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8화 (18/366)
  • 18화 암살자 (1)

    수십 권이 넘는 책을 대여한 베르덴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돈도 벌었겠다, 설탕을 잔뜩 넣은 달달한 커피를 홀짝인 이리스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그 많은 책을 다 어쩌시려고요?”

    “뭐 하긴. 읽어야지.”

    “……그걸 다요? 기한을 넘기면 연체료가 장난이 아닐 텐데요. 아마 빌렸던 것보다 몇 배는 나올걸요?”

    “충분해.”

    책이야 질리도록 읽어 봤다. 그것도 대부분 마법 이론에 대한 것들로.

    당연히 한 권당 2회독, 3회독 이상으로, 많으면 10번 이상을 정독할 정도로 완전히 이해가 될 때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은 속독술은 범인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베르덴의 짧은 대답에 이리스는 생각했다.

    ‘물어보는 족족 대답도 다 해 주고, 말도 놨는데 더 차가워진 거 같아.’

    마치 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는 것만 같다.

    사실 당연했다.

    인격 형성이 진행되는 시기에 베르덴은 마탑에서 일꾼이 되었으며 성인이 돼선 마탑의 실험체로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인간 자체를 혐오하는 감정은 생기지 않았으니 그나마 나은 거겠지.

    어쨌든 17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친분이 있는 상대는 오직 로벨린뿐이었다.

    그런 베르덴에게 말의 높임은 하등 관계가 없었다.

    만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사람과 터놓고 대화하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그럴 만한 사근사근한 성격도 아니었고.

    풍경을 바라보던 베르덴이 입을 열었다.

    “모험가 길드에선 별말 없었나?”

    “있었죠. 덕분에 마스터하고 면담까지 했어요. 어찌나 떨리던지…… 아무튼 조사단을 파견해 세르겐이라는 남자에 대해 알아본다고 해요. 그리고 그 고블린도요.”

    “나에 대한 얘기는?”

    “우연히 길 가다 도와준 거라고 얼버무리긴 했는데, 그……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아니길 바라지만, 상황에 따라서 길드에서 부를 수도 있어요. 그래도 갑자기 찾아오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아마.”

    아마?

    ‘이해는 하겠지만, 갑자기 들이닥치는 건 불쾌한데.’

    베르덴의 조용한 시선에 이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사전에 연락을 보냈으면 좋겠는데.”

    “……길드에 전달할게요. 그런데 하나 궁금하게 있는데…… 왜 선배님이 그 동굴 안에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궁금하면 알고 싶은 게 사람이고.

    애초에 호기심이란 마법사의 근간이자 습성이다.

    ‘뭐라고 말하지?’

    너를 미행했다고 할 수도 없고.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차피 길드가 찾아오게 되면 마땅한 이유를 대야 하니까,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였다.

    잠시 생각하던 베르덴이 짧게 대답했다.

    “그 남자를 쫓고 있었지.”

    이렇게 말하면 알아서 맞지도 않는 퍼즐을 맞추겠지.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라고 해도 침묵하면 그만이다. 베르덴은 모험가를 구해 준 은인이지, 추궁을 받을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이리스는 그런 베르덴의 예상을 정확히 따라갔다.

    “……쫓아요?”

    베르덴이 말없이 잔에 입을 대었다.

    멍하니 있던 이리스의 머릿속에 박사와 실험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정체 모를 마법사와 그가 추적하는 정체불명의 집단…… 마치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일이 아닌가.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났기에 물어볼 수 없었다.

    대답해 주지도 않을 것 같고…… 그녀가 서둘러 따라붙었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대장간.”

    둘의 동행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 * *

    “3일 뒤에 오슈.”

    도적에게서 얻은 지팡이를 대장간에 맡겼다.

    짧은 지팡이보단 기다란 스태프가 베르덴의 손에 더 익었다. 마탑에서 몰래 훈련을 할 때도 스태프를 사용했고, 비슷한 크기의 빗자루를 매일같이 다루었으니까.

    곧바로 실전에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익혀 가면 된다.

    숙달만 된다면 단순히 마법을 난사하는 것보단 다양한 전투법이 파생되겠지. 베르덴은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단검을 하나 사 허리에 차고, 제작 기간 동안 사용할 강철 스태프를 대여했다.

    어떠한 기능도 없는 막대기였지만, 대충 감을 익히는 데는 충분했다.

    등에 강철 스태프를 매고 로릭스 여관으로 돌아왔다.

    창문을 비추는 어스름한 달빛. 배달한 책들이 문 옆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제목들을 훑어보다 그중 ‘부여 마법 1부터 100까지’라는 이름의 책을 집어 들었다.

    ‘부여 마법이란, 타인의 마력 간섭, 실패하는 이유…….’

    이미 이해하고 있는 목차는 가볍게 넘기고, 후반부로 갔다.

    기본이 되는 1위계 부여 마법 몇 개가 실려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적혀 있는 대로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되긴 하는데 좀 어색하군.’

    자주 쓰다 보면 익숙해지긴 할 테지만, 원래 마법이란 게 그렇다.

    쓰면 쓸수록 원활해지고, 쓰지 않으면 점점 불편해진다. 뭔들 그러지 않겠다만.

    베르덴이 자신을 향해 마법을 발동했다.

    <고양이의 눈>

    시력 강화.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야에 비쳤다.

    갑작스레 많아진 정보량에 눈이 지끈거렸다.

    ‘이래서 쓰지 말라는 건가.’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주의 사항.

    ‘여기 적혀 있는 마법은 이해를 위한 것으로서, 실전에서 활용하기엔 부적절하다. 특히 청각을 강화하는 <고양이의 귀>는 조용한 곳에서 사용하길 바란다.’

    아마 적응의 문제겠지.

    전혀 다른 감각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하니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익숙해질 필요는 없겠지.’

    부작용은 견딜 만했지만 베르덴에게 딱히 이점이 없었다.

    왜냐하면 마력감지가 훨씬 더 정확하고 빨랐으니까. 물론 기초 마법 중 하나인 만큼 허점이 많긴 하지만, 1위계 부여 마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범용성이 뛰어났다.

    부여 마법을 해제하고는, 좀 더 마력을 소모해 마력감지를 세밀하게 시전했다.

    마력을 매개체로, 먼지 한 톨마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역시 3위계 이상의 부여 마법이 아니면, 이 이상은 불가능…….

    ‘……?’

    우뚝. 움직임을 멈춘 베르덴이 침대로 시선을 향했다.

    분명 방 전체에 마력을 펼쳤는데, 침대 아래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없다고 우기는 것처럼.

    뭔가 있다.

    그렇게 판단한 베르덴이 재빨리 마력을 움직였다.

    <어스본>

    * * *

    마르테스에 깔린 정보망은 테온의 자신작이었다.

    세르겐을 죽인 마법사를 찾는 건 매우 쉬웠다.

    그때 의뢰를 나섰던 모험가 파티를 찾아낸 뒤, 그들이 성문을 통과했던 날의 기록을 손에 넣으니 곧바로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애셔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길한 이름이다.

    어쨌든 이름과 외모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수색망을 펼치면 될 터. 그렇게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목표물을 찾아냈다.

    방주의 마법사는 고생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모험가 파티의 여성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누구는 플라스크에 맞아 가며 개같이 일만 하고 있는데.

    살의가 커졌다. 테온은 글러트니에서 암살을 해 오던 만큼 홀로 목표물을 추적했다.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전문적인 솜씨였다.

    목표물이 여자와 헤어지고 여관으로 향한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서 각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방에 잠입한 뒤, 침대 밑에 숨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방심하면 쉽게 죽일 수 있다. 잠든 직후는 인간의 의식이 가장 깊게 떨어지는 시간이니.

    벌컥. 베르덴이 들어왔다.

    그는 장비를 풀지도 않고 책 더미를 물끄러미 보더니, 한 권을 잡아 읽기 시작했다.

    ‘역시 마법사란 족속들은…….’

    당장 죽일 순 있지만, 성공 가능성이 아주 약간 떨어진다.

    암살자는 언제나 최선을 노려야 하는 법. 테온은 호흡조차 죽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그때, 베르덴의 움직임이 멈췄다.

    테온은 그런 그의 다리를 보고 있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제기랄!’

    당장 침대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콰가가각! 그가 숨어 있던 장소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솟아 나와 침대를 꿰뚫었다.

    조금만 판단이 늦었으면 자신도 같은 꼴이 되었을 거라는 사실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베르덴이 강철 스태프를 손에 들었다.

    저 얼굴까지 가린 암살자는 누구일까. 뻔했다.

    베르덴과 관련 있는 인물 중에 그와 적대적인 관계라고 할 사람은 보헤미른 마탑 관련자나, 박사뿐이다.

    전자는 당연히 아닐 테니, 답은 후자였다.

    “박사가 보냈나?”

    “…….”

    테온은 대답 대신 양손에 단검을 쥐곤 내던졌다.

    카앙! 방벽에 맞은 비수가 베르덴의 등 뒤로 떨어졌다.

    뒤이어 테온이 달려들었다.

    발꿈치에서 솟아 나온 날붙이가 방벽에 내려 찍혔다. 꽤나 묵직한 일격이었다.

    <어스본>

    바닥에서 가시가 솟아나 테온을 추적했다.

    놈은 천장과 벽을 이용해 곡예와 같은 몸놀림으로 피해 냈다. 그러면서도 투척용 단검을 여러 개 꺼내어 베르덴에게 날렸다.

    ‘……뭐지?’

    스치지도 못하고 벽에 박힌 단검들.

    방금 보였던 움직임에 비해 어이가 없을 정도의 정밀도였다.

    그러던 그때, 테온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양팔을 뒤로 당겼다. 촤악! 그가 날렸던 모든 비수가 역으로 날아왔다.

    곧바로 마법을 중단하고 마력방벽을 펼쳤다. 미처 막지 못한 칼날이 베르덴의 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 나갔다.

    “아깝군. 한 치만 더 옆으로 갔으면 죽었을 텐데.”

    마법사의 약점 중 하나.

    마력방벽과 마법을 동시에 구현할 수 없다.

    베르덴이 목을 손으로 훑었다.

    상처 하나 없었지만 서늘한 감각이 남아 있다. 암살자의 말대로 조금만 옆으로 갔더라면 경동맥이 잘려 나갔겠지.

    ‘기사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다.’

    눈앞에 있는 암살자는 변칙적이고 빠르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베르덴이 쉽게 읽어 낼 수 없는 움직임. 힘을 조절하며 상대할 실력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런 좁은 공간에서는 절대적으로 마법사가 불리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투를 이어 나가는 건 스스로 목을 옥죄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무대를 바꾸는 수밖에.’

    아주 확실하게 말이다.

    마침 꼭대기 층의 투숙객은 베르덴이 유일했다.

    <화염구>

    <화염구>

    <화염구>

    동일한 마법의 트리플 캐스팅.

    베르덴을 죽이기 위해 빈틈을 노리고 있던 테온이 세 개의 불덩이를 보곤 눈을 부릅떴다. 마법을 동시에 세 개나 쓰는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도 저 마법의 위력은 결코 이런 좁은 곳에서 쓸 법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테온이 베르덴의 얼굴을 봤다.

    차갑고 푸른 눈동자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 베르덴은 진심이었다.

    “이런 미친놈이!”

    테온이 당장 창문으로 달려 나갔다.

    와장창! 유리를 깨고 바깥으로 나가자 시원한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흩날리는 유리 파편들 사이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자,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베르덴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화염구가 날아왔다.

    콰과과광!

    커다란 폭발이 마르테스의 밤을 산산이 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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