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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2화 (22/366)
  • 22화 박사 (3)

    박사는 완벽한 인간을 꿈꿨다.

    인간이란 종족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히 성장해 가는 인류를 바랐다.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식욕. 그것을 기반으로 한 박사의 역작은 생명체를 섭취함으로써 주요한 특성을 흡수한다. 아인종과 인간을 구별하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박사는 기를 깨우친 자를 잡아 먹이고, 트롤의 고기를 매일같이 먹였다. 필요하다면 부하조차도 죽여 먹이로 주었다. 물론 마법사도 주었다. 마력이 있어도 마법을 쓰는 법을 이해하지 못해 무용지물이긴 했지만.

    그렇게 수백 수천 번의 실험과 수많은 희생 끝에 한 인간이 만들어졌다.

    단련하지 않았음에도 기를 깨우치고, 본래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힘을 가진 신인류가. 머지않아 구 인류를 멸망시키고, 어떤 종족도 넘볼 수 없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를 만들 존재가.

    이제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었다.

    그랬는데.

    “커어억……!”

    가슴이 움푹 들어간 인간이 고통스럽게 신음을 흘렸다.

    사방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잔해의 중심에 서 있던 베르덴이 손아귀를 쥐자, 지면이 솟아나 인간의 팔과 다리를 관통하며 단단히 구속했다.

    양팔이 사라진 박사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마력이냐……!’

    아무리 4위계라고 한들 그 많은 실패작들을 단시간에 처리한 데다가 방금 전에 수십 개의 마법을 쏟아 내기까지 했으니, 마력 고갈이 일어나거나 최소한 지친 기색을 보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베르덴은 호흡이 조금 거칠어졌을 뿐 멀쩡했다.

    이건 박사의 계산을 넘어, 세상의 상식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이게 끝인가?”

    “크윽…….”

    신음을 흘린 박사가 인간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무리 재생 능력이 있다고 한들 체력까지 회복되는 건 아니다. 거기다 시험관에서 나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저 구속을 부수기 위해서는 영양분이 될 것이 필요했다.

    잘려 나간 박사 자신의 팔…… 마침 바닥에 그것들이 놓여 있었다.

    기회,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다면. 저 마법사를 죽이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주변을 가볍게 훑어본 베르덴이 박사에게 물었다.

    “실험 일지는 어디에 있지?”

    “…….”

    콰드드득. 구속이 강해지자 인간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박사가 어금니를 깨물며 책상을 향해 턱짓했다.

    “저, 저 아래 금고에 있다.”

    “직접 가져와.”

    ……양팔의 출혈을 막기에도 급급한데 금고를 열라는 건가?

    그러나 박사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책상으로 향해야만 했다. 저 미친 마법사의 눈.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자신의 역작을 산산조각 낼 생각이다.

    하긴. 글러트니와 적대하는 방주의 이념으론, 절대 존재해선 안 되는 생명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아직까지 살려 두고 있는 거지? 실험 일지를 원하는 걸 보면 정보를 원하는 건가? 그 고지식한 방주도 많이 변했군.’

    옛날 같았으면 진즉에 몰살했을 텐데.

    박사는 과거를 떠올리며 힘겹게 금고를 열었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 뭉치를 발로 걷어차 베르덴에게 전달했다.

    그와 동시에 박사의 몸이 마법으로 구속되었다.

    “크윽…… 양팔까지 잘라 놓고 이러긴가? 아무리 적대적인 관계라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암살자를 보낸 인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군.

    기력이 쇠약해진 박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축 처진 게 체념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아래 가려진 두 눈은 바닥에 널브러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저걸 본 이상 절대 날 죽이지 못한다.’

    마법사인 이상, 바보가 아니라면 저 지고한 연구의 가치를 알아챌 터. 그래, 관심을 보인 이상 방주라고 해도 쉬이 버릴 순 없을 것이다.

    창조자인 자신에게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회유를 하든, 고문을 하든 갖은 수단을 다 쓰겠지.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지는 못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회는 온다.

    그것이 박사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 * *

    사락. 사라락.

    베르덴의 눈이 재빠르게 실험 일지를 훑었다. 마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 되는 단어나 개념들이 즐비했지만, 박사가 하는 실험이 대충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미친놈이었군.’

    인위적으로 신체 구조를 뒤바꾼다니.

    특히 다른 생명체를 섭취함으로써 그 특성을 흡수한다는 발상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 한 손에 들린 종이 뭉치에 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들어간 걸까.

    베르덴이 인간에게 시선을 향했다.

    상처를 회복하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곤 있지만 확실히 처음보단 약해졌다.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인간이라.’

    실험 일지 가장 앞에 적힌 단어, 신인류.

    대체 방주는 무엇이고, 박사가 속한 글러트니는 무엇이며, 왜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내려는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박사가 벌인 끔찍한 실험의 자세한 과정이 적혀 있는 이 일지가 바깥으로 나간다면 작은 소란으론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서로 잡아먹으며 진화하는 인간이라……. 베르덴은 생각을 마쳤다.

    박사와 인간을 한군데 모이게 한 다음, 그들 사이에 실험 일지를 집어던졌다. 박사가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베르덴을 쳐다봤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여기 있는 건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된다. 만약 권력자에 손에 들어간다면 아득한 단위의 인간이 실험체로서 다뤄질지도 모른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와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박사의 실험이 베르덴과 전혀 맞지 않았으니까. 굳이 손에 넣어야 할 이유도 없고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방주나 글러트니란 단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는 싶었으나, 지금 이곳으로 누군가 오고 있었다. 아마 같이 온 기사일 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제 폐기 처분 할 때다.

    “자, 잠깐. 설마 나를 죽일 생각이냐? 내가 남긴 연구들과 같이? 너는…… 너는 이걸 읽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단 말이냐?!”

    “참신하긴 했지.”

    마탑보다 높은 수준의 인체 실험. 그리고 신인류란 존재의 탄생.

    잔혹한 실험 과정으로 윤리적으로 질타받을지언정, 생물학적 연구의 가치로선 세계적으로 봐도 견줄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조금이라도 연구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이 나겠지.

    하지만 베르덴은 아니었다.

    그는 수년간 인체 실험의 희생양으로 살아온 마법사였으니까.

    최소 수백 명이 넘는 인간의 몸을 산 채로 뜯어 재료로 삼은 실험. 그런 박사의 연구가 어떤 가치를 품고 있든 간에 상관없었다.

    스태프가 박사에게 향했다.

    “아, 안 돼! 그만! 그만 둬라아!”

    실험 일지와 인간을 향한 박사의 절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베르덴의 얼굴엔 극도의 혐오감만이 남아 있었다.

    “사라져라.”

    솟구치는 화염. 그 속에서 박사와 인간이 남긴 비명마저 타올랐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베르덴이 방주의 일원이 아닌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착각 속에서 사라졌다.

    * * *

    “제기랄, 그 암살자 놈…….”

    차석 기사 제이슨이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팔과 다리에 생겨난 상처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중 왼쪽 복부 자상에서의 출혈이 심했다. 뚫린 갑옷의 틈새에 찢은 옷조각을 쑤셔 넣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이런 일도 겪어 보네.’

    이래서 미친 마법사하곤 연관되지 말라는 건가?

    그러나 지금 제이슨에겐 그 마법사가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이대로 골골대다 죽지는 않겠다만 여기서 도시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 그 시간을 고통 속에서 견디는 건 너무 싫었다.

    편히 몸을 쉬려면 마법사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런데 죽은 건 아니겠지?”

    제이슨이 실패작들이 갇혀 있던 방에 도착했다. 곳곳에 검게 타 죽은 아인종의 사체가 가득했고, 돌무더기 아래엔 트롤의 다리 같은 게 있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마법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는 걸 보아 살아서 나간 것 같긴 한데……. 제이슨은 조금 더 힘을 내 발걸음을 바삐 놀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가 보자 베르덴이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 무사하셨군요.”

    “예. 그런데 그 상처는…….”

    “아, 그게 좀…… 크흠, 그래도 저도 옆구리 쪽에 제대로 한 방 먹여 줬습니다. 마르테스의 차석 기사인 제가 이 정도로 다쳤으니 놈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놓쳤다는 말을 돌려 하는군.

    잡았으면 좋았겠지만, 가장 중요한 박사를 처리했으니 그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과연 우연으로 맺게 된 이 악연이 여기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베르덴은 처분하기 직전 몰래 뜯어 낸 실험일지의 뒷부분을 꺼냈다.

    여기엔 마르테스에 대규모 참사를 일으킬 박사의 계획이 실려 있다. 바깥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되는 부분을 적당히 수정한 뒤, 시장에게 넘기면 어떻게 될까.

    과정이 어쨌든, 도시가 반파될 뻔한 걸 막아 줬으니 분명 보상을 줄 것이다.

    툭.

    그때, 계획서 사이에서 접힌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

    조심스레 펼쳐 보니 특정 지역이 축소된 지도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지도 끝자락에 파이테 영지로 추측되는 장소가 있는 걸 보니 이곳 마르테스 주변 일대를 그린 것 같은데,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숲에 붉은색으로 된 체크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생각할까.’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니까.

    광대 오크부터 시작되어, 동굴에서 모험가를 구하고 여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꽤나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베르덴은 나른한 몸을 이끌고 제이슨과 함께 도시로 돌아갔다.

    * * *

    며칠이 지나, 마르테스에 일어났던 소란의 여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물론 시장을 비롯한 도시의 상층부는 아니었다.

    도시 바깥으로 이어지는 통로와 지하에 숨겨진 정체불명의 공간 탓에 비상이 걸렸다. 기사와 병사들을 소집해 수색을 실시했고, 지하 통로 또한 입구에 기사를 세워 철저하게 관리했다.

    수색이 끝난 후에 통째로 매몰해 버릴 계획이라던데, 어떻게 처리하든 베르덴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새로 빌린 여관의 방.

    그 중심에서 마력이 소리 없이 휘몰아쳤다.

    “후우…….”

    베르덴이 깊게 호흡을 내쉬자, 회로에 가득 찬 마력이 흩어졌다. 마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낸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주 순조로워.’

    원소 계열 3위계 중위. 현 베르덴의 수준이다.

    마력회로 확장제 덕에 연 단위나 걸릴 성장이 고작 몇 주로 단축되었다. 그 대가로 고문에 가까운 통증을 온전히 견뎌야 했지만 베르덴의 의지가 꺾이는 일은 없었다.

    가슴속에 성취감이 가득 들어찼다.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남아 있던 마력회로 확장제가 용기째로 불에 타올랐다.

    재료가 재료다 보니 아깝긴 했으나 이 약물로 넓힐 수 있는 마력회로는 3위계 중위가 한계다. 이 이상은 리터째로 복용해도 효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고 팔아 버리는 건 논외고.’

    이건 애초에 시중에 나오지 않은 물건이었으니까.

    보헤미른 마탑의 임상 실험 단계에서 지원한 마법사들이 죄다 거품 물고 기절하는 탓에 상품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탓이었다. 소모되는 재룟값 또한 마탑으로서도 아찔할 정도였고.

    그뿐만 아니라 효과가 3위계 마력회로까지가 한계인 걸 알고서는 개량마저 포기하고 아예 폐기해 버렸다.

    그런 물건을 무턱대고 풀어 버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나 다름없다. 마탑과 거리가 먼 공국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쨌든 이걸로 첫 단추는 잘 꿰었어.’

    3위계 중위의 원소 마법, 방대한 마력량 그리고 전투 경험까지.

    마법사로서의 베르덴은 틀림없이 강해졌다. 아주 이례적인 속도로. 그러나 이 폭발적인 성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탑의 보물고에서 가져온 것들은 아직 쓰지도 않았으니까.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긴 하지만 돈은 어느 정도 있다. 다음 단계를 밟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전에…….”

    베르덴의 시선이 박사에게서 빼앗은 지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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