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2화 (32/366)

32화 언데드 (4)

콰앙!

앞으로 쏘아져 나간 갈리아크가 통곡의 기사와 격전을 벌였다.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속도. 한 팔이 없는 언데드는 대부분의 공격을 허용했으나, 오로지 죽지 않는 육체로 버텨 내며 갈리아크의 숨통을 노려 왔다.

베르덴이 구성한 공간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일부가 붕괴되기 시작하자 다른 토벌대가 있는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지쳐 보였고, 심하게 다친 사람도 있었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뒈져라!”

파쇄破碎.

수직으로 내리찍은 도끼가 언데드에게 쇄도했다. 검으로 막았으나 충격은 피할 수 없었다.

통곡의 기사의 다리가 바닥에 파묻혔고, 갈리아크가 한 손으로 도끼를 짓누르며 다른 손으로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엉!

죽음의 기사가 밀려나며 지면에 상흔을 남겼다. 가슴 쪽에 나 있던 틈새가 조금 더 벌어졌다.

“칫. 더럽게 단단하군.”

손맛이 개운치 않다. 충격을 흡수하는 건가?

저 빌어먹을 까만 갑옷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사지를 잘라 죽였을 텐데. 갈리아크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통곡의 기사를 쳐다봤다.

그 순간, 놈의 형체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깊은 살기. 반사적으로 허리를 틀었지만 반응이 약간 늦었다. 악의의 칼날이 갈리아크의 척추를 향했다.

<마력폭발>

그러나 베르덴의 마법 덕분에 옆구리를 스치는 데 그쳤다.

“감히……!”

고작 언데드 따위가 기이한 기술을 쓰다니.

분노에 찬 갈리아크가 도끼를 던지곤 언데드의 몸을 콱 끌어안았다.

“하아아압!”

콰아아아앙!

무지막지한 힘에 통곡의 기사가 머리부터 땅에 처박혔다.

지진과 함께 지면의 일부가 솟아올랐다. 느낌은 있었지만 이걸로 죽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비켜.”

“잠- 이런 시발!”

갈리아크가 재빨리 바닥을 구르며 벗어났다.

그리고 날아온 베르덴의 화염구.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출력으로 연속해서 마법을 날렸다. 연기와 함께 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베르덴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자, 연기에 비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무슨 시체 새끼가 이리 끈질……?!”

화악! 언데드가 던진 검이 연기를 날려 버리고 갈리아크에게 향했다.

반사적으로 무릎과 팔꿈치로 검날을 잡았지만 부족했다. 복부에 검이 꽂힌 그가 벽에 처박혔다.

어느새 언데드가 베르덴의 지척에 다가왔다.

스태프에 회전력을 담아, 전력을 다해 두개골을 타격했지만 갈리아크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놈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젠장.”

터엉! 베르덴이 주먹을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목걸이의 자동 방벽 덕분에 치명상은 면했다. 일부가 깨지는 바람에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과부하가 없어서 다행이군.’

목걸이의 효과는 직접 펼치는 마력방벽과 별개의 것이다.

설령 완전히 박살 나더라도 수복되는 데 시간이 걸릴 뿐, 직접적으로 회로에 부담은 찾아오지 않는다.

“크윽…….”

베르덴이 스태프를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탈골된 어깨와 마력 결핍 현상. 순간 앞이 흐릿해져 바닥에 손을 짚었다.

‘저 갑옷이 문제야.’

어떻게든 저 새까만 갑주를 뚫어야 한다.

하지만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는 기묘한 움직임 탓에 위력이 강한 마법을 직격할 수가 없다.

베르덴이 고개를 들었다. 주르륵, 이마에서 피가 흐르며 시야가 붉어졌다. 그 속에서 언데드가 다리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그때, 번쩍이는 세 줄기의 빛이 언데드를 옭아맸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토벌대들이 일제히 통곡의 기사를 겨냥했다. 여러 마법과 화살이 빗발쳤다. 그러나 검은 갑주에는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대체 저 검은 갑옷은 뭐야?!”

“끄으읍! 교회에도 기록되지 않은 능력이라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통곡의 기사와 다른 언데드 개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로스를 비롯한 성직자들이 이를 악물며 빛의 밧줄을 잡아당겼다.

통곡의 기사가 신성력에서 벗어나려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어둠에 잠식당한 신성력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쩌적. 언데드의 가슴에 나 있는 금이 조금 더 커졌다.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미약했지만 베르덴에겐 커다란 구멍처럼 보였다. 눈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갈리아크를 향해 소리쳤다.

“갈리아크!”

“나도 알아!”

상처에 흙을 쑤셔 넣어 출혈을 막은 갈리아크가 벽 뒤에서 나타났다.

속박을 풀어 낸 통곡의 기사가 역으로 줄을 당겼다. 허공에 붕 뜬 성직자의 시선에 날카로운 손아귀가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시, 신이시여!”

“어딜!”

콰앙!

곧장 갈리아크가 달려가 놈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날아간 성직자를 모험가들이 겨우 받아 냈다.

“이제 아무도 끼어들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힘겨루기. 소리친 갈리아크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고, 통곡의 기사가 미친 듯이 발광했다.

그런 그들 뒤에서 고드가 침을 삼키며 지팡이를 겨냥했다.

‘저 괴물의 약점은 나도 알아!’

가슴에 난 틈새. 거기에 어스 스피어를 적중하면 이길 수 있다.

오만인지 용기인지 질투인지 모르지만, 고드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뻐억! 통곡의 기사가 갈리아크를 밀어 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어스 스피어>

고드의 마법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잘못됐다.

베르덴은 3위계 마법사지만 종합적인 능력을 따지면 그 위계를 아득히 벗어난다. 이리스와 고드가 그를 4위계,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라고 오해할 만큼.

그에 반해 고드는 평범했다.

베르덴과 같은 마법을 사용한들, 그 안에 담겨 있는 마력에 차이가 있으니 속도와 위력이 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마법서의 유무까지.

콰직! 통곡의 기사가 바위의 창을 박살 냈다.

“아……!”

뒷목을 스치는 살기. 언데드가 사라지고 날카로운 뭔가가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 줄기 핏빛 선이 목에 그어졌다.

목을 움켜쥔 손아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고드가 힘없이 쓰러졌다. 쓰러진 그를 짓밟으려 하는 언데드를 갈리아크가 쳐냈다.

“포션 가져와! 당장!”

“네, 네!”

미르나가 달려와 포션을 고드에게 들이부었고, 성직자들이 신성력으로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다.

혀를 찬 갈리아크가 베르덴을 흘겼다. 그는 휴식을 취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갈리아크가 만들 절호의 기회를.

‘그래, 그 기회. 제대로 만들어 주지.’

콰앙! 쾅! 쾅!

서로 무기 없이 벌이는 육탄전. 갈리아크가 맨주먹으로 통곡의 기사를 두들겼다. 그러다 복부에 반격을 허용해 순간 숨이 멈췄지만, 도살자는 멈추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근력으로 언데드를 지면에 처박았다.

쩌엉! 수직으로 가슴을 내리찍은 팔꿈치.

이내 검은 갑옷이 깨어지며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틈새가 만들어졌다.

“됐…….”

우지직. 갈리아크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진 그에게 더 이상 움직임은 없었다. 녹슨 검을 다시 손에 쥔 통곡의 기사.

카각. 마력 화살이 갑옷을 스쳤다.

“네 상대는 나다.”

베르덴의 도발이 성공했는지 붉은빛이 흔들렸다.

차츰 형체가 흐릿해지기 시작하며 뒤에서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걸렸다.’

놈이 근접해 오는 그때가 기회였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재빠르게 몸을 틀어 틈새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 순간 허공을 가르던 검의 궤도가 비틀리더니, 그 끝이 베르덴의 머리를 향했다. 누가 먼저 닿을지는 명확했다.

하지만 베르덴은 혼자가 아니었다.

<얼음 화살>

이리스가 쥐어짜 낸 마력.

베르덴에게서 속성으로 배운 1위계의 얼음 마법이 언데드의 손등을 가격했다.

아주 미약한 충격.

그러나 결정적이다.

카가가각! 자동 방벽에 스친 검이 비명을 질렀고, 그와 동시에 베르덴의 손이 언데드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어둠 갑옷 내부에서 붉은 열기가 흘러나왔다.

“그만 죽어라.”

<플레임>

화아악! 안에서 터져 나온 불길이 베르덴과 통곡의 기사를 집어삼켰다.

* * *

……스르륵.

베르덴이 눈을 뜨자 노란빛이 보였다. 신성력인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마로스가 제지했다.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이제 겨우 화상을 치료했으니까요.”

“맞아요, 선배님. 잠시 누워 계세요.”

포션을 사용한 직후에는 크게 움직이면 안 된다.

효과가 떨어질뿐더러, 자칫 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의 치유 덕분에 상처는 겨우 회복했지만 아직 시기상조였다.

베르덴이 주변을 둘러봤다.

갈리아크는 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목이 베인 고드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가슴이 움직이는 게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만.

“다행히 목의 절단면이 깨끗해 살릴 수 있었대요. 깨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지만요.”

“언데드는 어떻게 됐지?”

이리스가 고개를 옆으로 향했다.

온몸이 거의 붕괴된 통곡의 기사가 널브러져 있었다. 베르덴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놈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기다려.”

섣불리 다가가 끝을 내지 않은 건 잘했다. 저 괴물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으니.

마무리를 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서서히 꺼져 가고 있는 언데드의 불꽃이 베르덴을 주시하더니 미약하게 흔들렸다.

[잠…… 깐…….]

작지만 분명한 언데드의 음성.

토벌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 언데드가 말을?”

“이럴 수가……. 이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지성을 가진 언데드라니! 애셔 님, 거기서 물러나십시오! 당장 정화를……!”

주위가 소란스러워졌지만 베르덴의 신경은 오로지 언데드에 향하고 있었다.

통곡의 기사가 손을 덜덜 떨며 갑옷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녹슬고 그을린 낡은 목걸이. 뼈만 남은 손가락이 펜던트를 누르자 그 안에서 작은 그림이 나타났다.

화목하게 앉아 있는 한 가족.

오래되어 삭았기에 부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 앉아 있는 금색 머리칼과 녹색 눈을 가진 남자아이만은 깨끗했다.

‘받으라는 건가?’

베르덴은 잠시 고민하다 손을 내밀었다.

만약 상대가 인간이었으면 팔이라도 잘라서 가져갔겠지.

하지만 직전까지 증오와 살기를 내뿜고 있던 이 언데드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공허했다.

“잠깐! 언데드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촤르륵. 흘러내린 목걸이가 베르덴의 손 위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통곡의 기사의 육체가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완전한 소멸. 다시는 그가 죽음에서 깨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윽……?!”

그 순간, 두통과 함께 전혀 모르는 기억들이 흘러들어 왔다.

착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찰나에 불과했지만, 베르덴의 기억력은 몇 가지 장면을 잡아냈다.

에스티리아 왕국의 국기, 생매장 그리고 그림 속 남자아이의 이름.

“……로리안.”

“괜찮으십니까?!”

마로스가 달려와 베르덴의 안색을 살폈다.

베르덴의 눈은 여전히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휴우, 다행입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언데드와 관련된 물건을 만진 사람 중에 발광하거나 이지를 상실한 경우가 있어서…… 애셔 님은 멀쩡해 보이시는군요.”

그래서 전부터 만지지 말라고 했던 건데.

물론 마로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언데드를 통솔하는 그 특성 탓에, 교단에서도 위험시하는 통곡의 기사. 아니, 검은 갑주를 보면 다른 언데드 개체일지도 모르겠지만 죽을 뻔했다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치운 마법사이자 은인.

만약 그와 도살자가 아니었다면 자신 또한 신께 버려져 죽음 속을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된 거지, 암.’

굳이 불평을 말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지성을 가진 언데드도 죽었고.

마로스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제가 보관을…….”

“이건 제가 챙기겠습니다.”

토벌의 전리품. 단호한 말투에 마로스가 입을 다물었다.

팬던트를 품에 넣은 베르덴이 가루가 된 통곡의 기사를 보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비르온 영지 언데드 토벌.

예상치 못한 위험이 있었고, 통곡의 기사가 남긴 유산 탓에 찜찜한 기분이 남아 있었지만. 의뢰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 돌아갈 때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남아 있는 놈들이 있었지.’

마력회로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마력도 약간이나마 회복했다.

베르덴이 몰래 지형을 조작해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갇혀 있는 지하를 무너뜨렸다.

그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언데드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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