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5화 (5/366)

5화 첫 전투 (1)

리비안트 공국.

22년 전, 전쟁 막바지에 왕국의 리비안트 공작이 독립을 선언해 탄생한 국가다.

반란과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나 정작 당사자인 ‘에스티리아 왕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족의 이름으로 공국의 탄생을 축하했다.

많은 의혹이 생겨났으나 사람들은 마냥 좋아했다. 뭐든 간에 전쟁보단 평화가 더 좋았으니까.

벨디른 공화국과 에스티리아 왕국 사이에 자리한 공국.

그 중심인 리비안트 공왕은 적절한 중립 외교를 펼치며 국가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충분한 나라지.’

지리적으로도 좋다.

보헤미른 마탑과 멀면서도, 꿈을 가진 인재들이 모이는 장소. 1위계를 벗어나 2위계에 닿아 있는 베르덴이 성장하기엔 더할 나위가 없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실질적인 힘, 즉 실전.

재구성한 육체에 적응하고 전투 자체에 익숙해져야 하는 게 우선이다.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든, 그걸로 세상에 인정을 받든, 보다 강한 힘 앞에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마탑의 정점이란 천재성과 노력이 합쳐진 강대한 힘의 상징.

그런 괴물을 상대하려면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야 한다.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함을 쌓아 올려야 한다.

그것만이 마탑주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뚜둑!

생각에 잠겨 있던 중, 근처 풀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

한적한 길을 걷던 베르덴이 다리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작은 고블린 하나가 돌멩이를 쥔 채,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숨었다고 하기엔 조잡하지만.’

굳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다 보였다. 손을 내밀어 마법을 발동했다.

<윈드 커터>

쉬익! 불투명한 칼날이 날아갔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고블린의 목이 풀과 함께 잘려 나갔다. 뼈까지 절단할 위력은 아니었으나 치명적이었다.

“끼륵……!”

왈칵. 피가 뿜어져 나오며 쓰러졌다.

부들부들 떠는 고블린을 일별한 베르덴이 제 갈 길을 갔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니, 굳이 사체를 멀리 치울 필요는 없었다.

‘고블린이 대놓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마을이 좀 머나 본데.’

어렵게 지도를 구하기는 했으나 상세적인 지리는 모른다.

공간 이동의 좌표가 틀어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위계 마법사라면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수준으로 산속에 오래 머무는 건 가급적 피해야 했다.

‘식량이 다 떨어지기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작게 한숨을 쉰 베르덴이 속도를 높였다.

허약한 마법사와 달리 단련한 육체, 거기에 재구성까지 더한 몸이니 체력은 충분했다. 분배만 잘한다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겠지.

“……음?”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바닥에 나 있는 바퀴 자국을 발견했다. 거기다 크게 흠집이 난 나무뿌리까지.

상태로 보건대 최근에 생긴 흔적이다.

<마력감지>

곧바로 마력을 펼쳐 주변을 확인했다.

범위를 넓힐수록 마력 소모가 급증하지만 베르덴에겐 문제 될 게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생명체의 반응이 느껴지는 장소를 찾아냈다.

‘커다란 마차에 사람 하나. 나머지는 고블린과 오크인가.’

움직이는 걸 보니 사람은 아직 살아 있다.

마침 길을 자세히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현지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주변에 위험한 아인종도 없으니 구할 이유는 충분했다.

늦기 전에 서두르자.

발끝에 힘을 실은 베르덴이 마차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이런 시벌…….”

상인 콘라드는 마차를 둘러싼 도적들 탓에 골치 아파하고 있었다.

대화라도 통하면 적당히 통행료라도 쥐여 주겠건만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거한의 탐욕스러운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도적 토벌을 했다고 분명히 들었는데!’

그런데 이십 명 가까이 되는 도적이 대낮에 활보하고 있다니!

용병을 고용했으나 수적으로 많이 밀린다. 그렇다고 마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목숨도 중요하지만 이 마차에 파이테 영주가 주문한 물건이 가득 실려 있었으니까.

상인으로서의 자존심 문제였다.

입술을 깨문 콘라드가 거한에게 말했다.

“크흠. 대체 무슨 일로 저희 앞길을 막으시는지…….”

“보면 모르나? 당연히 도적질하려고 그런 거지.”

거한에 말에 도적들이 웃었다.

당장이라도 저 더러운 입들을 막고 싶지만, 상인의 덕목에는 인내심이란 게 있다.

콘라드가 품에서 적지 않은 돈을 꺼내 보였다.

“……지금 이 마차엔 여기 남작령을 다스리는 파이테 영주님의 물건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걸 가져가신다면 영주님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실 겁니다. 그러니 이걸 받고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상인으로서 귀족들을 몇 번이나 상대해 봤다. 한낱 도적놈들의 체면을 세워 주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다.

‘돌아가면 당장 영주에게 말해 토벌해 주마.’

인맥과 돈. 그것이 상인의 힘이다.

콘라드는 애써 두려움을 숨기는 척 연기를 했다, 상대가 더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게끔. 협상을 할 때, 종종 써먹는 기법이다.

거한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정말이십니까?”

“당연히 아니지. 대체 왜 내가 그런 아량을 베풀어야 하지? 그냥 다 죽이고 빼앗으면 쉬운 일인데.”

퉤! 손바닥에 침을 뱉은 거한이 커다란 벌목용 도끼를 잡았다. 다른 도적들도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야말로 야만적인 행태. 그리고 저급한 조롱에 성질이 뻗친 콘라드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뭐?”

“여기 남작령이야! 내가 파이테 영주랑 밥도 먹고, 목욕도 같이하는 사이라고! 그런데 그런 나를 털어먹으려 해! 정직하게 살지 못할망정! 이 개새끼들이, 모조리 참수해 줄까!”

이 세상에서 상인 노릇을 하려면 배짱 하나는 있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으름장에 도적들이 벙쪄 있는 동안 콘라드가 마차에 가까이 붙어 섰다. 마차는 무겁지만, 놈들에겐 말이 없으니 고용한 용병들이 시간만 끌어 준다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보다 빠르게 용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전까지는.

“어, 어디 가는 겁니까!”

“미안하오! 수가 적당히 많아야지! 돈 몇 푼에 목숨을 버릴 순 없잖소!”

도적들을 제친 용병들.

싼값에 구해 오긴 했지만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틈이 생겼다.

콘라드가 재빨리 마차에 올라타 말고삐를 세게 말아 쥐었다.

그 순간.

퍼억!

파육음과 함께 곤죽이 된 용병 하나가 날아왔다.

콘라드도, 도망치던 용병들도, 도적들도. 하나같이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시체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어어어어어어!]

오크.

그것도 입가가 귀까지 찢어진 소름 끼치는 오크.

그를 필두로 수십 마리의 고블린과 몇 오크가 나타났다. 예상하지 못했던 습격에 어느 누구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거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대체 뭐야?”

이 근방에 자리 잡은 지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저렇게 이상한 오크는 본 적이 없다. 수십 마리나 되는 아인종이 집단을 이룬 것도 그렇고.

하지만 뭐가 됐든 저 값비싼 물건을 실은 마차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저번에 토벌당한 도적의 수를 보충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도망쳤다가 두목에게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힘 좀 쓰는 수밖에. 고블린이야 뭐 숫자가 좀 많긴 해도 심심찮게 죽여 왔고, 오크 또한 덩치만 큰 굼벵이에 불과하다.

후딱 고블린을 처리하고 부하들과 함께 오크를 하나씩 사냥하면 되는 일이다.

“어, 어떻게 하죠?”

“마차나 못 가게 잡아. 되도록 오크는 피하고 고블린만 처리해.”

그렇게 말한 거한이 달려오는 고블린을 도륙하며 괴이한 오크에게 다가갔다.

“개씨발, 한탕 하는데 아인종 놈들이 방해나 하고.”

도끼를 옆으로 잡아당겨 오크의 머리를 겨냥했다.

아예 머리통을 부숴 버린다는 생각으로 힘껏 도끼를 올려쳤다. 팍! 육중한 손맛과 함께 피가 튀었다.

“어?”

막혔다. 아니, 잡혔다.

손아귀가 반으로 쩍 갈라졌지만 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잡아당겼다. 커다란 입이 거한의 어깨를 물었다.

까드득.

“으아! 으아아아아아아악!”

도끼를 놓고 주먹으로 오크의 얼굴을 연신 후려쳤다.

그런데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내 거한의 머리를 잡아당겨 목을 부러뜨린 오크가 입을 쩍 벌렸다. 뭉개진 고기와 피가 목 안으로 가득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갈라진 손이 제 모습을 되찾으며 한층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아인종 대부분 식인을 하나, 이런 식으로 인간을 산 채로 잡아먹는 오크는 없다.

그렇다는 건.

“트, 특수 개체……?”

일반적인 종의 진화에서 벗어난 특별한 존재.

통상적인 개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지녔으며 국가에서 우선적으로 토벌할 위험 인자다. 가방끈이 짧은 도적들조차 알 정도로.

거한의 죽음을 목격한 도적들이 삽시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주변에 있던 오크와 고블린들이 놈들을 쫓았다.

마차는 자유로워졌다.

“이, 이랴!”

고삐를 내려쳐 말을 재촉했다. 도적에 이어 오크의 특수 개체라니. 그것도 사람을 산 채로 씹어 먹는!

이토록 운이 없는 날이 또 있을까. 다음부터는 돈 아끼지 말고, 신용이 있는 용병을 고용하겠노라고 콘라드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디까지나 살아남는다면.

덜컥.

“아!”

마차 바퀴에 시체가 걸렸다. 중심을 잃은 마차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러나 콘라드는 마차를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능숙하게 말을 움직여 가까스로 넘어지는 걸 피해 냈다.

속도가 붙자 쫓아오는 아인종들이 급속히 멀어졌다.

완전히 추적을 따돌린 그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시발, 살았다!”

상행을 다니며 위험했던 적은 많았지만, 방금처럼 죽기 직전까지 몰린 건 처음이었다.

자신의 임기응변에 감탄하며 깊이 안도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 용병 새끼들. 영지에 도착하면 고발해 주마!’

빚을 잊지 않고 갚는 것 또한 상인의 덕목 중 하나.

아주 용병 자격을 박탈해 거리에 나앉게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아직 다른 생각을 하기엔 이르다.

지금 그가 마차를 몰고 있는 길은 지형이 평탄하지 않은 비포장도로였으니까.

그 사실을 콘라드는 잠시 간과했다.

콰직!

“아?”

중간에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바퀴 축이 틀어졌다.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 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옆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악!”

풀썩. 다행히 풀숲에 떨어져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이곳은 야생.

아까와는 다른 오크와 고블린 무리가 큰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콘라드를 둘러싼 놈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시시각각 다가왔다.

‘아니, 마을하고 거리가 얼마나 멀다고 아인종이 이렇게 많은 거야?!’

빌어먹을 모험가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다급하게 무기를 빼 들었지만, 가진 거라곤 고작 호신용 단검이 전부. 끔찍한 죽음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내 마지막이 아인종한테 뒈지는 거라니.”

헛웃음을 흘린 콘라드가 눈을 감았다.

점차 가까워지는 고블린의 울음소리에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공포에 질리며 죽음을 기다리던 그때, 잿빛의 남자가 나타났다.

<토벽>

흙으로 이뤄진 벽이 콘라드를 둥글게 감쌌다.

오크의 힘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지는 않으나 이후의 여파를 막기엔 충분하다.

‘숨구멍도 뚫어 놨으니 질식하지는 않겠지.’

후우. 심호흡을 한 베르덴이 아인종 무리를 바라봤다.

열다섯 마리가 넘는 고블린과 네 마리의 오크. 수많은 눈동자가 하나같이 베르덴을 향하고 있었다.

‘방금 잡은 고블린을 빼면 이게 첫 실전인가.’

문제는 없다. 새로 얻은 재능을 시험하기에 딱 적당한 숫자다.

베르덴이 회로에 마력을 전개했다.

경로를 따라 흐른 마력이 오른손 끝에 집중되었다.

<다중 화염 화살>

쏘아져 나간 다섯 개의 불꽃이 고블린들 사이에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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