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44화 (44/366)
  • 44화 콘 상회 (2)

    콘도르는 베르덴을 극진히 대접했다.

    잘나가는 상회라 그런지 웬만해선 구할 수 없는 간식들이 많았다. 마탑에서 취급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근데 말이 많아.’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콘도르.

    콘라드보단 덜하긴 했으나 베르덴이 견디기엔 버거웠다. 마력으로 청각을 일부 차단하고 과자와 차에 집중했다.

    그러다 콘도르가 입을 멈출 즈음, 선수를 쳤다.

    “마법 물품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마법 물품? 아, 매직 아이템 말이시군요!”

    현대에선 매직 아이템. 옛말로는 마법 물품.

    마탑을 비롯한 고지식한 마법사들은 죄다 후자로 말한다. 매직 아이템이란 이름은 고상하지 않다나 뭐라나.

    베르덴은 딱히 명칭에 신경을 쓰지 않아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그러나 상인 콘도르는 달랐다.

    상대방과의 대화 속에서 버릇을 비롯한 정보를 알아내는 건, 거래를 보다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단초가 되니까. 몸에 밴 습관이었다.

    ‘아카데미 출신은 아니고.’

    하지만 마탑 출신은 더더욱 아닐 터. 독립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도 젊다.

    추측에 불과하나 작은 마을에서, 은퇴를 한 고명한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리라.

    저 정도의 외모를 갖춘 데다가 전도가 유망하기까지 한 마법사가 도시에 있었다면 어디선가 소문이 날 법도 했으니.

    콘도르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브레엔테는 귀족님뿐만 아니라 모험가분들 또한 즐겨 찾는 곳입니다. 여러 장비나 장신구가 즐비하지요. 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주문 제작을 할 생각입니다.”

    “주문 제작이라…… 그에 딱 맞는 장인이 하나 있긴 한데. 좀 하자가 있어서…….”

    “하자?”

    “모르트라고, 실력은 이 근방에서 따라올 사람은 없는데, 술주정뱅이에다가 도박 중독이라 빚을 달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신용 높은 장인인데도 은행에서 대출을 안 해 줄 정도니. 최근엔 사채업자가 기웃거린다더군요.”

    그런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베르덴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자 콘도르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리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의뢰는 전부 제시간 내에 끝냈으니까요. 품질은 말할 것도 없고요.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저희가 책임지고 원하시는 매직 아이템을 구해 드릴 테니 한번 믿어 보시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못 갈 거야 없지만.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베르덴은 곧장 콘도르가 알려 준 주소로 찾아갔다.

    일인 공방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적한 곳에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거리의 분위기는 고요했다. 도시의 소음이 점차 멀어지던 그때, 낡은 건물 한 채 앞에 도착했다.

    똑똑.

    문을 두들겼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마력감지로는 한 사람이 침대 방에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염력으로 낡은 잠금장치를 톡톡 건드리자 문이 열렸다.

    “…….”

    난잡하게 어질러진 공방.

    취급에 주의해야 할 마수의 가죽이 널브러져 있고, 갖가지 물건이 먼지에 싸여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게 장인?’

    갑자기 의뢰할 마음이 싹 사라졌지만, 꾹 참고 방으로 향했다.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며 시끄럽게 코를 고는 중년의 남자, 모르트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발로 가볍게 몇 번 차고 나서야 반응을 보였다.

    눈가를 비비며 일어난 모르트가 베르덴을 보곤 화들짝 놀랐다.

    “다, 당신 누구야?!”

    “모르트 맞습니까? 제작 의뢰를 하러 왔는데.”

    “아…… 손님? 난 또 빚쟁이들인 줄 알았네. 하아암, 지금은 졸리니까 나중에 다시 와서 주문해. 올 때 술 한 병 챙겨 오는 것도 잊지 말고.”

    모르트가 침대로 기어들어 가 이불을 푹 덮어썼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불을 빼앗을까 아니면 다시 찾아올까 고민하고 있던 중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웬일로 문이 열려 있네?”

    “또 도박장 간 것 아니야?”

    인상이 험악한 놈들이 하나둘씩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베르덴과 마주치자, 얼굴에 흉터가 나 있는 덩치 큰 사내, 베딘이 거들먹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거기, 잿빛 머리 친구? 여긴 무슨 볼일이지?”

    “주문 제작하러 왔는데.”

    “아, 손님이었나? 미안한데 지금은 좀 바빠. 저 도박쟁이가 우리에게 줄 게 있거든. 어이, 모르트! 자는 척 그만하고 일어나지?”

    몸을 움찔거린 모르트가 실눈을 떴다.

    모두가 그를 보고 있었다. 머쓱한 듯 머리를 긁으며 모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벌써 갚을 때가 됐나?”

    “갚을 때가 된 게 아니라 이자까지 붙은 지 오래다.”

    “그런데 지금 난 돈이 없는데.”

    “없으면 끝인가? 당장 일해서 갚든가, 존나게 두들겨 맞고 정신 차리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지. 800만 엘크가 뉘 집 개새끼 이름도 아니고.”

    베딘이 손바닥에 주먹을 부딪치며 으르렁거리자, 모르트가 손을 내저으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베르덴이 품에서 현금 다발을 꺼내 침대에 던졌다.

    “……뭐야?”

    “800만 엘크다. 그 돈 내가 대신 갚지.”

    어차피 제작 비용으로 대략 4,500만 엘크 정도를 예상했다.

    모르트에게 줄 돈이었으니 빚을 갚아 주는 대신에 그만큼 제작 비용에서 빼면 될 일이다.

    베딘이 돈다발로 손을 내밀다,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던져 버렸다.

    수백 장의 지폐가 허공에 휘날렸다.

    “이런 시발,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 없게. 내가 사채업이나 하고 있으니 만만하게 보이냐?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안 그래도 기분 안 좋아 죽겠는데. 야, 이 새끼 끌어내.”

    베딘이 씩씩거리자 부하들이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나무 조각과 날카로운 유리 파편 그리고 지폐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그들의 목을 겨누며 천천히 다가갔다.

    “마, 마법?”

    “시발, 여기 왜 마법사가……!”

    사채업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비켜라.”

    베딘이 부하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왔다.

    굳은 얼굴로 성큼 다가오는 게 뭔가 한 수가 있는 것 같았다. 부하들이 선망 어린 눈길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염력으로 띄운 물건들이 일제히 베딘을 가리켰으나,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베르덴 코앞까지 걸어왔다.

    서로가 마주하고,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사내가 움직였다.

    털썩.

    “살려 주십쇼.”

    “……?”

    * * *

    옛날 브리엔테는 지금처럼 활기찬 도시가 아니었다.

    공국이 독립하기 전, 왕국과 공화국의 전쟁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이곳엔 온갖 범죄자가 득실거렸다.

    힘이 전부인 야생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난 후 어느 날, 한 마법사가 나타났다.

    약해 보였다. 그래서 언제나 그랬듯 빼앗고 죽이려고 했다. 그게 브리엔테의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눈을 감고 떴을 때, 시체 1구가. 다시 떴을 때, 시체 10구가.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을 땐, 피바다가 만들어져 있었다.

    덤벼든 자들은 전부 죽었다. 악랄한 살인마도, 전직 용병도 그리고 전 백금 등급 모험가였던 뒷골목의 지배자까지도.

    모조리 뼈와 살이 분리되어서 말이다.

    사내, 베딘은 그저 주저앉아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그를 흘긋 보더니 그냥 지나쳐 갔다. 마치 죽일 가치가 없다는 듯이. 뒤에선 또 다른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왜 세간에서 미친 마법사를 두려워할까.

    당연했다. 전혀 강하지 않을 것 같은 외모로, 어떤 무기도 없이 누구보다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족속들이니.

    베딘은 다짐했다.

    절대 다시는 마법사와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마법사와 관련된 일이면 결코 참견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앞에.

    외모는 다르지만 그때 본 미친 마법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법사가 나타났다.

    ‘애매하게 굴면 뒈진다.’

    직감.

    그래서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쇼.”

    “……?”

    “마법사신 줄 몰라뵀습니다. 이렇게 빌 테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쇼. 다시는 마법사님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 제발……!”

    고개를 숙이고 손을 비비는 사내의 모습에 베르덴이 눈을 깜빡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아무리 상대가 마법사라고 하지만,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줄이야……. 애초에 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지만 위협할 마음마저 싹 사라졌다. 딱히 베르덴에게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력을 거두어들이곤 베딘에게 말했다.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나?”

    “아, 예! 있습니다! 큰형님이라고 계시는데 저희가 하는 사업의 총책임자 되십니다.”

    “그럼 길 안내 좀 부탁하지.”

    “……예?”

    * * *

    브리엔테에서 사채업을 하고 있는, 니스.

    하는 일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있는 만큼 주위에 약을 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씨발. 경비대장, 이 돼지 새끼는 몇 인분을 처먹어야 만족하는지, 원.”

    돈 빌려주고 이자 받으면 뭐하나. 남의 배때기만 불리고 있는데.

    그래도 참아야 한다. 얼마 안 있으면 큰돈이 들어와 지금의 삶을 청산할 수 있으니까. 이런 지긋지긋한 비즈니스는 이제 안녕이다.

    ‘그래. 그때까지 참자, 참아.’

    니스는 한숨을 내쉬고 사업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애들 얼굴이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부하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 큰형님. 베딘 형님께서 서둘러 방으로 와 달라고 하십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데 그래? 수금 갔던 애새끼들 얼굴은 왜 이리 죽상이고. 너희 혹시 사고 쳤니?”

    “저는 잘…….”

    부하가 눈을 피했다.

    큰형님은 의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문을 열자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었고, 베딘은 기립한 채 얼어 있었다.

    ‘누구지?’

    아! 혹시 상인의 자식이라든가 귀족의 자제분이신가?

    그렇다면 부하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역시 내가 사업 하나는 잘한단 말이야. 이러다 부자 되는 거 아니야?’

    니스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는, 웃는 얼굴로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그때, 베딘이 다가왔다.

    “큰형님.”

    “야, 귀한 손님이 오셨으면 진즉에 연락을 했어야-”

    “무릎 꿇으시랍니다.”

    ……?

    니스가 베딘의 얼굴을 주시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고 식은땀까지 흘리는 게 장난이 아닌 것 같다. 베르덴과 베딘을 번갈아 본 니스가 작게 속삭였다.

    “귀족 자제나 상인 같은…… 손님 아니야?”

    베딘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물 한 컵이 날아와 니스의 손에 쥐였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저 잿빛 머리의 사내는 마법사라고.

    그것도 자신의 부하들과 마찰이 생긴 듯한.

    ‘마법사? 그게 뭐 대수라고.’

    니스가 물을 단번에 들이켜고 당당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베딘보다 배짱이 두둑했으며, 눈치 또한 빠르고 처세술에 능한 인간이었다.

    털썩.

    “말씀하십쇼, 마법사님.”

    낯선 마법사는 위험한 법.

    간 보다 뒈지는 것보단 무릎 한번 꿇는 게 훨씬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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