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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1화 (21/366)

21화 박사 (2)

퍼억─! 퍼어억─!

뇌격에 직격당한 고블린과 코볼트가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순식간에 방 전체에 퍼져 나간 전류. 회복할 겨를도 없이 광대 오크의 몸 전체가 검게 타올랐다.

모래알같이 많은 마법사 중에서도 한 줌만이 다룰 수 있는 고위 속성.

뇌격은 전격 계열 중에서도 가장 하위의 마법이었지만, 위력만큼은 3위계 속성 마법 중 상위에 속했다.

상위종도 아닌, 일개 광대들이 견뎌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

그런데 전부 죽지 않았다.

오크보다 한층 더 큰 체격을 가진 트롤 두 마리. 녀석들이 바싹 탄 사체를 입에 넣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처를 회복했다.

아무리 재생에 특화된 아인종이라지만 이건 너무도 빨랐다.

<화염구>

이번엔 불에 태웠다.

정통으로 맞은 트롤이 주춤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불길 속을 걸어 나왔다. 광기에 물든 트롤의 노란 눈동자.

────콰앙!

베르덴의 옆으로 날아온 사체가 박살 났다.

‘3위계로는 안 되겠어.’

뇌격과 화염구를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하다니. 내구력과 재생력이 통상을 벗어났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널려 있는 시체를 아예 잿더미로 만든 다음 서서히 몰아넣으면 무난히 죽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콰앙! 현란하게 휘둘러진 스태프가 트롤의 주먹을 흘렸다.

마력을 집중하여 못생긴 턱을 강하게 후려친 뒤, 그 뒤로 달려오고 있는 트롤에게 스태프를 겨냥했다.

<어스본>

트롤의 복부를 관통한 날카로운 기둥. 꼬챙이처럼 꿰여 버린 녀석이 발버둥 쳤다. 무지막지한 힘에 기둥에 금이 갔다.

‘일단 한 놈.’

쩌어엉! 스태프에 맞았던 트롤이 정신을 차리곤 마력방벽을 후려쳤다.

놈의 움직임은 좋게 말해도 빠르지 않았다. 애초에 재생 능력을 제외하면 오크와 비슷한 수준의 아인종이었다.

무릎, 얼굴 그리고 목. 베르덴의 삼연격에 트롤이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고통을 느끼지 못해도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어 충격파로 나가떨어진 녀석이 뒤에 있던 트롤과 부딪쳤고, 기둥이 부러지며 두 놈이 뒤엉켰다.

‘지금!’

<칼날 폭풍>

5개의 칼바람. 그리고 트리플 캐스팅.

총합 15개의 칼날이 폭풍처럼 트롤들에게 날아갔다. 피부가 찢겨 나가고, 관절 부근이 잘려 나간다. 시체를 먹지 않는 이상, 자체적인 재생 능력만으로는 그 많은 상처를 당장 회복할 수가 없었다.

<석벽>

<지형조작>

쿠구구구……! 단단한 파도가 트롤을 집어삼키며 둥그런 돔을 만들어 냈다.

베르덴이 손을 꽉 쥐었다. 돔이 서서히 압축되며 일부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새에서 트롤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걸로 놈들은 죽지 않는다. 얼마 안 가 부상을 회복하고 벽을 부수고 나오겠지.

어차피 이건 준비 단계에 불과했다. 적지 않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트롤의 처형대였다.

마력을 한데 모아 속성으로 변형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바위가 허공에 떠올랐다.

베르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력집중>

흩어지는 속도 이상으로 쏟아부은 마력.

허용량을 넘어 한계에 다다르자 바위에 한 줄기 금이 갔다. 이내 덜덜 떨리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은 불안정한 상태에 도달했다.

<암석강타>

후웅────허공을 격하고 쏘아져 나간 바위.

그리고 트롤을 가둔 벽에 도달할 때쯤, 한 줄기에 불과했던 금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그와 동시에 바위가 수천 개의 파편으로 터져 나갔다.

콰과과과!

엄청난 충격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베르덴이 재빨리 마력방벽으로 여파를 막아 냈다. 중심에 떠오른 흙먼지들이 걷히자,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은 없었다.

남은 거라곤 돌조각에 파묻힌 트롤의 다리뿐. 재생을 시도하지도 못한 채, 파편에 상반신이 쓸려 나간 것이었다.

베르덴이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전격 계열은 그 위렵답게 마력 소모가 극심하고, 지형조작부터 암석강타를 이용한 폭발까지 연이어 쏟아 냈으니. 아무리 방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피로를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시간은 벌었다.’

고작 10분 남짓. 그 안에 박사가 모든 흔적을 지우고 도망쳤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갔을까. 답은 뻔했다.

베르덴은 마탑에서 살아왔기에 알 수 있었다.

연구자가 목숨보다 중요시 여기는 건 실험의 결과물.

분명 이곳 어딘가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자료들을 가지러 갔을 것이다.

투명한 벽을 부수고 박사가 사라진 통로로 향했다.

암살자를 보내 자신을 죽이려 했으니 그 대가는 톡톡히 갚아 줘야겠지. 어디 있든 간에 놈은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 * *

박사가 실험실의 최심부에 도착했다. 이곳만큼은 다른 곳과 달리 아주 깨끗했다.

그가 수십 년간 연구에 실험을 거듭하고 거듭한 끝에 만든 최대의 역작이 있었으니까.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으나, 이걸 글러트니로 가져가면 분명 자신은 다른 놈들을 제치고 ‘다섯 개의 이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박사는 그렇게 확신했다.

“크크큭, 그 낡아 빠진 이빨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쓸모없는 부하들 때문에 막판에 일이 틀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마르테스의 인간들을 제물로 삼지 못하는 것뿐이니. 다른 곳으로 가서 천천히 완성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박사가 숨겨진 버튼을 눌렀다. 바닥이 열리며 거대한 시험관이 나타났다.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인간. 특별하고 선구적인 나의 귀한 자식. 박사는 애정 어린 손길로 시험관을 어루만지곤 문을 열었다.

촤아악! 양수가 쏟아지듯, 안에 담겨 있던 액체가 쏟아졌다.

그와 함께 밖으로 나온 인간이 바닥에 쓰러졌다. 박사가 다가가 품속에서 주사 하나를 꺼냈다.

“일어날 시간이다, 아이야.”

푹. 바늘이 척수에 꽂혔다.

혹여 다치기라도 할까 지그시 눌러 가며 각성제를 천천히 투입하던 그때, 선혈과 함께 박사의 오른팔이 허공을 날았다.

“크아아아아아악?!”

“도망친 게 고작 여긴가?”

베르덴이 스태프를 박사에게 겨냥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박사가 서둘러 가운으로 출혈을 막았다. 온몸이 땀범벅이 된 그가 고통에 신음했다.

“크읍…… 어, 어떻게 여길……! 아니, 그 전에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왜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박사의 실패작 중에서도 트롤은 독보적이었다.

기존의 재생 능력에 더해, 섭취를 통한 회복이 합쳐지니 웬만해선 죽일 수 없는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가진 힘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능력 하나만으로도 살려 둘 가치가 있었다.

‘설마…… 3위계가 아니었단 말인가?’

테온에게 보고를 받은 박사는 베르덴을 3위계로 확신했다.

마법사의 위계가 아무리 재능에 좌우된다지만, 나이와도 관련이 깊었으니까. 마법은 하나의 학문으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게 상식이었다.

박사가 힘겹게 베르덴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가 만든 트롤을 3위계 마법으로 처리하는 건 통상적인 3위계 마법사의 마력량으로는 불가능하다. 박사는 여러 실험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런 트롤 두 마리를 포함해 다른 실패작들을 모조리 죽인 데다가, 이렇게나 빨리 따라붙다니.

‘저 나이에 4위계에 올랐다고?’

그것도 완숙한 4위계.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어떻게 방주가 이런 재능을 지닌 마법사를 그토록 철저하게 숨길 수 있었는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박사에게 베르덴이 물었다.

“옆에 있는 건 뭐지?”

“끄으윽……! 이건, 내 평생의 역작이자 자식이지. 이걸 만들려고 수년 동안 내가 쌓아 온 모든 걸 바쳤다면 믿겠나?”

박사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왜. 죽일 생각인가? 안 되지…… 절대 안 돼. 이걸 죽이는 건 우리 글러트니의 이념을 넘어 세상의 이상(理想)과 반대되는 행위니까. 느껴지지 않나? 이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인류의 미래를.”

박사의 말에 베르덴은 침묵했다.

딱히 아는 게 없었으니까. 글러트니나 이념이나 당최 유추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요 키워드에 집중하며 박사를 살짝 떠보았다.

“……그게 인류의 미래라고?”

“그렇지. 다른 종족들과 달리 나약한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 낸 진화체. 생명체의 근본인 섭취를 통해 변화하는 인류의 새로운 형태다. 그야말로 우리의 이상(理想)이지 않나?”

진화, 섭취, 이상.

베르덴은 그 단어들을 떠올리며 박사가 한 실험에 대해 생각했다. 차차 박사가 한 실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할 때쯤, 바닥에 쓰러진 인간이 꿈틀 움직였다.

순간 스태프가 놈에게 향했고, 그 틈에 박사가 몸을 내던지며 주사기를 힘껏 눌렀다.

촤아악! 뒤늦게 날아간 마법이 박사의 나머지 팔을 잘라 냈다.

하지만 박사는 비명을 지르긴커녕 웃고 있었다.

“크흡! 하하하핫! 이 미친 마법사야, 네놈의 그 마력. 산 채로 내 자식의 양분이 되어라!”

번쩍. 눈을 뜬 인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신체 어느 곳에도 털 하나 자라 있지 않았다. 인체의 모형처럼 인간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인간이 베르덴에게 고개를 향했다.

그러곤 활짝 웃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가지런한 건치가 하얗게 빛났다.

“밥.”

* * *

“……밥?”

난데없는 단어에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인간이 움직였다. 뛰는 자세가 엉성했지만 상당히 빨랐다.

죽일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제대로 알아낸 게 없었으니까.

박사의 역작…… 인간이라고 부르자. 어쨌든 그것에 흥미가 갔다. 연구자로서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베르덴의 스태프에 빛이 맺혔다.

<마력폭발>

먼 거리에서 폭발한 푸른 마력.

마력폭발은 위력이 낮지만 빠르다. 머리에 제대로 충격만 준다면 제압 마법으로썬 꽤나 쓸 만했다.

그런데…….

‘피해?’

폭발 직전에 기괴하게 몸을 비튼 인간이 베르덴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전신의 근육이 맥동하더니 붉은 기운에 휩싸였다.

신체 강화.

기를 깨우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기술.

남작령의 기사도, 전직 모험가였던 도적도, 세르겐과 암살자도 사용했었다.

쿠웅! 바닥이 깨졌다. 기운을 다루기 시작한 인간의 속도는 베르덴이 공국에 온 이후로 만난 누구보다도 빨랐고 그리고 무거웠다.

쩌어어엉!

급하게 만든 마력방벽이 낮게 울렸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계속해서 방벽을 유지했다.

시시각각 깎여 나가는 마력. 베르덴은 상대의 움직임을 읽으며 빈틈이 생기길 기다렸다.

그러던 중, 목소리가 들렸다.

“밥. 약해.”

킥킥킥. 추악한 비웃음.

그 순간, 베르덴의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웃어?”

베르덴은 감성보단 이성을 우선시했다. 마탑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했으니까. 매 순간마다 들끓는 분노와 증오를 속에 꼭꼭 담아 두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변화가 찾아왔다.

속이 뜨겁게 불타오를수록 차가워지는 머리. 서로가 상반되는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복잡해질수록 머리가 맑아졌다.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어느 하나에 과하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물을 관찰하는 데 있어 그야말로 최고의 무기.

베르덴의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했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적들을 척도로, 눈앞의 인간이 가진 능력을 가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악이 끝났다.

강화된 신체 능력은 광대 오크에 비견되며 재생력 또한 마찬가지. 비정상적인 탄력과 유연성 또한 통상적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게 전부.’

훈련된 기사에 비해 기교가 턱없이 모자라며 모든 움직임이 본능에 치중되어 있다. 마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나 페인트 하나 구별하지 못한다.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을 상대하는 것 같다.

즉, 종합하자면.

“내 상대는 아니다.”

마력방벽이 사라지고 주먹이 빗나갔다.

무게중심을 잃은 인간이 순간 휘청거렸다.

────쩌억! 스태프에 강타당한 인간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손등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스태프를 쥔 베르덴이 인간에게 그 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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