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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6화 (6/366)
  • 6화 첫 전투 (2)

    베르덴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마법적 지식이 잠들어 있다.

    하지만 보헤미른 마탑 소속답게, 어디까지나 주류는 원소 계열이었다.

    남들처럼 높은 위계를 다룰 수도 없었기에, 마력회로는 어느 한쪽 속성으로 치우치는 일도 없었다.

    그와 더해서 역천. 한계가 사라진 육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태생적인 위계의 한계와 속성의 제한은 더 이상 베르덴을 구속할 수 없다.

    활활 타오르는 숲. 고블린과 오크의 고성이 귓가를 울렸다.

    <윈드 커터>

    고블린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넘어진 녀석은 뒤이어 달려오는 오크에게 밟혀 죽었다.

    사방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아인종들을 보며 베르덴은 침착하게 사고했다.

    오크는 사람 하나쯤은 쉽게 곤죽을 만들 수 있지만, 둔하고 무모하다. 고블린은 수에 의존하는 겁쟁이고. 그런데 놈들에게선 광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말이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군.’

    그러나 결코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충격파>

    마력의 파동이 주위를 휩쓸었다. 지척에 있던 고블린들은 눈과 고막이 터지며 아우성쳤고 오크들은 비틀거렸다.

    <다중 마력 화살>

    쏟아 넣는 마력은 최대로.

    여덟 개의 푸른 화살이 빗발치며 오크들의 몸체에 박혔다. 가죽이 두꺼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지만 꽤나 화가 났겠지.

    이빨을 드러낸 놈들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다시금 베르덴에게 돌진했다.

    ‘역시 단순해.’

    <토벽>

    퍼억! 광대 오크의 주먹이 흙벽에 처박혔다.

    고함을 지른 녀석이 힘으로 벽을 무너뜨렸지만, 그 뒤에 있어야 할 베르덴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두꺼운 벽 위에 올라서 있던 베르덴.

    그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인종들을 보며 마력을 전개했다.

    <다중 화염 화살>

    <돌풍>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

    시전하는 마법을 완전히 이해하고 터득한 마법사만이 펼칠 수 있는 노력의 산물.

    원소를 이해하고 마력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다면, 두 가지 속성 이상을 하나로 합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 화력은, 기존의 위계를 넘어선다.

    원소 계열 합성 마법.

    <폭염의 화살>

    공기를 불태운 폭염의 화살들이 일제히 지면을 강타했다.

    콰광! 콰과광! 폭발에 집어삼켜진 고블린들은 바싹 타 버렸고,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오크들은 목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고열에 호흡기가 타 버린 것이다. 꺽꺽대며 격통 속에서 하나둘씩 움직임을 멈췄다.

    <어스 쉐러>

    쏘아져 나간 바위의 파편이 쓰러진 오크들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변수를 완전히 없애 버리기 위한 확인 사살이었다.

    그런 다음에서야 베르덴이 지면으로 내려왔다. 매캐한 연기와 역겨운 피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위에서 느껴진 것과 달리, 가까이서 보니 꽤나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걸 내가 한 건가.”

    베르덴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작게 웃었다.

    불과 며칠 전의 그였다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화력과 마력이 부족해 고작 오크 하나를 상대하는 데 사력을 다했겠지.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그는 마법사다운 재능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주 여유롭게 수십 마리의 아인종을 불태워 버렸다. 설령 이 두 배가 있었어도 위험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력량이 심장 속에서 고요히 술렁였다.

    당장이 이럴진대,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지 기대가 부풀었다.

    ‘적은 더 없는 것 같은데.’

    안전은 확보했다.

    방금 전 사람을 가뒀던 토벽을 해제하자, 숨구멍으로 전투의 광경을 지켜보던 콘라드가 눈을 껌벅였다.

    베르덴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 베르덴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 * *

    베르덴은 잡일에 능숙했다.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 궂은일까지.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벨린과 함께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어떻게든 마법사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거기엔 마차의 수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야, 도적에게 둘러싸이더니 용병은 도망치고 이상한 오크가 오지 않나. 거기서 겨우 빠져나오니 마차는 또 뒤집히고 다른 아인종들이 덮쳐 오지 않나……. 정말로 마법사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오크와 고블린의 한 끼 식사가 되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콘라드가 말고삐를 쥔 채 또 고개를 숙였다.

    목숨을 구해 줬을 뿐만 아니라, 마차의 수리까지 해 준 은인에게 내세울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그저 감사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전해졌음 하는 바람이었다.

    “……괜찮으니 앞이나 좀 보시죠.”

    다소 퉁명스러운 대답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

    ‘벌써 감사하다는 말만 일곱 번째야.’

    처음에야 좋았지만 계속 들으니 고문이 따로 없다.

    상인은 입담으로 먹고 산다는데. 그래서 지치지도 않는 걸까? 대답하는 베르덴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만 갔다.

    또 말할라,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 근방엔 도적이 자주 출몰하는 편입니까? 그런 것치곤 아인종 숫자가 예사롭지 않던데.”

    “아뇨, 몇 번이나 이 길을 다녔지만 오늘과 같은 일은 난생처음입니다. 도적 떼에 아인종 무리라니. 분명 파이테 영주님…… 아, 길을 잃었다고 하셨죠. 파이테 영주님은 여기 남작령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제가 그분과 친분이 좀 있어 이런저런 편지를 주고받는데 분명 도적 토벌을 마쳤다고, 조심히 오라고 연락을 받았지 뭡니까? 그래서 이참에 돈 좀 아낄까 싶어 값싼 용병들을 고용했는데…….”

    역시 말이 많다.

    그보다 이곳이 파이테 영지라면 설정해 둔 공간 좌표가 맞다는 뜻.

    ‘다행이군.’

    베르덴은 주요 키워드만 머릿속에 남겨 두고 사족은 한 귀로 흘렸다. 한바탕 울분을 쏟아 낸 콘라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마법사님?”

    “애셔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떠돌이 마법사, 애셔.

    변해 버린 잿빛 머리를 보고 생각해 낸 베르덴의 가명이다.

    육체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외모까지 바뀌었으니 그에 걸맞은 이름이 필요한 법.

    힘을 쌓기 전에는 애셔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생각이다. 혹시 모를 추적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 버리기 위해서.

    ‘애초에 단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워낙 멀기도 하니 절대로 찾지 못할 것이다.

    보헤미른 마탑에서 공국까지는 말이 대륙 절반이지, 전쟁이 일어났다거나 국가가 멸망했다는 정도의 소식이 아니면 전해지지도 않는 거리다.

    아무리 마법의 발달로 정보의 공유가 수월해졌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했다.

    모든 나라는 저마다의 폐쇄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베르덴은 계획을 짜기 전까지, 공국의 존재조차 몰랐었다. 그 정도로 멀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정보를 구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기도 했고.

    그렇기에 본명으로 활동해도 그의 이름이 닿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주의에 주의를 더할 필요가 있다.

    보다 완전한 성장을 위해서.

    ‘베르덴이란 이름을 쓰는 건, 보헤미른 마탑주와 그 측근들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을 때.’

    그때까진 철저히 자신을 숨길 생각이다.

    이미 가명에 어울리는 배경도 설정해 두었다.

    고아 출신으로, 고명한 스승님에게 주워져 제자로서 그리고 자식으로 산속에서 자라 왔다는 이야기.

    베르덴이 만들어 낸 거짓된 과거였다. 이게 타인이 가장 납득할 만한 배경이었으니까. 의심해 봤자 꼬리 잡힐 것도 하나 없었고.

    콘라드가 애셔란 이름을 몇 번 속으로 되뇌곤, 그에게 물었다.

    “아, 예. 애셔 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와 함께 영주님을 뵈러 가는 건 어떻습니까?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영주님과 나름 깊은 친분이 있습니다. 그런 제 목숨을 구해 주신 데다가 영주님이 주문하신 물건들까지 지켜 주셨으니 분명 사례를 해 주실 겁니다. 물론 제가 적극적으로 증언을 할 생각이기도 하고요.”

    ‘돈 받을 생각으로 한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준다고 하면 굳이 거절할 생각도 없다.

    베르덴은 잠시 고민했다.

    2위계에 불과한 지금, 귀족과 안면을 트는 건 이득이 될지 실이 될지 몰랐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파이테 영주는 꽤 인망이 두텁다고 했었지.’

    어떻게 할까.

    부족한 위계. 더해서 공국의 정치 관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에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귀찮은 정쟁에 말려들 수가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회이기도 해.’

    검사에게 검이 중요하듯, 마법사에겐 마법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마법을 강화해 줄 수 있는 게 마법 물품이다. 지극히 극단적인 예로, 마탑주의 컬렉션을 든 베르덴이 기습으로 3위계 마법사 두 명을 죽였을 정도니.

    당연하게도 마법이 부여된 물건들은 비싸다.

    그중 높은 성능을 지닌 것은 돈이 있어도 인맥이 없으면 볼 수도 없는 게 태반이다.

    그러니 적절한 거리만 유지한다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외지에서 평판 높은 귀족과 인연을 맺는 건 후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옆에 있는 말 많은 상인과도 그렇고.

    ‘어차피 곧 3위계에 이를 계획이기도 하니.’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콘라드에게 베르덴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급작스러운 방문이라 영주님께 실례가 되지 않을는지…….”

    “실례라뇨! 저 콘라드가 장담하는데 분명 환영하실 겁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마음 편히 지내시면 됩니다. 파이테 영주님은 아주 온화하시고 의리 넘치는 분이니까요. 귀찮은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예, 분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태생부터 상인 집안인 콘라드가의 가훈이다.

    그 속에는 은혜 또한 포함되어 있다. 하나뿐인 귀중한 목숨을 구해 줬으니 그에 걸맞은 값을 지불하는 것이 도리.

    하나,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떠돌이 마법사라니! 이건 잡아야 돼!’

    작금의 시대에 마법사에 대한 정보는 기본이다.

    그렇기에 콘라드는 솟아 나오는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일반적인 마법사는 3위계, 높아도 4위계 초급에서 여생을 끝마친다.

    설령 적성 검사에서 한계가 5위계라고 나온들, 그것이 성장이 빠르다는 것을 그리고 반드시 그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본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였다. 어지간한 재능이 아니고서야, 그 이상의 노력이 없으면 한계에 닿지 못하는 게 상식이다.

    콘라드가 베르덴의 외모를 슬쩍 봤다.

    ‘아무리 많이 쳐도 20대 중반…….’

    그렇게나 젊은데.

    불, 공기, 땅의 세 속성을 다룰뿐더러 마법의 위력조차 예사롭지 않다. 엄청난 화력으로 아인종 놈들을 단번에 불태워 버린 걸 보면…… 잘 모르긴 해도 최소 3위계가 아닐까? 여유로운 태도를 보면 4위계일 수도 있고.

    그렇다는 건 어느 고명한 마법사의 제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다.

    말 그대로 초신성.

    ‘연줄을 만들지 않으면 상인이 아니지!’

    이런 인재를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난 건 운명임이 틀림없다.

    어서, 어서 영주에게 가자.

    이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콘라드가 바쁘게 말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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