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4화 (34/366)

34화 정보상 페일

베르덴은 곧장 코헨(Cohen)으로 향했다.

같이 움직여야 할 일행이 없으니 거리낌 없이 최대로 속도를 높였다. 몇 시간이나 비행을 유지하는 건 꽤나 피로가 쌓이는 일이었으나, 그 만큼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사람을 고용해 편하게 야영을 하는 것보단 하루빨리 도시에 가서 여독을 푸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3일 정도가 지났다.

마력으로 만들어 낸 물로 몸을 씻고, 육포와 물로 끼니를 때우던 그의 앞에 마침내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간단한 검문을 받고 도시에 입성했다.

‘마르테스보다 규모가 크군.’

코헨은 일종의 공업 도시로, 특히 제조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생필품을 만드는 건 반복적이고 복잡하지 않는 일감. 결코 수입이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위험에 처할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인종이나 도적의 습격이 없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사람들이 모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빈부 격차 또한 마찬가지.

몰려드는 인구 탓에 코헨의 빈민가는 공국의 어떤 도시보다도 넓고 열악하다.

좋은 주거 환경은 한정되어 있기에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이 모여 만든 빈민가. 많은 인구수에 비해 치안이 여러모로 부족했기에, 누군가 몸을 숨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베르덴은 거기서 ‘페일의 화살촉’이라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우선 자리부터 잡을까. 공방에 볼일도 있고.’

코헨의 삭막한 거리를 지나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여관에 들렀다.

“어서 오…….”

점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사다운 차림새에 신비로운 외모. 예사 손님이 아니다. 눈을 깜빡이고 있던 점원 대신 여관 주인이 잽싸게 다가가 그를 응대했다.

“꿀벌의 쉼터에 어서 오십시오. 저는 이 여관의 주인인 파브르라고 합니다. 원하신다면 안내를 도와드릴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베르덴이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은은하게 풍기는 달짝지근한 냄새와 밝은 색조의 인테리어.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의 얼굴은,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과는 달리 활기차 보였다.

굳이 다른 여관을 찾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꼭대기 층에 빈자리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여관에서 특실로 분류되는 곳으로, 도시의 여관 중 유일하게 코헨의 정경을 즐길 수 있는 방이지요. 더불어 마력 승강기도 있기에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1박에 4만 엘크로, 삼시 세끼 갓 만든 식사를 포함하면 5만 3천 엘크입니다.”

“특실로 2주 빌리겠습니다. 식사는 방 앞에 놔 두시면 됩니다.”

코헨에서 보기 드문 통이 큰 손님. 매출이 훌쩍 뛰는 소리가 들린다.

베르덴이 카드를 내밀자, 파브르가 넙죽 허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았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 * *

날이 저물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베르덴은 마흐바트의 가죽과 녹슨 반지를 챙기고 공방이 있는 거리로 향했다. 생소한 도시지만 여관 주인에게 물어보니 지도까지 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윽고 첫 번째 대장간이 보였다.

땅! 땅!

분주하게 움직이며 철을 두드리는 대장장이들. 많이 바쁜지 주문을 받기도 어려워 보였다. 저런 곳에 맡겼다간 품질은 차치하고 차례가 한 달 넘게 밀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손님이 많아 보이는 대장간은 지나쳤다.

“……음?”

구석에 자리 잡은 한 대장간.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남성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꽤나 한가로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바깥에 전시된 검과 갑옷을 유심히 쳐다봤다.

‘괜찮아 보이는데.’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하겐 몰라도, 겉으로 보기에 다른 대장간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왜 손님이 없는지 의문이었다.

그때, 대장장이의 고개가 덜컥 내려갔다.

“어우 씨, 목이야…….”

목을 가볍게 주무른 뒤, 기지개를 켜던 그가 베르덴과 눈을 마주쳤다.

“이것 참, 손님이 와 있었구만. 크흠, 뭐, 찾는 거라도 있으쇼?”

“주문 제작을 맡기러 왔습니다.”

그러자 대장장이가 미간을 좁혔다.

“상회에서 나오셨나? 미안한데 다른 대장간으로 가 보슈. 나는 양산형 제품 같은 건 안 만드니까. 철제 식기나 훈련용 검은 저쪽에 있는 대장간이 잘하니까 생각 있으면 가 보시고. 그럼 잘 가슈.”

대장장이가 팔짱을 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뭔가 오해한 모양이다. 베르덴은 몇 마디 말 대신 뒤에 메고 있던 짐을 풀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대장장이가 눈을 뜨자, 짙은 녹색빛의 가죽이 보였다.

이게 뭐지…… 하며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눈을 부릅떴다.

“어? 마흐바트?”

냉큼 가죽을 잡았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억센 질감과 야생의 향취. 어느 모로 보나 진품이었다.

베르덴이 말했다.

“상하의로 맞춰 제작할 생각입니다. 가능하십니까?”

“물론 가능하지!”

즉답한 대장장이가 가죽을 내려놓고 작게 헛기침을 했다.

“이거 미안하오. 내가 제대로 된 손님을 못 알아봤군. 코헨에서 주문 제작이라고 하면 양산품을 만드는 일이라서 오해를 해 버렸어. 그러니까 이해 좀 해 주슈.”

대장장이가 빈 책상에 가죽을 펼쳤다.

가볍게 훑어본 그가 턱을 쓸었다.

“상의를 조끼로 만들어도 살짝 아슬아슬한데…… 두께를 얇게 해도 되겠소?”

“방어구로서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이걸 참고하면 됩니다.”

베르덴이 제작 방향에 대한 쪽지를 건넸다.

대강 읽어 본 대장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가닥이 잡히는군. 그런데 가죽 특성상 손이 많이 가서 비용이 좀 들 텐데 괜찮겠소?”

“선불로 지불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 됐소. 돈을 먼저 받으면 아무래도 의욕이 떨어져서. 그리고 손님 얼굴을 보니 사기꾼 관상하곤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고. 필요한 재료는 다 있으니 한 6일 정도면 될 거요. 따로 더 필요한 건 없소?”

“하나 더 있습니다.”

베르덴이 녹슨 반지를 꺼냈다.

대장장이가 전용 돋보기를 꺼내 이리저리 들여다봤다.

“음, 딱 보니 삼십 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군. 대체 어디서 이런 골동품을 구했는지, 원.”

“복원 가능합니까?”

“그 정도야 쉬운 일이지. 서비스로 해 줄 테니까, 나중에 올 때까지 준비해 두겠소.”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손님 덕분에 오랜만에 대장장이다운 일을 하게 됐는데. 그럼 조심히 가쇼.”

이걸로 대장간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빈민가에 있는 페일의 화살촉을 찾을 차례. 숨겨져 있지 않다고 했으니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찾을 수 있으리라.

대장장이에게 배웅을 받던 베르덴이 고개를 돌리곤 물었다.

“혹시 페일의 화살촉이란 곳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 * *

코헨의 빈민가.

중심부와 달리 낡고 지저분한 집들이 가득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한층 더 어두워졌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인지 곳곳에서 시선들이 느껴졌다.

‘그래도 악취는 안 나네.’

규모에 비해 생각보다 청결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빈민가치고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여타 도시들과 비교하자면 압도적으로 열악한 환경이다.

베르덴은 그중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페일의 화살촉’이라는 간판을 단 상점.

유리창 너머로 보니 다양한 활과 화살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기가 정보상이 있는 곳인가.’

겉으로 봐선 평범하다. 갈리아크가 언질을 해 두겠다고 했으니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자, 작은 종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담뱃대를 입에 문, 동그란 안경을 쓴 노인이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지금은 주문 제작 안 받으니 여기 있는 것들 중에서 고르게. 가격은 밑에 적혀 있네.”

“다른 일로 왔습니다.”

“다른 일?”

그제서야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지나고서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잿빛 머리에 푸른 눈동자…… 확인차 묻겠는데 이름이?”

“애셔라고 합니다.”

“애셔. 들은 대로군.”

노인이 안쪽 문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들어가서 지하로 내려가면 안내해 줄 사람이 있을 걸세. 도살자의 신용이 있으니 절차는 생략할 테지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피차 피곤해지고 싶지 않다면.”

노인의 작은 경고.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구석에 있는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오래된 창고가 나타났다.

잠시 기다리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 전체에 붕대를 두르고, 그 위에 낡은 천 옷을 입은 사내였다.

“이쪽. 으로. 오십. 시오. 애셔. 님.”

쩍쩍 갈라진 목소리.

베르덴은 말없이 사내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마력을 끌어모으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아직 신뢰를 쌓지 않는 장소에서 최소한의 경계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붕대 사내가 벽에 손을 대니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숨겨진 통로가 드러났다.

마법적인 반응은 전혀 없는 걸 보니, 기계적인 장치인 모양. 그를 따라 더 아래로 깊숙이 내려가자 복도가 나타났다.

그 길을 쭉 따라가니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주점?’

카운터에서 컵을 닦고 있는 바텐더.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들. 베르덴이 그들의 복장을 빠르게 관찰했다.

‘마법사 하나, 검사 둘, 궁수 하나, 확인 불가가 하나.’

이곳을 지키는 자들일까, 자신과 같이 의뢰를 하러 온 자들일까. 분위기를 보니 평범한 인물들은 아닌 듯한데.

뭐가 됐든 이곳이 갈리아크가 말한 그레이임은 분명해졌다. 붕대 사내가 끝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안내. 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은. 여기로. 내려. 가시면. 됩니다.”

붕대 사내는 꾸벅 인사를 한 뒤, 왔던 길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베르덴이 곧 문에 손을 대었다.

끼이익.

녹슨 문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 뒤에 있는 건, 주위를 둘러싼 철창과 유리 그리고 가운데에 의자가 하나 있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이내 유리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애셔 님. 리비안트 공국 남부 그레이의 정보상, 페일이라고 합니다.”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마른 체형. 그에 반해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다.

“애셔라고 합니다.”

“예, 연락책을 통해 갈리아크 님께 얘기는 들었습니다. 들었던 대로 확실히 특출난 외모시군요. 덕분에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페일이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시지요. 그리고 말씀 편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지.”

“좋습니다.”

베르덴이 의자에 앉았다.

페일이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파이테 영지에서 전직 모험가인 도적과 금 등급 모험가를 죽인 아인종을 토벌. 그리고 마르테스로 향하는 길에 모험가들을 구했으며 도시 내에서 암살자와 전투. 마지막으로 비르온 영지에서 도살자와 함께 통곡의 기사라 불리는 언데드를 토벌. 짧은 시간 동안 화려한 전적이시군요.”

“뒷조사를 한 건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정보상인 만큼 제가 소문에 민감하기도 하고요. 그럼 우선 묻겠습니다. 애셔 님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저희 정보상을 찾으셨습니까? 의뢰? 아니면 정보?”

베르덴은 답했다.

“둘 다 필요한데.”

“둘 다라. 애셔 님께서는 실적이 있으시니 의뢰를 연결해 드릴 순 있지만, 보수가 높은 의뢰나 정보는 저희가 분류한 등급에 따라 제한되어 있습니다.”

“등급?”

“정보의 가치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돈에 눈이 멀어 아무에게나 정보를 팔아넘긴다면, 그 결과로 인한 책임은 당연하게도 정보상에게까지 미치죠. 옛날에 귀족 간의 분쟁에서 어떤 정보상이 한쪽 귀족에게 정보를 팔아넘겼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된 것처럼요. 의뢰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일이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주제를 알라. 그레이의 정보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잊지 말아야 할 문장입니다. 이 등급에 대해선 무슨 일이 있어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것이 이 바닥의 규칙입니다.”

그 목소리는, 설령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호했다.

물론 그런 협박을 할 생각은 베르덴에겐 조금도 없었다.

“등급은 어떻게 올릴 수 있지?”

“간단히 말하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힘과 신용입니다. 아무리 신용이 높다고 한들 약자에게 정보를 넘겼다간 빼앗길 수 있고,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신용이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니.”

“힘과 신용…….”

‘당장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군.’

원소의 숨결과 마력 크리스탈 등.

마탑의 보물들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분명 상위 등급에 있을 터. 물어보지 않아도 확신에 가까웠다.

그래도 딱히 지장은 없다. 등급도 등급이지만, 현재로선 정보를 살 돈도 없는 데다가 그 정보를 쓸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등급을 올리며 동시에 준비를 갖추면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페일의 의뢰를 맡을 필요가 있다.

“의뢰는 내가 고를 수 있는 건가?”

“몇 가지 후보를 선정해 선택권을 드리는 방식입니다. 의뢰를 받기 전에, 먼지 이 설문지에 답을 기입해 주시죠.”

페일이 종이와 펜을 유리 반대편으로 밀어 넣었다.

염력으로 끌어와 내용을 들여다봤다. 살인에 거부감이 있는가, 약간의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가 등. 베르덴의 성향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이걸로 내게 주선할 의뢰를 선별하는 건가.’

간략히 답을 써서 건넸다.

페일은 말없이 읽어 내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보단 모험가적인 성향이 강하시군요. 다행히 저희하고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마침 애셔 님에게 어울리는 의뢰가 하나 있습니다.”

딱.

페일이 손을 튕기자 뒤쪽에서 파일이 날아왔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아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베르덴의 감각으로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파일을 받은 페일.

그가 책갈피를 훑더니 중간 부분을 잡아 열었다.

“이 의뢰는 애셔 님이 해 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생명을 토벌하는, 아주 간단명료한 일이죠. 이거라면 애셔 님을 증명하는 데 충분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인종이라도 토벌하는 건가?”

“아인종에 대한 의뢰도 들어오긴 하나, 이번에는 아닙니다.”

페일이 조심스레 파일에서 종이 하나를 빼냈다.

그러곤 반대로 돌려 베르덴에게 보였다. 그 상단에는 ‘마수’란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로어 울프(Roar Wolf). 라드란 백작 영지에 숨어 있는 마수를 토벌하는 일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