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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3화 (13/366)
  • 13화 금기시된 실험 (2)

    서서히 깎여 나가는 수명과 일말의 저항조차 못 하는 무력감.

    보헤미른 마탑에서의 삶은 절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어온 발자취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마법사다.’

    마법이란 신비를 탐구하는 족속.

    그리고 마법에 국한되지 않는, 베일에 싸인 미지를 추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했다. 그것이 베르덴이 타고났으며 갈고닦은 본질이었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여태껏 보고되지 않은 특성을 지닌 오크.

    포상금도 중요했지만 연구자로서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위험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지워 버릴 생각이었으나 결과는 보다시피.

    사체는 깨끗하게 확보했다.

    끼이익.

    녹슨 문이 열리며 베르덴이 안으로 들어섰다.

    모험가 길드의 부산물 보관 창고.

    본래는 길드 직원이 함께해야 하나, 파이테 영주에게 신분을 보장받은 베르덴이었기에 혼자 들어올 수 있었다.

    ‘냄새가 별로 좋지는 않군.’

    베르덴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한쪽 구석에 무언가가 커다란 천에 감싸져 있다. 곳곳에 얼룩이 묻어 있었는데 손을 대기엔 영 찝찝해서 마법으로 천을 거뒀다.

    한쪽 손목이 잘린 광대 오크.

    얼어 있던 몸은 녹아 있었으나 온도는 차갑게 유지되고 있었다.

    ‘천 자체가 마법 물품이었나.’

    워낙 더러워서 몰랐다. 대체 얼마나 오래 쓴 건지.

    어쨌든 길드장이 말한 대로 부패한 흔적은 없었다. 곧바로 광대 오크의 시체를 허공에 띄우고는 유심히 살펴봤다.

    “눈동자 색깔이나 외형 자체는 별로 특이한 게 없는데…… 차이점은 이 입하고 거대한 체격인가.”

    오크 워리어나 오크 로드 등.

    광대 오크의 특징은 그런 상위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성 자체도 떨어지는 편이었고.

    통상적인 진화 과정을 벗어난 변종(變種)이라 보는 게 맞겠지.

    “흐음…….”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보통 이러한 케이스를 특수 개체라고 분류하는데, 그런 존재들은 하나같이 개체를 아득히 벗어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영지쯤은 순식간에 멸망시킬 정도의.

    그에 비해서 광대 오크가 가진 능력은 보잘것없었다.

    ‘섭식을 통한 능력이었으니…… 해부를 해 봐야 알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애초부터 그런 쪽은 베르덴의 전공이 아니었다. 배울 생각도 기회도 없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취향 문제가 컸다.

    관찰을 이어 나가던 베르덴.

    과도하게 발달한 이빨과 유연한 식도 등 그 특징들을 기억했다. 세상으로 나온 이상, 아인종에 대한 지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러던 중.

    “……흉터?”

    오크의 정수리.

    하마터면 지나칠 뻔할 정도로 아주 작은 흉터.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펴봤다. 마치 칼에 베인 듯 일직선으로 나 있는 게 정교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왜 이건 회복하지 못했지?’

    베르덴은 재생의 본질을 떠올렸다.

    재생력이란 이전 시점의 상태로 수복하는 힘. 절단된 신체마저 회복할 정도인데 이렇게 작은 흉터가 남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

    그렇다는 건…….

    ‘이 흉터가 생기고 난 후에 재생력이 생겼다?’

    그게 가능한가?

    하지만 눈앞에 있다.

    베르덴은 유연하게 사고했다.

    여러 가능성을 가정하고 흉터가 난 부위와 연결했다. 떠오르는 생각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했다.

    왜 여기에 흉터나 남았을까. 흉터가 생긴 이후에 재생력이 생겼으니까.

    왜 정수리인가.

    모른다. 하지만 흉터로 봤을 때, 절개의 흔적.

    진화를 거치지 않은 아인종이 후천적으로 능력을 얻을 수 있는가?

    지금까지 확인된 바론 불가능하다.

    그렇게 답을 종합해 본 결과 유력한 가설 하나만이 남았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변종을 만들어 냈다라…….”

    이것이 베르덴이 내린 결론이었다.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마탑에 종사했거나 과거 역사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식으로 접해 본 실험의 한 종류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로 인해 수천 명이 사망하여 영원히 금기시되었다는 거지만.

    ‘보헤미른 마탑에서도 하지 않았던 실험인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생각에 잠겨 있던 베르덴이 광대 오크를 제자리로 옮겼다.

    뭐라 할 단서도 없는데 더 이상 생각해 봤자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그리고 베르덴의 생각에 신빙성은 있어도 무조건 정답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정말 우연히, 태어나면서부터 칼자국 같은 흉터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굳이 길드에 알릴 필요는 없겠지.’

    확신이 서지 않은 걸 호들갑 떨며 말할 수야 없다.

    정 문제가 된다면, 그걸 알아내는 건 모험가 길드에서 파견된 사람의 몫이다. 베르덴이 생각한 걸 전문가가 간과할 리는 없을 테니.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말이다.

    베르덴은 영주 성으로 돌아갔다.

    며칠이 지나도 길드는 잠잠했다.

    * * *

    짧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베르덴은 마법에 집중했다.

    위계가 오른 만큼 그에 걸맞은 새로운 전법이 필요했으니까. 필수적인 절차였다.

    그리고 영지를 떠나는 당일.

    ◇ 순환의 반지

    ⦁ 마력량 증가(극소)

    ⦁ 마력 회복 속도 증가(소)

    “……너무 많이 받았는데.”

    베르덴이 침대 위에 놓여 있는 각종 장비를 바라봤다.

    마법 물품인 반지와 지팡이에다가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까지. 전부 빌셴이란 도적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로브는 크게 훼손이 되었었지만, 파이테 영주가 베르덴의 몸에 맞게 수선해 주었다. 나름대로 값이 나가는 것들인데 전혀 욕심도 내지 않고.

    ‘그리고 300만 엘크의 보수와 광대 오크의 현상금 200만 엘크, 거기다 도적에게 걸려 있던 현상금까지 준다고 했었지.’

    그 둘을 방치했을 때, 예상되는 영지의 피해액보단 당연히 적긴 했지만 한 명에게 너무 몰아 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기사와 병사들을 구해 준 보답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연줄을 만들기 위해서인가.’

    본디 귀족이란 손익 계산에 민감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베푸는 호의에도 철저한 계산이 들어가 있다.

    베르덴은 거절하지 않고 호의를 받기로 했다.

    준비를 갖추고 거울을 봤다.

    콘라드가 선물해 준 옷과 도적의 로브를 입고 허리춤에 지팡이까지 끼워 넣으니 퍽 마법사다워 보였다.

    이른 아침에 방을 나선 베르덴이 성문으로 향했다.

    기사 에녹과 콘라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여기까지 나와 주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아닙니다, 생명의 은인이신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저는 마중 겸 확인차 나왔습니다. 그거, 잘 챙기셨죠?”

    에녹이 말한 그것이란, 도적 토벌 증명서를 의미했다.

    이것만 있으면 굳이 수급이 없어도 현상금을 받아 낼 수 있다. 파이테 영주의 직인이 찍혀 있어서 분실하기라도 하면 위험했다.

    위조가 쉽지는 않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되면 영주의 위신이 말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죽지 않는 이상, 분실할 위험은 없을 겁니다.”

    “……목숨까지 걸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쨌든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행입니다.”

    셋은 간단한 잡담과 함께, 어제 했던 인사를 다시 한번 나눴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베르덴의 뒷모습을 향해 콘라드가 소리쳤다.

    “애셔 님! 나중에 콘 상회에 방문할 일이 생기시면 꼭! 제 이름을 말하세요!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베르덴은 뒤로 손을 흔들며 대답을 대신했다.

    * * *

    <비행>

    하늘에 떠오른 베르덴이 직선으로 나아갔다. 3위계에 다다른 덕에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긴 하지만.’

    장시간 운용하기 힘들어도 직선 경로로만 움직인다면 효율 좋게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방대한 마력 덕분에 굳이 아끼지 않아도 남들 이상으로 오래 기동할 수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혼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도시까지 마차 타고 5일 정도 걸린다 했었지.’

    지금 속도면 3일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베르덴은 주로 낮에 이동하며 밤에는 나무 위에 자리 잡아 수면을 취했다. 주위에 깔아 둔 마법진 덕에 불침번도 필요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밤, 도시와 남작령 사이에 있는 유일한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하룻밤 쉬고, 다음 날에 도시로 갈 예정이다.

    도중에 마땅히 씻을 곳이 없어 상당히 찝찝한 터였기에 마을에 들어가 여관을 잡았다. 여행객이 흔한지 베르덴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못 먹겠군.’

    조리를 어떻게 한 건지, 닭고기가 뻑뻑하다 못해 나무껍질을 씹는 기분이다. 그릇에 뱉고 에일로 입가심을 했다.

    영주 성에서 받은 육포로 저녁을 때우며 주위를 둘러봤다.

    몇몇 사람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웠다.

    ‘무슨 일이지?’

    한적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다. 그중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가 있었다.

    <속삭이는 바람>

    소리는 공기라는 매질을 타고 전달된다. 그걸 이용한다면 먼 거리서 나누고 있는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들을 수 있다.

    베르덴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씨발, 고블린 새끼들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가축까지 털린 데다 비싼 돈까지 들여 모험가까지 고용하다니. 우리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했는데도 말이야.”

    “그러다 다치면 손해야, 손해. 이장님이 평소에 말하지 않았나. 모든 사람에겐 각자에게 맞는 전문 분야가 있다고. 고블린을 토벌하는 건 우리 같은 사람들 일이 아니라, 모험가의 일이야. 내일 아침만 지나면 다 끝날 테니 불평 좀 그만하게.”

    “흥. 아까운 건 아까운 거지.”

    고블린은 해충이다.

    작게는 도둑질부터 시작해 크게는 사람들을 습격해 물건을 빼앗고 잡아먹는다. 한둘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으나, 수십 단위가 되면 위험해진다.

    더군다나 어디서 단검 같은 무기라도 훔쳐 오면 사람 몇쯤은 순식간에 난도질당한다.

    피해가 발견되는 즉시, 모험가를 통해 처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대처법이다.

    ‘흔한 일이군.’

    흥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베르덴이 마법을 해제하기 직전, 두 남자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그나저나 그 소문이 사실이야? 그 사냥꾼이 숲속에서 괴물을 봤다는 거 말이야.”

    “쉿, 쉿! 이장님이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그랬잖은가……!”

    “거참, 누가 듣는다고. 어차피 멀어서 들리지도 않아. 궁금해서 그러니까 살짝 귀띔만 좀 해 봐 봐. 자네 사냥꾼하고 친하잖아.”

    한숨을 쉰 사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사냥꾼이 토끼를 잡다가 우연히 사람보다 큰 괴물을 봤는데 말이야. 겁이 나 나무 뒤에 숨어서 살짝 훔쳐보는데, 입이 길게 찢어진 게 아주 섬뜩하기 그지없었다더군.”

    “이, 입이 찢어져? 그게 뭔…… 오크를 잘못 본 게 아니고?”

    “나도 그렇게 물어봤는데 절대 아니래. 덩치는 오크만 한데 얼굴이 고블린 같았다나 뭐라나. 다행히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보아하니 한동안 숲에는 못 올라갈 모양이야. 어쨌든 이건 비밀이니 입조심하게. 잘못하면 모험가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이장님이 그러셨으니까.”

    ‘입이 찢어져?’

    얼마 전에 죽인 광대 오크가 떠올랐다.

    모험가 길드에서 별다른 소식이 없길래, 내심 너무 지나치게 생각한 게 아닐까 여기고 있었는데.

    여기서 비슷한 것이 또 발견된 거라면…….

    ‘……내일 아침이라 그랬지?’

    가정의 입증.

    그건 연구자의 본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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