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금기시된 실험 (1)
보헤미른 마탑 붕괴.
그 소식은 눈덩이가 불어나듯 마법계만이 아니라 주변 나라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마탑의 동력원이 폭주하면서 수십 명의 마법사가 증발하고, 마탑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다른 9개의 마탑이 동력원의 긴급 점검에 들어갔으며, 그로 인해 마탑 생산품들의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다. 마탑주들이 직접 원인을 파악하고 있으나 아직은 밝혀진 게 없다고.
각 나라의 신문에 보도된 건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소식이 사람들의 입을 타면서 갖가지 의혹이 생겨났다.
신의 처벌이 내려졌다든가, 테러가 일어났다든가, 정체불명의 실험 때문이라든가…… 하나같이 불온한 소문이 거리에 가득했다.
마법의 도시 비렌테까지 닿을 정도로.
“자, 줄 서세요! 줄!”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단번에 이동할 수 있는 비렌테의 공간 이동진. 그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안내를 받고 있다.
고작 한 번 이동하는 데만 총 비용이 수천만 엘크나 하는 탓에 주 고객층은 갑부나 사회적으로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다.
부유한 상인이 시계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오래 걸리는군.’
시간은 돈이다.
일이 바쁜데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건 몹시 불쾌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앞지르고 싶지만, 체면이 있는데 그럴 수야 없다. 안내원에게 돈을 먹여도 씨알도 안 먹힐 테고. 되레 비렌테의 블랙리스트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참고 있는데……!’
웬 붉은 머리칼을 한 여성이 줄도 서지 않고 자신을 지나치는 게 아닌가.
안내원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관계자가 아닌 게 분명하다.
‘저런 몰상식한 자가 있다니.’
문득 상인은 잘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저런 새치기범에게 따끔하게 한 소리 하면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갈 것 같았다.
상인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쯧쯧,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새치기를 하면 되나? 남들 다 참고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이면 마땅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상식도 없…… 는…….”
상인의 얼굴이 점차 굳었다.
피부를 찌르는 짙은 마력의 살기. 자신을 죽일 듯이 쳐다보는 붉은 눈동자가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꺼져.”
“넵.”
상인이 당장 뒤돌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상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불청객을 쫓아낸 여성, 로벨린이 하던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보헤미른 마탑 소속이니 당장 제 자리를 확보해 주세요.”
“그 사, 사정도 알겠고 위에서 보헤미른 소속 마법사를 최우선적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오긴 했는데요. 일단 신원을 확인해야…….”
“당장.”
“넵.”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로벨린의 기세에 눈물을 찔끔 쏟은 안내원이 앞장섰다.
소속된 마탑이 망했는데 그걸 막아섰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살벌한 표정에 관리소장도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로벨린의 자리를 확보했다.
[처음 이용하시는 고객께서는 구토 증세나 어지럼증이 일어날 수 있으니, 위급 상황 시 안내원에게 말씀해 주세요.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키이잉─!
보라색 빛이 점멸한다. 방대한 양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고객들을 집어삼켰다.
다시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목적지인 아르나크 제국의 도시. 안전장치를 해제한 로벨린이 곧바로 하늘에 떠올랐다.
전력을 다한 속도에 뒤에서 소리치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마력이 한계까지 떨어지면 값비싼 마력 포션을 입에 들이부었다. 중독 현상이 일어났으나 무시하고 속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비행을 유지한 지 몇 시간이 돼서야, 보헤미른 마탑이 보였다.
듣던 것과는 달리 외관은 멀쩡했다. 하지만 마탑주가 작성한 보안 마법진이 사라진 것이 훤히 보였다.
지면에 착지해 주위를 둘러봤다.
마탑의 하위 마법사들과 일꾼들이 여러 장비를 마탑에서 빼 오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베르덴도 살아 있다는 거겠지?’
베르덴의 위치는 하위 중의 하위였다. 그와 엇비슷한 위치의 마법사 중에는 희생자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당연히 그도 무사하겠지.
후우, 안도의 한숨을 쉰 로벨린이 안면이 있는 연구원에게 다가갔다.
“아, 로벨린 님 오셨습니까?”
“방금요. 그런데 베르덴은 어디 있나요?”
“베, 베르덴이요?”
연구원이 머뭇거리다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 끝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하나 우뚝 서 있었다.
마력으로 적힌 글자가 반짝거렸다.
[실종자 명단]
설마.
로벨린이 다급하게 명단을 쭉 훑었다. 개중에는 얼굴을 아는 이도 있었다. 물론 친분은 하나도 없었다.
죽음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다음으로 넘어갔다.
우뚝. 그녀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실종자 번호 32, 베르덴.
동력실에서 당직자의 보조 근무를 하다 동력원의 마력에 노출된 것으로 여겨짐. 시신 확인 불가.
“아……!”
다시 봐도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뜬들 글자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그녀는 차갑게 타오르는 불이었다. 눈물보다는 분노가, 슬픔보다는 복수의 감정을 느꼈다.
누가, 어째서, 도대체, 왜.
대답 없는 질문에 로벨린 특유의 붉은 마력이 들끓었다. 마치 뜨거운 바늘에 찔리는 듯한 감각에 주위에서 기겁하고 거리를 벌렸다.
그때,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만둬라. 다른 이들에게 화풀이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마탑주님.”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
그가 가볍게 로벨린의 마력을 억눌렀다.
“마력이 전보다 더 날카로워졌군. 평범한 인간은 견디기 힘들겠어.”
“대체 마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보는 대로다. 동력원이 폭주하면서 관리관 등을 포함한 중심부에 있던 마법사가 모조리 소멸되었지. 그뿐만 아니라 중요한 자료들과 기록이 전부 말소되었고 보물고에 있던 마법진마저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마탑주의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그야 당연했다.
자신의 컬렉션 중 하나인 ‘두 번째 회로’에다가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마법서’ 그리고 ‘원소의 숨결’, ‘마력 크리스탈’, ‘룬의 반지’까지 한순간에 잃었으니.
그것들에 들인 돈이 얼만데 이렇게 어이없게 잃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거기다 77번 실험체까지.’
77번 실험체, 베르덴.
하다못해 녀석의 머리만 남아 있었다면 기억을 끄집어내어 소실된 기록들과 성과들을 어느 정도는 복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나하나가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 마탑주의 머리에는 누군가 마법진을 부수고 보물들을 꺼내 갔다는 가정은 없었다.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마법진에 대해선 발로크 베시아스가 절대적인 권위자였기에.
초월자의 자신감이자 오만이었다.
마탑주가 분노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동력원에 폭주를 일으킨 놈은 아깝게 놓쳐 버리고 말았지만, 숨어 있던 쥐새끼를 찾아냈으니.”
뭐?
로벨린이 뒤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소리죠?”
“마도축제 당일에 동력실의 조장을 맡았던 4위계 마법사 호레스. 놈이 사라졌더군. 동력원이 폭주하기 불과 3시간 전에 말이야.”
그러곤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발로크는 다른 마탑의 힘을 빌려서까지 그의 행방과 과거를 추적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거기서 아주 주목할 만한 것이 나왔다.
발로크가 품속에서 작은 표식을 꺼냈다.
“이건…….”
역삼각형과 그 안에 담긴 섬뜩한 시선.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죽음의 마법사 집단, 블랙 아워(Black Hour)의 상징이었다.
“어떻게 마탑에 침투하고 동력원을 폭주시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놈들과 관련이 있겠지.”
우지직. 표식이 일그러졌다.
단서를 잡은 이상, 보헤미른 마탑은 가진 전력을 범인을 찾는 데 집중할 것이다. 설령 마탑의 복구가 한없이 늦어진다 할지라도.
마탑의 붕괴와 관련된 자들의 섬멸.
뿌리째 뽑아 놈들이 존재했던 흔적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 발로크, 보헤미른 마탑의 새로운 목표였다.
“그래서 내 직속, 블랙 아워의 섬멸 부대를 새로이 조직할 생각이다. 구성원은 대충 생각해 두었지. 그 안에는 말단이지만 로벨린 너도 포함되어 있는데…… 따라올 테냐?”
“네.”
복수.
그녀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 *
연락을 받은 베르덴이 파이테 영지의 모험가 길드에 방문했다.
모험가에게 입지가 좋은 곳은 아니라 규모가 작은 편에 속했는데, 며칠 전에 귀중한 모험가가 대거 사망한 터라 길드는 여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안내를 받고 길드장실로 향하자,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남성이 나타났다.
“애셔…… 님 맞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듣긴 했는데 제가 상상하던 외모와는 많이 다르셔서……. 무, 물론 긍정적인 부분에서요. 자, 여기 앉으시죠.”
베르덴과 길드장이 책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과하게 긴장한 모습이 한 길드의 장이라고 하기엔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워낙 작은 곳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기침을 한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우, 우선 이번 일에 대해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그 오크에 대한 위험도를 가능한 높게 설정하고, 길드에서 가장 높은 금 등급 모험가를 보냈는데 이 사달이 날 줄이야…….”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니.”
정말로 괜찮았다.
베르덴이 입은 피해는 없을뿐더러, 얼마 안 되는 보상금을 뜯어내려고 반쯤 망한 길드에 책임을 물을 성격도 아니었다.
어차피 받을 돈이 있으니까.
“그래서. 길드에서 책정한 포상금은 얼마나 됩니까?”
“아, 예. 그게 얼마냐면…… 여기 정산서입니다.”
모험가들에게 지급될 예정이었던 총 토벌 비용으로 600만 엘크.
하지만 광대 오크는 길드에서 책정한 위험도를 상회했기에 비용이 더 추가되었다. 거기다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아인종의 사체를 받았으니 그에 걸맞은 포상금까지.
총합 2,400만 엘크.
그러나 베르덴에게 정산된 건 1,200만 엘크였다. 세금 문제였다.
“그…… 아실지 모르겠지만 모험가가 아닌 외부인에게는 무조건 50%의 세금이 부과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이게 법으로 제정된 거라 책정된 금액을 넘어가면 횡령으로 잡혀서 말이죠. 그래도 이 무지막지한 과세를 피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습니다.”
“모험가가 되라는 겁니까?”
“아!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저희 길드는 등급이 오를수록 세금이 줄어드는데, 은 등급 이하의 모험가에게는 20%를, 금 등급 모험가에겐 15%를 과세하고 있습니다. 등급이 더 오르면 최대 5%까지 줄어들지요. 보통 가장 낮은 백결 등급부터 시작하는 것이 원칙인데, 애셔 님의 경우에는 특별 케이스라 은 등급부터 시작하는데 또 특별히 세금을 15%만…….”
방금 전까지의 긴장된 모습은 어디 갔는지, 길드장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내뱉었다. 누가 보면 상인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나를 영입하는 게 목적이었나. 어쩐지 너무 저자세로 나온다 싶었는데.’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길드 입장에서 이번 손해를 메울 게 필요했을 테니. 마침 베르덴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걸 알게 된 것이고.
돈으로 금 등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마법사를 품을 수 있다면 길드로선 그야말로 최선이겠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베르덴이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이대로 정산해 주시죠.”
“예…… 예? 하지만 세금이…….”
“상관없습니다.”
모험가든, 용병이든.
당장 조직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마탑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눈앞의 이득을 위해 스스로 목줄을 맬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자유는 온전히 베르덴의 것이다.
“……알겠습니다.”
길드장은 대놓고 실망한 기색으로 돈을 가져왔다.
베르덴은 눈대중으로 액수를 가늠한 뒤, 두툼한 돈다발을 품속에 넣었다.
이제 마지막 용건만 남았다.
“미리 전달드렸던 건에 대해선 어떻게 됐습니까?”
“오크의 사체 말이군요. 부패하지 않도록 창고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내일 다른 지부의 해체 전문가가 와서 처리할 예정이죠. 그런데 대체 그건 어디다 쓰시려고……? 혹시나 말하는데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계약서상 염연히 길드의 물건이니까요.”
언제 그랬냐는 듯.
길드장은 베르덴에게 선을 그었다.
제안을 거절당했으니 공손히 대할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콧대 높은 마탑의 마법사들과 비슷한 태도다. 높은 사람에겐 굽신거리고 낮은 사람에겐 한없이 오만한 유연한 성격. 너무도 익숙했기에 딱히 불쾌하진 않았다.
“잠깐 확인만 하면 끝나는 일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