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0화 (20/366)

20화 박사 (1)

마력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마법의 형태를 빌리지 않더라도, 단순히 압도적인 마력량을 내뿜어 상대방을 위압할 수도 있고, 마력을 퍼뜨려 주위를 감지할 수도 있다.

더해서 마력 조작이 일정 경지 이상에 다다르면, 별다른 도구 없이도 마법진을 형성할 수 있다.

추적용 마법진, 트레이스(Trace).

급조한 것이긴 하지만, 어지간히 예민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쉽게 눈치챌 수 없다. 그리고 놈들에겐 그런 마법사가 없다.

암살자를 스태프로 가격했을 때 겉옷에 몰래 새겨 넣은 마법진. 아직까지 효과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다.

입구를 부순 베르덴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햇빛에 비친 먼지가 떠다닌다. 마력을 펼쳐 건물 내부의 구조를 순식간에 파악했다.

제이슨이 다급하게 뒤따라 들어왔다.

“가,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미친 마법사라더니 진짜로─”

“저쪽입니다.”

제이슨의 말을 무시하고, 벽면에 있는 작은 창고로 들어갔다.

오래된 가구와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염력을 써 몽땅 바깥으로 날려 버리자 낡은 바닥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숨겼는지 손길이 닿은 흔적은 없었지만, 마법진의 잔향은 분명히 이 아래로 향해 있다.

베르덴이 제이슨에게 말했다.

“아래에 지하 통로가 있습니다. 방향과 규모를 보아 도시 바깥까지 연결된 것 같은데,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전혀요.”

도시 밖으로 연결된 통로라니.

작은 통로에 불과하지만 이건 치안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고블린 같은 아인종이 이 길을 통해 도시 내에 숨어든다면…….

제이슨이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당장 폐쇄해야 합니다.”

“그 전에 암살자를 쫓는 게 우선입니다.”

통로를 따라가면 놈들이 뭘 노리는지, 왜 이 길을 만들었는지도 알 수 있겠지.

베르덴이 스태프를 손에 쥐었다.

임시로 빌린 강철 스태프가 아닌, 주문 제작한 스태프였다.

일이 밀려 있어 본래 이틀 뒤에 완성 예정이었지만, 조사를 받던 베르덴이 꼭 필요하다고 조사관에게 요청한 바람에 대장장이가 부랴부랴 만들어 낸 것이다.

덕분에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적당히 묵직한 게 마음에 들어.’

스태프를 가볍게 돌린 베르덴에게 제이슨이 말했다.

“지금 저희 둘만으로 쫓자는 겁니까? 연락을 해서 기사단을…….”

“오지 않을 거라면 혼자 가겠습니다.”

콰지직! 바닥문을 뜯어 낸 베르덴이 주저 없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너무도 제멋대로인 행동에 제이슨은 머리가 아파 왔다.

“제기랄, 이래서 마법사는…….”

한숨을 쉰 그가 검을 뽑았다. 아무리 그래도 호위 대상을 홀로 가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기사였으니까.

제이슨이 베르덴을 따라 어둠 속으로 향했다.

* * *

간신히 도주한 테온은 은신처에서 밤을 보냈다.

옆구리가 크게 베여 나간 탓에, 곧장 실험실로 갔다간 흔적이 남을 게 분명했으니까. 직접 상처를 꿰매고 비상용으로 구비해 둔 포션을 사용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했다.’

암살에 실패한 데다가 연락까지 두절됐다?

돌아가면 진짜로 박사가 실험체를 던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을 실험체로 삼을 수도 있고.

‘그냥 도망칠까.’

아니, 안 된다. 테온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도망쳐 봤자 글러트니의 이빨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릴 때부터 잡혀 와 암살자로서 길러진 그였기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도시 외곽에 숨겨 둔 비밀 통로로 들어갔다. 먼지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은폐 능력은 전문가 이상이었다.

어둠이 깊었지만 길은 하나뿐이라 문제없다. 끝에 도착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제기랄.’

……실험실 곳곳이 난장판이 되어 있다.

발소리를 없애고 조심히 움직이자, 두 눈이 충혈된 채 앉아 있는 박사가 보였다. 인기척을 내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왔나?”

“…….”

“늦었군. 아주 늦었어. 죽었나 싶어 알아보니 어느새 유명 인사가 되어 있더군. 암살하러 다닌다고 광고라도 하고 다니는 건가, 지금?”

박사는 극심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한 실험이 실패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부하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 주지 않으면 부아가 치민다.

박사가 실험체에게 던진 부하들만 두 손을 아득히 넘어간다. 실험실에 사람이 없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설명해라, 간단명료하게.”

테온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박사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지만, 글러트니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 홧김에 박사를 죽였다간 테온의 목숨도 날아가는 것이다.

설명, 아니 변명을 듣고 있던 박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 미친 마법사가 너를 그냥 놔줬다고?”

“놔준 게 아니라 도망친 겁니다.”

쨍강! 플라스크를 던진 박사가 생각에 잠겼다.

건물 꼭대기를 날려 버리고 도시 한가운데에서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가 고작 연막 따위에, 병사들이 온 탓에 추적을 포기했다? 조심성이 많은 박사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눈을 부릅뜬 박사가 테온에게 소리쳤다.

“옷을 벗어라! 당장!”

“예? 그게 무슨…….”

“닥치고 어서!”

테온의 옷을 잡아챈 박사가 곧장 불길에 던져 넣었다. 희귀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라 한두 푼 하는 게 아닌데…….

잠시 후, 옷에서 푸른 마력이 흩어지는 게 보였다. 표정을 일그러뜨린 박사가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위치가 들켰다.’

그렇다는 건 방주에게 노출되었다는 뜻이다. 얼마 안 가 이 실험실에 놈들이 들이닥치겠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적들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젠장, 박사는 선택해야만 했다.

“당장 여기를 뜬다. 실험체는 내가 챙길 테니, 너는 이 실험실을 완전히 폐쇄해라. 흔적조차 남기지 말고.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책임은 그 후에 묻겠다.”

……쿠웅!

그때, 진동이 울렸다.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인지 지면이 조금씩 흔들린다.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플라스크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진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리며 진원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평범한 신체 능력을 가진 박사에게조차도.

이건 지진 따위가 아니었다.

“……설마 벌써?”

콰아앙! 박사의 목소리가 폭발음에 묻혔다. 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눈을 뜨니 비밀 통로가 연결되어 있던 방이 박살 나 있었고, 그 잔해 속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 * *

흑발의 사내. 얼굴은 처음 보지만 어제 본 암살자가 분명했다. 그럼 그 옆에 있는 남자는 박사겠지.

굳이 정황을 따지지 않아도, 흰 가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척 봐도 연구자 같았다.

베르덴을 본 박사가 미간을 좁혔다.

“네놈이 그 미친 마법사인가? 감히 내 실험을 두 번이나 방해하고 세르겐을 죽인 것도 모자라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그것도 덜떨어져 보이는 기사 하나만 데리고. 아무리 방주에서 나왔다지만 오만하기 짝이 없군.”

“뭐? 누가 덜떨어져?”

제이슨이 발끈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베르덴은 고블린의 동굴에서 들었던 방주란 단어에 집중했다.

이제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박사는 방주라는 집단과 적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베르덴을 방주에서 나온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용해 볼 가치는 있겠어.’

그게 더 정보를 얻어 내기 쉬울 테니.

베르덴은 박사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대화는 놈들을 제압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 대신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스 스피어>

바위의 창이 박사의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물어볼 게 있는 이상, 간단히 죽일 생각은 없다. 박사를 막아선 테온이 단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쩌엉! 궤도가 비틀린 마법이 벽을 관통했다. 묵직한 충격에 울리는 단검. 태연하게 옷을 툭툭 털어 낸 박사가 테온을 째려봤다.

“테온, 네놈 때문에 전부 엉망이 됐군.”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앞당길 수밖에. 책임지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박사가 실험실 안쪽으로 향했다.

베르덴이 놈의 다리를 노리고 다시 한번 마법을 날렸지만 테온이 빈틈없이 가로막았다.

위력이 높은 마법을 사용했다간 자칫 박사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방해되는 것부터 치우는 게 우선.

베르덴이 전신의 회로를 활성화했다. 푸른 눈동자에 마력이 넘실거렸다.

그때, 검을 든 제이슨이 앞으로 나섰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그러니 먼저 간 놈을 쫓으시죠.”

“알겠습니다.”

비행을 쓴 베르덴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너무도 사양 없는 대답에 멍해 있던 제이슨이 쩝 입맛을 다시며 검을 세웠다.

‘그러고 보니 실전은 오랜만인데.’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왜냐하면 마르테스의 차석 기사이자, 한때 아카데미에서 장학금까지 받은 우등생이기도 했으니까. 고작 1학기에 불과하긴 해도.

기를 활성화한 제이슨이 바닥을 박찼다.

카아앙!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튄다.

그때를 틈타 베르덴이 박사를 쫓았고, 테온은 그를 막을 생각도 없이 눈앞의 기사에게 집중했다.

* * *

길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박사를 쫓는 건 간단했다.

꽤나 어질러져 있는 장소를 지나자, 복도 끝에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수상하군.’

하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문을 지나자 표정이 순간 일그러질 정도로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암시를 사용한 베르덴의 시야에 박사가 보였다.

“하, 역시 예상대로군. 제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그럼 그렇지. 그래서 어떤가, 마법사? 내 작품들에 대한 소감은?”

박사가 양팔을 활짝 벌렸다.

양옆으로 설치된 철창 안에는 다양한 아인종이 가득했다. 그것도 죄다 입이 찢어진 게, 광대 오크와 고블린하고 판박이였다.

“이건 뭐지?”

“내 방식대로 진화를 시킨 아인종들이지. 물론 이런저런 하자가 있어 폐기 처분 할 생각이지만, 나름대로 쓸 만해. 특히 침입자를 처리하는 데 말이야.”

철컹! 모든 철창이 동시에 열렸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광대들이 서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박사의 앞에 투명한 벽이 솟아올랐다.

“부디 내 작품들을 느긋하게 즐겼으면 좋겠군.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지, 미친 마법사.”

오크, 고블린, 코볼트 거기다 트롤까지. 이 정도면 저 어린 마법사를 죽이는 데 충분하고도 넘칠 터. 혹여 살아남는다 해도 마력을 바닥까지 소모할 테니 추적을 이어 갈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됐든 더 이상 저 마법사와 만날 일은 없다.

입가에 미소를 띤 박사가 유유히 모습을 감췄다.

[그어어어어!]

[키르르륵!]

박사가 사라지자 아인종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고 짓밟아 터뜨렸다.

그중 인간의 냄새를 맡은 몇몇 놈이 베르덴에게 다가왔다.

‘하나씩 처리하면 밤새겠군.’

어림잡아도 50마리가 넘는다. 실험체라고 했으니, 고기를 먹고 상처 회복을 하는 놈들도 분명 있을 터.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

<파도>

거대한 물결이 쇄도해 주위를 집어삼켰다.

휩쓸려 나간 아인종들이 바닥을 굴렀고, 온 사방이 물에 젖었다. 분노에 찬 놈들이 베르덴에게 흉폭한 시선을 던졌다.

철벅거리는 수많은 발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치직──!

베르덴의 마력이 변환되며 푸른 번개가 메아리친다. 그 여파로 달려오던 고블린 하나가 타 죽었다. 이윽고 사방을 가득 메운 푸른빛이 강하게 점멸했다.

베르덴의 손끝이 놈들의 중심을 향했다.

<뇌격>

한 줄기 전격이 터지며 일직선상에 있는 아인종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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