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47화 (47/366)

47화 룬의 반지 (2)

일반적으로 백작은 자신보다 하위 계급인 자작을 보좌관으로 두는데, 주로 백작을 대신해 영지를 관리하는 일을 맡거나, 다른 귀족과의 중요한 거래나 협상 등에 나서서 백작의 입장을 표명하기도 한다.

백작의 대리인 그리고 자작이라는 귀족 계급.

당연하게도 그를 호위하는 수행원들은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더군다나 로든마이어 백작이 엄선한 자들이기에 장비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몇 번이나 다른 영지에 방문하며 짧지 않은 시간을 바깥에 있었으나, 작은 마찰이 있었을지언정 자작은 언제나 생채기 하나 없이 로든마이어 백작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내 보좌관, 베일론 자작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곧 돌아오겠다는 연락을 보냈다. 본래라면 이틀 전에 여기에 도착했어야 했지. 그런데 오기는커녕 연락 자체가 두절됐다. 말 그대로 실종이지.”

이미 수색대는 보냈다.

로든마이어 백작가의 직속 기사단 ‘로드론’의 부단장과 여덟 명의 기사. 요인 보호, 대인전 그리고 위기 대처 능력이 탁월한 그들을 말이다.

하지만 백작은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기사들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작에게 닥친 위험이 상정했던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작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그래서 로드론 기사단장을 비롯한 주력들을 추가로 보낼 계획이다. 백작가에 여러 잡음이 생기긴 하겠지만 감수할 수밖에.”

백작가가 가진 전력 중 태반에 가까운 무력. 아무리 자작을 찾기 위한 수색대라곤 하지만 과잉 전력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베르덴은 의문이 들었다.

“굳이 의뢰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백작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 정도면 베르덴을 고용해 봤자 큰 메리트는 없을 터. 오히려 백작가의 기사들하고 마찰이 일어날 수 있으니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그런 베르덴의 물음에 백작이 답했다.

“당연히 없지. 적어도 무력에 대해서는. 하지만 이번 건 섬멸이 아니라 실종자의 수색이다. 그런 이유로 너는 꽤 특이하더군.”

“제가 말입니까?”

“그래. 저번에 루튼 코호트를 잡고 난 이후로, 네가 지금까지 해결한 의뢰들을 확인했지. 누구길래 혼자서 전직 상급 용병이 이끄는 용병단을 그리 쉽게 제압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로든마이어 백작은 페일에게 정보를 요청했다.

물론 제공된 정보에는 의뢰 과정에 대해 단편적으로 적혀 있을 뿐, 의뢰인이나 의뢰 장소는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정보상 페일의 규칙이었다.

백작이 말을 이었다.

“로어 울프를 고작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찾아내 토벌. 그리고 페일이 위치 정보를 제공했다고 해도, 도망가는 데 도가 튼 수배범들을 깔끔하게 생포했지. 꽤 신선했다.”

요즘 시대에 추적술에 일가견이 있는 마법사는 굉장히 드문 편이니.

로든마이어 백작은 이 애셔란 마법사가 자작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페일을 통해 그를 지명했다.

베르덴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딱히 추적술이랄 건 없는데.’

마력감지로 흔적을 찾아내는 게 전부니까.

물론 이러한 방법은 마법사로서 기피되는 건 알고 있다.

마력감지는 소모되는 마력에 따라 감지되는 영역과 사물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단편적으로 주변을 식별하는 데 쓸 만해도 장기적인 추적에는 적합하지 않다.

마력감지로 추적을 이어 나가는 건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는 일이니까. 자칫하다간 도중에 마력이 고갈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단점들이 있기도 하고.

그렇기에 마력감지의 숙련도를 깊게 쌓는 마법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베르덴은 그 소수에 속했다.

“너는 기사단장이 이끄는 2차 수색대에 합류하게 될 거다. 준비되는 대로 출발할 예정이니 아마 오늘 저녁쯤이 되겠군. 질문이 있다면 지금 받아 주지.”

“독자적으로 움직여도 괜찮습니까?”

“되도록이면 수색대를 보조해 주는 형태로 갔으면 좋겠군. 그러나 여의치 않으면 혼자 움직여도 상관없다. 미리 기사단장에게 말을 해 두지. 대신 성과가 없으면 보수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물론입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의뢰에 대한 이야기는 끝. 이제 룬 전문가에 대해 물을 차례였다.

“페일을 통해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됐습니까?”

“룬 전문가 말인가? 미리 준비해 뒀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었지만.”

백작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집사가 한 사람을 데려왔다.

말끔한 복장을 갖춘 중년의 사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로든마이어 백작가의 서기관, ‘페른 로난데르’라고 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룬 연구가로 오랜 기간 활동하기도 했으니, 네 용건을 해결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을 거다. 그럼 볼일 보고 저녁에 다시 저택으로 오도록.”

그 말을 남기고 로든마이어 백작은 자리를 떠났다.

남은 건 서기관 페른과 베르덴뿐. 물론 호위 기사가 몇 남아 있었으나 그리 거슬릴 정도로 가깝게 있지는 않았다.

의자에 앉은 페른이 물었다.

“룬 전문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지식은 있다고 자부하니, 룬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딱히 물어볼 건 없습니다.”

“예? 그럼…….”

베르덴이 반지를 꺼내 페른에게 보였다.

보석 하나 없이, 몸체에 복잡한 룬 문자만이 새겨진 회색의 반지. 그것을 본 페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 룬의 반지? 대체 이 귀한 걸 어떻게……?”

“어쩌다 보니 손에 들어왔습니다. 어쨌든 제가 부탁드릴 건 이 룬의 반지를 다시 시동하는 겁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보수는 원하는 대로 드리죠.”

로든마이어 백작은 어디까지나 룬 전문가를 소개했을 뿐, 페른을 설득해 협조를 구하는 건 베르덴의 몫이다. 납득할 만한 정도의 보수라면 마땅히 지불할 생각이다.

페른은 룬의 반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룬의 반지를 재시동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별도의 재료조차도 필요가 없죠. 그리고 백작 각하께서도 협조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고. 그러니까 보수는 필요 없지만…… 그 반지, 좀 자세히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페른에게 룬의 반지를 건넸다.

그가 이리저리 반지를 들여다보는 동안, 베르덴은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다. 마탑에서 가져온 룬의 반지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기에 빼앗으려 들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지만, 그렇다고 백작가를 신뢰하는 건 아니었다.

반지의 관찰을 끝낸 페른.

그가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베르덴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 룬 문자의 배열…… 혹시 어떤 마법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베르덴이 가진 룬의 반지에 부여된 것은 바로 ‘감각’.

착용자의 감각을 전반적으로 강화해 주는 효과인데, 그런 간단한 설명과 달리 그 효용성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룬 문자의 해석에 따르면, 이 반지의 명칭은 ‘엑시드(Exceed)’. 그리고 여기에 새겨진 룬 문자의 배열은 ‘고등(高等)’으로 분류된 것들 중 하나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룬 문자와 궤를 달리하는 효과를 착용자에게 부여하죠. 하지만 그렇기에…… 이 반지를 시동하는 건 절대로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육체의 부담 때문입니까?”

“알고 계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재시동한 룬의 반지를 착용하면, 착용자의 육체에 룬 효과가 각인이 됩니다. 평범한 반지처럼 손가락에서 빼낼 수 없게 되는 거지요.”

착용자의 임의대로 룬 효과를 조작할 수 있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 엑시드라는 룬의 반지는 상시 발동형. 착용한 순간부터 감각이 강화된다. 만약 그 강화된 감각을 육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신체의 모든 감각이 뒤섞일 겁니다. 제대로 서 있기는커녕 기절과 각성을 반복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반지를 착용한 손가락을 통째로 잘라야 합니다. 감각을 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거구요. 자칫 평생 감각 장애를 앓을 수도 있습니다.”

베르덴은 마법사.

아무리 육체를 단련했다고 해도 기를 깨우친 자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몸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그렇다면 육체가 아닌 마력회로에 직접 각인해 주시죠.”

“……!!”

페른이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어떻게 그 방법을…… 아, 아니. 아무튼. 그건 전자의 경우와 비교하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실패한다면 손가락이 아닌, 한쪽 팔을 잘라 내야 할 겁니다. 마력회로의 손상은 당연하고요. 3위계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결코 그 정도로는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알고 있다. 마탑에는 갖가지 정보가 가득하니까.

애초에 몰랐다면 마탑의 보물고에서 가져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베르덴의 위계는 3위계가 아니라 4위계 중위.

최소한의 기준은 넘어섰으니 남은 건 베르덴의 의지에 달려 있다.

강화된 감각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당연히 있지.’

이건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일 뿐.

지금까지 이루었던 것과 앞으로도 이뤄야 할 것을 생각하면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다.

베르덴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던 페른이 침을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하지?’

로든마이어 백작으로부터 룬에 대해 도와주라고 듣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에 없었는데.

실패한다면 당연히 의뢰는 무산될 것이다. 그 책임에서 자신 또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해 보고 싶었다.

고등의 룬 문자를 시동하는 건 삶을 통틀어 이번이 두 번째며, 마력회로에 직접 각인하는 건 최초였으니. 룬을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으로서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결국 페른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저는 경고했습니다.”

후우. 심호흡을 한 페른이 베르덴에게 반지를 끼웠다.

그러곤 반지에 새겨진 룬 문자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대화가 아닌, 오로지 마법을 위한 언어.

그 뜻은 룬에 대한 지식이 얕은 베르덴은 알 수 없었다.

자연에 퍼져 있던 마력이 집결한다. 룬에 반응한 것이다.

그렇게 모인 마력이 서서히 반지에 스며들더니 룬 문자에서 작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베르덴의 몸속에서 인두로 지지는 듯한 격통이 일었다.

베르덴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고, 페른은 룬의 반지를 깨우는 데 더욱 집중을 가했다.

그렇게 마력회로 쪽의 통증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베르덴의 감각이 강화되었다.

시각, 촉각과 같은 오감.

움직임을 지각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평형감각.

인간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내장감각.

그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이 느껴지는, 마치 마력감지를 펼쳤을 때와 비슷한 느낌.

다만, 그 범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어지럽다.

시야가 흔들린다.

선선한 바람은 피부를 찌르는 듯하고, 페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진다. 혈관에 흐르는 피와 장기의 움직임마저 신경을 자극한다.

그야말로 혼란의 극치.

‘그렇다고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베르덴이 마력을 움직였다.

심장에 있던 방대한 마력이 마력회로 전체로 뻗어 나갔다. 자리를 벗어난 감각들이 마력에 강제로 이끌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뒤엉킨 감각이 풀어지자, 피잉──── 뇌리가 번쩍이며 베르덴은 고개를 떨궜다.

깜짝 놀란 페른이 다급하게 물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평온한 목소리.

고개를 든 베르덴의 눈동자에는 마법사답지 않은 날카로운 기세가 담겨 있었다.

* * *

로든마이어 백작의 저택, 2차 수색대로 엄선된 기사들이 군마를 이끌고 집결해 있다.

로드론 기사단장 ‘발칸’과 그 기사단의 마법사인 ‘클라크’가 서로 대화를 나눴다.

“방금 연락이 들어왔다. 1차 수색대의 소식까지 끊긴 것 같더군.”

“부단장까지 말입니까? 설마…….”

“쓸데없는 소리 마라. 그 부단장이니 적어도 죽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마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수색 도중 교전을 했다든가, 그 이상의 위험에 처해 있다든가. 어찌 됐건 우리는 최단 시간 내에 자작님과 수색대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자작이 실종된 위치는 카제르단 능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갈 생각이다. 극도로 훈련된 기사들과 군마의 체력으론 문제없다.

그때, 클라크가 베르덴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런데 백작 각하께선 무엇이 부족해서, 고작 3위계 마법사를 고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상급 용병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여기 수색대 중에 그 정도도 못 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해도 대부분 그렇겠지. 아마 각하께선 전력보단 능력에 의미를 두신 걸 거다. 추적술에 능한 마법사라고 했으니…… 어쩌면 그 방면에서는 우리보다도 더 뛰어난 실력을 가졌을지도 모르지.”

“그럴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클라크는 영 못마땅했다.

그는 백작가의 마법사로 자부심이 가득했으니까. 얼굴만 번지르르한 마법사 따위에게 좋은 생각이 있을 리 만무했다.

“뭐,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보아하니 준비는 끝난 모양이니 서둘러 출발하도록 한다. 기사들에게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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