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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6화 (26/366)
  • 26화 길드의 요청 (1)

    마르테스에 온 지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베르덴은 이리스를 데리고 도시 밖에 나와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 홀로 돌아다니고 있는 오크가 보였다.

    “마법사가 저걸 때려잡겠다고요? 원소 마법 없이요?”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권의 책을 읽고도 모자라, 이론을 강의해 주는 대가로 이리스에게 직접 2위계의 부여 마법까지 배운 지금. 종합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근력 강화>

    <반응속도 강화>

    <지각 강화>

    <보호막 부여>

    <마력집중>

    부여 계열 마법은 고위계로 갈수록 피시전자가 느끼는 부담을 덜어 준다.

    갑자기 근력이 강해지고, 시력이 좋아진다고 해도 곧바로 적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법이 끝나고 났을 때의 상실감도 확연히 줄어든다.

    베르덴이 스태프를 꽉 쥐었다.

    2위계에 불과한 터라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오크를 상대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면을 박차고 오크에게 육박했다.

    쩌억! 일격에 무릎을 박살 냈다.

    그어어어어어!

    허리를 숙여 오크의 손을 피하고, 스태프를 강하게 올려쳤다. 아래턱이 쪼개지자 놈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어 스태프로 오크의 몸을 젖힌 다음, 힘껏 뒤통수를 때려 부쉈다.

    쿠웅.

    마법사가 육탄전으로 오크를 죽이기까지 단 13초.

    이 정도면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모험가로 치면 은 등급에 준하는 실력이었다.

    이리스가 작게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어떻게 사람이 못 하는 게 없지?’

    부여 계열은 나름대로 난이도가 있는 마법인데 알려 주는 대로 족족 쓰지 않나. 그걸 며칠 연습도 하지 않고 실전에서 써먹질 않나. 마법산데 근접전도 잘하지 않나.

    이건 뭐 숫제 괴물이다.

    그리고 마법 이론은 또 어떻고.

    그녀가 평생 동안 배운 걸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완전히 정립해 준 것도 모자라, 이후의 방향성까지 제시해 주었다.

    아카데미의 인기 교수조차도 이렇게 해 주진 못했는데.

    ‘거기다 인물까지 좋으니…….’

    저 사람이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면 어땠을까? 분명 여러 국가에서 러브 콜이 쏟아지고, 아카데미 역사상 유일무이한 천재 마법사로 등극했을 것이다.

    여자들도 줄줄이 달고 다녔겠지.

    ‘아니, 그건 아닌가?’

    이리스, 그녀도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안할 만큼 베르덴은 무관심했다.

    원래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설마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닌데.”

    베르덴이 그 말을 남기고 그녀를 지나쳐 갔다.

    실전 연습도 끝났으니 마르테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잇던 이리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저기, 선배님!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이리스의 변명은 성문을 지나가기 전까지 이어졌다.

    * * *

    베르덴의 일과는 언제나 비슷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몸을 풀고, 식사를 마친 뒤 마법진에 집중한다.

    그 후 점심이 지나면 회로를 활성화하고 마법의 숙련도를 쌓는다.

    강의 시간이 되면 이리스에게 이론을 가르쳐 주거나, 약속이 없는 날엔 홀로 숲으로 가서 아인종을 상대로 마법을 연습하기도 한다.

    하루 온종일 자기 개발에 몰두하는 베르덴의 삶은 보는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 달랐다.

    방으로 돌아가자, 한 남성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혹시 시간 되나?”

    모험가 길드장, 오스카.

    그가 베르덴을 찾아왔다.

    * * *

    베르덴이 오스카에게 차를 내줬다.

    한 모금 홀짝인 그가 눈을 부릅떴다. 기본적인 맛은 같아도 느껴지는 풍미는 전혀 다르다.

    하긴 당연했다. 차를 타는 것도 마탑에서의 옛 일과 중 하나였으니.

    오죽하면 베르덴을 무시하던 마탑의 마법사마저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 마법사는 나한테 머리가 터져 죽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오스카 앞에 마주 앉았다.

    “차 맛이 좋군. 마법사가 되기 전에 카페에서 일이라도 했나?”

    “뭐, 비슷합니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음. 그러니까 그게…….”

    오스카가 말하기를 주저하며 이마를 긁었다.

    “혹시 언데드에 대해 알고 있나?”

    언데드, 죽음을 거역한 부정한 존재.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사기(死氣)는 산 자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하며, 새로운 언데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인간에겐 타협이 없는 악. 숫자가 늘기 전에 최우선적으로 토벌해야 하는 대상이다.

    세간에선 이런 언데드나 뱀파이어, 슬라임, 악마 등 스스로 죽지 않는 존재를 일컬어 ‘이형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갑자기 언데드는 왜……?

    베르덴의 물음에 오스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 비르온 영지에 있는 갱도에서 언데드가 출몰했다더군. 겨우 살아남은 광부가 재빨리 신고를 했지만, 어찌나 숫자가 많은지 전선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라는 모양이야.”

    해골 형태의 언데드는 화살이나 검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망치 같은 둔기류가 제격인데, 병사들의 기본 장비가 아닌 만큼 수급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모험가는 없습니까?”

    “그쪽 영지에도 있기야 하지만, 실력 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 딱히 돈이 되는 아인종이나 마수가 나오는 곳이 아니니까. 그래도 금 등급이라든가, 영지의 기사단 덕에 버티곤 있지만……. 사실 다음에 할 말이 자네를 찾아온 용건이기도 하지.”

    모험가들은 목숨을 거는 일이 다반사지만, 그렇기에 소문이나 징크스에 매우 민감하다.

    제대로 된 실력도 보이지 못하고 어이없게 죽는 일은 그들이 극도로 기피하는 죽음이었다.

    언데드는 불길한 존재다. 그건 자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언데드에 닿으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더라, 죽은 자의 원한이 평생을 따라다녀 불행을 내린다더라 하는 근거도 없는 소문들이 모험가를 위축시킨다는 것이었다.

    그게 현재 비르온 영지에서 언데드를 막을 수 없는 이유였다.

    진원지인 갱도로 들어가 죽음의 기운을 내뿜는 언데드를 몰살해야 하는데, 가기 싫다고 발을 내빼 버리니.

    기사단을 보내고 싶어도, 혹여 모두 죽기라도 할까 봐 영주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각 영지에 지원을 요청했다.

    돈을 달라는 대로 줄 테니, 제발 저 언데드를 좀 처리해 달라고.

    “그런데 마르테스 모험가들이 가지 않겠다고 한 겁니까?”

    “그렇지. 정확히 말하자면 있기야 있었지만 숫자가 턱없이 적어서 말이야. 지원을 보내는데 달랑 네 명은 좀 그렇지 않나? 마르테스의 체면도 있고…….”

    “제가 간다고 해도 고작 다섯 명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자넨 다르지. 자네는 마르테스를 구한 천재 마법사가 아닌가.”

    나이 지긋한 사내의 아부에 베르덴이 미간을 좁혔다.

    ‘이걸 받아야 되나?’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외부인에게 길드장이 직접 찾아오다니.

    당장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베르덴은 잠시 고민했다.

    그는 언데드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흥미가 있었다. 언데드라는 게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죽음의 기운이 만연한 환경을 만드는 건 마탑에서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성공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지탄받을 게 분명했다. 특히 빛의 신을 믿는 루아스 교회에서.

    죽음을 연구한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베르덴의 시선이 길드장을 향했다.

    오스카가 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언데드가 출몰했으니 루아스교에서도 움직일 텐데, 그쪽에서의 연락은 없었습니까?”

    “안 그래도 말하려던 참이었지. 교회에서도 정식 성직자를 몇 명 파견한다더군.”

    성직자가 가진 신성력은 언데드에게 치명적이다.

    즉사에 가까운 상처를 입지 않는 이상, 부상마저 치유해 줄 터.

    ‘뭐, 슬슬 움직일 때가 되긴 했지.’

    언데드 토벌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베르덴의 명성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베르덴이 마법사로서 활약할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모험가 길드장이 직접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돈도 벌고.’

    베르덴은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바, 받아 주는 건가?”

    “예. 출발은 언제쯤 하면 되겠습니까?”

    “이틀, 아니 삼 일 뒤에 출발하면 딱 맞을 거야. 애셔, 자네야 비행으로 날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수고를 하게 할 수야 없지.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비싼 마차를 수배해 주지.”

    오스카가 웃으며 베르덴을 데리고 거리로 나갔다.

    길드장이 직접 대접해 준 식사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 * *

    시간이 지나, 출발 당일.

    베르덴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성문으로 향했다. 다른 영지에 가는 김에 마흐바트의 가죽이나 녹슨 반지도 챙겼다.

    바빠서 가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한꺼번에 맡길 생각이었다.

    ‘어쩌다 보니 짐을 전부 가져왔군.’

    딱히 짐이랄 게 없기도 했지만, 마탑에서 가져온 보물들을 몸에서 떼어 낼 순 없었으니까.

    베르덴이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상인 콘라드가 몰고 다니던 짐마차와 달리, 오로지 사람을 태우기 위한 마차가 두 대 서 있었다. 그 앞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길드장이 말한 모험가 팀인가.’

    마차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서야 누군지 보였다.

    “아! 선배님!”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지?”

    “왜긴요. 저희도 의뢰를 받았으니까죠. 정확히는 짐꾼 겸 보조 역할이지만.”

    이리스, 그녀가 리더로 있는 모험가 팀.

    대화를 나눠 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도시 바깥에서 한 번, 그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러 한 번 그리고 지금 만난 것까지 합치면 벌써 세 번째니까.

    베르덴이 그들을 둘러봤다.

    로크와 마일드는 긴장한 탓에 몸이 굳었고, 미르나는 이리스의 뒤로 몸을 숨겼다. 베르덴의 실력을 눈앞에서 봤기에, 해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두려움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의뢴지 알고는 있지?”

    “예? 그야 당연하죠.”

    “언데드가 무섭지 않은 건가?”

    “이래 봬도 아카데미 출신이에요. 언데드에 대한 소문은 대부분 유언비어라는 건 다 알고 있죠. 그래도 꺼림칙하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희가 가진 전력으로 언데드 몇 마리 정도는 토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다.

    베르덴이 봤을 때, 이리스들은 아직 어려도 기본기 하나는 탄탄해 보였으니까. 오크보다 약한 스켈레톤 몇쯤은 상대도 안 될 거다.

    “그리고 저희가 맡은 건 다른 모험가들을 보조해 주는 거예요. 갱도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그 정도만 해도 돈도 주고, 승급에 가산점도 준다니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저는 무릇 모험가라면 쓸데없는 소문에 겁먹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용은 아니고?”

    “……두 단어를 헷갈릴 나이는 이미 지났어요.”

    이리스가 마차에 훌쩍 올라탔다. 다른 세 명도 그녀를 뒤따랐다.

    베르덴과 눈을 마주친 다른 모험가 팀은 간단히 눈인사만 한 뒤, 앞에 있는 마차에 탑승했다. 이리스가 베르덴에게 손을 뻗었다.

    “안 갈 거예요, 선배님?”

    “……가야지.”

    작게 한숨을 쉰 베르덴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이번 의뢰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심심한 의뢰는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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