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3화 (33/366)

33화 작별

비르온 영지로 돌아온 토벌대는 각자 치료를 받았다.

그사이 마로스가 통곡의 기사라는 언데드에 대해 영주에게 얘기하자 영지가 발칵 뒤집어졌다. 언데드를 통솔하는 위험성. 자칫 바깥으로 나왔다간 영지 전체가 무덤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 탓에 소란이 일고 주변 곳곳이 시끄러웠지만 베르덴이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이른 새벽.

성벽 바깥으로 나와 숲에 도착한 베르덴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적셨다.

‘에스티리아 왕국이라.’

몇몇 장면밖에 얻어 낼 수 없었지만 이 기억이 사실이라면, 왕국은 세계적으로 지탄받을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국의 군인을 학살하고 생매장해 버리다니. 흙 속에 파묻혀 죽어 가는 군인의 증오심은 기억을 넘어 베르덴에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치워 냈다.

지금 신경 쓸 건 언데드의 기억 따위가 아니었다.

베르덴이 자신의 마력회로를 관조했다. 통곡의 기사를 토벌한 전후가 달랐다.

회로는 조금 더 확장되어 있었고, 마력을 회복하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강해졌다.’

생각했던 대로 목숨이 오가는 실전은 마법사로서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3위계 마법사 고드와 비교하자면, 베르덴의 마법은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특히 마법서로 강화된 마법의 위력은 4위계 중위 이상의 마법과도 맞먹을 정도. 그리고 심장에 담긴 마력량은 그 이상이다. 더해서 전 속성 마력회로까지.

단순히 마법적인 능력만을 따졌을 때, 베르덴이 알기로, 이와 비슷한 스펙을 가진 3위계 마법사는 그 자신이 유일했다. 역사를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부족해.”

힘이란 객관적인 것이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3위계로서의 기준일 뿐. 5위계 이상의 마법사와 맞붙는다면 승산은 한없이 낮아진다. 시전 가능한 마법의 가짓수나 마법의 위력에서 압도적으로 밀릴 테니까.

‘거기다 마도사라면 생각할 것도 없다.’

마도사.

5위계 이상에 이른 마법사가 깨달음을 얻어서 도달하는 경지이며, 절대적인 마법의 법칙을 일부 벗어나 자신만의 마도를 걷는 존재.

마법의 틀에 갇혀 있는 마법사는 감히 대적할 수도 없다.

그럴진대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는 7위계의 마도사이며 만능이라 불리는 초월자.

그에 비하면 베르덴의 강함은 달 아래에 있는 반딧불과도 같다. 지금으로선 무슨 짓을 해도 마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베르덴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걷히며 만월의 달빛이 그에게 쏟아졌다.

힘이 필요하다.

지식이 필요하다.

장비가 필요하다.

보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언제든 죽음의 기로에 설 각오는 되어 있다.

염원하는 복수를 이루기 전에 자신은 결코 죽지 않을 테니까. 그를 위해 이뤄 낸 역천이다.

어떤 마법사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게 욕심이란 거겠지.

“…….”

만월을 바라보고 있던 베르덴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 닿을 리가 없었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저 달과 같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포기하는 그런 것.

하지만.

베르덴이 조금 더 길게 팔을 뻗었다.

마찬가지로 닿지 않았지만,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분명한 차이였다. 직전의 자신보다 더 목표에 가까워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움직이면 언젠가 닿는다.

그 사실만이 베르덴에게 중요했다.

* * *

비르온 영지를 떠나는 날이 찾아왔다.

토벌대를 이루었던 모험가들은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갔고, 성직자들은 영지에 남아 갱도의 상황을 지켜본다고 한다.

마차가 준비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갈리아크가 다가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죽었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음에도 그는 멀쩡했다.

‘하긴. 통곡의 기사와 맨손으로 맞붙을 정도로 무식한 놈이니 당연한 건가.’

“어이, 애셔. 너희도 오늘 떠나냐?”

“무슨 볼일이지? 수고비라도 받으러 왔나?”

“수고비? 아, 그거?”

갈리아크가 록스를 흘끗 쳐다봤다.

록스가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리자, 갈리아크가 킬킬거리곤 베르덴에게 말했다.

“거, 까칠하긴. 우리 같이 목숨 걸고 싸운 사이 아니었나? 내 덕분에 겨우 쓰러뜨려 놓고 그런 태도는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내 덕분에 이긴 거지. 너는 도중에 기절하지 않았나?”

“이 십새끼. 한마디를 안 지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이리도 싸가지가 없는 건지.

하지만 그 험한 입과 달리 갈리아크는 베르덴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백금 등급 모험가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하는 그는 특히나 강자를 좋아했으니까.

그만큼 베르덴이 보여 준 마법은 인상적이었다.

“그나저나, 애셔. 너 모험가 할 생각은 없냐? 그 정도면 백금까지는 금방 오를 텐데.”

“안 해.”

집단에 속해 명령받고 제한받는 건 질색이다.

길드 쪽에서 여러 혜택을 주면서 모셔가면 모를까. 그런 대답에 갈리아크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주 자존감이 넘치는구만. 저기 안경 쓴 고드 놈은 죽을 뻔했다고 아주 난리법석을 떨어 대던데. 뭐, 싫으면 됐다. 그나저나 모험가는 싫다고 하니, 용병 길드에 들어가지도 않을 테고. 그레이(Grey) 쪽에라도 갈 생각이냐?”

“그레이?”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것도 몰라? 그럼 대체 돈을 어떻게 벌려고 했지? 설마 유명해지면 알아서 찾아 주겠거니 하는 생각은 아니겠지?”

“그럼 안 되나?”

“크하하! 이거 세상 물정 모르는 마법사였구만. 그래서야 휘둘리는 것밖에 더 되겠냐? 자고로 배를 채우려면 입만 벌리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먹잇감을 제 발로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법인데 말이야.”

“……대체 그레이가 뭔데 그러지?”

갈리아크가 이죽거리며 작게 말했다.

“’그레이’란 사회의 이면에 자리 잡은 정보상들을 통틀어 말하는 거다. 신용이 보장된 사람에게 정보를 사거나 파는 곳이지. 정보상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니 개개인마다 불법이나 합법을 오가기도 하지만. 뭐, 어쨌든 중요한 건 이거다. 정보상인 동시에 의뢰를 주선하는 의뢰 창구라는 거.”

“의뢰?”

“모험가 길드와 용병 길드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놈이 너 하나뿐인 줄 알았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돈과 명성 아니면 그 외 뭔가를 위해 움직이는 놈들은 언제나 많았다. 그레이는 그런 놈들이 모이는 곳이고. 나도 가끔씩 거기서 의뢰를 받기도 하지. 강한 놈들을 사냥하는 데 모험가 길드의 의뢰만으론 성에 차지 않거든.”

베르덴의 일생은 마탑에서 지낸 게 태반이다.

당연하게도 세상을 잘 모를 수밖에. 마법적인 지식은 누구보다 풍부할지라도, 인간으로서의 경험은 눈앞의 도살자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얕다.

‘그레이라.’

베르덴은 그레이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했다.

우선 정보.

‘원소의 숨결’과 ‘마력 크리스탈’ 등 마탑에서 가져온 보물들을 사용하려면 특수한 재료들과 뛰어난 전문가가 필요한데, 베르덴 혼자서 전부 찾아내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그걸 돈으로 상쇄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을 터.

‘그리고 그 돈은 의뢰를 해결해서 마련하고.’

더군다나 강한 놈들을 마주할 기회도 있다고 했으니.

돈, 명성 그리고 실전 등을 통한 성장.

도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베르덴에게 있어 매력적인 곳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주는 거지?”

“그야 즐거울 테니까.”

갈리아크가 이를 드러냈다.

이 잿빛 머리는 자신이 본 마법사 중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인간. 놈은 자신과 동류다.

누구보다 힘을 갈구하는 욕망, 차분한 외모 아래 숨겨진 투쟁심 같은 강자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즉, 갈리아크가 호의를 품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고도 넘쳤다.

베르덴은 잘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언질은 해 둘 테니, 생각이 있으면 ‘코헨’의 빈민가로 가서 ‘페일의 화살촉’을 찾아라. 어디 숨어 있지는 않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싫으면 길에서 깡통 하나 들고 의뢰 구걸이나 하든가. 그것도 즐겁긴 하겠지만. 뭐가 됐든 재미없게 뒈지진 말라고.”

거칠고 투박한 작별 인사.

비릿한 미소를 지은 갈리아크가 그대로 마차를 타고 떠났다.

‘미친놈.’

행동에 두서가 없다.

도살자란 이름이 어울리는 사내였다.

다음은 이리스들의 차례.

모험가들이 하나둘씩 올라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에 마차에 오른 이리스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곤 손을 내밀었다.

“선배님, 안 타세요?”

“그래.”

“설마 날아가시려고요? 부상도 나은 지 얼마 안 됐…….”

아. 이리스가 말을 멈추고 베르덴의 얼굴을 봤다.

그가 갑자기 마르테스에 찾아왔던 그때처럼, 어느 날 훌쩍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직감했다. 나중이 될 거라고 생각한 작별의 시간이 지금이라는 것을.

이리스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왜, 왜요……?”

“갈 곳이 있다.”

안 그래도 마르테스에 더 이상 볼일은 없다.

더군다나 도살자에게서 얻은 정보 덕에 행선지가 정해졌다.

“부여 마법 배우고 싶다면서요…….”

“책은 다 읽었다. 너한테 배운 것도 다 체득했고.”

“그럼, 그럼 의뢰비는요?”

“알아서 계좌에 넣어 주겠지.”

“그럼…….”

이리스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처음은 분명 갑작스러웠지만 그 만남은 이리스에게 운명과도 같았다. 몇 번이나 목숨을 구원받았고 아카데미에서도 이해하지 못한 어려운 이론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원소 마법까지.

마법사로서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나 성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붙잡고 싶다.

그러나 베르덴에겐 나아가야 할 자신만의 길이 있다. 그를 잡는 건 욕심이자 민폐였다.

홀가분하게 놓아 주는 것이 당연했다.

“…….”

문득 지금까지 외면해 왔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를 선배님이라고 부르지만, 과연 베르덴은 자신을 후배라고 생각할까? 어쩌면 귀찮은 사람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부여 마법을 가르쳐 주긴 했지만, 굳이 자신이 없었더라도 관련 서적만 있었으면 그 스스로 터득했을 테니. 그녀가 한 건 그저 시간을 약간 앞당긴 것뿐이다.

그에 비하면 그녀가 받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이리스의 손이 점점 내려갔다.

그때, 베르덴이 손을 들어 이리스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다음에 보자.”

그 한마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쳤다.

하늘색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고, 푸른 머리가 바람에 가볍게 휘날렸다. 이리스가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다음에 봐요.”

둘은 그렇게 기약 없는 재회를 약속했다.

* * *

붉은 머리칼의 마법사, 로벨린.

그녀의 뒤로 여러 마법사의 시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붉은 마력이 일렁이자 공기가 달아오르며 폐를 깊숙한 곳부터 서서히 태우기 시작했다.

“대답해. 왜 블랙 아워가 보헤미른 마탑을 노린 거지?”

“끄윽…… 저, 정말로 모르는 일…… 끄어어어어억!”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주변 공기의 온도를 높여 장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폐 깊숙한 곳부터 익어 가는,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몇 번이나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적인 심문에도 로벨린은 답을 얻을 수 없었다.

털썩. 죽음에 이른 마법사가 힘없이 쓰러졌다.

불꽃을 흩뿌려 그대로 태워 버렸다.

죽음의 마법사 집단, 블래 아워의 지부 토벌. 이걸로 벌써 네 번째다.

그런데 어딜 가나 모른다는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무려 마탑을 부수는 일이니 말단까지 정보가 퍼지지는 않았다는 거겠지.

마음 같아선 상위 지부를 찾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그녀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베르덴…….’

제 손으로 복수를 이루기엔 로벨린은 너무도 약했다.

<이그니션>

화아아악!

숲속에 숨겨져 있던 블래 아워의 지부. 지하와 더불어 건물까지 잿더미로 만들었다.

바깥으로 나가자, 휘황찬란한 로브를 두른 한 마법사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대단한데. 고작 2위계 마법이 이 정도 위력이라니. 역시 특이 형질 보유자인가 봐.”

“……여긴 제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을 텐데요, 매니악스.”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수는 없지. 장차 스승님의 네 번째 제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혹여 실수라도 해서 죽어 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

보헤미른 마탑주의 세 번째 제자, 루커드 매니악스.

순진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가진 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매니악스의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한 목소리에, 로벨린이 미간을 좁히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쓸데없는 생각은 거두고 논문이나 신경 쓰시죠. 안 그래도 마법 학회에서 지켜보고 있던데요.”

“하하, 네가 내 논문을 신경 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물론 순조롭게-”

“관심이 없을 리가요. 그 유명한 ‘다중 연속성 이론’ 이후에, 무려 7년 만에 발표하는 논문인데.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들었을지 궁금한 건 당연한 생각이 아닐까요?”

로벨린의 붉은 눈동자가 루커드를 주시했다.

그 시선은 단순히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로벨린?”

“다중 연속성 이론, 정말로 당신이 만든 게 맞나요?”

루커드의 얼굴이 미약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듣기에 따라 오해할 여지가 있는 발언인데?”

“7년 전에 소문이 하나 돌았었죠. 그 이론을 대놓고 도둑질하려던 사람이 있었다고. 저는 그때 바깥에 있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 탓에 마탑이 잠깐 시끄러웠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별것도 아닌 해프닝으로 끝났지. 스승님께도 정식으로 인정받았고. 아, 혹시 질투하는 거야?”

“질투라기 보단 의문이죠. 그렇게 대단한 이론을 만들어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마법사가, 무려 7년 동안 변변찮은 결과물도 없이 시간을 보내 왔다는 게. 이룬 거라곤 3위계 중위에서 4위계 상위에 오른 것밖에 없다는 게 말이죠. 그것도 마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잠깐의 침묵.

시선을 거둔 로벨린이 마력을 일으켰다.

“먼저 돌아가죠.”

그녀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소를 유지한 채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루커드. 이내 그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저 시발 년이.”

평소에도 거슬리는 시선을 보내더니, 이번엔 진즉에 끝난 이야기로 시비를 건다.

아무리 화염 속성에 특화된 특이 형질을 보유한 마법사라지만, 고작해야 3위계 따위가 건방져도 너무 건방졌다.

마음 같아선 저 콧대를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럴 순 없지.’

어떻게 올라온 자린데.

순간의 감정에 휘말려 마탑주의 눈밖에 날 수는 없다.

아, 그나저나 그 빌어먹을 마탑만 멀쩡했으면 이런 귀찮은 일 대신 논문에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지.’

루커드가 이죽거렸다.

베르덴의 죽음. 마탑주가 알아서 잘 처리했다고 했지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어디 가서 콱 죽어 버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뒈져 버릴 줄이야.

‘이걸로 내가 논문을 훔친 사실은 영영 사라지겠지.’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이제 앞길만 신경 쓰면 된다.

명성을 유지할 논문을 만들고, 5위계에 올라 마도에 이르는 것. 측정된 한계가 5위계인 터라 마탑주의 자리까지 오르진 못하겠지만, 마탑에서 막강한 권력을 얻기엔 충분하다.

거슬리게 하는 건 그때 치우면 될 터.

“시간은 내 편이다.”

루커드는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마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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