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5화 (35/366)

35화 로어 울프 토벌

마수를 토벌해 본 경험은 없었으나, 사실 과정 자체는 아인종과 다를 바가 없었다.

추적해 죽이는 것, 그게 전부다. 소재가 쓸 만하면 채취하기도 하나 그건 부가적인 목표일 뿐이다. 그러니까 페일이 보여 준 건 지극히 평범한 모험가 길드의 의뢰였다.

베르덴이 물었다.

“마수 토벌은 모험가 길드에서 전담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굳이 여기에 의뢰한 거지?”

“지극히 정상적인 의문입니다. 사실 이런 덴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주로 돈 문제지요.”

모험가 길드는 국가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그들이 없다면 여기저기서 들끓는 아인종, 이형종 그리고 마수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가 없다. 외곽 지역에선 의뢰를 받아 줄 사람 하나 구하는 것조차 힘들겠지.

물론 아예 막을 수 없다는 건 아니다.

휘하의 기사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병 등 피해가 더 클지라도 영주가 직접 대응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토벌 개체에서 얻은 소재를 온전히 영주가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충돌이 일어난다.

만약 영주가 사병을 움직여 돈이 되는 마수와 아인종을 사냥한다면, 그 지역에 있는 모험가 길드는 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고블린이나 코볼트의 수가 불어나 작은 마을들을 습격하겠지. 어지간히 사병이 많지 않는 이상 영주 홀로 대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에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관련 법이 제정되었다.

위급 상황을 제외하고, 모험가 길드의 토벌 권리를 우선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영주의 반발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으니까.

“지금 시대에, 예를 들어 영지에 마수가 출현하면 영주는 모험가 길드에게 의뢰해야 합니다. 그러니 토벌 보수를 지급해야 하죠. 하지만 그 비용에 마수의 사체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수의 사체에 대한 권리는 모험가 길드로 넘어간다.

그리고 여러 가공 단계를 거치고 경매를 통해 상인들에게 넘어가는데, 만약 영주가 소재를 원한다면 경매에서 선순위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유통 과정을 거쳤기에 소재 비용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한다.

영주 입장에선 짜증 나는 일이다.

옛날보다 돈과 시간이 훨씬 더 소모되어 버리는 거니까. 그렇다고 대놓고 법을 어겼다간 소재 압수와 더불어 적지 않은 과징금까지 지불해야 한다.

영지의 평가가 낮아지는 건 덤이고.

“그래서 몇몇 영주들은 아인종이나 마수가 확인되면 길드에 알리기 전에 가능한 먼저 토벌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값이 훨씬 더 싸게 먹힐 테니까. 사병을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나, 웬만해선 그레이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자칫 사병이 죽기라도 했다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요.”

“귀족의 불법에 관여하는 건데 문제는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 의뢰는 불법이라고 치부하기엔 좀 약해서 말이죠. 모험가 길드하고 친분이 있는 귀족의 경우엔 들키더라도 눈 감아 주는 일도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페일은 귀족들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나름의 신용을 쌓아 올렸습니다. 이런 의뢰쯤이야 흔한 축에 속하죠. 공국은 나날이 발전해 가는 나라인 만큼,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의뢰들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언젠가 애셔 님께서도 하게 될 일일지도 모르죠. 뭐, 어쨌든.”

페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번 의뢰. 받으시겠습니까?”

베르덴은 이미 선택을 마쳤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받지.”

* * *

로어 울프.

놈의 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효는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연약한 내부 장기를 터뜨려 사냥하는 것이 특기. 평범한 사람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잡아먹힌다.

모험가 길드가 책정한 위험도는 금 등급 이상. 성대를 먼저 끊어 버리는 것이 기본적인 공략 방법이다.

‘남은 기한은 약 38시간.’

라드란 백작이 요구한 시간이다. 그 안에 토벌을 마치지 못하면 의뢰는 실패다.

사전 조사를 마친 베르덴은 바로 움직였다.

이런 간단한 의뢰조차 실패할 수는 없다. 페일에게서 의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베르덴이 가진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코헨에서 라드란 영지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이틀 거리. 비행으로 주파해 해가 기울기도 전에 도착했다.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화창한 숲.

그러나 아주 고요했다. 그 흔한 새가 지저귀는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로어 울프는 자신보다 약한 늑대들을 부하로 삼아 무리를 이룬다.

그리고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먹잇감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아인종이고 짐승이고 말이다.

즉, 이 구역은 놈들의 사냥터 중 하나라는 뜻.

<마력감지>

베르덴이 마력을 수평으로 퍼뜨렸다.

앞으로 걸어 나가며 시시각각 범위를 조정하자, 바닥에 흩뿌려진 혈흔이 감지되었다.

멀지 않은 위치에 널브러진 사슴의 사체. 여기저기 물어뜯겼으며 곤죽이 된 내장이 말라붙어 있는 게 보였다.

‘로어 울프의 흔적이군.’

보아하니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추적을 이어 나갔다.

곳곳에서 감지되는 뼈와 썩은 고기. 개중에는 반쯤 남은 오크의 사체 또한 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기 시작하며 밤이 찾아왔다.

피부를 스치는 스산함. 베르덴이 퍼뜨린 마력에 수십 개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안광이 베르덴을 향해 번뜩였다.

* * *

“음…….”

사냥감을 보는 듯한 시선에 베르덴이 볼을 긁적였다.

분명 추적하는 건 자신이었는데, 역으로 놈들이 찾아와 버렸다. 아마 자신을 사냥감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다.

‘뭐, 아무래도 좋지만.’

어쨌든 찾는 수고를 던 셈이니.

베르덴의 주위를 둘러싼 늑대의 수는 총 22마리. 로어 울프로 보이는 개체는 감지되지 않는다. 아마 사방에 퍼진 마력을 눈치채고 숨어 있는 거겠지.

감각이 예민한 마수는 마력을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하니까.

하지만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숨어 있는 장소는 마력감지 범위 바깥이면서 기습을 하기 용이한 위치.

<윈드 사이클>

날카롭게 회전하는 바람의 원반이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 갈랐다.

열 그루가 넘는 나무가 중력에 이끌려 쓰러지기 시작하자,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낙하했다.

[크르르르…….]

몸 길이만 4m를 넘는 체구. 일반적인 늑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들킨 게 꽤나 신경질이 났는지, 로어 울프는 베르덴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리며 발톱으로 연신 바닥을 긁었다.

‘저 덩치로 나무를 오른 건가? 생각보다 날렵한데.’

<암시>

시야가 밝아진다.

마력감지를 해제하고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주위에 퍼져 있던 마력이 사라지는 것을 위협이라고 판단했는지, 털을 곤두세운 로어 울프가 포효를 내질렀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

정면으로 쏘아져 나가는 충격파.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정면으로 막는 건 하책이다.

<석벽>

베르덴의 발밑에서 벽이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비행을 써서 자리를 벗어났다. 포효에 적중당한 석벽이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아무리 2위계 마법이라지만 마법서로 강화한 마법인데…….’

상당한 파괴력이다.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석벽은 되어야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왜 성대부터 끊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의뢰의 주 목표는 토벌이며 부가 목표는 소재다.

깨끗하게 잡을수록 베르덴이 받는 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로어 울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소재 중, 가장 비싼 것이 바로 성대.

화염 마법이나 얼음 마법을 광범위하게 터뜨려 손쉽게 목 안쪽에 손상을 입힐 수 있으나, 그렇게 되면 당연하게도 소재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건 너무 아까웠다.

굳이 약점을 공략하지 않아도 토벌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

베르덴이 지면으로 내려갔다.

로어 울프의 포효를 들은 늑대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충격파>

<어스본>

콰드드득!

충격에 주춤거리던 순간, 지면에서 솟아오른 송곳이 늑대들을 관통했다. 뒤이어 돌진해 오는 놈들은 베르덴이 스태프에 마력을 집중해 때려잡았다.

한 방에 한 놈씩.

캐개갱!

캐앵!

순식간에 줄어드는 숫자. 아직 살아남은 늑대들이 있으나 이미 겁에 질린 상태다.

이에 분노한 로어 울프가 베르덴에게 돌진했다. 그 경로에 있던 늑대들이 발톱에 찢기거나 튕겨져 나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수답네.”

<석벽>

트리플 캐스팅.

콰아아앙!

로어 울프의 몸이 벽과 충돌했다. 두 개의 석벽이 박살 났으나 놈도 충격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비틀거리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베르덴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캐앵!]

로어 울프의 가슴을 강타한 암석.

뒤로 나가떨어진 놈이 뒤늦게 중심을 잡더니, 다시 한번 포효를 내질렀다. 인간에 비해, 공격 패턴이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에어 레일>

포효는 소리의 일종이기에 공기를 통해 움직인다. 마법으로 공기의 방향을 유도해 궤도를 비트는 건 간단한 일.

퍼어억! 퍼억! 마수가 내지른 충격파가 늑대들을 덮쳤다.

이걸로 남은 건 로어 울프 하나뿐.

베르덴의 마력에 따라 지면이 융기했다. 근처에 있던 나무들이 뿌리째 드러났다.

움직이는 로어 울프를, 최대한 소재에 손상이 가지 않게 토벌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바로 때려잡는 것.

허공에 뿌리 뽑힌 나무들이 떠올랐다.

베르덴이 손가락을 튕기자, 로어 울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앙! 콰앙! 콰앙!

놈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피해 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길어야 한 시간.’

토벌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 * *

베르덴은 토벌한 로어 울프를 약속한 위치에 갖다 두었다.

이후 페일의 부하들 감독하에 라드란 백작가가 사체를 가져가는 걸 확인했다. 이제 돈만 받으면 의뢰는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라드란 백작이 보낸 보수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고가에 거래되는 로어 울프의 성대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평범한 3위계 마법사는 아닌 모양이군요.”

로어 울프는 비교적 마법사에게 쉬운 상대다.

하지만 성대를 노리지 않고 싸운다면 꽤나 까다로워진다.

페일이 잿빛 머리의 마법사를 떠올렸다.

그 도살자가 손수 추천을 했으니, 외모만큼이나 특별한 구석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예상이 적중한 모양이다. 페일에게 좋은 방향으로.

의뢰인의 니즈(Needs)를 생각하는 태도는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좋은 화살이 생겼습니다.”

이곳은 페일의 화살촉.

쓸 만한 화살촉을 구해 화살대를 끼우고 시위를 당겨 표적을 겨냥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리고 표적에게 박힐지 말지는 화살촉에 달려 있다.

얼마나 날카롭게 갈려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테니.

페일의 기준에서 애셔란 이름의 화살촉은 꽤 날카로웠다.

노릴 수 있는 표적이 한정되긴 하나, 잘만 다듬는다면 덩치 큰 표적조차도 노릴 수 있으리라.

아무래도 길게 인연을 이어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페일은 그렇게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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