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9화 (9/366)

9화 도적 토벌 (2)

모험가란,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아인종과 마수를 사냥하며 때론 미지를 탐구하는 자다.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해마다 길드에 가입하려는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실력만 있다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세상이 모험가를 필요로 하니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문제는 존재했다.

아인종과 마수를 상대하며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과 힘을 갖춘 강인한 모험가가 범죄에 발을 디딘다면, 그 칼끝이 죄 없는 사람에게 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직 금 등급 모험가, 바르자와 빌셴.

이 둘이 바로 대표적인 예였다.

“기사한테 걸려 토벌당하지 않나, 한 놈 잘 가르쳐 놨더니 웬 오크한테 잡아먹히지를 않나. 여기가 터가 안 좋나?”

바르자가 얼굴의 흉터를 긁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활동 지역을 넓히기 위해, 부하들을 보내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었더니 냉큼 걸려 깡그리 죽어 버렸고.

기껏 촌락을 습격하면서, 말 안 듣는 놈 죽이고 쓸 만한 녀석들을 데려왔는데 또다시 줄어 버렸다.

남은 부하는 고작 40명.

그중 제대로 도적질을 할 줄 아는 놈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빌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작을 너무 우습게 봤다. 도적 잡자고 그렇게 길길이 날뛸 줄 누가 알았겠나.”

“쯧. 내가 있었다면 기사 놈을 산 채로 나무에 매달아 놓았을 텐데.”

문득 모험가 생활이 그리워진다.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켜도 금 등급이라 길드에서 웬만하면 수습해 줬었는데. 하필 다른 모험가를 죽인 걸 길드장에게 들키는 바람에 쫄딱 망해 버렸다.

현상 수배범이 되어, 왕국에서 도망치듯 나오고 도적질을 하기 시작한 지 벌써 2년.

남은 거라곤 장비들과 식량만 축내는 부하들밖에 없다. 처량한 신세에 바르자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빌셴, 어차피 뜰 거 한탕 더 하고 가는 게 어때? 적당히 큰 마을 하나 뒤집어 까면 부족한 자금도 메우고 남작 배알도 좀 꼴리지 않을까?”

“안 돼. 저번에 네가 시체를 나무에 매다는 바람에 남작의 신경이 곤두섰어. 내 마법진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들켰을 거다.”

“흥. 들키든 말든, 모조리 죽이면 되지.”

반은 허세였다.

아무리 금 등급 출신이라도 기사 한 명이라면 모를까, 대인전에서 기사 둘 이상을 상대하는 건 꽤나 어려웠다. 그래도 바르자는 자신이 있었지만.

빌셴이 째려보자 바르자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한편에서 놀고먹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손짓하며 짐을 챙기라고 명령했다.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나.

‘빌셴이 알아서 하겠지.’

머리 쓰는 건 항상 녀석이 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때, 예민한 감각에 무언가가 스쳤다. 빌셴도 마찬가지였는지 동시에 숲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다섯 개의 불화살이 날아왔다.

“뭐, 뭐야?!”

바르자가 경악하고, 빌셴이 마력방벽을 잽싸게 둘렀다.

콰과광! 연이어 폭발이 일어나며 순간적으로 화염이 시야를 가렸다.

그때였다.

붉은 기운을 두른 기사 셋이 쏜살같이 숲에서 튀어나왔다.

강화된 각력에 발자국이 새겨진 지면. 롱소드를 양손으로 말아 쥔 두 기사가 동시에 방벽을 두들겼다.

쩌적!

순식간에 방벽 전체에 금이 갔다.

빌셴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에녹이 섬전 같은 참격을 쏘아 냈다.

쩍, 갈라진 마력의 벽.

그와 동시에 빌셴의 마력회로에 반동이 찾아왔다.

“커억?!”

이것이 마력방벽의 단점.

빠르게 형성할 수 있으나, 버틸 수 있는 충격량이 그리 크지 않으며 마력을 거두기도 전에 박살이 나면 회로에 타격을 받는다.

베르덴이 병사들과 함께 나타났다.

에녹과 눈을 맞춘 그는 계획한 대로 빌셴과 마주 섰고, 곧 마법전이 펼쳐졌다.

에녹이 헤레스에게 말했다.

“저 흉터 난 도적은 내가 맡겠다. 아무도 죽지 않게 병사들의 통솔을 부탁하지.”

“괜찮겠습니까? 나이도 있는데 무리하지 마시지.”

걱정 아닌 걱정에 에녹이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검을 나눠 볼 만한 자인데 양보할 수야 없지. 그래도 내가 죽을 것 같으면 도와주러 왔으면 좋겠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또 모르니까.

뚜둑. 가볍게 목을 푼 에녹이 검날을 곧게 세우고 쌍검을 든 바르자에게 다가갔다. 도적과 한가롭게 나눌 대화 따위는 없다.

챙! 검과 검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 * *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으로 위계를 판단하는 건, 어지간한 차이가 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도적 마법사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베르덴이 가볍게 마법을 날렸다.

<다중 화염 화살>

다시금 날아드는 불화살. 고통에 겨워하고 있으면 그대로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빌셴은 과거에 마력방벽이 깨졌던 경험이 몇 번 있었기에 금세 정신을 차렸다.

<다중 빙결 화살>

콰과광! 콰광!

불과 얼음이 부딪치며 수증기가 자욱하게 펴져 나갔다.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자, 차가운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겨울 돌풍>

3위계 빙결 마법. 수증기가 날아가고 주변 일대가 얼음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베르덴이 서둘러 방벽을 둘러 한기를 막아 냈다. 마력의 벽에 서리가 맺혔다.

“쿨럭! 쿨럭! 흐으…… 남작 휘하에 마법사가 있다는 건 듣지 못했는데. 방심하다 한 방 먹었군.”

호흡을 가다듬은 빌셴의 손에는 어느새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회로에 적지 않은 부담이 일었을 텐데도 여유가 있는 걸 보면, 생각 이상으로 경험이 많은 마법사인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본 빌셴이 웃음을 흘렸다.

“도적질도 여기까지인가. 기사가 세 명이나 온 걸 보면 바르자도 살아남기 어려워 보이고……. 뭐, 혼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보내 준다고 한 적 없는데.”

베르덴의 말에 빌셴이 히죽 웃었다.

“어린 나이에 2위계라. 아카데미 출신인가? 척 봐도 재능만 믿고 살아온 것 같은데, 마법사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해 주지. 너 같은 놈들은 이 세상에 발에 챌 정도로 많고, 나는─”

<어스 쉐러>

날카로운 암석 파편.

말이 도중에 잘린 게 불쾌했는지 빌셴이 미간을 찌푸리고 대응했다.

<아이시클>. 베르덴이 시전한 마법과 속성만 다른 마법이다. 고드름과 돌조각이 부딪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맨몸인 베르덴과 달리, 빌셴은 모험가 시절에 사용했던 장비를 그대로 쓰고 있다. 캐스팅 속도에서 베르덴이 밀리는 건 당연했다.

곧바로 빌셴이 만들어 낸 커다란 얼음 구체가 맹렬한 속도로 베르덴에게 향했다.

‘화력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렇다면 방대한 마력량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수밖에.

회로 속의 마력이 베르덴의 양손에 집중되며 불꽃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폭염을 담은 화살이 구체와 함께 산화했다.

“불과 땅, 거기다 바람까지……. 허, 그 나이에 3속성을 전부 2위계까지 다룰 줄 알다니 대단하군. 아카데미 수석은 따 놓은 당상이었겠어. 분명 미래엔 이름 높은 마법사가 되겠지.”

그래서 즐겁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를 죽이는 건, 그야말로 쾌감 그 자체였으니까.

저 회색 머리의 마법사는 지금까지 죽여 왔던 인간들보다 뛰어난 천재. 울면서 구걸할까, 분노하면서 저주를 내뱉을까.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할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기사들이 거슬리는군.’

부하들이 학살당하고 있다. 이미 무기를 놓고 항복하는 놈들도 더러 보인다. 그렇게 자신 있다던 바르자는 고작 기사 하나와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다른 기사 둘이 합세한다면 자칫 도망칠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다시금 베르덴의 마법을 막아 낸 빌셴이 정신을 집중했다.

<비행>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허공에서 마법 화살들을 피해 낸 빌셴이 베르덴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쫓아올 테면 쫓아와 봐라.

그런 의미를 남기고 빌셴이 깊은 숲속을 향해 날아갔다. 도적의 머리를 베어 낸 기사가 소리쳤다.

“여긴 문제없으니 걱정 마시고 쫓아가십쇼!”

‘나는 날 수가 없는데.’

비행은 3위계에 이른 마법사의 전유물이다. 2위계의 끝자락에 닿아 있다고 한들 사용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

하지만 상대가 자신을 도발하며 속도까지 조절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베르덴이 아니었다.

토벽을 일으켜 가파른 언덕을 만들었다. 그 위를 달려 뛰어내린 뒤, 전력을 다해 돌풍을 시전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묵직한 충격. 하늘 높이 솟아오른 베르덴의 눈에 빌셴이 비쳤다.

“잡았다.”

<돌풍>

“어억?!”

언제 쫓아오나 지면을 내려다보고 있던 빌셴이 거센 바람에 휘말렸다.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친 그는 임기응변으로 가까스로 땅에 처박히는 건 피해 냈다.

마법으로 낙하 속도를 줄여 착지한 베르덴. 빌셴이 황당하다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요즘 아카데미에선 마법을 그렇게 가르치나? 무슨 마법을 그렇게 무식하게─”

<스톤 볼트>

“이런 미친놈이!”

타앙! 사람 머리만 한 바위가 빌셴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쳤다.

벌써 두 번째. 대답 대신에 마법을 날리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예의란 말인가.

이제 봐줄 생각은 없다.

입을 꾹 닫은 빌셴이 본격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콰과광! 쿠궁!

……주변 숲이 무너지고, 불타며 얼음에 뒤덮였다.

단 한 수에 끝날 수도 있는 것이 마법전이었으나, 베르덴과 빌셴의 실력 차는 엇비슷했다. 아니, 빌셴이 위계상 좀 더 앞섰으나 베르덴은 그 격차를 마력량으로 메우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전투의 피로감에 베르덴의 턱 끝에 땀방울이 맺혔다.

“얼굴이 굳었군. 슬슬 한계인가?”

빌셴이 이죽거렸지만 사실 그 또한 여유는 없었다. 마력이 부족해지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고 모험가 생활을 통해 3위계에 이른 지 수년이 지난 지금. 한낱 2위계의 애송이와 호각을 이룰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마력량이지?’

진즉에 마력이 고갈되었어야 정상이거늘.

어쩌면 자신보다도 많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 하지만 이제 아무 상관 없다. 곧 놈은 죽을 테니까.

“…….”

베르덴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새어 나왔다.

로브 끝에는 서리가 맺혔으며, 피부로 느껴지는 한기에 몸이 떨렸다. 앞으로 향하고 있던 손이 이내 축 늘어졌다.

그 모습에 빌셴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아이스 스피어>

극도의 한기를 담은 얼음의 송곳.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베르덴에게서 움직임은 없었다.

이겼다.

빌셴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런데 그 순간, 고개를 든 베르덴의 눈이 퍼렇게 빛났다.

<어스 스피어>

쨍강! 마법이 박살 났다. 노을에 반사된 얼음 조각이 하얗게 빛났다. 눈을 부릅뜬 빌셴이 반사적으로 얼음의 벽을 세웠다.

────카앙!

벽을 관통한 날카로운 첨단이 빌셴의 코앞에 멈춰 섰다. 동시에 그의 사고도 정지했다.

‘3위계……?’

놈은 분명 2위계일 텐데?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머리가 터져 죽었을 거라는 사실 또한 빌셴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때, 그의 발밑이 꿈틀거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날아오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어스본>

지면에서 솟아난 가시들이 빌셴의 다리를 꿰뚫었다.

“끄아아아아악!”

뼈가 부러지고 살이 뜯겨 나간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심한 통증에 비명을 내질렀다. 구축하고 있던 마력이 중심을 잃으며 얼음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너머에 있는 베르덴. 그의 손에는 빌셴과 같은 한기가 맴돌고 있었다.

툭. 지팡이가 핏물 위에 떨어졌다. 빌셴이 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3위계에다가 4속성이라고……? 설마 처음부터 나를 속여─”

역시, 대답은 같았다.

<아이스 스피어>

콰직! 냉혹한 한기가 빌셴의 심장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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