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50화 (50/366)
  • 50화 악마의 숲 (1)

    베르덴은 시간을 끌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전신에 가득 찬 마력은 베르덴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으며 법칙에 따라 마법을 구성했다.

    <연쇄번개>

    스태프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번개가 백색 눈동자들을 덮쳤다.

    놈들은 죽은 자였기에 생기가 없었으나, 육체 자체는 살아 있는 사람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당연히 생명체에게 절대적인 파괴력을 보이는 전격 계열 마법이 효과적일 터.

    콰아아아!

    직격당한 마법사는 반응할 새도 없이, 몸이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폭발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어 두 갈래로 갈라진 번개가 사방으로 퍼졌다. 위력은 처음보다 약해졌어도 놈들이 버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멀쩡한 건 회색 나무뿐.

    놈이 당황했는지 다급하게 뿌리를 길게 뻗어 베르덴에게 휘둘렀다.

    ‘전부 읽힌다.’

    마법을 쓸 필요도 없이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냈다.

    그러곤 충전된 마력을 방출해, 마력집중을 부여한 스태프로 뿌리를 힘껏 후려쳤다. 나무인데도 꽤 고통스러웠는지 회색 나무가 가지를 움찔거렸다.

    ‘죽은 자들을 조종하는 것 외에는 트런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데.’

    나무껍질이 단단하긴 하지만 그뿐.

    뭐, 어차피 나무인 이상 약점은 분명하다.

    <플레어>

    <플레어>

    <플레어>

    트리플 캐스팅.

    스태프에서 방출된 세 개의 광선들이 회색 나무에게 향했다. 놈이 뿌리를 들어 벽을 만들어 냈지만 고작 그걸로 4위계 화염 마법을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콰아아아아!

    뿌리를 태워 버린 열기가 그 본체를 집어삼켰다.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이 전부 불탔으며, 회색 나무의 표면은 숯처럼 검게 그을렸다.

    그리고 이내 크게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산산이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살아 있던 백색 눈동자들의 몸이 사라졌다.

    뭐랄까.

    일어난 사태에 비해 싱거운 결말이었다.

    피융! 베르덴이 하늘을 향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걸로 이번 의뢰는 마무리…… 음?”

    그러던 그때, 회색 나무의 잔해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백색 눈동자들이 죽었을 때와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데, 저건 사라지지 않고 숲 안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 빠르게.

    ‘저게 대체 뭐지?’

    설마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이형종 같은 건가?

    그렇다면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베르덴이 그 뒤를 쫓았다.

    숲이 점점 깊어지면서 내리쬐는 햇살이 줄어들었다. 얼마 안 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밤이 찾아왔다. 아무리 깊은 숲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어두울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둠이 가득했다.

    그렇게 하얀 연기를 거의 따라잡을 때쯤, 베르덴은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멈춰야만 했다.

    “이게 대체…….”

    회색 나무를 마주했을 때의 불길한 느낌.

    그 수십 배를 아득히 넘는 오싹한 기운.

    베르덴의 감각이 소리쳤다. 더 이상 이 앞으로 가지 말라고.

    마력감지를 사용해 봤지만 어떤 것도 식별할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숲 전체가 마력을 거부하는 느낌이다.

    ‘설마…… 여기가 그 악마의 숲?’

    공국과 모험가 길드에서 접근을 금한 지역.

    그때, 베르덴의 뇌리에 과거의 기억이 스쳤다.

    리스너가 말한 한 달과 악마의 숲.

    회색 나무에서 나온 연기.

    햇빛을 싫어하는 트런트가 악마의 숲 바깥으로 나온 이상 현상.

    ‘우연인가?’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방주의 리스너와 이 일을 연관 짓는 건 과한 추측이었다.

    그런데 왜 직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걸까.

    ‘……일단 돌아간다.’

    이 숲은 위험하다. 이미 하얀 연기를 놓쳐 버리기도 했고.

    몸을 돌린 베르덴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토벌대에게 향했다.

    * * *

    베르덴이 회색 나무를 상대하는 동안, 토벌대가 처리한 백색 눈동자의 숫자는 무려 수백. 그러나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죽은 사람은 없었다.

    발칸이 시선을 끌어 백금 등급 모험가를 비롯한 다수의 강적을 상대하기도 했고, 중반부터 숫자에 밀리긴 했지만 타이밍 좋게 베르덴이 회색 나무를 토벌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팔과 다리 그리고 복부에 화살을 맞은 발칸.

    로든마이어 백작이 온몸에 붕대를 감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기사단장 체면이 말이 아니군.”

    “면목 없습니다, 각하.”

    “됐다. 그래도 시킨 일은 잘해 냈으니. 피해가 안타깝기는 하나 이 정도에서 그친 걸로 만족해야지.”

    하마터면 더 큰 피해가 일어날 뻔했으니.

    로든마이어 백작은 한동안 카제르단 능선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모를 후속 조치였다.

    “네가 큰 활약을 했다더군, 애셔. 듣기론 4위계 마법사라고 하던데.”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상관없다. 오히려 나야 좋지. 룬의 반지를 소유한 4위계 마법사를 비교적 싼값에 부려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다음에도 잘 부탁하지.”

    고등으로 분류된 룬 문자 배열.

    그 룬의 반지에 욕심이 조금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로든마이어 백작은 베르덴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걸 택했다.

    ‘이런 인재는 꽤나 찾기 어려우니까. 그리고 쉽게 넘겨줄 것 같지도 않고.’

    뭐, 연줄을 붙여 놓는 편이 이래저래 얻을 게 많다고, 로든마이어 백작은 판단했다.

    의뢰를 마친 베르덴은 백작가에서 상당한 액수의 보수를 받았다.

    하긴, 베일론 자작을 무사히 구출한 것에 대한 지분은 누가 뭐래도 그가 제일 컸으니. 줄곧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 오던 클라크도 입을 꾹 다물곤 자리를 피했다.

    이후 베르덴은 페일에게서 마법서에 사용할 중상급 마석을 구매했다.

    그렇게 강화할 마법을 등록한 베르덴은 의뢰를 받지 않고 여행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리스너를 만나야겠어.’

    그가 말한 한 달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본래 무시할 생각이었다. 정체 모를 집단의 권유를 애써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러나 악마의 숲에서 느낀 그 불길함은 도저히 가볍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베르덴은 연구자.

    설령 관련이 없더라도 직접 확인해서 의문을 풀어내야만 이 찝찝한 기분을 지워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베르덴의 다음 목적지는 로리엔.

    ‘악마의 숲’이란 금지된 장소와 가까이 있는, 모험가들이 거점으로 삼는 도시였다.

    * * *

    아인종, 마수 그리고 이형종 등.

    모험가들은 인류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토벌하는 걸 업으로 삼는다.

    그리고 때론 매직 아이템이나 여러 물건에 사용되는 부산물을 채취해 돈을 벌기도 한다. 목숨을 걸고 싸운 보람이 있을 정도의 큰 금액을.

    모험가는 기회의 직업이다.

    승급을 위해선 최소한의 인성을 갖춰야 하긴 하지만, 결국 그 이상의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 출세할 수 있었다.

    가끔 백금 등급 이상의 모험가들이 국가의 권유에 따라 귀족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했고, 아니면 값비싼 임금을 받으며 귀족의 경호를 맡을 수도 있었으니.

    그런데도 모험가에 입문하기 위한 장벽은 매우 얇은 편이었다.

    그래서 모험가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부푼 꿈을 안고 찬란한 미래를 떠올리며 무기를 쥔 사람들.

    그러나 대부분 각자의 이유로 좌절한다.

    무서워서, 재능에 한계를 느껴서 또는 부상으로 인해. 어리숙한 모험가들의 결말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길드는 심각성을 느끼고 모험가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 마탑에 조사를 의뢰했다.

    모험가들은 왜 사상자가 많을까.

    마탑에서 세계적으로 그 원인들에 대한 표본을 수집해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 1순위.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려서’

    * * *

    “루커스! 그쪽으로 간다!”

    “맡겨 둬!”

    성난 콧김을 뿜어대며 마수 ‘보어크’가 뿔을 앞세우고 돌진했다.

    모험가 루커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는 검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리고 서로 부딪치기 직전, 옆으로 몸을 던지며 검을 휘둘렀다.

    뀌에에엑!

    목이 베인 보어크가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모험가들은 거리를 두고 조심히 지켜봤다. 그러다 힘이 빠져 비틀거릴 때쯤, 강철 해머가 놈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두개골이 박살 난 보어크가 덜덜 떨며 축 늘어졌다.

    “잡았다!”

    “잘했어, 딘!”

    “오늘 대박인데? 벌써 세 마리째야.”

    “수입 미쳤다!”

    보어크의 가죽은 튼튼하되 가공이 쉬워 나름 짭짤한 값에 팔아넘길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세 장이나 되다니.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운이 좋은 날이다. 모험가들은 기뻐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죽을 손질했다.

    거의 흠집이 나지 않은 가죽을 돌돌 말아 짐 가방에 단단히 매었다.

    “그나저나 요즘 마수가 잘 보이네. 전에 찾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뭐, 어때. 지금이 중요한 거지. 그런데 아직 날이 밝은데 어떻게 할 거야, 루커스?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한 마리 더 잡을까?”

    “에이, 벌써 돌아간다고? 더 잡자!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으니까.”

    “나도 동의해. 이렇게 운이 좋은 날은 흔치 않으니까.”

    “음, 모두의 생각이 그렇다면…….”

    루커스는 잠시 고민했다.

    동료들의 체력은 충분히 있어 보이고,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조금 더 보어크를 찾아봐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동료들의 의견도 그렇고.

    “좋아. 한 마리 더 찾아보자. 올리, 지도 좀 줄래?”

    루커스가 지도를 받아 바닥에 펼쳤다.

    로리엔의 서쪽에 있는 초록색 숲. 그리고 그 너머에는 우중충한 색깔의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악마의 숲까지는 거리가 좀 있으니까, 이쪽 근방을 좀 돌아보는 게 어때?”

    “좀 더 가까이 가자. 악마의 숲 근처에 마수가 많이 서식한다는 소문도 있잖아. 아니면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도 좋고. 솔직히 악마의 숲이라곤 하지만 위험하다는 말만 많지, 실제로 들어가 본 사람은 거의 없잖아?”

    숲 너머의 숲, 악마의 숲.

    그곳의 환경은 평범한 자연과 달랐다.

    나무는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져 있으며, 낮에도 빛이 거의 닿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들리는 정체 모를 비명 소리까지.

    기록에 따르면, 옛날 그곳으로 향한 모험가들이 대거 실종되어 조사대를 파견했지만 한 명도 찾을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실종자가 발생했다고도.

    결국 모험가 길드와 공국은 그 숲을 악마의 숲이라고 명명하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칙을 만들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얘기였다.

    루커스는 로버드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그렇게 안일하게 굴다가 죽는 모험가 얘기 못 들었어? 이유가 있으니 그런 소문이 난 거겠지.”

    “아, 알았어. 농담이니까 그렇게 정색하지 말라고, 루커스.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냥 해 본 말이야.”

    “그럼 됐어. 자, 출발하자.”

    루커스와 그 일행은 깊은 숲으로 향했다.

    하지만 금방 마수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고블린 한 마리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뭔가 기분 탓인지 숲이 너무 조용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풀숲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굳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흔적이었다.

    “마수의 피인가? 다른 모험가들이 벌써 왔다 갔나 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없을 리가 있겠어?”

    분명 위험을 느낀 마수들이 도망친 것이리라.

    아마 이 근방에서 찾는 건 무리겠지. 멀리까지 움직이기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루커스는 입맛을 다시며 동료들을 바라봤다.

    “어쩔 수 없지. 이만 돌아가자. 가는 길에 운 좋게 찾을 수도 있으니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루커스를 필두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도중에 나뭇가지를 꺾어 놓거나 나무에 칼집을 내는 등 표시를 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그래, 없어야 했다.

    “……어?”

    “왜 그래, 루커스?”

    “아니, 갑자기 흔적이 안 보여서.”

    분명 스무 걸음마다 흔적을 남겨 놨는데.

    주변을 둘러봤지만 꺾여 있는 나뭇가지도, 칼집을 낸 흔적도 없었다.

    “혹시 착각한 것 아니야? 아니면 실수했거나.”

    “그런가?”

    루커스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다시 앞으로 걸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실수했다고 해도 이렇게나 많이 했을 리는 없는데.

    ‘다른 모험가가 남긴 흔적하고 헷갈렸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일단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게 판단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분명 근처에 남겨 놨던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동료들까지도.

    “……얘들아?”

    목소리가 숲을 맴돌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 그걸 직감하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루커스는 온 힘을 다해 달리며 동료들을 찾는 데 전념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해가 졌다.

    어둠에 갇힌 루커스가 재빨리 횃불을 켜고 검을 빼 들었다.

    “시발, 어딨어! 어딨냐고!”

    불안은 극에 달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몸이 떨려 오는 그 순간, 나무 사이에서 익숙한 옷자락이 보였다. 올리가 입었던 로브가 분명했다.

    “오, 올리!”

    반가운 마음에 잽싸게 달려갔다.

    그런데…… 올리의 발이 허공에 떠 있었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나무줄기에 목이 묶인 올리가 죽은 눈으로 루커스를 바라봤다.

    “으아아아악!”

    다리에 힘이 빠지며 주저앉았다.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친 그는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시야에 비친 나무들이 전부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아, 악마의 숲?’

    “나는 분명…….”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루커스의 몸이 공포에 질려 제멋대로 움직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횃불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 아…… 아아……!”

    루커스를 바라보고 있는 수백 개의 백색 눈동자. 죽어 있던 올리마저 그런 눈으로 루커스를 바라봤다.

    그러곤 그들이 일제히 입을 벌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

    뚝. 루커스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러한 적막 속에서 주위에 있던 나무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롭게 생겨난 백색 눈동자와 함께.

    그리고 그 방향의 끝에는, 도시 로리엔이 있었다.

    * * *

    ‘거의 도착했군.’

    베르덴은 저 멀리 도시가 있는 걸 보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마법사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였다. 자칫 경비병들이 오해를 하고 경계할 수도 있으니까.

    성문에서 신분 확인을 하고 있던 중, 도시 안에서 모험가 무리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중 맨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백금으로 만들어진 플레이트를 목에 걸고 있었는데, 그를 포함해 그가 이끄는 모험가들은 죄다 완전무장을 하고, 얼굴도 심각해 보였다.

    ‘어디서 위험한 아인종이라도 나타났나?’

    설마 악마의 숲 때문에?

    아니,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다. 지금은 리스너가 먼저였다.

    그들을 지나친 베르덴은 일단 여관을 잡았다.

    기한 내에 오긴 했지만 어디서 만나자고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아마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만나러 올 터.

    그렇게 생각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렀다. 책자를 훑어본 베르덴이 종업원을 호출했다.

    “서로인 스테이크 하나와 로리엔 특산 포도주 하나.”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여성 종업원이 카트에 음식들을 실어 와 베르덴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방금 구운 빵과 포도주의 향기 그리고 고기가 익은 정도는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없었다.

    하지만 베르덴은 식기를 들지 않고 굉장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손님?”

    “왜 여기서 서빙을 하고 있는 거지, 리스너?”

    여성적인 얼굴에 가느다란 목소리.

    어느 모로 보아도 여성이었으나, 단순한 변장과 목소리의 변조로는 베르덴의 감각을 피해 낼 수 없으며, 마력의 본질까지 숨길 수 없었다.

    베르덴의 시선에 종업원이 미소 지었다.

    “이런, 들켰군요.”

    예쁘장한 외모에서 흘러나온 굵직한 목소리.

    그 기괴함에 베르덴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