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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52화 (52/366)

52화 소울 트리 (1)

로리엔의 성벽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언제나 그랬듯 저 멀리 있는 숲을 바라봤다.

초록색이 가득한 울창한 풍경이었지만, 최근 들어 뭔지 모를 꺼림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요즘따라 숲이 뭔가 어둡지 않아? 모험가들이 실종됐다더니 무슨 일이 있긴 있나 보네.”

“뭐, 별문제야 있겠어? 바르델 씨가 갔는데 금방 정리되겠지. 실종된 사람들도 찾고 말이야.”

“그렇겠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건만.”

경비병이라는 게 그렇다.

매월 봉급을 받는 직업으로, 별문제가 없으면 경력이 쌓일수록 수입도 늘어난다. 거기다 퇴직금까지 챙겨 주니, 이보다 안정적인 직장은 흔치 않다.

그렇기에 이들은 누구보다 평화로운 나날을 바랐다.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고 있던 중, 해 질 녘 아래의 숲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어? 저거 사람…… 아닌가?”

“사람? 어디?”

숲에서 다급하게 빠져나온 여러 사람.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쳐다보니, 입고 있는 장비와 생김새가 영락없는 모험가들이었다.

“저거…… 오늘 아침에 나갔던 모험가들 아닌가?”

그래, 투사 바르델이 이끄는 수색대가 분명했다.

그런데 어딜 봐도 바르델이 보이지 않았다. 모험가들의 행색도 갈 때와 달리 아주 엉망이었고.

의문과 불길함이 동시에 찾아올 때쯤, 코앞까지 다가온 모험가가 소리를 질렀다.

“비상이다! 당장 문 열어!”

“비상이라는데?”

“뭔가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대장님에게 다녀오지.”

잠시 후,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로리엔으로 들어선 모험가들은 각자 나뉘어 모험가 길드와 시청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댕-! 댕-! 댕-!

이십 년이 넘도록 울리지 않던 종소리가 로리엔에 울려 퍼졌다.

* * *

로리엔 시장, 모험가 길드장 그리고 경비대장 등.

기사와 금 등급 이상의 상위 모험가들을 비롯한, 도시 방위의 주축들이 급하게 만들어진 회의실에 모여 보고를 듣고 있었다.

시장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볼 안쪽을 잘근 씹었다.

“트런트는 본래 악마의 숲에만 서식하는 게 아니었나? 이제까지 경계를 넘었던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가?”

트런트라는 나무 형태를 띤 이형종은 보통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어둡고 깊은 숲에서 나타난다. 악마의 숲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빛을 싫어해 바깥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때, 보고를 하던 모험가가 말을 이었다.

“그, 저희 대부분은 보지 못했지만, 바르델 씨가 분명 소울 트리라고…….”

“소, 소울 트리?!”

길드장이 경악했다.

몇몇 모험가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정체를 모르는 기사들과 시장은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울 트리? 그게 대체 뭔가?”

“아, 예, 시장님. 소울 트리란-.”

소울 트리는 생명을 죽이며 성장하는 나무.

필연적으로 모험가들에게 발각되기 쉬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발견된 횟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대부분 비교적 발생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과거에 몇 번이고 모험가들에게 토벌된 이형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생각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놈은 개체마다 가진 힘의 편차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극심했으니까.

모험가 길드에서 그 위험도를 최대 특수 개체에 버금간다고 기록했을 만큼.

특수 개체란 단어에 시장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그럼 지금 저 숲에 트, 특수 개체가 있다는 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특수 개체는 아닙니다만…… 만약, 악마의 숲이라고 지정된 이유였던 사람들의 원인 모를 실종과 이번에 나타난 소울 트리가 관계가 있다면, 자칫 도시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폐허가 되는 수준이 아니다.

도시 사람들은 전부 소울 트리의 양분이 될 것이고, 시체는 가지에 걸려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마치 전염병처럼.

소울 트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모르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면 비상 상태다.

여기서 막지 못하고 다른 도시마저 집어삼킨다면 공국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일어날 것이다.

“어서 다른 도시에…… 아니, 수도에 연락을……!”

“믿을 수 있는 기사에게 연락을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희생자를 막기 위해 도시를 폐쇄하고, 모험가만이 아닌 용병을 비롯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줄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다음 지원을 보내고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는 게-.”

“자, 잠시만요, 길드장님! 그럼 바르델 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런 모험가의 물음에 다른 모험가가 답했다.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전력을 분산했다간 다 죽을 수도 있잖아? 지금 숲이 얼마나 위험한진 너도 잘 알 테고. 그 투사니까 운이 좋다면 혼자서 빠져나올 수 있겠지.”

“뭐? 그럼 시발, 그냥 두고만 보자는 거야? 바르델 씨가 우릴 도시로 보내려고 목숨을 걸었는데!”

“모험가는 제 목숨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 몰라? 투사가 선택한 길인데 왜 나보고 지랄이야?”

“이 개새끼가-.”

“제가 가도록 하죠.”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모험가가 앞으로 나섰다.

흑색 망토 안에 감춰진,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전신 갑옷과 머리 전체를 감싼 적흑(赤黑)의 투구.

그 체형과 바깥으로 드러난 금색 머릿결이 여성임을 증명하고 있었고, 허리에 찬 붉은 검이 그녀가 누구인지 말하고 있었다.

현재 미스릴 등급에 가장 가까운 백금 등급의 모험가.

핏빛검, 레이라.

현재 여기 모인 자들 중에선 최강의 전력이었다.

“바르델 씨를 구출할 겸 소울 트리도 토벌하겠습니다.”

“레, 레이라? 아무리 자네라도 그건 무리라고 보는데.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길드장님.”

“하다못해 날이 밝으면-.”

“길드장님.”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 주변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본인이 모험가를 구하러 간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명분으로도 안 되는데, 더군다나 이들 전부가 막아선다 할지라도 레이라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설령 길드장이나 기사라고 할지라도.

시장과 시선을 나눈 길드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혼자 보낼 수는 없네. 지원자를 모집하지. 자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를 붙일 테니, 거절하지는 말게.”

“그건…… 알겠습니다.”

서로 느긋이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다.

레이라에게서 달갑지 않은 기색이 보였지만 긴급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밤이 찾아왔지만 마음 편히 잠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경비병들과 모험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성벽 밖을 감시하는 병사들이 많아졌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혹을 가지고 수군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야? 아까 그 종소리는 또 뭐고?”

“누가 그러던데 도시가 위험할 때 울리는 종이라던데요?”

“뭐? 그럼 무슨 전쟁이라도 터진 거야? 갑자기?”

“내가 뭐랬나! 그 간악한 에스티리아 왕국이 언제고 다시 공국을 넘볼 거라고 누누이 얘기했잖은가!”

전쟁이라는 말에 소란이 더 커졌다.

당연히 다른 도시에 자주 방문하며 소문에 능한 상인 같은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았지만, 로리엔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때, 단상 위로 기사가 올라갔다.

“자, 모두 진정들 좀 하세요! 그리고 거기! 전쟁 같은 것 아니니까 근거도 없는 소문 퍼뜨리지 마시고!”

겨우 광장의 소란을 잠재운 기사가 목을 가다듬곤 위에서 내려온 포고문을 읽어 내렸다.

숲에 나타난 위험한 괴물, 토벌에 나선 모험가들, 위험에 대비해 방위망을 구축하는 것.

이번 사태에 대한 개요에 대해서만 간단히 요약해 전달했다.

소울 트리라든지, 특수 개체라든지 하는 자세한 설명은 배제했다.

지금 상황에 시민들의 혼란까지 잠재울 여력은 없었으니까. 몇몇 사람들에 의한 선동에 휘말려 폭동까지 일어나는 사태는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모험가들이 토벌에 나섰다고 하니 안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토벌이 아닌, 바르델을 구하기 위한 수색대에 가까웠으나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포고문을 접은 기사가 게시판에 지원서라고 적힌 종이를 붙이곤 마지막으로 전달할 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니 모험가나 용병뿐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무기를 다룰 줄 아는 분이라면 저희에게 찾아와 주십시오. 보수는 아래에 적혀 있습니다.”

기사가 떠나고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원만 해도 돈을 준다는 소리에 힘에 자신이 있는 남자들이 신청했다. 거리에서 상점을 하고 있는 나이 든 마법사까지.

그러던 중, 잿빛의 마법사가 나타났다.

신비한 외모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끌렸다.

스태프를 등에 맨 베르덴이 기사에게 다가갔다.

“토벌대 지원도 가능합니까?”

“토벌대……? 그건 모험가들의 영역이라 잘은-.”

화르륵!

베르덴의 손바닥 위에 불꽃의 구체가 생겨났다.

피부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기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염구라면 분명 3위계…… 그렇다면 이 남자가 금 등급에 필적하는 마법사란 말인가?’

많아 봤자 아들뻘밖에 되지 않는 나이로 보이는데.

마력을 거둔 베르덴이 다시 기사에게 물었다.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는데, 안 되겠습니까?”

“……잠시 기다리시죠.”

기사가 막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모험가들에게 향했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투구를 쓰고 있는 한 모험가와 대화를 나눴는데, 표정을 보니 영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허락하든 말든 베르덴은 숲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 위험한 괴물이 리스너가 말한 시련이 분명했으니까. 단지 숲에서 모험가들과 마찰이 일어날 걸 방지하기 위해서 동행을 지원했을 뿐이었다.

리스너가 말한 한 달이라는 시간에 비해 사태가 일찍 일어난 감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사태는 없어 보였으니 갈 수밖에.

잠시 기다리자 백금의 플레이트를 목에 맨 모험가가 다가왔다.

체형이나 머리카락을 보아 여성인 것 같은데…….

‘리스너가 말한 그녀인가?’

그런 의문을 머리 한편에 담고 모험가 앞에 마주 섰다.

이내 차갑고 날 선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토벌대에 지원하고 싶다고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본인 몸은 스스로 지키시길. 뒤처지더라도 챙겨 줄 생각이나 여력 따윈 없으니까요. 그리고 방해가 된다면 강제로 배제하겠습니다.”

일방적으로 말을 내뱉은 그녀가 홱 하고 돌아서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혼자 남겨진 베르덴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가볍게 손을 풀었다.

‘방해라.’

방해가 될지 안 될지는 곧 알게 되겠지.

맨 뒤에 선 베르덴에게 흘끗 시선을 던진 모험가들이 일제히 성문을 빠져나갔다.

부여 마법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한 베르덴은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며, 다른 마법사 모험가들과 함께 하늘에서 그 뒤를 따랐다.

* * *

얼마 안 가 숲에 도착했다.

평소와 달리 음산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레이라를 필두로 안쪽으로 들어서자, 곧 저 먼 어둠 속에서 나무들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언뜻 봐도 상당한 숫자의 트런트였다.

“허…… 이거, 듣던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일단 마법으로 제압을…….”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레이라가 검을 빼 들었다.

어찌나 예리한지 칼날에 닿은 풀이 쩍 갈라졌다. 이어 주위를 압박하는, 살기에 가까운 날카로운 기세. 그녀가 칼을 몸 쪽으로 당기며 체중을 앞발에 실었다.

고요한 긴장 속에서 모험가들이 침을 삼키던 그때.

갑자기 베르덴이 모험가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검로가 막힌 탓에 레이라가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방해한다면 배제한다고 했을 텐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이 더 빠를 것 같아서.”

“그게 무슨…….”

그 순간, 마력회로를 활성화한 베르덴에게서 푸른 마력이 피어올랐다.

눈에 보일 정도의 거대한 마력량. 마력 감지를 펼쳐 범위 내에 살아 있는 인간이 없다는 걸 확인한 베르덴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더블 캐스팅.

<플레어>

콰아아아!

두 개의 붉은 광선이 숲을 관통했다.

휩쓸린 대지는 붉게 타올랐고 트런트와 나무는 구분 없이 재로 변해 버렸다. 마법이 끝나고 난 뒤, 남은 건 잿더미와 지글거리는 대지뿐.

이걸로 길은 만들어졌다.

베르덴이 경악에 빠져 있는 모험가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 갈 겁니까?”

뒤처진다고 해도 신경 쓸 생각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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