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9화 (19/366)

19화 암살자 (2)

마르테스 상공에 폭발이 일어났다.

굉음과 불빛에 시민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는, 도시에서 가장 비싼 로릭스 여관의 천장이 송두리째 들어가 있었다.

“부, 불이야!”

“어서 병사들 불러! 빨리!”

사람들이 분주해졌지만 너무 높았기에 불을 끌 방법이 없었다.

어느새 여관 앞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 소란을 틈타 테온이 은밀하게 몸을 숨겼다.

‘뭐 이런 무식한 마법사가 다 있지?’

3위계 마법을 동시에 세 개나 시전하다니.

그것도 놀라운데 그 마법을 좁은 방에서 터뜨렸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자칫하면 본인도 죽을 수가 있는데…….

“크읍……!”

테온이 얼굴을 찌푸렸다. 마수 가죽으로 만든 옷 덕분에 화상은 피했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장기가 울려 속이 메스껍다. 귀가 먹먹하기도 하고.

신음하며 고개를 들자 불길 속에서 베르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거 사람 아니야?”

“마법사 같은데?”

허공에 떠 있는 베르덴을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더럽게 멀쩡하구만.’

테온은 혀를 차며 일단 후퇴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도망치지?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때, 머릿속에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목을 가다듬은 테온이 변조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방화범이다! 저 미친 마법사가 방화범이야! 모두 타 죽기 싫으면 도망쳐!”

뭐라고?

공포가 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비명을 지른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테온은 그 인파 속에 숨어 자리를 벗어났다.

‘하늘에 떠 있으면 어쩔 방법이 없으니까.’

테온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박사가 명령한 암살에 실패하고 말았다. 독을 발랐으면 몰랐겠지만, 그런 건 테온의 취향이 아니었다. 평생을 갈고닦은 살인 기교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저 미친 마법사가 감이 좋지만 않았어도, 분명 암살은 성공했을 것이다.

‘박사가 또 지랄하겠군.’

이번엔 뭘 던지려나? 설마 실험체들을 던지진 않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렇게 거리를 벗어나 어두운 골목에 들어간 순간, 뒷목에 소름이 끼쳤다.

불길한 감각에 하늘로 고개를 향하니, 베르덴이 테온을 주시한 채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력 화살>

“흐억?!”

쉬익! 푸른 화살이 테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지만 도시에서 대놓고 마법을 쓰다니…… 마법에 미쳐 정신이 이상해진 마법사가 어딘가 있다고 들었는데, 분명 저놈은 그런 미친놈들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문득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대체 방주에선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마법사를……!’

쿠구궁! 테온의 앞에 석벽이 솟아올랐다.

속도를 가속하여 벽을 박차 뒤로 넘어갔다. 고비는 넘겼으나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쉬익! 쉬이익! 카가각!

연이어 쏟아지는 마법의 화살.

테온은 온 힘을 다해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화살을 쳐 냈다.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퇴로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떻게 움직이든 하늘에 떠 있는 마법사의 시야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러다 잡히는 건 시간문제.

급격하게 방향을 튼 테온이 단검을 휘둘렀다.

콰앙!

벽을 부순 테온이 오래된 상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지하에 통로가 하나 있는데 주로 거지들이나, 범죄자들이 거처로 삼는 곳이었다.

지상으로 내려간 베르덴도 그를 따라 곧바로 지하로 향했다.

곳곳에 노숙자들이 누워 있다. 마력을 펼쳤지만 암살자의 장비가 특별한 건지 정확하게 위치가 잡히지 않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남자가 베르덴에게 말을 걸었다.

“딸꾹. 거 오늘은 못 보던 얼굴이 많구만.”

암살자를 본 건가.

“방금 전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글쎄,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데. 이거라면 갑자기 떠오를지도.”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 남자가 킬킬대며 웃었다.

시간 낭비라 생각해 지나치려 했는데, 남자가 성큼 길을 막아섰다.

“안 되지, 안 돼. 여긴 내 구역이니까 지나가려면 돈을 내야지. 죽기 싫어도 돈을 내야겠지만.”

남자가 녹슨 칼을 빙빙 돌리며 다가왔다.

그 순간, 남자의 복부 쪽에서 단검이 솟아 나왔다. 베르덴의 얼굴에 피가 팍 튀었다.

‘확실히 까다로워.’

사람을 눈속임으로 쓸 줄이야.

칼날을 막은 스태프. 베르덴이 남자의 몸을 밀어내며 마력을 발산했다.

<충격파>

콰앙! 시체와 함께 테온이 날아갔다.

단검을 바닥에 꽂아 속도를 줄인 그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로가 상대의 눈을 마주했다. 대화는 없었다. 미끄러지듯 쏘아져 나간 테온은 아래에서 위로 단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마력방벽을 펼치면 연막을 터뜨린다.’

다른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때가 도망칠 기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테온의 일격은 허공을 갈랐다. 허리를 비튼 베르덴이 스태프를 회전시켰다.

<마력집중>

“뭣……?!”

마력을 담은 일격이 푸른 궤적을 그렸다.

터엉! 예상치 못한 충격에 테온의 몸이 붕 떴다. 연이어 자신을 겨냥한 베르덴의 손아귀에 테온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스 스피어>

그와 동시에 연막이 터졌다. 바위의 창이 검은 연기를 관통했다.

돌풍으로 재빨리 연막을 들췄지만 이미 암살자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마르지 않은 핏방울들이 떨어져 있었다.

‘치명상은 피했나.’

마력감지로 잡히지 않는 데다가 저 앞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 베르덴은 당장 쫓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미 추적은 현재 진행형에 있었으니까. 상대 쪽에 마법사가 없는 이상 놈은 결코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대충 피를 닦아 낸 베르덴이 지상으로 올라갔다.

“꼬, 꼼짝 마!”

근처에서 순찰을 하던 병사들이 창을 겨눈 채, 베르덴을 에워싸고 있었다.

* * *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시장 겔린 워하드가 무심코 이마를 짚었다.

한밤중에 도시에서 폭발 테러라니. 아니, 사상자는 없었으니 테러는 아니었지만 도시가 생긴 이래 역대급 사건인 건 분명했다.

그것도 어제 직접 통행증을 준 마법사와 관련이 있다는 게 충격이 컸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시오.”

“예, 시장님.”

마르테스 모험가 길드장, 오스카가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 마주 앉은 그들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사건의 경과 파악은 어떻소.”

“어느 정도 진행은 되었습니다만…… 애셔라는 자가 핵심인 건 분명한 듯싶습니다.”

모험가 길드는 특성상 국가와 공식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가진 수색 능력과 힘은 병사 수백 명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능률적이었으니까.

거기다 이번 일은 모험가 길드에서 조사하는 사건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 있었다. 길드장인 오스카가 총괄을 맡는 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경우였다.

“그 말은 그가…… 테러를 계획했다는 말이오?”

“그 반대입니다. 정황상 마법사는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더군요. 본인 주장도 그렇고요.”

오스카가 심문 과정이 적힌 문서를 건넸다.

눈을 가늘게 뜬 시장이 철자 하나하나 놓치지 않도록 꼼꼼하게 읽어 내려 갔다.

베르덴에게서 얻어낸 증언. 어젯밤 일어난 사건의 발단은 그랬다.

동 등급 모험가 이리스에게 도시 안내를 받은 베르덴은 늦은 밤에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침대 밑에 숨어 있던 암살자를 발견하고는 전투를 벌였고, 마법에 밀린 암살자가 폭탄으로 층을 날려 버렸다라…….

“그럼 한밤중에 목격된 마법은 뭔가?”

“암살자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데, 인적이 없는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 마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민은 없습니다. 확인해 본바 파손된 기물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에서 마법을 사용한 것 자체가 큰 문제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상자는 한 명입니다. 그마저도 강도질로 수배가 내려진 범죄자였고요.”

“음, 그나마 다행이군. 누가 그를 죽이려 한 건지는 알아보셨소?”

“……추측이지만 이틀 전, 모험가를 죽이려 했다던 자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조사단의 말로는 동굴에 아무것도 없었다더군요.”

작은 동물의 흔적조차도.

숲에 동굴이 있는데 생물이 기어들어 가지 않았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베르덴이 죽인 괴한의 시체와 돌연변이 고블린에 손을 댔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 나아가 그 누군가가 베르덴마저 죽이려 한 것까지 말이다.

입술을 매만진 시장이 길드장을 바라봤다.

“그럼 그 누군가가 또 암살을 벌일 가능성이 있겠군. 애셔만이 아니라, 그 모험가 파티마저 말이오.”

“혹시 몰라 경호를 붙여 놓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애셔의 경호를 맡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말입니다.”

베르덴의 소문은 알게 모르게 도시에 퍼졌다. 여관에 방화를 저지르는 미친 마법사라고.

사실과 달라 수습에 들어가긴 했지만, 소문이란 게 원래 융통성이 없는 법 아닌가.

귀가 민감한 용병들이나 모험가들은 경호 의뢰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인종보다도 무서운 게 미친 마법사라고 할 정도였으니.

목숨 걸고 의뢰를 수행하면서도 목숨을 가장 아끼는 게 그들이었다.

“끄응. 기사단 쪽에서 구해 봐야겠군. 그 일은 내게 맡기시오. 대신 최대한 빠르게 도시를 불안하게 만드는 자를 찾아내야만 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시장님.”

그렇게 베르덴의 경호 겸 감시를 맡을 사람이 결정됐다.

* * *

도시의 치안은 병사들이 책임지지만, 무력의 상징은 그들이 아니었다.

시장의 직속 부대로, 국가에서 공인한 기사들로 이뤄진 기사단이 도시의 실질적인 힘이었다. 그렇다고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상부의 명령에 거역할 수는 없었다. 설령 하기 싫은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미친 마법사의 호위라니. 왜 하필 나야?”

차석 기사 제이슨이 투덜거렸다.

부하가 그렇게 많은데, 기사단에서 둘째가는 자신이 호위역이라니. 기사단에 마법사도 있는데 왜 마법사, 그것도 남자 옆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면 또 모를까.

경비 막사에 도착하니 병사들이 경례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이슨 님.”

“요인은 안에 있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병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요인이 있는 방 앞에서 제이슨이 물었다.

“근데 마법사 이름이 그…… 뭐였더라?”

“……애셔라고 합니다.”

호위를 할 사람 이름도 모르다니…….

헛기침을 한 병사는 경례를 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문을 두들긴 제이슨이 안으로 들어서자, 잿빛의 마법사가 앉아 있었다.

‘듣던 것보다 젊잖아?’

3위계 마법사라고 하던데 저 나이에? 말로만 듣던 천재 같은 건가?

신기한 생물을 보듯, 제이슨이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마르테스의 차석 기사, 제이슨이라고 합니다. 이후부터 안전을 확보할 때까지, 어딜 가든 제가 동행할 겁니다. 따로 궁금한 점 있으십니까?”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되는 겁니까?”

“예, 그러셔도 좋습니다. 다만, 제 눈에서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제이슨이 그를 뒤따랐다.

‘갑자기 어딜 가는 거지?’

도심을 벗어나자 사람이 점점 줄었다.

어느새 도시 외곽까지 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베르덴은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결국 보다 못한 제이슨이 그를 막아섰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눈 밖에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목적을 말해 주지 않으면 이 이상은 안 됩니다.”

뭐, 이유를 말해 주는 거야 간단했다. 어차피 기사의 힘을 빌릴 생각도 있었고.

낡은 건물 앞에 선 베르덴이 그에게 말했다.

“여깁니다.”

“……여기요? 여기 뭐가 있는데요?”

“어제 저를 죽이려 했던 암살자가 있겠죠.”

뭐? 기사가 아차 하는 사이 베르덴의 눈이 번뜩였다.

콰앙! 마법에 의해 건물 입구가 송두리째 뜯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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