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역천 (2)
최초로 건설된 마탑을 기념하고 마법의 부흥을 기원하는 ‘마도축제’.
세계에서 유명한 기념일 중 하나로, 마탑들이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날이기도 하다.
마탑의 주인을 포함해 고위 마법사들이 대도시로 나가 자신이 소속된 마탑을 홍보하며 솜씨를 뽐낸다. 각기 다른 마탑의 마법사들이 화려한 마법으로 경쟁하며 볼거리를 만드니 너 나 할 거 없이 축제로 모여든다.
마탑에 남는 건 대부분 하위 마법사들뿐.
위험한 마법진들로 경비는 삼엄했으며 경보가 울리면 마탑주는 무슨 일이 생겨도 5분 내로 돌아올 수 있으니, 굳이 고위 마법사가 남을 필요가 없었다.
외부 침입에 대한 대비는 확실했다.
하지만 내부는 어떨까.
‘출발했군.’
베르덴은 입구 근처 연구실에서 청소를 하는 척, 떠나가는 마법사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계획에 큰 방해가 될 존재들은 확실히 사라졌다. 특히 마탑주.
여유는 있지만 느긋하게 있을 이유는 없다.
베르덴은 즉시 청소 도구를 집어 던지고, 상층부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경멸이 담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관리관의 방문을 두들겼다.
“베르덴입니다.”
3초의 침묵. 문을 열자 관리관은 방금 일어난 듯 눈가를 비비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허락한 적은 없는데.”
“죄송합니다. 마탑주께서 점심시간 전에 보물고를 청소하라고 하셔서…….”
“마탑주께서? 아니, 그렇다고 허락을 구할 잠깐의 시간도 없나? 쯧, 어째 갈수록 멍청해지는 것 같군. 이런 한심한 놈.”
베르덴은 관리관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놈은 강자한테는 비굴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강한 쓰레기. 통통하게 올라온 볼살만큼이나 심성이 고약했다.
‘그리고 뒷면에선 비공식 실험 재료의 총괄 관리를 맡고 있고.’
그 목록 안에는 베르덴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마탑 중층 이상의 마법사 대부분은 비공식 실험에 가담하고 있다. 전부 최소 3위계 이상으로, 각자 고향에선 나름 천재 소리를 듣는 자들이었으니.
그러나 아무리 수가 많아도 바깥으로 이야기가 새는 경우는 없었다.
마탑주의 최측근을 제외한 마법사들의 몸에는 하나같이 침묵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기밀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강제력인 것이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관리관이 금고에서 특별하게 세공된 열쇠를 가져왔다.
“항상 말하지만 절대 흠집 내지도, 분실하지도 마라. 뭐, 굳이 말 안 해도 마탑에 손해를 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는 있겠지만.”
“네, 관리관님.”
출입 대장에 서명을 한 뒤, 열쇠를 받고 방을 나섰다.
향하는 곳은 마탑 깊숙이 숨겨진 보물고. 엄중한 보안을 통과한 베르덴이 힘껏 거대한 문을 열었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갖가지 마법 물품. 그야말로 보물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굉장하군.’
가장 말단에 있는 물건조차 베르덴이 쳐다도 볼 수 없는 값어치를 지녔다.
그것보다 귀한 것이 수백 개. 중상위권에 위치한 마탑이 이럴진대 상위의 마탑은 무엇을 숨기고 있을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베르덴은 무심코 내민 손을 거두었다. 보관된 물건이 지정된 위치를 벗어나면 즉살(卽殺)이다. 허락된 건 어디까지나 바닥에 널린 잡스러운 것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을 위해 평생 쌓아 온 지식을 7년간 갈고닦았으니까.
베르덴은 어질러진 바닥에서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걸었다. 애초부터 청소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마탑주가 청소를 시켰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그의 목표는 마법진으로 봉인되어 감춰진 진짜들. 그중 우측에 진열된 스태프 앞에 다가섰다.
마탑주가 애지중지하는 컬렉션.
그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이 스태프는 천문학적인 거금을 들여 만들어 낸 인공 아티팩트(Artifact)의 일종으로, ‘두 번째 회로’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마법사는 저걸 잡는 순간, 위계가 달라진다.’
오른쪽 아래엔, 세계적인 감정사인 ‘레논 버나드’의 친필 사인과 함께 상세한 정보가 담긴 문서가 놓여 있었다.
★ 두 번째 회로.
최고위의 재료로 만들어진, 보헤미른 마탑이 발명한 인공 아티팩트. 원소 계열 마법사에 특화된 스태프로 재능 자체를 유형화한 물건이라 봐도 부족함이 없다. 어떤 마법사든 간에 동시에 세 개의 마법을 다룰 수 있게 해 주며 본인이 가진 재능 이상을 한시적으로 개화시키니, 그 위상은 고대 아티팩트와도 견줄 만하다.
⦁ 한계 위계 돌파
⦁ 트리플 캐스팅
⦁ 마법 시전 속도 증가(특)
⦁ 마력 한계 돌파
⦁ 원소 마법 위력 향상(특)
⦁ 원소 마법 범위 향상(특)
⦁ 크기 조절
⦁ 고위 은폐
⦁ 공간 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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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적으로 새겨진 마력회로가 부족한 재능을 받쳐 준다. 시전 속도도 빨라질 뿐만 아니라, 정해진 마법에 한계 이상의 마력을 담아낼 수 있다.
전반적인 원소 마법의 강화. 자유자재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은폐 또한 뛰어난 건 덤이고 더해서 수납까지.
저게 1위계 마법사인 베르덴의 손에 들어온다면, 단번에 3위계로 껑충 뛰어오른다. 마력량 자체는 변하지 않을지라도 계획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먼저 마법진을 완벽하게 파훼해야 한다. 무려 7위계에 다다른 마탑주의 자신작을.
‘삐끗하면 그대로 죽는다.’
베르덴은 식은땀을 닦아 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목숨이 걸렸다. 그렇지만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신이 그토록 자랑하던 마법진. 내가 박살 내 주지.”
이미 이론과 실험은 끝났다. 남은 건 실전뿐.
“후우.”
한차례 숨을 내쉰 베르덴이 눈을 감고 손끝에서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모든 감각을 실 끝에 집중하고 천천히 마법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구 다음은 좌측.’
좌. 좌. 직진. 우. 직진. 좌────
7년간 마법진을 틈틈이 관찰하고 몰래 견본까지 만들어 파훼법을 연구했다.
해석하는 데 4년, 파훼하는 데 2년. 나머지 1년 동안은 그 결과물을 수천 번이나 떠올리며 영혼에 각인했다.
어디로 가야 하며 무얼 해야 할지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다.
오랜 시간 마력의 실을 유지하며 움직이는 일은 쉽진 않았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해 이 분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극한의 효율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설령 상대가 마탑주라고 해도 자신 있을 정도로.
순조롭게 통로를 지나던 실이 첫 관문을 마주했다.
<마력폭발>
기초 마법 중 하나. 실 끝에서 자그만 마력이 폭발해 관문을 두드렸다. 치지직! 스파크가 일어나며 마법진이 맥동하다 이내 잠들었다.
직전의 충격으로 인해 관문의 일부가 손상되었다. 베르덴은 그 틈새를 파고들었고 관문을 천천히 갉아 냈다. 섬세한 움직임에 마법진이 발동할 듯 말 듯 요동쳤다.
사각사각──쩌적.
끝내 실이 관문을 관통했다.
후우웅…….
요추 중 하나가 파훼되자 마법진의 빛이 한층 옅어졌다.
‘두 번만 더 하면 돼.’
그러나 안심해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린 순간 마법진이 발동되어 베르덴을 지워 버릴 테니까.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어금니를 깨문 베르덴이 가파른 호흡을 억누르고 집중에 집중을 더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흘렀다.
‘이걸로 마지막!’
쿠웅!
마침내. 마법진이 무너졌다. 학회에서 극찬을 받았던 마탑주의 자랑이 유리처럼 박살 나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것도 그가 물건 보듯 했던 1위계 마법사에 의해서.
“허억. 허억…….”
바닥에 고인 땀. 아찔해진 정신을 겨우 붙잡고 스태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화아악! 스태프의 회로가 베르덴의 마력회로와 이어지며 전신을 휩싸는 전능감이 느껴졌다.
“이게 3위계…….”
높다. 도저히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게 로벨린의 눈높이인가. 과거와 현재의 베르덴에겐 절망스러운 격차가 느껴졌다.
하지만 미래는 다르다.
‘이론이 성공한다면 나도 얻을 수 있다.’
재능을 그리고 힘을.
지쳐 있던 베르덴의 눈빛이 다시금 살아났다.
* * *
핵심 아티팩트를 챙긴 베르덴이 다른 것들에 눈을 돌렸다.
저마다 다른 패턴의 마법진으로 보호되고 있었으나, 미리 선별해 두었던 보물들의 것은 완전한 해석을 끝낸 상태.
서둘러 봉인을 풀고 스태프의 수납 능력을 이용해 몰래 챙겨 넣었다.
이어 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흔적을 지운 베르덴은 축소한 스태프를 숨기고 보물고를 빠져나갔다.
그토록 철저한 보안도 스태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열쇠를 반납한 베르덴은 자신의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작은 주머니를 챙긴 뒤, 보물고에서 가져온 것들을 정해진 위치에 숨겨 두었다.
그러곤 배불리 점심식사를 마쳤다.
너무나도 태연한 행동에 그 어떤 누구도 베르덴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이따가 올 때, 볼만한 책 좀 가져와 봐라.”
“알겠습니다.”
다음 일과는 경비를 맡은 마법사의 보조. 그러니까 시중이다.
마탑의 중심으로, 마탑 전체를 활성화하고 있는 동력원의 관리실은 3위계 이상의 마법사 셋이 조를 짜서 하루를 담당한다.
거기선 마법이 엄금이라 제대로 된 연구도 못 하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담당을 제외한 시중 역을 한 명 뽑아 이런저런 심부름을 맡긴다.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아니지.’
왜냐하면 다음 일과가 마지막이 될 테니까.
열 권이 넘는 책을 가져온 베르덴이 동력원의 관리실로 들어갔다.
본래 세 명이 있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지키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다. 조장을 맡은 마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조원을 맡은 두 마법사는 베르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신세를 한탄했다.
“누구는 축제에 가는데 우리는 이런 곳에서 시간만 축내니 원…….”
“어쩔 수 없지. 제비뽑기에서 졌으니까.”
“그래서 잠자코 있는 것 아닌가. 마법으로 붙었으면 당연히 내가 뽑혔을 것을……. 에잇, 차가 식었군.”
촤아악. 식은 찻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치우는 건 언제나 시중의 몫. 이런 만행은 익숙하다.
번지지 않게 수건으로 덮은 베르덴이 재빨리 뜨거운 차를 우려냈다. 평소에 넣지 않던 것을 하나 추가해서.
정성스레 차를 따라 주자 마법사는 좋아라 하고 차를 입에 머금었다.
“음. 전보다 꽤 맛이 좋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놈은 연구원이 아니라 바리스타 같은 게 어울려. 자네도 마셔 볼 텐가?”
“아니. 나는 2위계 이하가 끓인 차는 마시지 않네.”
“하하하! 거, 평생 차 마실 일은 없겠군.”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내가 마탑주가 되어서 너에게 차를 내오라고 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뭐? 마탑주? 하하. 그래, 자네가 마탑주가 되면 평생 동안 옆에서 차를 끓여 주지.”
“그 말 잊지 말게.”
‘말투 참 꼴 보기 싫군.’
아직 40대에 들지도 않은 놈들이 늙은이 같은 고상한 말투라니. 베르덴과 로벨린은 특히 저런 부류를 혐오했다.
대부분 실력보다 겉멋이 더 우선인 놈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마탑주?
우습다. 자신의 앞길을 한 치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허황된 미래를 꿈꾸는 게 말이다.
“…….”
베르덴은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자 차를 마신 마법사가 꾸벅꾸벅 졸았다. 다른 하나는 책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도 베르덴을 경계하지 않았다.
‘때가 됐다.’
축소한 스태프를 다시금 원래대로 되돌렸다.
눈높이까지 올라온 ‘두 번째 회로’를 양손으로 붙잡은 뒤, 졸고 있는 마법사 뒤에 거리를 두고 섰다.
<마력집중>
총 세 번. 연달아 같은 마법을 발동해 모은 마력을 스태프 끝에 집중한다.
그러곤 힘껏 등 뒤로 당겼다.
꾸구국.
베르덴의 몸은 연구에만 몰두하는 일반 마법사와는 달랐다.
온갖 잡일로 단련이 되어 있으며 빗자루질엔 도가 텄다. 복수를 꿈꾼 이후부터 어쭙잖게나마 육체 또한 단련했다.
그런 베르덴에겐, 가만히 있는 호박을 때려 부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주저하지 않는다.’
눈에 깃든 살의.
마음을 다잡은 베르덴이 전력으로 스태프를 휘둘렀다.
뻐억!
졸고 있던 마법사의 뒤통수에서 끈적한 피가 터져 나왔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준비하지 않으면 3위계 마법사라고 해도 일격에 골로 갈 수 있다. 지금처럼.
“어억?! 이, 이게 뭐야?”
쿵! 머리가 반절 날아간 마법사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난데없이 튄 피에 당황하고 있던 동료 마법사가 베르덴과 시체를 번갈아 봤다.
“미친놈이!”
마법사답게 상황 판단이 빠르다.
베르덴에게 책을 집어 던진 마법사가 단숨에 마법을 발동했다.
<파도>
관리실의 천장까지 닿은 3위계의 물결이 베르덴을 향해 덮쳐 왔다.
저기에 휩쓸린다면 익사하거나 연이은 마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겠지.
그러나 이 상황은 이미 예상한 바다.
계획 내에 있는 마법사들의 성향은 전부 조사를 마쳤다. 어떤 속성을 다루며 그 마법을 다루는 전법까지도.
‘저놈은 파도로 덮친 뒤, 상대를 얼려 제압하는 게 특기.’
그렇다면 덮쳐지기 전에 끝내면 될 뿐이다.
마력이 회로를 따라 스태프에 맺혔다. 난생처음 쓰는 3위계의 마법이지만 이론은 완벽을 넘어 완전하다. 실패할 이유는 없다.
<어스 스피어>
날카로운 거대한 암석의 파편.
아티팩트로 강화된 그 관통력은 파도의 얇은 두께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방심한 술사까지도.
‘장점을 이용해 약점을 파훼하는 건 마법전의 기본.’
그걸 잊은 마법사는, 살아남을 자격이 없다.
“어?”
콰직! 파도를 관통한 암석 창이 마법사의 가슴을 뚫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특수 합금으로 이뤄진 벽에 큰 흠집을 내었다.
힘을 잃은 파도가 베르덴의 가슴께를 적시곤 사라졌다.
뒷걸음질 치다 이내 벽에 부딪힌 마법사는 얼빠진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이게…… 이런…….”
“그러게 사람을 적당히 가지고 놀았어야지. 너나, 마탑이나.”
베르덴이 마법사의 머리에 스태프를 겨누었다.
<어스 쉐러>
퍼버벅! 주먹만 한 암석 조각들이 마법사의 머리를 분쇄했다.
사방으로 튄 피. 베르덴이 손으로 얼굴에 묻은 피와 땀을 훔쳐 바닥에 털어 냈다.
“후우…….”
1위계의 마력량으로 연달아 3위계와 2위계의 마법을 사용한 터라 부담은 컸지만, 예상한 것 이상으로 좋은 결과다. 홀로 3위계의 마법사 두 명을 죽였으니.
‘살인이라…….’
손이 떨렸지만 딱히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이 두 놈은 지난 몇 년간 자신에게 인체 실험을 감행한 놈들 중 하나였으니까. 오히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마탑의 동력원.
계획의 목적지가 코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