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46화 (46/366)

46화 룬의 반지 (1)

“어서 오시죠, 마법사님! 연락드렸던 대로 아주 성공적으로 완성했습니다!”

모르트가 거치대에 장식해 둔 로브와 스태프를 두 손으로 가리켰다.

베르덴의 눈이 마법 물품에 담긴 효과를 읽어 냈다.

<감정>

◇ 블루 미스릴 스태프

⦁ 마력 회복 속도 증가(소)

⦁ 마법 시전 속도 증가(중)

⦁ 마력 충전

⦁ 마력 증폭(소)

고급 마석을 가공해 만든 푸른 보석, 소량의 미스릴이 포함된 합금으로 이뤄진 뼈대.

이 두 가지로 만들어진 스태프는 전에 쓰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력 전도율이 한층 더 높아지고, 담을 수 있는 마력량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스태프 자체에 마력을 충전해 언제든지 스태프를 강화할 수 있으며, 그 위력이 소폭 증폭된다.

방대한 마력량을 가진 베르덴에겐 항시 스태프를 강화하는 게 가능하단 얘기.

거기다 베르덴의 키를 약간 넘는 길이와 무게중심마저 손에 딱 맞는 게, 당장 실전에서 사용해도 문제없을 정도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아.’

마법 자체를 강화하는 효과가 없는 건 약간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타협할 만하다.

4위계 중위에 다다른 데다가 마법서까지 있으니 애써 미련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다음으로 로브에 시선을 향했다.

◇ 매지션 케이프

⦁ 체온 유지

⦁ 물리 내성(소)

⦁ 화염 및 냉기 내성(소)

⦁ 상태 보존

내성을 제외하면, 체온 유지와 별도의 관리 없이 깨끗한 상태를 보존하는 심플한 효과.

대부분의 비용이 스태프에 들어갔으니 당연한 성능이다. 지금 가진 재산으로 더 좋은 로브를 구하기엔 가격 대비 성능이 별로 좋지 않았다.

베르덴은 당장 돈을 쓰는 것보단, 아껴서 나중을 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로브 자체에 보호막이 부여된 걸 구할 기회가 올 수도 있고.’

그 전에 최소 억이 넘는 재산을 모아 둬야겠지만.

물론 베르덴은 자신 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럴 만한 능력이 충분하고도 넘쳤으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예, 확실히.”

확실히 마법 물품은 재료가 같을지언정 제작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베르덴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모르트가 웃으며 말했다.

“그 가격대에서 구할 수 있는 마석 중에 최고 품질을 썼습니다. 콘도르가 준비해 주더군요. 이야, 그 덕에 오랜만에 괜찮은 물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 어서 입어 보시죠.”

베르덴이 로브를 걸치고 스태프를 손에 들었다.

보석의 푸른색에 로브의 회색, 로브 안쪽으로 살짝 보이는 가죽 장비의 남색은 은은하게 위압감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베르덴의 눈과 머리칼과 잘 아우러졌다.

“하하, 아주 잘 어울리시네요. 그럼 저기…….”

“여기 잔금입니다.”

전에 보니 카드 리더기가 없었기에 즉석에서 현금으로 지불했다.

돈다발이 담긴 봉투에 모르트가 함박웃음을 짓고는 눈대중으로 액수를 가늠했다. 얼추 맞는 걸 확인한 그가 베르덴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마법사님!”

베르덴은 모르트의 인사를 받으며 바깥으로 나섰다.

이후 콘 상회에 잠깐 들러 콘도르와 만나고 여관으로 향했다. 더 이상 브리엔테에 볼일은 없으니 다음날 아침에 도시를 떠날 생각이다.

베르덴은 심장에서 울렁이는, 마치 바다와 같은 마력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졌으니 더 과감하게 움직여도 문제없겠어.’

갈리아크와 함께 토벌했던 통곡의 기사. 지금이라면 혼자서도 압도할 수 있다.

마력 소모가 큰 마법이 많기에 베르덴의 장점 중 하나인 방대한 마력량을 좀 더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대일이라면 5위계 마법사와 정면으로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 속도가 더뎌진다는 건 분명하다.

하늘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해서 하늘을 오르는 것이 쉬워지는 건 아니었으니. 보다 높이 올라갈수록 힘겨워지기 마련이다.

애초에 베르덴이 역천으로 이뤄 낸 건,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 남들보다 편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베르덴은 침대에 누워 다음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평소처럼 훈련은 지속하되, 외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무기와 방어구는 갖췄다.

가진 재산 내에서 만족스러운 장비들을 얻었으니, 후에 기회가 올 때나 상황에 맞게 더 성능이 좋은 걸로 바꿀 계획이다.

‘남은 건 마탑에서 가져온 보물들뿐인가.’

우선 마법서.

강화할 마법을 등록하려면 중상급 이상의 마석을 구해야 하나, 정보상 페일을 이용하면 쉽게 구할 수 있을 터. 말 그대로 돈만 있다면 땅 속성의 원소 마법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원소의 숨결과 마력 크리스탈.

이 두 개로 스태프의 재료인 ‘오브(Orb)’를 만들 수 있지만, 마법 물품 제작에 정말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감히 손도 댈 수 없다. 자칫 실패하기라도 하면 전부 가루가 되어 사라질 테니.

‘거기다 그에 맞는 뼈대도 없고 제작 비용마저 부족하니까.’

아직 이 둘을 활용하는 건 시기상조다.

그렇게 위 세 가지를 제외하면 남은 건 단 하나뿐.

룬의 반지(Ring Of Rune).

잠들어 있는 룬 문자를 깨울 차례다.

* * *

룬 문자.

그 기원은 오랜 연구에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고대에 사용하던 마법 물품 제작 기술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문자 자체에 마력을 품고 있으며, 문자의 배열에 따라 부여되는 가지각색의 마법적인 효과. 그저 문자를 새기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현되니, 어떻게 보면 현대의 제작 기술보다도 더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상용화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룬 문자를 새기는 방식을 재현해 내지 못했으니까. 이미 잊혀 버린 고대의 기술을 어느 누구도 구현하지 못한 것이다.

100년이 넘도록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기껏해야 시동이 중지된 룬 문자를 다시 일깨우는 게 전부였다.

아무리 잠재 가치가 높더라도, 성과가 없으면 버려지기 마련이다.

이미 마탑에선 연구를 중지한 지 오래. 현대에 이르러서는 고대에 관심이 많은 역사학자들만이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베르덴이 가진 ‘룬의 반지’.

복잡한 룬 문자 배열이 새겨진 이 반지는 마탑의 보물고에 보관될 정도로 귀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그 대신 룬의 효과를 견뎌 낼 수 있는 육체가 필요한데, 베르덴이 4위계에 오름으로써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제 룬의 반지를 깨워 줄 사람만 찾으면 된다.

본래 수소문해서 찾을 생각이었으나, 정보상이라는 수단이 생긴 이상 적극 이용할 생각이었다.

브리엔테를 떠난 베르덴은 곧장 코헨으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애셔 님. 마침 의뢰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 연락을 드리려 했는데 잘됐군요.”

“오늘은 의뢰가 아니라 정보를 구하러 왔는데. 무슨 일이지?”

“아, 그러셨군요. 그럼 먼저 애셔 님의 용건을 해결한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원하는 건 룬 전문가의 소개.

베르덴의 정보 의뢰를 받은 페일이 턱을 쓸었다.

“룬이라…… 물론 정보는 있습니다. 정확히는 룬 전문가의 소재에 대해 알고 계신 분에 대해서 말이지만요.”

“소재? 직접 만나는 방법은?”

“없습니다, 적어도 이 근방에서는. 더 멀리 보면 있기야 할 테지만, 애셔 님이 원하는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겸비하고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알다시피 룬이 새겨진 마법 물품은 희소하기도 하고, 룬 자체는 돈벌이에도 영 적합하지 않기에, 대부분 취미 수준에 그치는 정도니까요.”

“그렇다는 건, 앞서 말한 전문가는 다르다는 뜻인가?”

“애셔 님이 무슨 이유로 룬 전문가에 대해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제 개인적 소견으로는 ‘그렇다’라고 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베르덴은 고민했다.

정보를 구입해 룬 전문가의 소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도, 순순히 베르덴에게 협조할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베르덴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페일이 작게 미소 지었다.

“마침 애셔 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명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지명 의뢰?”

“의뢰인 쪽에서 애셔 님을 고용하길 원하십니다. 물론 거절하셔도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겁니다.”

다만.

“공교롭게도 룬 전문가의 소재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이 바로 그 의뢰인입니다. 꽤나 깐깐하신 분이시긴 한데, 의뢰를 받아 주신다면 흔쾌히 애셔 님의 요구를 들어주실 겁니다. 물론 보수는 별도고요. 그리고 의뢰에 관련된 일이니 제게 정보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의뢰 하나에 룬 전문가의 소재 정보, 보수, 정보료 면제라.

무슨 의뢰인지가 관건이겠지만, 베르덴이 의뢰를 수락할 이유는 충분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페일이 의뢰서를 건넸다.

의뢰 내용을 주욱 읽어 내리다 의뢰인 이름에서 시선이 멈췄다.

‘이 사람은…….’

로든마이어 백작.

의뢰인은 전에 노예 상인인 루튼 코호트의 생포를 의뢰했던 귀족이었다.

* * *

로든마이어 저택.

회색 저택은 고풍스러웠고 사방을 둘러싼 정원은 흐트러짐 없이 깨끗하다.

백작의 자택이라기엔 다소 검소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의 곁을 지키는 호위 기사들의 장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베르덴이 앞으로 고개를 돌려, 길을 안내해 주는 기사를 바라봤다.

강철에 금빛이 옅게 스며든 갑옷. 그 특징으로 보아 물리와 마법 내성이 뛰어난 다마스 강철을 사용했음이 분명했다.

‘엄청난 재력이군. 웬만한 부호들은 발끝도 못 따라가겠어.’

로든마이어 백작은 겉치레보단 실질적인 힘을 중시하는 귀족인가. 그게 아니라면 휘하 기사들의 수준을 높여 그 주인인 백작 자신을 더 빛나게 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페일이 말하길 로든마이어 백작은 실리주의자라고 했고, 실리주의자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을 뜻하니.

잠시 후, 기사를 따라 백작의 앞에 당도했다.

흰색에 가까운 금색 머리칼, 중년의 나이를 뜻하는 주름 그리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욕망이 담긴 금안.

야외에서 차를 마시던 로든마이어 백작이 베르덴에게 시선을 향했다.

“네가 페일이 보낸 마법사인가?”

“애셔라고 합니다.”

“알고 있다. 루튼 코호트와 그 일당을 ‘직접’ 생포해 내 주머니를 털어 간 마법사. 뭐, 들은 대로 얼굴 하난 번지르르하군.”

백작이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베르덴이 그와 마주 앉자, 노년의 집사가 직접 차를 따라 주었다. 향기를 맡아 보니 ‘골드 버즈’ 종류의 찻잎을 쓴 것 같은데, 역시 귀족다운 사치였다.

이어서 치즈 케이크 한 조각과 설탕이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퓨리 골드 버즈. 비싸기도 하지만 까다롭기까지 한 찻잎이지. 마시고 싶다고 마실 수 있는 게 아니니, 지금 제대로 맛을 음미하는 게 좋을 거다. 네가 차 맛을 알기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백작의 권유에 베르덴이 자연스레 손을 움직였다.

먼저 설탕을 반 스푼 차에 섞고는, 케이크를 먹기 좋게 잘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차를 머금어 치즈 케이크의 맛과 차의 풍미를 동시에 음미했다.

이것이 골드 버즈 차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었다.

마탑에서 가끔씩 맛보기도 했으며, 베르덴은 골드 버즈 차를 직접 달인 적도 있었으니 차 맛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베르덴의 행동에, 백작이 놀란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다과에 조예가 있었나?”

“어디 내세울 정도는 아닙니다.”

베르덴의 대답에 백작이 이내 피식 웃었다.

“바닥에 널린 용병들처럼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모양이야. 나쁘지 않군.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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