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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5화 (25/366)
  • 25화 마법서

    부여 마법.

    마력을 소모해 술자 본인이나 타인에게 강화 효과를 부여하는 마법으로, 무엇보다 높은 이해력을 필요로 하는 계열이다.

    베르덴이 도서관에서 수십 권의 책을 빌린 건 그런 이해도를 쌓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여관의 꼭대기 층이 날아가면서 책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래도 1위계 부여 마법을 곧바로 사용할 정도의 기초 지식은 있었고, 도서관에 여분의 책이 남아 있어 이론을 쌓는 건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실질적인 마법에 대한 서적이 없다.’

    베르덴이라고 해도 모르는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아무리 특별한 마력회로를 지녔을지라도, 엄청난 마력량을 가졌을지라도 이건 어떻게 극복할 수가 없었다.

    방법은 2위계 이상의 부여 마법이 담긴 서적을 구하거나 지도를 해 줄 마법사를 구하는 것이다.

    그 마법사가 바로 이리스였다.

    물론 식사 한 끼 따위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은 아니다.

    “전에 보니 마법 이론에 대해 관심이 많아 보이던데, 부여 마법을 알려 준다면 네가 궁금해하는 이론에 대한 건 전부 가르쳐 줄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서로에게 괜찮은 제안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지?”

    “그게…….”

    이리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제안이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전에 베르덴에게 몇몇 이론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핵심을 막힘없이 알려 준 적이 있었으니.

    다양한 속성 마법에 트리플 캐스팅까지 구사하는 천재 마법사에게 일대일 과외를 받는 건 정말로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런데 내가 잘 알려 줄 수 있을까?’

    이리스는 언제나 학생이었지 교수가 아니었다.

    당연히 타인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적은 거의 없었다. 만약 미숙하게 가르쳐 줬다가, 베르덴이 부여 마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민폐가 따로 없겠지.

    그런 이리스의 생각을 읽었는지, 베르덴이 말했다.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못 배운다고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으니까. 네가 아는 2위계 이상의 부여 마법에 대해서만 알려 주면 돼.”

    “으음,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르쳐 드릴 수 있는데요…….”

    한차례 호흡을 내쉰 이리스가 물었다.

    “정말로 어떤 이론이든 상관없나요? ‘순수 마력’이나 ‘고대의 마법 체계’ 같은 어려운 것도요?”

    “그래.”

    “……‘마력의 변질’과 ‘원소의 근원’도요?”

    “원소 마법에도 관심이 있었나? 그쪽은 오히려 내 전문 분야지. 원한다면 체질에 맞는 속성 마법을 알려 줄 수도 있는데.”

    베르덴이 가진 지식은 방대하다.

    그저 외우기만 한 게 아닌 이해까지 마친 영역이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조차도 어려워하는 각종 이론의 해석. 거기다 원소 마법까지 알려 준다? 이리스의 선택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싫으면 말고.”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이리스의 목소리가 레스토랑에 울려 퍼졌다.

    * * *

    마법서(魔法書).

    펼치는 것만으로도 술자가 등록한 마법의 위력을 강화해 주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원하는 마법 물품이다.

    제작은 오로지 아티슨 마탑에서만 가능하며, 소재가 말도 안 되게 귀하기에 양산 자체가 불가능한 물건이다. 베르덴이 챙겨 온 것 중 세 번째로 비싼 마탑의 보물이었다.

    우선 마법서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개방된 것과 개방되지 않은 것.

    전자의 경우 마법서를 개방한 본인이 아닌, 다른 마법사가 사용하면 본래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거기다 등록한 마법 계열도 바꿀 수 없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사겠다는 사람은 널렸지만.

    시중에 풀린 마법서는 대부분 개방을 마친 것이다.

    하지만 베르덴이 가진 것은 후자였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오로지 베르덴만을 위한 마법서. 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마력.

    마법서에 마력을 등록하려면 최소 3위계 이상의 출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가 마석이다.

    그것도 순도 80% 이상인 중상급에 해당하는 품질로. 시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베르덴이 모아 온 재산을 탈탈 털어야 겨우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다.

    ‘운이 없군.’

    현재 중상급 마석의 가격은 2,800만 엘크.

    그런데 정작 마르테스에 물량이 없었다. 상인이 말하길, 새로운 마석이 들어오려면 약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마저도 예약이 되어 있어서 더 늦을 수도 있다고.

    ‘어쩔 수 없다.’

    생각을 바꾼 베르덴은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향한 곳은 모험가 길드.

    모험가는 생산자다.

    아인종이나 마수를 토벌하거나 해서 얻은 소재들을 시중에 내놓는 직업. 복잡한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원하는 소재를 얻으려면 모험가 길드와 직접 거래를 해야 한다.

    그러한 권한을 가진 자가 바로 길드장이다.

    베르덴과 마주 앉은 길드장 오스카.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한해서 특별히 거래하도록 하지. 자네에게는 빚이 있으니.”

    마르테스 참사, 그 내막을 알고 있는 건 시장을 포함해 몇 명 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오스카였다. 더해서 베르덴은 길드에 소속된 모험가들을 구해 주기도 했다.

    공짜로 마석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런 부탁쯤이야 들어줄 이유는 충분했다.

    베르덴은 그 자리에서 2,800만 엘크를 지불하고 여관으로 돌아갔다.

    주머니를 열자, 사람 머리 크기의 마석이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확실한 진품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마력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마법진으로 방 전체를 밀폐했다.

    그리고 마법서를 꺼냈다. 마법적인 문양으로 뒤덮인 책자 위에 손을 얹고 천천히 마력을 흘려보냈다.

    시간이 흐르자 마법서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베르덴은 더욱더 마력을 밀어 넣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그러다 마력회로와 마법서가 서로 연결되는, 마치 육체의 일부가 새롭게 생겨나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 스쳐 지나간 순간.

    화아악!

    마법서가 개방되었다.

    터져 나오는 찬란한 빛과 날뛰는 마력.

    서서히 빛이 가라앉자, 굳게 닫혀 있던 마법서가 열려 있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는 새하얀 책장이 보였다.

    이렇게 새로운 원소의 마법서가 탄생했다.

    ‘이제 속성을 정할 차례.’

    원소의 마법서는 하나의 원소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원소를 다룰 수 있는 베르덴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짧았다.

    선택한 건 땅 속성.

    그중 <지형조작>은 베르덴이 가진 장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아무리 다른 속성이 뛰어나다고 한들, 이 마법 하나만 보고도 마법서를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한쪽 손으로 마법서를 잡고, 나머지 손은 마석에 갖다 대었다.

    마력회로를 활성화한 뒤 마법을 하나씩 시전했다.

    ‘석벽, 어스 쉐러, 어스 스피어, 지형조작, 어스본…….’

    마석의 빛이 옅어져 가고, 비어 있던 마법서가 채워져 간다.

    중상급 마석으로 등록할 수 있는 건 8개가 한계. 보다 높은 위계의 마법을 새기는 게 유리하나, 베르덴은 자주 사용하고 당장 쓸 수 있는 마법을 택했다.

    이내 마력을 전부 토해 낸 마석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회색빛이었던 마법서가 흙빛으로 변했다.

    마법서 개방은 아주 순조롭게 끝이 났다.

    “나도 이제 마법서의 소유자인 건가…….”

    수백 개의 마법서 중 하나의 주인.

    자신이 직접 등록한 마법서를 지닌 사람은 일 할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3위계 마법사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만약 욕심 많은 자가 이를 알게 된다면 베르덴을 죽이고 마법서를 빼앗으려 들겠지.

    ‘그런 귀찮은 일은 사절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마법진을 이용해 마법서와 베르덴 자신을 상시 연결하는 것. 그렇게 하면 마법서를 펼치지 않아도 강화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타인에게 마법서를 보일 일도 없게 되고, 스태프를 활용한 전투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될 터. 누가 뭐래도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마법진에 대해선 보헤미른 마탑주에 버금가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베르덴이라도 심혈을 기울어야 하는 고난이도의 마법진, 커넥션(Connection).

    별도의 재료는 필요 없다. 다만, 하루에 8시간은 집중하며 최소 3주는 지속해야 하고, 도중에 삐끗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일 할까.”

    집중력도 떨어졌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

    마법서에서 손을 뗀 베르덴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정신이 피로했는지 눈을 감자마자 의식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늦잠을 잔 베르덴은 아침 훈련을 나가지 못했다.

    * * *

    까앙-! 까앙-!

    갱도 안에서 광부들이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진 만큼, 마석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돌을 내리쳤다.

    그래야만이 거하게 한몫 챙길 수 있었으니까. 마석을 캐는 광부는 힘든 일이지만,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일당을 받는 직업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안 나와?! 30분째 흙만 캐는 게 말이 돼! 이거 고갈된 거 아니야?”

    “갱도가 열린 지 얼마나 됐다고 고갈은 무슨 고갈. 주머니 빵빵하게 채우고 싶으면 닥치고 곡괭이나 휘두르슈.”

    “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입을 다문 광부가 곡괭이를 휘둘렀다. 불만은 많았지만 이 일을 몇 년 한 덕에 나름대로 요령이 있었다.

    그렇게 파고 또 파자, 웬 하얀 돌조각이 고개를 내밀었다.

    “응? 뭐야, 이거?”

    “뭔데 그래?”

    “아니, 갑자기 처음 보는 게 나와서…… 이거 혹시 비싼 거 아닐까?”

    “광석은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더 파 보지 그래?”

    마석보다 비싼 무언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조심스레 곡괭이로 툭툭 두들겼다. 혹시나 망가지면 안 되니까.

    잠시 후, 하얀 돌조각이 나타났다. 이번엔 몇 배나 커다란 돌이었다.

    광부가 얼른 뽑아내어 손에 들었다. 그제서야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해골.

    오래된 인간의 백골이었다.

    “흐아아아악?!”

    “뭐…… 해, 해골?”

    “사람 뼈가 왜 여기에……?”

    광부들이 소란을 일으키자 작업반장이 나타났다.

    “아니, 일들 안 하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게, 여기 해골이…….”

    “해골? 나 참, 그게 뭔 대수라고. 원래 땅 파다 보면 시체도 보는 법이야.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잖아. 여기 무덤이 있다곤 못 들었으니, 먼 옛적에 묻힌 사람인가 보지. 어서 치우고 일이나 해!”

    뻐엉! 작업반장이 해골을 걷어찼다.

    사실 그도 약간 겁먹긴 했으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않은가. 명색이 반장인데.

    등을 돌려 인부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들의 시선이 뭔가 이상했다.

    “내 말 못 들었어! 당장 일하러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뒤, 뒤, 뒤에……!”

    뒤?

    작업반장이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 그가 발로 찬 해골이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그러더니 금이 간 두 눈덩이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죽음의 기운이 주위를 옭아맸다.

    “어, 어, 언데드……?!”

    죽음에서 되살아난 이형종.

    작업반장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흙이 무너지며 수십이 넘는 언데드가 광부들을 덮쳤다.

    갱도에서 살아서 나간 사람은 단 세 명뿐.

    언데드의 출몰에 영지에 비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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