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연회
일반적인 마법에는 각자 정해진 한계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2위계 <다중 화염 화살>. 최소 2개에서 최대 5개의 불화살을 쏘아 내는 이 마법은, 아무리 마력을 불어넣는다 한들 5개 이상의 화살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다 한계를 넘어서면 마법 자체가 소멸된다.
그것이 마법의 법칙이었다.
그 부분에서 봤을 때, 3위계 <지형조작>은 특별한 마법이라고 볼 수 있다.
정해진 한계가 존재하지 않아, 이론적으로 마력만 있다면 거대한 산마저 움직일 수 있다고 마탑에서 발표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이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는 없다.
이유는 효율이었다. 이걸 사용할 바에 한 단계 낮은 2위계 마법을 쓰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위력에 비해 마력 소모가 매우 극심했다.
거기서 베르덴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효율을 무시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만 있다면 3위계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건가?’
역발상.
이것이 그 생각의 결과였다.
쿠구구구구……!
서서히 땅이 진동하며 주변의 나무들이 세차게 흔들렸다. 휘청거리던 병사들이 간신히 땅에 창을 꽂아 중심을 유지했다.
“가, 갑자기 뭐야?! 지진인가!”
“도망쳐야 되는 거 아니야?”
“애셔 님의 마법이다! 동요하지 말고 제자리를 유지해라!”
에녹이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도 내심 당황하긴 마찬가지. 마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에 베르덴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순간.
쩌저적!
흙이 튀며 지면에 원 모양의 금이 생겨났다.
정확히 병사들의 발 앞에 난 틈새. 그 바깥에 있는, 아인종이 서 있는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고블린 몇 마리가 오크에게 깔려 압사했고, 사방에 흩어져 있던 놈들이 순식간에 광대 오크가 있는 위치로 모이게 되었다.
‘마력 소모량은 이 정도인가. 확실히 효율 자체는 별로군.’
하지만 문제없다.
방대한 마력이 베르덴의 심장에서 맥동하고 있었으니. 마력회로를 질주한 마력이 속성으로 변질되었다.
<화염구>
콰과광!
타오르는 구체가 폭발하며 광대 오크의 주변을 집어삼켰다. 베르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이어 불덩이를 날렸다.
[그아아아아!]
[키에에에에에엑!]
수십 개의 형체가 불길 속에서 스러졌다.
이걸로 대부분의 아인종은 잿더미로 변했으나 예상대로 광대 오크를 죽일 수는 없었다. 놈이 주위에 있던 사체를 씹어 먹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딴 것으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 히죽 웃으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그것이 베르덴의 노림수인지도 모른 채.
[그어어어어어어어!]
지면을 울리며 놈이 돌진했다.
멀리서도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나, 베르덴은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파도>
거센 물결이 화염을 가라앉히고 광대 오크를 휩쓸었다.
수증기가 시야를 가리며 놈과 그 주변이 축축하게 젖었다. 속성 연계를 하기엔 최적의 환경.
지팡이 끝에 서늘한 한기가 맺혔다.
<다중 빙결 화살>
<겨울 돌풍>
겨우 살아남았던 아인종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앞에서 돌진해 오던 광대 오크의 몸 또한 마찬가지.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동상으로 인한 기능의 상실은 피할 수 없다. 몸이 둔해지는 걸 느낀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베르덴에게 팔을 뻗었다.
가까스로 닿을 거리였다.
“애셔 님!”
그러나 에녹의 걱정이 무색하게, 베르덴의 움직임은 평범한 마법사답지 않았다.
역으로 팔 안쪽을 파고들어 광대 오크의 뒤를 잡은 뒤, 땅을 박차며 재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놈의 등 뒤에 서리의 구체를 남긴 채.
<프로즌 오브>
빙결 계열의 지속형 범위 마법.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주변에 휘몰아쳤다.
[그…… 어……!]
마법에 그대로 노출된 광대 오크의 피부가 퍼렇게 질렸다.
서서히 굳어 가는 육체. 여전히 고통은 없었으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다급하게 자리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바닥에서 흙이 솟구쳤다.
<지형조작>
콰과과과!
거대한 돔이 일대를 감쌌다. 통상적인 3위계 마법사는 엄두도 못 낼 마력이 소모되었지만 베르덴에겐 충분한 여력이 남아 있었다.
그때, 돔의 일부가 무너지더니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
광대 오크였다.
방금까지 보였던 웃음기는 사라진 지 오래. 호흡기가 얼어붙어 제대로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스스로 얼어붙은 몸을 깨부수고 재생하려 했으나, 바싹 타 버린 아인종의 사체를 먹어도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나가야 한다.
생존을 갈망하며 광대 오크는 희망을 갈구했다. 틈새를 비집고 나온 머리가 베르덴과 마주쳤다.
“아직 덜 얼었나.”
그럼 다시 들어가야지.
다시 한번 솟구쳐 오른 흙이 돔을 크게 덮었다.
쿵! 쿵! 안쪽에서 느껴지는 진동. 작게 난 틈새에서 놈의 손가락이 삐져나왔다. 기사들이 곧바로 검 끝을 향했으나, 광대 오크의 움직임은 거기까지였다.
……적막이 흐른다.
에녹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베르덴에게 물었다.
“죽은…… 겁니까?”
“죽었습니다.”
확신이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흙을 원상태로 되돌렸다. 숨결마저 얼어붙어 있는 광대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군요.”
베르덴의 동의하에, 에녹이 광대 오크의 손목을 베어 갈랐다.
절단된 부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붉은 단면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여전히 반응이 전혀 없는 걸 보아 죽은 게 확실했다.
상황 종료.
에녹이 검을 거두자 주변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 * *
도적의 마차를 이용해 부상자들을 실었다.
헤레스의 부상이 가장 심하긴 했으나 중요한 혈관이나 신경은 무사했기에 목숨에 큰 지장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망자는 전무했다.
“기사들도 고전한 오크를 그렇게 쉽게 죽이다니. 애셔라고 했나? 저런 사람을 보고 천재라고 하는 거겠지?”
“그렇겠지. 저렇게 어린 나이에 천재 마법사라. 게다가 얼굴까지…… 아니 시발, 이게 나라냐? 뭐 이리 불공평해?”
“병신아! 목소리 낮춰! 마법사 잘못 건드렸다가 뒈진 사람 얘기 못 들어 봤어?”
경악, 두려움, 질투, 감탄 등.
베르덴에게 익숙지 않은 시선들이 집중되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 전부가 마탑의 밑바닥에 있을 땐 느껴 보지 못한 감정들이었으니까.
에녹이 다가와 베르덴에게 감사를 전했다.
“애셔 님이 아니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뢰받은 내용의 연장선이니.”
딱히 위험하지도, 힘겹지도 않았다. 적어도 베르덴에게 그랬다.
광대 오크와의 상성은 베르덴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목숨을 빚진 건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영주님께 애셔 님의 활약을 잘 말씀드려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부족하다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안 그런가, 패릭?”
“부족하지 않게 어떻게든 영주님을 설득해야겠군요.”
농담을 주고받으며 전투의 여운을 가라앉혔다.
그동안 병사들이 도적단의 두목으로 추정되는 두 구의 시체를 말에 실었다. 살아남은 도적들은 줄줄이 밧줄에 손이 묶인 채, 말에 이끌렸다.
아무리 촌락민이 있다는 얘길 들었어도, 사실 관계가 파악되기 전까진 죄인으로 취급할 생각인 것 같다.
아인종이 노획했던 모험가들의 유품도 챙겼으니 주변에 있는 시체들만 처리하면 끝이다.
이건 베르덴이 직접 나섰다.
마법으로 도적단의 거점을 완전히 허물고, 지형까지 조작해 시체와 흔적을 지면 아래로 옮기니 깨끗한 공터가 만들어졌다.
‘아니, 무덤인가?’
어쨌든.
무덤 위에는 얼어붙은 광대 오크의 사체만이 남게 되었다.
모험가들을 학살한, 일반적인 개체가 아닌 이 괴물을 모험가 길드에 가져가면 막대한 포상금을 받을 수 있기에 남겨 둔 것이었다.
‘그와 별개로 궁금한 게 있기도 하고.’
그래서 일부러 얼려 죽인 것이다.
<염력>
광대 오크가 두둥실 떠올랐다.
에녹이 깜짝 놀라 물었다.
“저걸 가져가실 생각이십니까? 내일 아침에 병사들을 통해 가져오는 게…….”
“괜찮습니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요.”
“허…….”
그 정도의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마력이 남아 있단 말인가.
마법사에 대해 잘은 몰라도 베르덴이 평범함을 아득히 벗어났다는 것은 분명했다.
노을이 거의 저물고 밤이 찾아온다.
횃불 대신 주변을 환하게 비춘 마법의 촛불. 한밤이 되어서야 영주 성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베르덴의 첫 도적 토벌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 * *
호흡을 내쉰 베르덴이 정신을 집중했다.
며칠 전까지와는 격이 다른 양의 마력이 회로를 타고 흐른다.
수많은 마법사가 도달하지만 끝내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3위계. 고작 25살의 나이에 이뤘다는 것은 그야말로 영재(英才)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다 베르덴의 육체는 특별하다.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임에도 속성에 제한받지 않는 마력회로. 이러한 회로를 타고난 존재는 이 세계에도 거의 없다.
손바닥 위에 넘실거리는 마력. 베르덴이 그럴 생각만 있다면 어떤 속성으로든 변화가 가능했다.
‘다행히 내가 기억하는 마법 중에 틀린 부분은 없어.’
3위계에 해당하는 마법의 숫자는 방대하다.
원소 계열만 따지더라도, 자잘한 것부터 시작하면 세 자리 수는 가볍게 뛰어넘을 것이다. 베르덴의 머릿속엔 그것들이 통째로 새겨져 있었다. 마탑의 실험으로 인한 여파이기도 했다.
회로에 가득 찬 마력을 천천히 회수했다.
때마침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애셔 님! 저 콘라드입니다. 연회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곧 나가겠습니다.”
옷장을 열어 꽤나 고급스러운 옷을 꺼냈다.
오늘 아침, 콘라드가 하인을 통해 보내 준 선물이었다. 짙은 푸른색이 베르덴의 눈 색깔과 잘 어울렸다.
콘라드와 함께 연회장에 도착하자 병사들이 즐겁게 잔치를 열고 있었다. 기사와 마주하고 있던 파이테 영주가 이쪽에 시선을 향했다.
“아! 어서 오게, 애셔. 자, 여기 앉아서 와인부터 들게. 도수가 높지 않으니 입맛을 돋우기엔 딱 알맞을 걸세.”
영주의 손에 잡힌 베르덴이 영문도 모른 채,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새콤하네. 도수도 높지 않고.’
그런데 왜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거지?
어제 갑자기 연회를 열겠다는 것도 그렇고. 살짝 취기가 돈 영주는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사흘 전에 토벌한 도적단 말일세. 도적치곤 상당히 강하지 않았던가?”
“……제가 아는 도적하고는 많이 다르더군요.”
사회에서 대우받는 3위계 마법사와 기사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쌍검사.
그 정도 실력을 가졌다면 굳이 도적질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했다.
영주가 품에서 낡은 종이 두 장을 꺼내 베르덴에게 보였다.
현상 수배서. 일전에 봤던 두 도적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바르자 그리고 빌셴.
사망이나 생포 시 현상금은 1,000만 엘크.
“1년인가 2년쯤 전에 들어온 건데, 이 두 녀석은 모험가 출신이라더군. 그것도 금 등급에 해당하는 모험가. 동료 모험가를 죽이고 도주했다는데 왕국의 국경을 넘고 행방이 묘해졌다더니, 도적단을 만들고 다니다 여기 남작령에 기어들어 온 모양이야.”
금(金). 모험가 여덟 등급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많은 실적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신분이다.
그런 자가 범죄자가 되어 날뛰었으니 무려 1,000만 엘크나 되는 현상금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래서 영주의 표정이 밝았었나?’
만약 마법진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극단적으로, 마법사가 마을에 마법을 난사하기라도 하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걸 미연에 방지했으니 영주 입장에서는 좋을 수밖에 없겠지.
“후우, 자네를 고용하길 잘했어. 도적만이 아니라 모험가들을 몰살한 아인종들마저 처리해 줬으니. 모험가 길드에서도 감사하다고 곧 연락을 준다더군. 영지 전체가 자네에게 빚을 진 것이나 다름이 없어.”
‘아니,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너무 과하다.
베르덴이 부정했으나 술에 취한 영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잡혀 온 도적들 중에서 촌락민을 풀어 주고 나머지 도적들은 며칠 뒤에 처형할 생각이네. 덕분에 무사히 끝났어. 놈들에게 당한 영지민들이 있긴 하지만 장례를 잘 치러 줬으니……. 아,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졌군. 크흠, 자! 모두 잔을 들게!”
영주가 소리치자 병사들이 한데 모여 잔을 들었다.
죽은 촌락민들을 애도하고, 도적 토벌에 가장 공을 쓴 기사와 베르덴을 간단히 소개하며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평화를 위하여!”
──위하여!
다 함께 술을 입에 들이부었다. 마탑과 전혀 다른 분위기라 그런지 너무 생소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제서야 베르덴도 연회를 즐겼다. 영주나, 콘라드 그리고 기사와 병사들까지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감정을 공유했다.
도중에 음식을 나르던 하녀가 베르덴에게 슬쩍 호감을 비친 것 또한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연회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