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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7화 (27/366)

27화 길드의 요청 (2)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마부들은 평소 야영하는 장소를 찾아 마차를 세웠다.

그러곤 순식간에 불을 피우고 스튜를 끓이며, 텐트를 쳤다. 전문적으로 운송업을 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움직임 하나하나가 서로 척척 맞아떨어졌다.

그사이 모험가 일행은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냈다.

미르나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울상을 지었다.

‘답답해서 숨도 못 쉬겠어.’

베르덴은 그저 창문 밖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르나는 무서웠다. 얼굴만 보면, 사람의 머리를 주저 없이 날려 버리는 동굴 속 광경이 떠올랐다.

로크와 마일드도 마찬가지였는지 몸이 굳어 있는 게 보였다.

이리스가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살인을 목격한 것이니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미숙한 모험가들이 흔히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흔히 넘는 벽이기도 하고.

“식사하세요, 모험가님들!”

마부들이 정성스레 스튜를 담아 한 명씩 건네줬다. 소고기 육수가 제대로 우러난 비프 스튜를 든 모험가들이 각자 팀대로 모였다.

혼자 느긋이 스튜를 맛보려 했던 베르덴을 이리스가 붙잡았다.

“혼자 어디 가요? 그냥 여기서 먹어요.”

“…….”

할 수 없이 베르덴은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을 불편해하는 게 훤히 보였으니까. 마탑에서 눈치만 보던 시간만 한 세월이다.

이리스가 팀원들에게 뭐라 말을 하더니, 베르덴 옆에 앉았다.

“……저쪽에서 먹지?”

“그러고 싶은데 선배님이 자꾸 떨어지려 하잖아요. 모처럼 저희 팀원하고 친해질 기회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그, 애들이 선배님을 좀 과하게 무서워하는 것 같긴 하지만요.”

“신경 안 써.”

이리스는 그 말을 아예 관심조차도 없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녀가 본 베르덴은 남들과 쉽게 친분을 맺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오직 흥미만으로 움직이며, 관심이 없는 것엔 일절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그 답답한 마차를 며칠 동안 타야 되는 건가?’

어색함에 숨 막혀 죽을 정도의 분위기.

이리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스튜를 한입 먹었다. 기분과는 다르게 맛은 좋았다.

그때, 베르덴이 작게 말했다.

“이리스, 저 모험가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네? 아 저분들이요?”

서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스튜를 먹고 있는 네 명의 모험가. 이리스가 하나씩 가리켜 가며 소개했다.

은 등급, 메아린과 록스.

동 등급, 발터와 디클린.

모험가 길드를 들락날락하다 보니 이리스와 면식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친분은 없었다.

그녀가 아는 것은 대개 모험가가 그렇듯 돈을 좇는 사람들이고, 최소 1년 이상을 마르테스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뿐.

‘갑자기 칼을 빼 들진 않겠군.’

암살을 당할 뻔했던 베르덴이기에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 록스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를 긁은 그가 스프를 들고 베르덴에게 다가왔다.

“합석해도 되나?”

“마음대로.”

록스가 맞은편에 앉았다.

스튜를 우물거리며 베르덴을 힐끗 훔쳐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이…… 신문에 나온 그 마법사가 맞나?”

“신문?”

록스가 얇은 신문을 건넸다.

마르테스에 있는 신문사가 발간한 것이었다. 주욱 읽자 한 면에 로릭스 여관 폭발 테러 사건이라고 큼지막하게 글이 실려 있었다.

“맞나 보군.”

록스가 품을 뒤적거렸다.

칼인가? 아니면 독? 뭐든 상관없다.

베르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푸른 눈동자가 빛나며 마력이 흘러넘쳤다.

심상치 않은 마력을 느낀 이리스가 화들짝 놀라며 스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록스가 꺼낸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인 좀 부탁해도 되나?”

……사인?

* * *

베르덴은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사실 마르테스에서 그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마르테스에 나타난, 신비스러운 외모를 가진 마법사. 신문엔 신원 불명의 마법사라고밖에 게재되어 있지 않았지만, 모험가를 비롯한 알 만한 사람들은 그 마법사가 애셔임을 눈치챘다.

“저 사람이 그 미친 마법사라고? 저 얼굴로?”

“그렇다던데. 궁금하면 가서 물어보든가.”

하지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오직 자신에게 몰두하는 베르덴의 분위기는 도저히 말을 걸 게 못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르덴은 마르테스의 모험가들 사이에서 유명해져 갔다.

잘생겼는데 미친 마법사, 마법사인데 육체를 단련하는 이상한 마법사로 말이다.

그러던 중 모험가들은 그와 의뢰를 같이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 이왕 동행하게 된 거 말이나 걸어 보자! 남들한테 자랑도 하게 사인도 받고!

그렇게 내기에서 진 록스가 앞장서서 베르덴에게 오게 된 것이었다.

“도시에 그런 얘기가 있었나?”

“글쎄요…….”

이리스가 눈을 피했다.

베르덴을 두고 어떤 말이 오가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본인에게 말은 안 했다. 그야 강의를 받을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르니까.

마법사는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다.

록스가 손짓하자 다른 모험가들이 모였다.

그렇게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아홉 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았다. 곳곳에서 베르덴을 향해 시답잖은 질문들이 들려왔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니니.’

대충 대답하며 시간을 때우자, 메아린이라는 여성 모험가가 물었다.

“저기, 두 사람은 무슨 관계야? 되게 친해 보이던데.”

“네? 저요?”

이리스가 눈을 깜빡이다, 베르덴 대신 답을 했다.

“……선후배?”

“뭐야,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야?”

“아뇨, 그건 아닌데……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좀. 그래서 일단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모험가들의 시선이 베르덴에게 향했다.

그는 그저 침묵했다. 딱히 할 말이 없었으니까.

대화가 오고 가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마부들은 계약했던 대로 불침번에서 제외되었다. 최연장자인 록스가 어떻게 서야 할지 의견을 모으려던 중,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침번은 내가 알아서 하지.”

스태프로 야영지 주변에 기하학적인 원을 그렸다. 선을 따라 마력을 흘려보내자 야영지 주변으로 돔 형태의 마력이 펼쳐졌고, 곧 사라졌다.

경계형 마법진 중 하나로, 누군가 여기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커다란 경종이 울린다.

“마, 마법진도 그릴 줄 알아요?”

“당연하지.”

마법진은 원소 계열 다음가는 베르덴의 전공이다.

놀라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지친다는 걸 깨달은 이리스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 사람만 다른 거라고.

“그런데 이것만 있어도 되나? 누가 뚫기라도 하면?”

“글쎄. 아마 그럴 일은 없을걸.”

설치한 건 마법진 하나만이 아니다.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다소 위험한 마법진을 두 개나 깔아 두었다. 생각 없이 들어왔다가 그대로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만약 누군가 이 삼중 마법진을 베르덴이 눈치채기도 전에 뚫고 들어온다면…….

‘전부 죽겠지.’

설령 맞선다고 해도 말이다.

베르덴은 그만큼 자신의 마법진에 자신이 있었고, 그걸 척도로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밤이 깊었다.

베르덴이 먼저 눕자, 모험가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잠에 들었다.

마법진이 반응하는 일은 없었다.

* * *

마차를 탄 지 그새 며칠이 지났다.

모험가들도 갑갑함에 지쳐 가기 시작했다. 록스는 몸이 찌뿌둥하다며 마차에서 내려 내리 한 시간을 달렸다. 그리고 냄새난다며 마차 천장 위로 쫓겨났다.

베르덴도 온종일 마차에 앉아 있는 건 좋아하지 않았기에 밖으로 나가 하늘을 날았다.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곧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염력으로 지도를 꺼내 눈앞에 펼쳤다.

지리로 봤을 때, 한두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귀를 기울이니 비명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지각 강화>

감각을 높였다.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비척거리며 달려오는 언데드들과 도망치는 사람들. 아직 해가 떠 있는데 언데드가 나타나다니. 상황이 꽤 심각했다.

베르덴이 고도를 낮추었다.

“록스, 언데드다.”

“언데드……?”

‘이런 대낮에?’라고 되묻진 않았다.

록스가 마차를 두들겨 모험가들을 불렀다. 할 말을 마친 베르덴이 저 앞으로 향했다. 수가 많은 만큼 단번에 잡을 수 있는 광역 마법이 필요했다.

‘잘됐군.’

며칠 전에 겨우 커넥션을 완성했는데.

지금이 바로 마법서의 힘을 시험할 절호의 기회였다. 마력을 끌어모은 베르덴이 눈을 번뜩였다.

<지형조작>

쿠구구구구!

거대한 지진.

지형이 물결치더니 이내 솟아오르며 언데드와 사람들 사이를 갈랐다. 베르덴이 손을 쥐자, 흙색 파도가 그대로 언데드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언데드들은 끈질기다.

이대로 방치하면 다시 기어 나올 게 분명했다.

억지로 땅을 열었다.

마력이 홍수처럼 빠져나갔지만, 베르덴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간 해 온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에어 레일>

땅의 입구로 이어지는 바람의 길. 그 위에 새빨간 불덩이를 연신 쏟아 냈다.

수직 낙하한 파괴 마법이 지하를 한껏 불태웠다. 뼈가 타다 못해 재가 되어 흙 속으로 사라졌다.

‘이 정도면 다 죽었겠지.’

베르덴은 지상으로 내려갔다.

흡사 자연재해를 목격한 듯한 시선들이 그에게 꽂혔다. 그 안에는 방금 막 도착한 모험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수십 미터 반경을 아우르는 거대한 흔적.

순식간에 언데드의 화장터를 만들어 버린 베르덴은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선배님은 4위계 마법사야. 그것도 누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3위계와 4위계의 벽.

그 벽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4위계는 광범위한 마법이 주를 이루기에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만큼 소모되는 마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니까.

‘그런데 이건…….’

이리스가 흙을 쥐었다.

대체 한 번에 얼마나 되는 지형을 움직인 거지? 언데드가 얼마나 깊은 곳에 묻혀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쏘아진 불덩이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런 광경을 펼쳐 놓고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다니.

이리스는 평소에 베르덴의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질투도 있고, 선배로서의 존경심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저 나이에 이 정도에 이르렀는데.

언제가 시간이 흘러.

베르덴의 마법 한 번에 한 나라가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절대적인 권위자인 10명의 마탑주도 감당하지 못하는 마법사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떠올랐다.

‘에이, 설마…….’

그러나 도저히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 사실에 식은땀이 흘러 그녀의 턱 끝에 맺혔다.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격이 다른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품는 게 인간이란 종이었으니까.

탁. 그때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리스가 퍼뜩 고개를 들자 새하얀 백골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님! 여기 언데드가 또……!”

퍼어억!

그런데 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언데드가 산산조각 났다.

뭐지……?

옆으로 고개를 향하자, 거대한 도끼가 나무에 깊게 박혀 있었다.

“뭐야. 언데드가 다 어디 갔지?”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근육질의 거한.

그의 목에는 모험가의 상징인 플레이트가 백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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