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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0화 (30/366)
  • 30화 언데드 (2)

    네리엔은 금 등급답게 실력도 출중했다.

    먼저 언데드를 발견하고 누가 손쓸 틈도 없이 발차기로 몸체를 박살 냈다. 굳이 단검을 쓸 필요도 없었다. 기를 깨우친 전사에겐 강함에 있어 성별의 차이 따윈 무색했다.

    그녀를 필두로, 썩은 육신을 이끌고 있는 광부들과 스켈레톤을 처리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갱도의 끝에 도달했다.

    바닥에 쏟아진 마석들. 주위엔 피비린내가 가득했고, 곡괭이들이 널브러져 있다. 앞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딛고, 차례차례 몸을 들이밀었다.

    한층 더 무거운 중압감과 죽음의 기운이 피부를 스쳤다. 성스러운 축복에 의해 공포에 질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부분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성직자 마로스가 기도하며 더 환하게 주위를 밝혔다.

    “두려움에 떨지 마십시오. 빛의 신 루아스 앞에 어둠 따위는 한낱 나약한 악일 뿐이니. 찰나의 공포에 압도되어 무너져선 안 됩니다.”

    마로스의 말에 모험가들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러나 정작 베르덴과 갈리아크 두 사람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리스가 슬쩍 다가가 베르덴에게 물었다.

    “선배님, 왜 그러-”

    “쉿.”

    그녀를 제지한 베르덴이 어둠을 응시했다.

    마력감지를 펼쳐서 확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혹여 저 안에 마법을 사용하는 언데드, 리치(Lich)가 있으면 발각될 테니.

    ‘혼자였으면 문제없을 텐데.’

    인원수가 너무 많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런 외길 통로에서 기습을 받는 건 가능한 피해야 했다.

    현재 마력을 쓰지 않은 베르덴이 느낄 수 있는 건 퀴퀴한 냄새와 습기가 가득한 공기뿐.

    하지만 그래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 동굴에 가득 차 있는 불길함과 죽음을 말이다.

    “호오, 너도 느꼈나? 이 강렬한 죽음의 냄새를.”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갈리아크가 등에 멘 도끼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흉기를 어깨에 옮겨 메곤 베르덴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뭐가 웃긴 거지?”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있나. 심심풀이로 온 이곳에 내 흥미를 끄는 게 있다니 말이야. 그것도 두 개나.”

    그가 어둠과 베르덴을 번갈아 봤다.

    졸지에 근육질 거한의 관심 대상이 된 베르덴이 미간을 찌푸리곤 고개를 틀었다.

    “이리스, 전투가 벌어지면 내 뒤로 와라. 동료들한테도 섣불리 근접전을 벌이지 말라고 하고.”

    “아, 알겠어요. 그런데 대체 저곳에 뭐가 있길래 그러는 거예요?”

    “몰라. 아직은.”

    그러나 위험하다는 건 안다.

    악명 높은 도살자 갈리아크의 흥미를 끄는, 베르덴에게 불길함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저 어둠 어딘가에 숨어 있다.

    * * *

    언제부턴가 언데드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토벌대의 발소리만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기이할 정도의 고요함은 불안을 가속시켰으나, 한편으론 혹시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자리했다.

    그러던 중, 무언가가 모험가의 발에 차였다.

    “뭐지?”

    손으로 들어 올리려 하자, 성직자 마로스가 막아섰다.

    “멈추세요! 언데드와 관계된 물건은 함부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그럼 손만 대지 않으면 되는 건가?”

    말릴 틈도 없이 베르덴이 염력으로 바닥을 파헤쳤다.

    그러자 흙으로 더렵혀진, 삭을 대로 삭은 깃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이 문양,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긴 한데.”

    “자, 잠깐. 이거…… 에스티리아 왕국 국기 아니야?”

    이곳 리비안트 공국은 한때 에스티리아 왕국의 영토였다.

    왕국의 흔적이 발견되는 건 종종 있는 일이고 문제 되는 일도 아니다. 하나의 국가로서 자리를 잡은들 뿌리는 어디 가지 않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왜 이런 곳에 국기가 있는 거지? 상태로 보아 수십 년은 되어 보였다.

    “혹시 여기가 왕국의 묘지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아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이리스의 의문에 고드가 답했다.

    여러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검지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비르온 영지에 기록된 역사 중, 이 주변에 무덤이 있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영주님에게 허락을 받아 직접 확인하기도 했고요.”

    “정보를 숨겼을 가능성은?”

    “숨길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만약 여기가 진짜 왕국의 무덤이라고 한다면 그 증거들이 사방에 널려 있을 텐데. 토벌대인 저희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건 비르온 영주님에게 메리트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자 모험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드가 베르덴을 흘끗 쳐다봤다. 너같이 재능만 믿고 마력을 쏟아붓기만 할 줄 아는 마법사와 다르다는 듯 우쭐했다.

    물론 베르덴은 고드의 그런 시선에 관심도 갖지 않았다.

    갈리아크와 베르덴의 신경은 여전히 어둠으로 향해 있었고 경계 또한 늦추지 않고 있었다.

    마로스가 신성한 빛으로 깃발을 감싼 뒤, 고이 접어 품속에 넣었다.

    “이건 제가 챙기도록 하죠. 그리고 다음부터 이런 걸 발견했을 때는 저희 루아스교에게 맡기세요. 절대로 만지지 마시고. 마법을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마로스가 찌릿 베르덴을 쏘아봤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자, 옆에 있던 이리스가 대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토벌대의 발걸음은 다시 어둠 속으로 향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살펴보니 6시간 정도가 흐른 듯하다.

    느껴지는 감각으로 이 통로는 굽이굽이 지하 어딘가로 뻗어 있었다. 마법 물품 덕에 숨 쉬는 건 편했지만, 갈수록 지상과 멀어지는 탓인지 심리적으로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지?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이 빌어먹을 언데드는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답답하다. 불쾌하다.

    은 등급 모험가도 지쳐 가기 시작하는데 동급 이하의 모험가들은 어떨까.

    어린 모험가들은 후회했다. 오지 말걸.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소리라도 질러 보고 싶었다. 방금 먹은 음식이 역류할 것 같았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베르덴과 갈리아크 그리고 다른 금 등급 모험가들이 있었으니까. 되지도 않는 투정을 부렸다간 당장이라도 버릴 게 분명하다.

    볼 안쪽을 씹으며 눈물을 삼켰다. 두려움이 정신을 잠식했다.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나는 모험가니까.

    이리스는 그렇게 되뇌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러던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여기 지하 아닌가?”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길은 하나뿐이다.

    각자 약속이라도 한 듯 무기를 꺼내 들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기나긴 통로를 지나고 나타난 거대한 공동.

    천장에 난 틈새에서 한 줄기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 이 깊은 지하까지 빛이 닿는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공동 안이 훤히 보였다.

    공동 전체에 새하얀 백골이 무더기처럼 쌓여 있다.

    수백? 수천? 도저히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유골이 가득했다. 허연 뼈가 환하게 빛났다.

    그런 백골 무더기 위에 앉아 있는 한 마리의 언데드.

    검을 양손으로 잡은 채, 백골 위에 꽂아 넣고는 자신의 두개골을 손잡이에 대고 있었다. 불길함을 넘어 역설적으로 신성한 듯이 보였다.

    베르덴은 언데드의 옷차림을 봤다.

    직전에 발견한 왕국의 상징이 그려져 있는 갑옷. 녹슬고 거칠었으며 새빨간 망토는 곳곳이 닳아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네리엔이 고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왕국 무덤 아니라며?”

    “그, 그럴 리가……. 정말로 기록에는 없었단 말입니다!”

    “뭐, 상관없어. 뭐가 됐든 간에 저 언데드만 처리하면 토벌이 끝나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기록이든 뭐든 언데드는 박멸해야만 하는 존재니까요.”

    마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일렬로 도열한 세 명의 성직자가 신에게 기도했다. 신께서 주신, 거룩한 죽음을 거부한 저 악을 파멸시킬 빛을 바랐다.

    “크흠, 갈리아크 씨.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네가?”

    “제 차례에서 끝내겠습니다. 언데드 정도야 별것도 아닌 사냥감이니까요.”

    제지할 틈도 없이 고드가 앞으로 나섰다.

    마력회로를 활성화하며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성직자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사방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정화>

    어둠의 대척점, 빛.

    주변에 가득했던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며 이내 언데드에게 닿았다. 치지지직. 백골에서 회색 연기가 솟아올랐다. 악이 차츰 정화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암석강타>

    고드가 만들어 낸 거대한 바위가 언데드에게 쏘아졌다.

    직격하는 순간, 정화에 의해 약해진 뼈는 산산조각 나겠지. 성직자도 고드도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 언데드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눈 속에서 피어오른 붉은빛.

    그 순간 쩍, 바위가 세로로 갈라져 언데드를 비껴 나갔다. 신의 정화는 더욱 깊은 악에 의해 묻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

    그렇게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고드의 목 앞에 날카로운 뼈가 쇄도했다.

    * * *

    고드는 피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콱.

    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죽었어? 내가 이런 데서 죽었다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슬며시 눈을 뜨자 갈리아크가 눈앞에서 스켈레톤의 뼈를 움켜잡고 있었다.

    “아이, 깜짝이야.”

    콰직. 악력으로 뼈를 부수고, 고드를 노렸던 스켈레톤을 밟아 부쉈다.

    콧김을 내뿜은 그가 도끼를 붕붕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갑옷을 입은 언데드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붉은색이라. 리치는 아닌 것 같은데…… 그, 뭐였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기, 기사!”

    소리친 건 마로스였다. 몇 분 전까지 당당한 태도를 보였던 때와 달리,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기사? 무슨 기사?”

    “통곡의 기사, 웨일링 나이트 말입니다! 모르십니까! 저 언데드가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불러왔는지!”

    통곡의 기사(Whailing Knight).

    수많은 원한이 쌓이고 또 쌓여 악으로 타락해야 발생하는 언데드로, 산전수전 다 겪은 모험가라 할지라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는 존재다.

    왜냐하면 너무도 개체 수가 적었으니까.

    “그런데 왜, 왜 여기에……!”

    “진정하고. 저 언데드가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죽음의 기사 같은 건가?”

    베르덴의 물음에 마로스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시선은 계속 통곡의 기사에게 고정된 채로.

    “죽음의 기사보다는 약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단일 개체를 비교했을 때의 얘기. 놈이 위험시되는 이유는 바로……!”

    툭. 툭. 투둑.

    뼈 무더기에서 해골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토벌대의 발치에 멈춘 두개골. 이윽고 두 눈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때, 통곡의 기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입을 쩍 벌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비명.

    그것이 시작이었다. 무더기가 들썩이며 언데드로 변하기 시작했다.

    뼈들이 뭉쳐 생겨난 거체의 언데드, 무덤 파수꾼(Grave Guard).

    마법을 다루는 언데드, 리치.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스켈레톤.

    “……다른 언데드를 통솔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마로스의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내려 갔다. 공동을 가득 메우는 압도적인 숫자에 토벌대가 눈을 부릅떴다.

    저 숫자로 덤벼들면 어떻게 될까. 베르덴이나 갈리아크는 몰라도 나머지는 전부 죽을 것이다. 죽어서 저 언데드의 군세에 합류하겠지.

    그런 끔찍한 미래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그때.

    “……선배님?”

    이리스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베르덴은 태연한 모습으로 갈리아크보다 한 발짝 앞에 섰다.

    “응? 뭐 어쩌려고?”

    “어쩌긴. 토벌해야지.”

    “저 숫자를? 뭐, 나야 가능하긴 하지만 뒤에 있는 놈들은 싹 다 죽을 텐데?”

    “어차피 도망가도 죽어.”

    언데드는 지치지 않는다. 이대로 뒤돌아 도망쳐 봤자 먼저 지친 토벌대원들이 하나씩 잡아먹히겠지.

    그리고 터져 나온 언데드들이 영지를 집어삼킬 것이다.

    베르덴은 언데드를 토벌하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러니 토벌을 행할 뿐.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리자, 가득 차다 못해 넘쳐흐른 마력이 육안으로 보였다. 넘실거리는 푸른 기류에 갈리아크가 눈을 깜빡였다.

    “그걸로 뭘 하려…… 설마 여길 무너뜨리기라도 할 생각이냐?”

    “아니.”

    자살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일면식도 없는 영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할 생각도 없고.

    단지 이 지형은 토벌대에게 불리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러니 바꿔야지.”

    그 순간, 언데드가 일제히 움직였다.

    파도처럼 쇄도하는 사자(死者)들. 베르덴은 물러서지 않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지형조작>

    그리고 세상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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