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화 (3/366)

3화 역천 (3)

동력실로 향하는 통로는 삼중 보안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날 당직을 맡은 조장과 두 명의 조원. 그들의 마력을 장치에 인식하는 것이 열쇠다. 마탑주가 직접 설계한 터라 베르덴이 직접 수동으로 열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서두르자.’

시체에 아직 마력이 잔존해 있다.

베르덴은 두 마법사의 시체를 잡아끈 뒤, 각기 다른 인식표에 손을 올려 고정했다.

후우웅.

장치에 불이 들어오고 약 1분. 당직자의 마력을 인식한 보안 문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인지, 수십 년 전에 새겨졌었던 보안 마법진이 버티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

쿵! 통로엔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숨을 삼킨 베르덴이 조심히 발을 내디뎠다.

‘예상대로 아무것도 없다.’

동력원이 발산하는 마력은 그야말로 바다. 거대한 돌을 내던지든 물을 훔치든 바다에 어떤 영향도 갈 리 없다. 그것이 가진 완전함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마탑의 심장.

세계에 고작 10개밖에 없는 인류의 업적.

함정 따위 없어도 그만이다. 누가 침입하든 간에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마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그 자체로 안전한 것이 바로 동력원이다.

‘하지만 이론이 성공한다면…….’

절대적인 명제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지겠지.

베르덴이 마지막 관문에 다가섰다. 아쉽게도 조장의 마력은 구할 수 없었다. 4위계 마법사는 마탑주의 컬렉션이 있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래도 괜찮다. 이 문에 새겨진 마법진은 보물고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마탑주가 자신하는 마법진의 일종이었으니까.

가느다란 마력의 실을 뽑아낸 베르덴이 다시 눈을 감았다.

‘……찾았다.’

입구를 관통한 뒤, 조심스레 마법진을 관찰했다.

생소한 경로였으나 역시나 마탑주의 성향이 짙게 묻어 있다.

거만하면서 불안해하고, 위를 갈구하면서 누가 쫓아올까 아래를 내려다보는. 오만하고 질투심이 많은 성격.

마탑주가 쓴 논문과 연구 그리고 실생활을 관찰한 베르덴에겐 마탑주가 마법진의 약점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거기다 오래돼서 그런지 보물고에 있던 것보다 허술해.’

그러니 좀 더 과감하게 해도 좋겠지.

쿵…… 쿵…….

차츰 속도가 붙는다. 주저 없이 약한 벽을 차례차례 부수며 나아갈 때마다, 마법진이 점차 빛을 잃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마법진은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요추를 박살 낸 순간, 마법진이 깨지고 곧 육중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크읍?!”

틈새로 마력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순간 호흡이 멎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베르덴이 겨우 적응을 해내고 힘겹게 고개를 들자.

마탑의 지고한 심장이, 눈앞에 있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오는 데 7년. 그동안 뚜렷한 결과는 없이 오직 과정만을 되풀이하고 보완했다. 맨땅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나, 결국 성공했다.

사느냐, 죽느냐. 이 자리에서 결정된다.

베르덴은 한 발짝씩 동력원을 향해 다가갔다.

마법 이론에 대한 이해엔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동력원의 기술력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을 해석하고 이론을 창조해 냈다.

그렇기에 감히 성공의 유무를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툭. 옷을 벗었다. 몸 곳곳에 베르덴이 창조하고 직접 칼로 새겨 넣은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탑주가 새긴 마법진의 강제력이 발동하는 일은 없었다.

이건 자해가 아니라 오히려 살기 위해 한 행동이었으니. 마탑주가 간과한 것 중 하나다.

“후우…….”

베르덴이 깊게 심호흡을 했다.

바다와 같은 동력원의 마력을 견뎌 내려면, 최소한 바닷물이 들어올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마력회로를 활성화한 베르덴이 명치 부근에 새겨진 마법진을 향해 양 손바닥을 가리켰다.

“개신(開身).”

쩌적…… 쩌저적……!

발광하는 마법진에 따라 마력회로가 맥동한다. 강제적인 회로의 확장. 스태프의 도움 없이도 한계를 넘어 2위계 그리고 3위계의 하위에 다다랐다.

‘한계를 넘은 게 이건가.’

마력회로를 인위적으로 손대는 건 일종의 금기였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마법사로서의 파멸을 의미했으니까.

베르덴이 창조한 마법진, ‘역천(逆天)’.

역천의 지속 시간은 고작 10분.

10분 뒤에 마력회로는 파괴되어 마법을 다룰 수 없게 된다. 더해서 수명이 줄어들고 육체는 극단적으로 무너진다.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잠시나마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3위계.’

모든 걸 바쳐도 방금 전에 죽인 두 마법사에 준하는 힘밖에 얻지 못했다. 그것도 영구적인 것이 아닌 10분이라는 찰나의 시간밖에 쓸 수 없는.

베르덴은 자신의 재능을 비웃으며 두 번째 회로를 손에 쥐었다.

“허억……!”

역천과 스태프의 회로가 공명한다.

확장되어 있던 마력회로가 다시 한번 꿈틀거리며 한계의 한계를 벗어났다. 쩌저적. 전신의 피부가 버티지 못하고 갈라졌다. 틈새에서 푸른 마력의 빛이 새어 나왔다.

5위계.

마법의 법칙을 일부 벗어나, 깨달음을 통해 마도(魔道)의 길을 걷는 단계.

마법을 사용한 순간 흔적도 없이 터져 버리겠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회로의 격은 분명 5위계의 것이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베르덴은 극심한 고통을 인내하며 동력원에 연결된 선들을 바라봤다. 그중 최하층부로 마력을 보내는 선을 찾아 힘껏 뽑아냈다.

쿠구구구구!

길을 잃은 방대한 마력이 사방으로 흘러넘친다. 그 힘에 압도되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야만 했다.

눈을 꽉 감은 베르덴이 이내 망설임 없이 선의 연결부를 자신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마력의 해일이 거칠게 전신을 헤집는다. 연이어 확장했던 마력회로로도 감당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틈새가 벌어지며 육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어서…… 어서 쏟아 내야 돼!’

베르덴의 역할은 ‘다리’다. 스태프와 동력원을 연결해 주는 다리.

전신의 회로를 비틀어 마력을 스태프로 향하게 하자, 순수한 마력이 스태프 끝에 모여들었다.

퍼어엉! 그리고 터져 나왔다.

콰과과광! 순수한 마력의 격류가 동력원을 감싼 벽을 강타했다.

고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방벽이었으나 동력원이 내뿜는 무한한 마력을 견뎌 내는 건 불가능했다.

쩌적. 방벽에 한 줄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무너지면 안 돼.’

으득. 어금니를 깨문 베르덴이 스태프를 움직였다.

마력의 격류가 뒤늦게 따라왔지만, 결국 시간문제였다. 내구도가 한계에 다다르자 방벽에 수십 개의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이쯤 되면 마탑에서도 눈치챘겠지. 그렇다는 건 마탑주도 온다는 뜻이고.

어쩔 수 없다.

지금 베르덴의 마력회로는 동력원의 마력을 감당하고 있다. 터지지 않은 걸 보면 어느 정도 적응은 했다는 뜻. 속단이었으나 시간이 없다.

다리(Bridge)가 이어졌으면 다음은 순환(Circulation). 그로써 베르덴 자신이 동력원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쿠구구궁! 동력실이 무너진다. 옆으로 거대한 돌덩이가 내리꽂혔다. 베르덴은 서둘러 나머지 한 손으로 동력원의 선을 하나 붙잡았다.

‘이걸 스태프로 연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마력의 격류를 잠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버틸 수 있을까? 모른다. 자신을 믿고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는 수밖에. 숨을 들이켠 베르덴이 스태프의 마력회로를 억지로 닫았다.

“커억?!”

퍼억! 퍼억! 피가 터졌다. 한쪽 눈과 고막이 일순간에 폭발했고, 박살 난 장기의 조각이 목까지 치솟아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육체의 반 이상이 붕괴하면서 정신은 진즉에 날아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르덴의 몸은 움직였다.

철컥!

동력원과 연결된 스태프. 동력원의 일부가 된 베르덴.

……무너진 잔해 속에서 고요함이 흘렀다.

역천의 지속 시간이 끝났다. 본래라면 확장된 마력회로가 줄어들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베르덴의 몸에 흐르고 있는 무한한 마력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

잠시 후, 베르덴이 눈을 떴다. 남은 눈조차 실명된 것에 가까웠지만…… 보이고 느껴졌다.

마치 신이 된 것과 같은 충만함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무한한 마력의 빛이, 위계를 벗어난 압도적인 경지가.

동력원은 자아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마탑의 심장은 베르덴 자체였다.

남아 있는 두 손가락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육체는 너덜거렸지만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란 종을 초월한 것 같은 기분.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었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베르덴이 손짓하자 동력원의 마력이 따라 움직였다.

베르덴의 자아가 유일한 이상, 의지가 없는 무한의 마력은 베르덴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극히 한정되어 있지만.’

상관없다.

베르덴이 히죽 웃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역천. 그건 고작 마력회로를 확장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육체의 변화, 즉 ‘육체의 재구성’이다.

본래라면 불가능하지만, 그걸 뒤집을 마력이 베르덴에게 있다.

베르덴이 다시 한번 양 손바닥을 명치 부근에 향하게 했다. 전신에 새긴 모든 마법진이 발동되며 곧 육체 전체가 마력으로 뒤덮였다.

‘누군가 그랬지. 재능이란 건 하늘에 의해 정해진다고.’

사람들은 대부분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노력한다고 해도 재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또 믿었으니까. 그게 순리였으니까.

“하지만 난 아니야.”

화아악! 동력원의 마력이 활성화된다. 주위는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방벽의 잔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압력이 휘몰아쳤다.

그 중심에 푸른색의 태양이 있었다.

결코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순수한 마력의 집합체. 한 인간이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고 하늘에 대해 거역한 것을 의미하는 상징.

베르덴이 원하는 건 오직 하나다.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

“역천(逆天).”

번쩍! 태양이 폭발하며 마탑의 중심부를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 * *

마탑에서 경보가 울렸다. 반응을 보니 허락받지 않은 손님임이 분명했다.

오작동? 그럴 리가. 마법진 자체가 파괴될 정도의 마력에 노출된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겁도 없이 내 마탑을 침범하다니.”

보헤미른 마탑의 주인, ‘발로크 베시아스’가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한창 축제를 즐기며 자신의 마탑에 대한 위대함을 설파할 순간이었는데…….

“감히.”

이 세계에 몇 없는 7위계의 종주. 그에게서 흘러넘치는 마력의 기세에 주위 마법사들이 숨을 삼켰다.

“벼, 별일 없을 겁니다, 마탑주님.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맞습니다. 어느 누가 마탑주님의 마법진을 뚫을 수 있겠습니까? 분명 지금쯤 잿더미가 되었을 게 분명합니다.”

아부였지만 진실이기도 했다. 발로크의 마법진은 세계에서 인정받을 정도였으니까.

발로크가 코웃음을 한번 치곤 마법을 전개했다.

수십 명의 마법사가 달라붙어야 겨우 만들어 낼 수 있는, 그중에서도 여러 명을 단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다중 공간 이동.

그걸 고작 몇 분의 연산과 혼자만의 마력으로 펼치는 모습은 한 마탑의 주인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보라색 빛이 번쩍이자 발로크와 그의 측근들이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 건 보헤미른 마탑의 지척…….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이렇게나 거대한 마력이라니…….”

5위계 마법사조차 피부가 저릿하고 숨이 막힐 정도의 마력량이 마탑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발로크조차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멈춰 서 있었다.

‘내 마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곧바로 원인을 추적했다. 자신의 마법진 탓에 내부를 꿰뚫어 볼 수는 없어도, 마탑의 구조는 구석까지 훤히 꿰뚫고 있다.

천천히 마력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중심지를 파악했다.

“……동력원?”

설마. 말도 안 된다.

완전한 동력원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어떤 역사에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 이 정도의 마력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동력원이 유일했으니.

‘서둘러 잠재워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길지는 그조차 알 수가 없었다. 미지에 대한 공포. 자칫하면 마탑이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한 발을 내디딘 순간.

“아.”

화아아아악! 마탑의 중심부에서 터져 나온 마력의 해일이 주변 일대를 집어삼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