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42화 (42/366)

42화 운명 (5)

“찾았나?”

“아니, 전혀 안 보이는데.”

페리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도대체 어디로 도망갔는지.

그녀는 비상용으로 챙겨 둔 포션을 상처에 바르면서 지상으로 내려갔다.

“마력감지는 해 봤어?”

“반응이 없더군.”

대규모 마력 감지는 소모가 극심해 이 주변 일대에만 마력을 퍼뜨렸다.

그런데도 반응이 없다면 경우의수는 총 세 가지다. 상대가 범위 바깥에 있거나 또는 죽었거나, 아니면 모종의 방법으로 감지를 피했거나.

‘나침반의 반응도 사라졌다.’

하르칸이 죽었나? 그렇다 해도 시체를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뭐가 됐든 귀찮아진 상황에 카르딘이 혀를 찼다.

“혹시 바위에 깔려 죽은 게 아닐까?”

“네가 말하고도 이상하지 않나? 그 기이할 정도로 많은 마력과 다중 속성. 놈은 3위계 이하의 마법만으로 우리 세 명을 상대로 버텨 냈다. 고작 떨어지는 바위 하나 못 피하고 죽었다는 건 말이 안 돼. 생각 좀 해라.”

“아, 그럼 어쩌라고! 마력으로 감지도 안 되는데 밤새 땅이라도 파자는 거야, 뭐야? 내 피부 상한 것 안 보여?”

“지금 피부가 문젠가?”

“그럼 뭐가 문젠데? 아, 네 얼굴 태워 버리는 게 문젠가?”

페리스가 화염을 일으키며 카르딘을 죽일 듯이 쳐다봤다.

이들은 블랙 아워라는 울타리에 묶여 있긴 했지만, 언제든 서로를 죽여도 무방할 만큼 인격이 뒤틀린 자들이었다. 혹여 불똥이 튈라, 첸은 멀리서 바라만 봤다.

‘미친년.’

한숨을 쉰 카르딘이 고개를 돌렸다.

이런 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페리스를 손봐 주는 건 나중에 해도 될 일. 지금 당장은 임무가 급선무였다.

“하르칸의 시체부터 찾는다.”

그러던 그때 나뭇가지들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쿠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동굴이 다 무너진 게 아니었나? 그런데 지진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진동이 커져 가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잠깐, 이 감각은…….’

익숙한 느낌.

눈을 부릅뜬 카르딘이 첸과 페리스에게 소리쳤다.

“전부 비행을 써라!”

그렇게 날아오른 순간, 땅이 무너졌다.

산맥 사이에 있는 숲이 갈라져 뿌리를 드러냈고 이내 확 가라앉았다. 지면 아래로 지상 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끌려 내려갔다.

지진에 휘말린 일대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직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지진? 이래선 시체 찾기는 글렀는데?”

“아니, 이건 마법이다.”

4위계 마법 <어스퀘이크>.

지진을 일으키는 광범위 마법으로, 위력만 따지면 같은 위계 중 상위에 속한다. 마법의 한계치까지 마력을 쏟아부으면 최상위에도 준할 정도.

카르딘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기에 그 특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발생한 마법이 얼마나 수준 높은 것인지.

‘누군가 개입했다.’

하르칸도 아니고, 잿빛 머리는 더더욱 아니다. 둘에겐 4위계의 마법을 쓸 힘이 없었으니.

그렇게 제멋대로 확신하는 순간, 흙이 솟구치며 블랙 아워를 덮쳤다.

“꺄악! 뭐, 뭐야?!”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시야가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눈알을 바쁘게 굴려 가며 두리번거리던 중. 흙 속에서 스태프가 나타났다.

“첸!”

우지직!

어깨를 강타당한 첸이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이내 흙먼지가 폭풍에 휘말리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잿빛 머리의 마법사, 베르덴.

그의 두 눈에선 이전에 없던 강렬한 마력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하르칸이 평생을 바쳐 만든 포션은 달리 말해 ‘운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1위계 마법사든, 6위계 이상의 대마법사든 무관하게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으니. 말 그대로 선택받지 못한다면 실패는 확정이었다.

하지만 베르덴이었기에 성공, 그 이상의 기적을 일으켰다.

마탑의 동력원, 무한한 마력으로 재구성한 육체엔 한계란 없었다. 그것이 베르덴의 바람이었고, 역천의 목적이었으니까.

‘마력회로가 확장됐다.’

바다와 같던 마력 또한 한층 더 깊어졌다.

그리고 하르칸이 만들어 낸 생소한 속성까지.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연 그 자체였다.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베르덴이 단계를 밟으며 이루었어야 할 성장이 몇 년이나 앞당겨지게 된 것이니.

그렇게 도달한 경지가 무려 4위계 중위.

그 사실에 하르칸에게 깊이 감사했다. 얼마든지 그가 원하는 바람을 이뤄 줄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어차피 블랙 아워와 마찰은 생겼으니.’

이후에도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다 보면 블랙 아워의 수장, 다히트와 배신자인 최초의 구성원들 또한 만나게 되겠지.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피할 생각은 없었다. 굳이 복수가 아니더라도 강력한 존재는 그 위로 나아갈 훌륭한 발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준비가 되면 베르덴 스스로 갈 생각이다. 뜻하지 않게 습격을 받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세 명은 여기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경악한 표정으로 베르덴을 바라보고 있던 카르딘이 입을 열었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왜……?”

베르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폭풍>

대기가 휘몰아친다.

뿌리 뽑힌 나무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구름이 뒤엉켜 하늘을 가렸다. 잔해에 휘말린 페리스가 나가떨어지고, 카르딘이 이 악물고 버티며 마법을 시전했다.

<폭풍>

그는 땅과 바람, 두 속성의 4위계까지 다다른 마법사.

베르덴의 폭풍과 역방향으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완전히 마법을 상쇄할 생각이었겠지만, 상황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이런……!”

화아악! 카르딘의 폭풍이 버티지 못하고 집어삼켜졌다. 이내 폭풍이 그를 거세게 몰아붙였고, 막강한 압력에 순식간에 지면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앙! 콰앙! 콰과과광! 뒤늦게 방벽을 펼쳐, 몇 번이고 바닥에 튕긴 카르딘이 깊게 신음을 흘렸다.

그때, 화염 장막을 펼친 페리스가 베르덴을 향해 돌진했다. 첸이 조종하는 무기들과 함께.

‘얼굴이 잘생겨서 봐줬더니, 감히 나를 땅에 처박아?’

용서 못 해.

피부를 녹여 모든 구멍을 막아 버린 뒤, 바닥을 기게 하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다.

페리스가 핏발 선 눈으로 베르덴의 마력방벽과 격돌했다. 붉게 타오른 화염이 점점 마력을 잠식하며 방벽을 손상했다.

이것이 그녀의 전력이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차라리 죽고 싶어질 정도로 태워 줄 테니까. 왜냐하면-”

“그게 다인가?”

태연한 베르덴의 물음에 페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별 볼 일 없군.”

화악! 마력방벽이 사라지고, 베르덴의 주위에 페리스와 같은 화염 장막이 생겼다.

그러나 그 화력은 페리스를 훨씬 웃돌았다. 서서히 뜨거워져 가는 열기에 페리스의 머리끝이 검게 타올랐다.

“이……!”

도망가려 했지만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다. 찐득한 화염이 피부와 근육에 스며들어 뼈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페리스의 눈동자에 베르덴이 비쳤다.

무정한 눈으로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공포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히끅.”

<플레어>

손에서 터져 나온 화염이 페리스의 몸을 감췄다.

고온의 광선이 쓸고 지나간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페리스도, 나무도. 그저 용암만이 고요히 흘러내렸다.

하나는 죽였으니, 나머지는 둘.

차례는 이미 정했다.

아까부터 무기를 이리저리 날려 보내며 급소를 노리는 마법사. 동굴에서부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마력을 일으켜 염동력이 깃든 무기를 강제로 멈추곤, 방향을 바꿔 주인에게 날려 보냈다.

“끄아아아악!”

다리와 복부에 칼이 박힌 첸이 주저앉았다.

‘이, 이럴 리가……!’

염력으로 움직이는 무기의 권한을 강제로 빼앗다니. 마력 조작 능력이 어지간히 차이가 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인데.

저 어린놈이 그렇게 뛰어나다는 말인가? 고통은 현실이었으나,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마법사로서의 자부심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기분이다.

첸의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치 별처럼 수놓인 뾰족한 나뭇가지들이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턱끝에 식은땀이 흘러내림과 동시에 그것들이 일제히 첸의 몸을 꿰뚫었다.

푸부부부부북!

죽은 첸의 주머니에서 나침반이 툭 떨어졌다. 베르덴이 염력으로 들어 올려 손에 쥐었다.

‘복잡한 구성이군.’

연구할 가치가 있다. 나침반을 챙기고 마지막 타깃인 카르딘을 찾았다.

예상대로 놈은 동료들을 희생양 삼아 도주하고 있었다. 4위계 마법사가 전속력을 내면, 베르덴이라 해도 따라잡기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쪽에는 마법이 있지.’

바로 하르칸이 만든 마법이.

베르덴의 손에 회색의 마력이 맺혔다.

흐릿하고 반짝이는 잔상이 천천히 별자리를 그리자, 갑작스레 마력의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큭……!”

털썩. 극심한 탈력감에 한쪽 무릎을 꿇은 베르덴.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 순간, 별이 떨어졌다.

* * *

페리스의 죽음 직후, 카르딘은 있는 힘을 다해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첸이 남아 있었지만, 이들은 그 정도로 동료애가 깊지 않았다. 그저 정해진 규율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뿐.

‘저건 나 혼자선 이길 수 없다.’

페리스는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화염 마법사였다.

그런데 손쓸 틈도 없이 죽어 버렸다. 그녀가 자랑하는 화염 계열에 의해서.

대체 잠깐 사라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잿빛 마법사의 힘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게 분명해.’

그사이에 4위계에 올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그래서 카르딘은 모종의 이유가 있다고 확신했고, 블랙 아워의 주력이 되는 마법사가 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둘러 연락을 해야 한다.

만약 놓치기라도 한다면, 훗날 블랙 아워를 가로막는 거대한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으니까.

카르딘은 마력을 쥐어짜 내며 숲을 가로질렀다.

그러던 그때, 등 뒤에서 빛이 쏟아졌다.

‘동이 틀 시간이 아닌데……?’

의문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무언가가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단순히 별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거대했다.

기분 탓인지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아니, 가까워지고 있다.’

오싹. 카르딘의 피부에 소름이 끼쳤다.

다급하게 속도를 내며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벗어나려 했지만, 빛은 여전히 그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항거할 수 없는 미증유의 압력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죽음이 다가올수록 카르딘의 정신이 무너졌다.

피할 수 없다. 그 사실이 심장을 옥죄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혹시 착각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저런 마법은 들어 본 적조차 없었으니, 잘못 본 게 분명했다. 반드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카르딘이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자.

“아…….”

빛이, 떨어졌다.

하르칸이 만든 다섯 별 중 하나.

흐르는 별, 유성流星.

번쩍이는 섬광과 폭발에 이은 후폭풍.

바르드산맥 일부를 소멸한 유성은, 거대한 크레이터 외에 그 무엇도 남기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