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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4화 (14/366)

14화 도움 (1)

‘저게 의뢰를 받은 모험가들인가?’

전위가 둘, 궁수가 하나 그리고 마법사가 하나. 밸런스가 좋은 구성이다.

아직 얼굴에 앳된 티가 남아 있는 걸 보니 갓 성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저런 조합이면 고블린에게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가시화>

베르덴의 형체가 투명해졌다.

고작 모습만을 감추게 하는 마법이지만, 저 어린 모험가들이 알아챌 일은 없겠지. 누군가 하늘에서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못 할 테니.

자, 쫓아가 볼까.

베르덴이 이제 막 마을을 나서는 모험가들을 뒤따랐다.

* * *

쉬익──푹!

고블린의 미간에 정확히 화살이 박혔다.

모험가 중 가장 낮은 계위인 백결 등급, 궁수 미르나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어때, 많이 늘었지?”

“코앞에서 쏜 거 가지고 무슨…….”

“너는 코가 30미터나 되니? 부러뜨려 줘?”

그녀가 사납게 눈을 치켜뜨자, 전사 로크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둘은 소꿉친구라 평소에도 티격태격대는 게 흔한 일이긴 하지만 의뢰에 와서도 저러다니. 고블린이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마법사 이리스가 보다 못해 나섰다.

“장난은 그쯤 해. 의뢰 중인 거 잊었니?”

“죄송해요, 언니…….”

“조용히 할게요.”

“그럼 됐어. 마일드, 고블린 흔적은 발견했어?”

마일드가 나무 밑동을 가리켰다. 고블린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로크가 앞장서고, 그 뒤를 다른 동료들이 따랐다. 도중에 홀로 무리에서 떨어진 고블린들을 사냥하며 숲을 지나자, 구석에 숨어 있는 동굴 하나가 보였다.

입구에 세워진, 동물의 해골로 만들어진 토템. 홉고블린의 상징이다.

“예상대로네. 동굴 지형만 조심한다면 위험한 일은 없겠어.”

홉고블린은 고블린의 진화종이다. 고작해야 덩치와 힘이 좀 셀 뿐인.

마일드가 토템을 밟아 부러뜨렸다. 이리스가 자신을 포함한 다른 동료 한 명 한 명에게 각각 마법을 시전했다.

<암시 부여>

동굴 내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횃불이 있으면 들킬 가능성이 높으며, 자칫 꺼졌다간 그대로 덮쳐져 전멸할 수도 있다. 마법사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파티의 생존율은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작은 물소리와 고블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발견하는 즉시, 미르나가 기습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꿰뚫었다. 화살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블린 토벌은 아주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동굴 깊숙한 곳에서 낮고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홉고블린인가? 정찰을 나선 미르나가 슬쩍 고개를 빼, 내부를 둘러봤다.

‘저게 뭐야……?’

오크만 한 덩치에, 얼굴은 고블린인 괴물. 입이 귀까지 찢어진 놈이 고블린들을 둘러보더니, 한 마리를 덥썩 잡아 한 입 물었다.

으적으적. 빠드득. 빠득. 불쾌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에 미르나가 고개를 돌렸다.

“뭐야, 왜 그래?”

“그게 그러니까…….”

미르나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아카데미 졸업생 출신인 이리스가 괴물을 확인했다.

동족을 포식하는 거대한 고블린. 비슷한 예로는 고블린 챔피언이라는 진화 개체가 있지만, 그렇게 강력한 아인종이 이런 동굴에 있을 리 없다.

‘그럼 특수 개체……?’

곧바로 이리스가 머리를 저었다.

만약 그랬다면 마을은 이미 사라졌겠지. 이리스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괴물을 관찰하고 결론을 내렸다.

덩치는 크지만, 동족 포식 외에 특별한 것은 없다.

즉, 토벌 가능.

이리스의 결정에 다른 동료들은 겁을 먹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도 죽여 본 경험이 있었으니, 저런 고블린쯤이야 문제없이 토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모험가들이 대열을 이루었다.

<근력 강화>

<보호막 부여>

<진정>

두려움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온다.

서포트를 끝낸 이리스가, 미르나와 함께 기습을 가했다. 얼굴에 화살이 꽂히고 마력폭발에 의해 충격을 받은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전투가 시작됐다.

* * *

‘이게 모험가가 사냥하는 방식인가.’

베르덴은 동굴 내부 공동 위쪽에 자리 잡아 느긋하게 전투를 관람했다.

물론, 저 고블린 괴물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것까지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설명하려면 좀 귀찮기는 할 테지만.

‘다행히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고블린 괴물…… 광대 고블린이라 하자.

광대 고블린은 광대 오크와 비슷한 습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거기까지였다.

사람을 단번에 찢어 죽일 힘도 없고, 고블린을 먹는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강해진다거나 상처를 회복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조금 크고 기괴하게 생긴 고블린이었다.

‘그리고 저 마법사…….’

2위계의 인챈트 계열을 다루는, 이리스라고 불린 여자 마법사.

상황 판단이 제법 빠르다. 1위계에 불과한 마력 화살과 마력폭발을 적절히 사용해 가며 동료들을 보조해 주고 있다.

다른 동료들은 그런 그녀를 필사적으로 지키며 싸우고 있었고.

그야말로 정석적인 전술이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예외적인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키아아아아악!]

광대 고블린의 얼굴에 칼이 스쳐 지나갔다. 흘러내린 피에 시야가 사라지자 놈이 힘껏 날뛰었다. 다른 고블린도 몇 안 남았으니, 이대로 체력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다.

그때, 광대 고블린이 고블린을 잡아 이리저리 휘둘렀다.

콰앙! 쾅! 지면에 피가 튀었다. 이내 무기로 사용된 고블린이 곤죽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

이리스가 있는 방향으로.

“언니, 피해요!”

단련되지 않은 마법사에겐 피하기 어려운 속도.

당황한 그녀의 눈동자에 망가진 고블린의 얼굴이 보였다.

<에어 레일>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 그것에 휘말린 고블린이 나아가는 궤도가 비틀려 이리스를 스쳐 지나갔다.

푸른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요?”

“어? 어…… 응. 괜찮아, 미르나.”

머리카락만 스쳤을 뿐, 몸에 닿지는 않았다.

이리스가 축축해진 손바닥을 문질렀다. 아찔했던 순간에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을 뻔했어…….’

그대로 부딪혔다면 그녀의 머리가 으깨졌을 것이다.

겨우 살아남더라도 더 이상 모험가 생활은 못 했겠지. 아카데미에 다니던 때부터 키워 온 꿈이 한순간에 끝이 나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피했지?’

고블린이 날아온 방향.

운이라 생각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궤적이었는데, 코앞에서 갑자기 뒤바뀌었다. 마치 무언가에 휩쓸린 것처럼.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토벌이 우선이다.

정신을 차린 이리스가 가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대 고블린의 눈에 화살이 꽂히고 놈의 목이 베였다. 도망치는 고블린마저 처리한 그들이 잠시 휴식을 취했다.

로크가 미안한 얼굴로 이리스에게 다가왔다.

“그…… 죄송해요. 제가 놓치는 바람에 리더가…….”

“아냐, 너는 잘했어. 책임지고 저 괴물의 신경을 끌어 줬으니까. 멀리 있다고 방심한 내 잘못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현실은 가변적이다.

일어난 일에 하나하나 책임을 묻는다면 그 파티는 절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진 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베르덴이 보고 있었다.

‘결국 별거 없었군.’

모험가의 전투를 볼 수 있어 나쁘지 않은 시간이긴 했지만, 정작 광대 고블린에게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그냥 우연의 일치인 걸까? 무언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직감이 있었는데, 생김새 외엔 그 무엇도 비슷하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베르덴이 갈 채비를 했다.

그때, 공동 입구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내가 없는 사이 불청객이 찾아왔군요.”

저건 또 뭐지?

* * *

검은색으로 통일된 복장, 허리에 찬 세검. 걸어오고 있음에도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말끔한 얼굴을 한 남자였는데, 이유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모험가들이 대열을 갖췄다. 스태프를 든 이리스가 남자에게 물었다.

“누, 누구시죠?”

“주인입니다, 당신들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저 가련한 실험체의.”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광대 고블린이 있었다.

“쯧. 분명히 활동을 제한했는데 그사이에 토템을 만들 줄이야. 아무리 뇌를 건드려도 자연 상태에서까지 본능을 억누르는 건 무리인가…….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까? 고블린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든가, 그런.”

“…….”

이리스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저 남자는 수상할뿐더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온 것 같지 않아 보였으니까. 침묵으로 일관하자 남자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없었나 보군요. 이런…… 별로 건진 것도 없이 실험이 끝나 버린 걸 ‘박사’가 알면 길길이 날뛸 텐데…….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일어난 일이니 당장 폐기하고 서둘러 다음 실험을 준비해야겠죠. 음, 그게 옳은 판단일 겁니다.”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죠?”

“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혼잣말이든 뭐든. 그나저나 죽기 전에 할 말은 없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을 죽이겠다는 소리에 이리스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도 리더였기에, 이리스는 눈짓으로 동료들에게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준비할 시간을 끌기 위해 남자에게 물었다.

“왜, 왜 저희를 죽이시려는 거죠?”

“여러 가지가 있죠. 실험을 방해했으니까, 이쪽의 소유물을 죽였으니까, 도시로 돌아가면 모험가 길드에 보고할 테니까.”

“……말하지 않는다면요?”

그러자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고 있었지만, 우습군요. 인간의 입이란 게 얼마나 가벼운 건데. 그리고 설령 말하지 않는다 해도,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살인이 취미라서 그럽니다.”

남자가 세검을 손에 쥐었다. 그와 동시에 발산된 기운이 공동 내부에 퍼졌다.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이리스 파티의 숨통을 죄었다.

‘기운을 깨우쳤다면 최소 금 등급 이상……!’

고작 동급 이하로 구성된 이리스 파티가 감당할 존재가 아니다. 로크의 방패가 잘게 떨렸고, 미르나는 시위를 제대로 당기지도 못했다. 언제나 든든했던 마일드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꽉 깨문 이리스가 동료들에게 마법을 부여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움직였다.

죽음이 다가왔다.

“자, 죽기 전에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드리죠.”

“별로 압도적인 것 같지는 않은데.”

“하하. 말해 두지만 저는 그런 같잖은 허세를 싫어하는…… 어?”

왜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지근거리에서 콰앙! 마력이 폭발했다. 남자가 순식간에 나가떨어져 벽에 부딪혔다. 어둠 속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비가시화를 해제한 베르덴이 시선들을 한 몸에 받으며 지면에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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