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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0화 (10/366)
  • 10화 광대 오크

    어떤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지에 따라, 마법사의 성장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베르덴이 전공한 원소 계열은 주로 전투에 적합한 마법이 주류다.

    시시각각 변해 가는 상황에 따라 회로에 흐르는 마력을 급격하게 뒤바꾸고, 하나만이 아닌 다양한 원소를 다루는 것 모두가 성장의 거름이 된다.

    그리고 그 약간의 경험이 베르덴을 한층 위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마법사의 전술이라. 생각보다 배울 게 많았어.’

    베르덴이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이미 도중에 3위계에 오르긴 했지만, 상대의 방심을 끌어내어 확실하게 승기를 잡는 걸 택했다. 면밀히 상대의 마법을 관찰해 어떤 식으로 대응하며 싸우는지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베르덴에겐 유익한 시간이었다.

    ‘예상보다 도적이 강하긴 했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자신의 힘은 동급 위계의 마법사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2위계인 상태에서도 3위계인 상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고 확신했으니까. 물론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자칫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으리라.

    베르덴이 앞으로 걸어가 마법사의 시체를 확인했다.

    하반신은 어스본에 꿰뚫려 본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고, 심장을 관통한 얼음의 창에 몸 전체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손을 뻗어 마법사의 머리를 향했다.

    “……머리까지 날려 버릴 필요는 없겠지.”

    확인 사살까지 하는 게 안전하긴 하지만, 시체를 온전히 영주에게 확인시켜 주는 게 신뢰를 형성하기 쉬울 것이다. 시체에 남아 있는 흔적들로 실력의 편린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손을 거둔 베르덴이 차가운 핏물에 담겨 있는 지팡이를 주웠다.

    ‘마법 물품이군.’

    <감정>

    이 마법은 물건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습득 난이도는 1위계로 낮은 편에 속하나, 중요한 건 그 구조가 어떤 마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는지 읽어 내는 것.

    그 지식이 너무 방대하기에 감정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공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베르덴은 그 예외에 속했다.

    ◇ 마석 지팡이

    ⦁ 마법 시전 속도 증가(소)

    ⦁ 얼음 계열 마법 위력 향상(소)

    ‘쓸 만한데?’

    양산형 제품이긴 하나 캐스팅을 보조해 준다. 비유하자면 한 손톱 두 개만큼 정도?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에 목숨이 오가니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한정된 속성이나마 마법의 위력이 향상된다는 것도.

    마력으로 만들어 낸 물로 깨끗이 닦아 낸 뒤, 허리춤에 챙겼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얻어 낸 물건이라 그런지 베르덴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때, 기사 패릭이 나타났다.

    “애셔 님! 무사하셨군요!”

    ‘아, 도적 토벌 중이었지.’

    마법 물품에 눈이 돌아가 잠깐 잊어버렸다.

    표정을 되돌린 베르덴이 이마를 닦는 시늉을 하며 뒤를 돌아봤다.

    “예. 꽤 실력이 있는 마법사였던 터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아, 확실히…….”

    주변이 엉망진창이다. 과정을 보지 않았지만 어떤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상상이 된다.

    그런데도 신체의 태반이 박살 난 도적 마법사와 달리, 몸에 생채기 하나 없는 베르덴의 모습에 패릭이 내심 감탄했다.

    “패릭 경, 그럼 도적 토벌은 끝난 겁니까?”

    “아직 두목이 날뛰고 있지만 그 외의 도적들은 완전히 제압했습니다. 사실상 시간문제나 다름없죠. 돌아가면 거의 끝나 있을 겁니다.”

    젊은 기사 패릭의 얼굴은 핏방울로 얼룩져 있었으나 밝았다. 다행히 병사들의 피해는 전무한 것 같다.

    “그럼 시체를 챙겨서 돌아가도록 하죠.”

    “……그런데 이 도적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의 처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물론, 소유권은 애셔 님에게 있습니다. 영주님께서 말하시길, 애셔 님께서 도적의 소유물을 원한다고 한다면 가능한 들어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영주님이다.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패릭을 따라 도적단의 본거지로 돌아갔다.

    곳곳에 도적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항복한 도적들은 병사들의 창날 앞에 덜덜 떨고 있었다.

    기사 에녹과 맞서던 바르자가 만신창이로 돌아온 빌셴을 목격했다.

    ‘빌셴이 죽었어……?’

    낭패다. 빌셴이 없다면 이 포위망을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동요를 숨기지 못한 바르자의 얼굴에 미약한 공포가 서렸다. 결코 느끼고 싶지 않았던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쌍검을 꽉 쥔 바르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내가 이런 촌구석에서 죽는다고? 그럴 리가!’

    아직 못 해 본 것이 너무 많다. 자신의 자유를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 그 방법은 하나뿐. 상대하던 기사를 단칼에 죽인 뒤, 놈들이 숨긴 말을 찾아 도망치는 것밖에 답이 없다.

    각오를 다진 바르자에게서 뜨거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쿵! 바닥을 박차자 에녹 또한 기를 움직여 검에 담았다.

    바르자가 의도한 대로. 그가 노리는 건 두 번째 일격.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왼손의 검이 기사의 목을 베어 낼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검이 닿기 직전, 에녹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을 회수했다.

    “어?”

    카앙. 기세와 달리 미약한 소리. 에녹이 충격과 함께 검을 놓아 버렸다. 그 탓에 체중이 한쪽에 쏠린 바르자가 크게 중심을 잃었다.

    “걸렸군.”

    겨드랑이 아래로 파고든 에녹이 바르자의 목과 팔을 감싼 뒤, 땅으로 몸을 내던졌다. 기운으로 강화된 근력에 순식간에 바르자가 끌려 내려갔다.

    서로가 뒤엉켜 땅을 굴렀다.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에녹이 양발로 바르자의 팔과 다리를 제압했다.

    그러곤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들었다. 칼끝이 닿자 바르자의 목에 피가 흘렀다.

    “잠깐! 기, 기사란 자가 검을 버리고 싸워도 되는 거냐?! 그러고도 기사란 말이냐!”

    “허,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푸욱.

    “이게 실전이다, 도적 놈.”

    끄륵. 끄르륵. 피거품을 문 바르자의 몸이 벌벌 떨리다 축 늘어졌다. 단검을 비틀어 확실하게 끝낸 에녹이 시체를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자신을 보고 있던 베르덴과 눈을 마주쳤다.

    “흠흠. 젊어서 그런지 체력이 남아돌더군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면에서 목을 베었을 텐데…….”

    에녹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의 체면이란 게 있는데 외지인 앞에서 검을 버리고 흙투성이로 승리를 거머쥔 건, 조금 부끄러웠다.

    정작 베르덴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그런데 저 도적들은 뭡니까? 전멸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본래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병사들이 도적들 중에 아는 얼굴이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저번에 촌락을 습격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세력으로 흡수한 것 같은데, 일단 성으로 데려가 진위 여부를 확인한 뒤, 처형하거나 구제할 예정입니다.”

    기사 헤레스의 말에 무릎 꿇은 도적 몇몇이 흠칫 몸을 떨었다.

    살아남은 도적들인가? 영주 성에 가면 이도 저도 못 하고 처형당할 게 뻔하니 도축장에 가는 기분이겠지. 뭐,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병사들이 도적들을 강제로 일으키던 도중, 구석에 있던 도적 하나가 병사를 세게 밀치곤 숲으로 몸을 날렸다.

    “흐아아아악!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헤레스의 말에 에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치는 걸 보아하니 습격당한 촌락의 주민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사로잡는 것보다 본보기로 즉결 처형하는 것이 나을 터.

    그런데 놈을 쫓으려는 순간, 숲에서 들려오던 비명 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진 숲. 불길함을 느낌과 동시에 금속 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피 냄새……?”

    주변엔 도적들의 피가 가득했으나 지금 느껴지는 건 그보다 훨씬 짙었다.

    베르덴이 곧바로 마력을 펼쳤다. 숲속에서 수십 개의 생명 반응이 감지되었다.

    이건…….

    “아인종?”

    “아인종이라면…… 고블린이나 오크 말입니까?”

    에녹의 말에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 마리가 넘는 오크와 수십 마리가 넘는 고블린. 아인종 무리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숫자가 꽤 많긴 하지만 베르덴 혼자 상처 없이 토벌이 가능한 수준.

    그러나 쉽사리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대체 저건 뭐지?’

    최전선에 선 오크.

    마력감지로 봤을 때 기존의 오크보다 거대한 체격을 지녔다. 오크의 진화종이라도 되는 건가? 뭐가 됐든 놈이 아인종 무리를 이끌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쿵. 쿵. 쿵.

    서서히 커져 가는 발걸음 소리.

    이윽고 숲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헤레스가 곧장 반응하며 검을 휘두르자, 방금 도망쳤던 도적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떨어졌다.

    그리고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옆으로 찢어진 입과 2미터를 훌쩍 넘는 거체. 베르덴과 기사 그리고 병사와 붙잡힌 도적들을 죽 둘러본 괴상한 오크가 입을 쩍 벌렸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

    숲을 뒤흔드는 괴성.

    몸을 들썩이는 놈의 목에선 피로 물든 금색 플레이트가 짤랑거렸다.

    * * *

    ‘저건 분명…….’

    찌그러지긴 했지만, 아침에 봤었던 금 등급 모험가의 목에 걸려 있던 것과 같았다. 그리고 왼손에 들고 있는 검까지.

    그걸 본 기사들의 눈빛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아무래도 모험가들이 토벌에 실패한 모양입니다.”

    아인종의 처리는 모험가 길드의 몫이지만, 정황상 토벌에 나선 금 등급 모험가를 비롯한 다른 모험가까지 몰살당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상위종도 아닌 오크가 그들을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마주한 이상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꽈드득.

    에녹이 검 손잡이를 강하게 말아 쥐었다.

    그러자 괴상한 오크가 돌진하며 숲속에 숨어 있던 아인종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원 방어 대형! 오크와의 교전은 피하고 고블린을 우선으로 처리하라! 저 괴물은 우리들이 맡겠다!”

    콰앙!

    오크의 검과 에녹의 검이 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을 넘어선 무지막지한 근력에, 에녹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크읍……!”

    바닥을 뒹군 에녹이 신음했다.

    성큼 다가온 괴물이 머리를 짓밟으려 하자, 기사 패릭과 헤레스가 서로의 검을 교차하며 놈의 앞꿈치를 절단했다.

    그 뒤에서 베르덴이 오크에게 지팡이를 겨냥했다.

    <아이스 스피어>

    콰직!

    어깨를 관통한 빙결의 창. 한기가 몸속을 파고들어 근육과 신경을 마비시켰다.

    기우뚱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오크. 그 틈을 노린 에녹이 번개같이 몸을 움직여 오크의 심장을 꿰뚫었다.

    “하압!”

    촤아악! 검을 비틀며 뽑아내자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하다고 해도 저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살아남을 순 없었다.

    그런데 오크는 보란 듯이 그 기대를 배신했다.

    덥썩.

    [키에에엑?!]

    오크가 근처에 있던 고블린을 집어 들고는 그대로 집어삼켰다.

    피와 고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상처를 입었던 부위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거기다 한층 더 근육이 융기했다.

    어깨에 꽂힌 얼음을 뽑아 부순 놈이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던졌다.

    “뭣?!”

    눈을 부릅뜬 헤레스가 급히 검을 들었다.

    쩌어엉!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난 검. 그 조각이 비산하며 헤레스의 전신에 박혔다.

    “아아아아악!”

    “헤레스!”

    “조심해라, 패릭!”

    오크가 달려와 패릭에게 팔을 휘둘렀다.

    기를 활성화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으나 이전과 달리 절단은커녕 근육에 틀어박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패릭에게 닿기 직전.

    <어스 쉐러>

    수십 개의 돌조각이 오크의 머리를 두들겼다.

    피와 부러진 이빨이 후두둑 떨어졌으나 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패릭에게 손을 뻗었다.

    다행히 닿기 전에 뒤로 후퇴했으나 상황이 더 나아진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지.

    패릭이 마치 바위를 때린 듯한 감각을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어떻게 상위종도 아닌 오크가 이런 힘을…… 설마 이게 그 특수 개체라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세계의 역사에 기록되어 왔던 그 특수 개체 중 하나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파이테 영지민까지 전부 몰살당할 것이다. 과한 생각이긴 했으나, 저 소름 끼치는 입을 보니 도저히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어, 어째섭니까?”

    “간단한 이유입니다.”

    저 광대 같은 오크는 확실히 강하다.

    섭식을 통한 뛰어난 재생력과 기사마저 압도하는 근력. 거기다 휘하의 아인종에게 광기를 일으켜 움직이기까지. 말 그대로 일반적인 오크와는 격이 다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너무 약하니까요.”

    결코 베르덴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이미 머릿속에 놈을 죽일 방법이 수십 가지가 떠올랐으니까.

    어떻게 죽이면 좋을까.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피해가 적겠지.’

    저 기분 나쁜 광대 오크만이 아니라 병사들과 맞서고 있는 아인종 무리까지.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한 베르덴이 푸른 눈을 번뜩였다.

    <지형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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