    잠깐 멈추었던 토벌이 다시금 진행됐다.

    * * *

    플레어에 닿은 숲엔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었다.

    트런트도 이형종이라지만 나무는 나무였기에 선뜻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 덕에 토벌대는 보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속도였다.

    ‘이, 이게 차기 미스릴 등급의……!’

    레이라를 뒤따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른다.

    마치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듯한 움직임. 이것도 그녀 나름대로 조절하고 있는 거지만 금 등급 모험가들에겐 벅찼다. 그런 레이라와 나란히 있는 건 오직 한 명, 베르덴이었다.

    그 둘은 서로 간에 일체의 대화도 없이 숲 안쪽을 향했고, 잿더미가 가득했던 길의 끝에 도착했다.

    그렇게 어두운 숲에 발을 디디던 순간, 숨어 있던 트렌트들이 양옆에서 둘을 덮쳤다.

    ‘확실히 숫자가 많긴 하군.’

    숲 전체가 트런트의 소굴이다.

    동물들은 죄다 잡아먹었는지 작은 새 한 마리조차 감지되지 않는다. 가볍게 뿌리를 피해 낸 베르덴의 손에 작은 불꽃이 명멸했다.

    <번플레어>

    화아아악!

    앞에 있던 트런트를 불태워 버린 마법이 뒤에 있는 놈들에게 쏘아졌다. 불쏘시개를 찾아 스스로 움직이는 화염. 연쇄적으로 근처에 있던 이형종들을 없애 버리고서야 사라졌다.

    베르덴이 슬쩍 옆으로 고개를 향했다.

    트런트들의 몸에 새겨진 한 줄기 붉은 선. 검에 베인 흔적인가? 몸체가 부서진 것도 아니고, 양단된 것도 아닌데 미동조차 없다. 전부 죽은 것이다.

    시선을 받은 레이라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트런트의 몸 안엔 핵이 있습니다. 그것만 부수면 쉽게 죽일 수 있죠. 모르는 걸 보니 모험가라든가 그런 건 아닌 것 같군요.”

    “…….”

    “당신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제 ‘시련’을 방해하지는 마시길.”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베르덴은 그걸로 모험가 여자가 방주의 후보임을 확신했고, 레이라는 시련이라는 단어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마법사를 같은 후보라고 단정했다.

    레이라가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베르덴은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뒤따랐다.

    둘의 관심사는 오직 숲속에 숨어 있는 시련에 있었기에, 뒤처지는 모험가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저걸 어떻게 따라가?”

    “못 가지. 무리하다가 지친 상태로 트런트한테 둘러싸이면 답도 없어.”

    “솔직히 소울 트리란 걸 상대하는 것도 좀 자신 없고.”

    졸지에 남겨진 모험가들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근처에 있는 트런트를 처리하는 것. 안전하게 퇴로를 확보하는 게 최선이었다.

    소울 트리.

    아무리 그 괴물의 위험도가 최대 특수 개체에 버금간다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일 뿐, 그 아래의 수준이라면 그 둘이 충분히 토벌할 수 있을 것이다.

    대륙에 얼마 없는, 미스릴 등급을 앞에 둔 모험가가 있었으니.

    ‘저 마법사도 굉장히 강해 보이고.’

    거기다 투사 바르델까지 힘을 합친다면 승산은 분명하다.

    물론 살아 있을 경우에 말이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걱정할 만한 존재들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모험가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좇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우리들 목숨이나 신경 쓰자고.”

    동족들의 사체를 넘어 다가오는 트런트들.

    모험가들은 원형으로 서로의 등을 지키며 각자의 무기를 손에 쥐었다.

    * * *

    피핏.

    붉은색의 검광의 번뜩이자 레이라를 둘러싼 트런트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좇다웬만해선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검속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도는 그녀가 자랑하는 무기였다.

    ‘강하다.’

    같은 등급인 도살자와 전혀 다른 전투 방식. 결코 간격을 허락하지 않는 레이라의 검술은 예리하고 섬뜩했다.

    이게 방주가 택한 후보 중 하나라니. 어쩌면 방주는 베르덴이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대한 집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시야에 비친 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나무들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트런트지만.

    모험가들이 말한 소울 트리…… 아마 의뢰 중에 마주한 회색 나무를 일컫는 말이겠지. 그로 의심되는 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바르델이라는 백금 등급 모험가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냥 음산하고 어두운 숲이었다.

    ‘조금 더 마력을 펼쳐 볼까.’

    주변 일대에서 숲의 중심부로.

    푸른 마력이 확 퍼져 나가더니 베르덴의 감각에 수많은 것이 잡혔다. 방대한 정보에 압도되지 않고 정신을 더욱 집중했다.

    그러던 그때, 무언가가 잡혔다.

    아니, 악마의 숲의 경계가 있는 숲의 북쪽 부근이 일체 감지가 되지 않았다. 일전에 악마의 숲에서 보인 반응과 같았다.

    “저쪽인가.”

    확신한 베르덴이 북쪽으로 향했다.

    뒤에서 어딜 가냐는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설명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의심스러우면 알아서 쫓아오겠지.

    서서히 지면에 가까워지자 숲속에서 날카로운 가지들이 뻗어 나왔다.

    <화염 장막>

    베르덴을 둘러싼 붉은 화염. 가지들은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검게 바스러졌다.

    바닥에 착지한 베르덴이 스태프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이그니션>

    화아아악!

    불꽃의 파동이 숲에 퍼져 나갔다. 나무는커녕 나뭇잎을 겨우 태울 정도의 화력이었지만 트런트들은 저마다 자신의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발버둥을 쳐 댔다.

    ‘마력감지가 안 되니 직접 찾는 건 불가능해.’

    물론 방법은 있다.

    숲 일대를 전부 불태워 버리면 계속해서 숨어 있지는 못할 터. 그렇게 생각한 베르덴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베르덴의 연산 능력으로도 10초나 정신과 마력을 집중해 캐스팅한 마법.

    ‘타깃은 트런트에 한정한다.’

    스태프에 맺힌 다섯 줄기의 화염이 서로 뒤엉키며 명멸했다.

    <화염 역병>

    화아아아아악!

    사방으로 뻗어 나간 화염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근접해 있던 트런트들이 일체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며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그 이름대로 화염으로 이루어진 역병이 트런트 사이에서 확산했다.

    ‘확실히 반응은 있군.’

    기세를 모아 더욱 마법을 난사했다.

    그렇게 인근 숲에 숨어 있는 트런트를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아세우고 나서야 숨어 있던 한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트런트와 달리 회색을 띠고 있는 나무. 전에 봤던 것보다 세 배 이상 거대한 크기였다. 그리고 피부를 스치는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까지.

    ‘그런데 지난번에 느꼈던 것과 좀 다른 것 같은데. ’

    전에 마주했던 백색 눈동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심이 드는 와중, 나무 아래에서 한 모험가가 뿌리에 감긴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 특징으로 보아, 모험가들이 말한 백금 등급 모험가 투사 바르델이 분명해 보인다.

    일단 그를 구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소울 트리.

    베르덴이 곧장 스태프를 뻗었다.

    * * *

    바르델 혼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트런트 무리와 백색 눈동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죽은 자의 비명 소리에 정신이 순간마다 번쩍였다. 그렇게 육체보다 먼저 정신이 무너져 사로잡히고 말았다.

    ‘젠장, 힘이……!’

    완력엔 자신이 있었지만, 기운을 집중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뿌리에 묶이고 나서 체력보다 더 본질에 근접한,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잡힌 이상, 바르델은 소울 트리에게 맛 좋은 영양분에 불과했다.

    소울 트리도 이렇게나 강력한 생명체를 잡은 건 오랜만이었던 터라, 순간을 즐기며 먹잇감을 산 채로 두고 남김없이 빨아들일 생각이었다.

    남은 시체는 다른 희생자들을 부르는 데 쓰고.

    뿌리를 압박하자 바르델의 폐에서 숨이 빠져나왔다.

    투사라 불리던 모험가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본인조차 죽음을 직감하고 포기하려던 그때.

    <윈드 사이클>

    사아아악!

    날카로운 바람이 뿌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절단되지는 않았지만 그 탓에 압박이 약간 풀렸다. 그 틈을 타 바르델이 있는 힘껏 감겨 있는 뿌리를 밀어냈다.

    겨우 탈출한 바르델이 소울 트리에게서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휴우, 겨우 살았…….’

    “백금 등급 모험가, 투사 바르델이 맞습니까?”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사내가 서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도시에서 온 구원병인가?

    바르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군.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은혜를 갚고 싶긴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지면에서도 미약한 진동이 울린다.

    사냥을 방해받은 것이 화가 났는지 소울 트리에게서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바르델이 곧바로 자세를 잡았으나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가쁘게 쉬는 걸 보니 상당히 지친 듯 보였다.

    거기다 무기를 잃어버렸으니 여기 있어 봤자 큰 전력은 되지 못할 터.

    ‘오히려 방해만 돼.’

    베르덴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뒤쪽으로 가면 모험가들이 있을 겁니다. 먼저 가서 합류하시죠.”

    “……설마 혼자 할 생각인가?”

    “원래 그러려고 왔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바르델이 옅게 웃었다.

    “젊어 보이는데 대단한 자신감이군……. 그런데 정말로 혼자 오지는 않았겠지? 혹시 레이라는 왔나?”

    아마 레이라라면 트런트를 몰살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그제서야 바르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말로 다행이야. 레이라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지. 그녀는 내가 아는 모험가들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니. 그리고 이건 자네한테도 말하는 거지만, 만약 레이라를 만난다면 이 말 좀 전해 주게, 저 소울 트리는 가짜고 본체는 지하에 숨어 있다고. 그 빌어먹을 하얀 눈동자들까지 말이야.”

    ‘지하?’

    콰가각! 지면에서 회색의 뿌리들이 솟구쳤다.

    베르덴이 도울 필요도 없이, 비틀거리며 뿌리들을 피해 낸 바르델이 바닥을 힘껏 박차며 보다 멀리 거리를 벌렸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거다. 그러니까 레이라가 올 때까지 무리하지 말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해. 그럼 부탁하지.”

    그 말을 남긴 바르델이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시간을 끌라니, 내가 그렇게 약해 보이는 건가?’

    뭐, 어쨌든 이걸로 마법의 위력을 조절할 필요가 없어졌다.

    마력을 끌어모은 베르덴이 바닥에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어스퀘이크>

    쿠구구구구!

    지축이 흔들리며 땅이 갈라졌다. 범위에 있던 트런트들이 틈새로 빨려 들어가며 형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 소울 트리의 주위는 갈라지기만 했을 뿐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뿌리로 땅을 잡고 있는 건지 몰라도 마법서로 강화된 어스퀘이크의 파괴력을 버틸 정도라니.

    ‘지하에 본체가 있다라.’

    베르덴이 틈새 사이로 시선을 던졌다.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암시로 본 베르덴의 시야의 끝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보였다.

    어둠이 가득한 공동.

    그 중심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회색 나무가 있었고, 가지에는 수백 구가 훌쩍 넘는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아마 저것이 바르델이 말한 소울 트리의 본체.

    ‘엄청난 크기다. 바깥에 있던 나무는 수많은 가지 중의 일부분이었나.’

    이런 게 도시로 가면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분명 저것이 리스너가 언급했던 진짜 시련일 터.

    베르덴은 솟구치는 뿌리들을 피해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곤 생각했다.

    ‘땅에 숨어 있으니 아무래도 공격이 제한되는군. 어스퀘이크도 통하지 않고.’

    결정했다.

    땅을 방패로 삼는데 억지로 두들겨 부술 필요는 없다. 더 강한 힘으로 방패 자체를 빼앗은 뒤, 놈을 자신에게 유리한 무대로 끌어오면 될 일.

    쉽진 않겠지만 베르덴은 자신이 있었다.

    그럴 만한 힘이 지금의 베르덴에게 있었으니까.

    <지형조작>

    4위계에 오른 뒤, 처음으로 전력으로 펼친 대규모 마법.

    그 순간, 숲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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