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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화. 후폭풍 (301/367)


301화. 후폭풍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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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너희와 있는 게 최고다.”

클라인은 화장대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요 몇 주 푹 쉰 덕분에 피부가 이전처럼 윤이 나고 있었다.

일전의 다가 공작 감금 사건은 그가 태어나서 겪은 가장 위험하고 커다란 사건이었다.

헤움과 하이신스가 황좌를 사이에 두고 다툰 사건도 컸지만, 그 일로 클라인이 감금되어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평소보다 조용히 있어야 했을 뿐.

하지만 이번 사건은 너무 치명적이었고 클라인에게도 여러 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하이신스를 생각하면 여전히 괴로웠지만, 클라인은 낮에는 억지로라도 그 일을 계속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밤에 침대에 혼자 누워 있으면 어차피 몇 시간은 내내 그 생각을 하면서 뒤척여야 하니까.

잠시 주춤하는가 싶던 클라인이 다시 거울을 보면서 웃기 시작하자, 바닐은 덩달아 초조해졌다가 얼른 좋은 소리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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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황자님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이젠 황자님이랑 지내는 게 익숙해져 버렸나 봐요.”

악시안은 차마 빈말로도 아부는 못 하겠는지 머뭇거리다가, 화제를 아예 돌리는 쪽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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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신단은 정말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 체력 한다 생각했지만 그자들은…….”

좀 좋게 좋게 분위기 좀 맞춰 주지. 바닐은 악시안의 행태가 불만스러워 반박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사실인지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흑사신단 용병들은 ‘흑’ 자를 빼도 될 정도의 괴물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존 활동을 극도로 최소화해 활동하면서도 악시안보다 힘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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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황자님, 그 용병들은 아예 쉬질 않더라니까요? 그런 괴물들의 대장이 칼라인인 거잖아요. 그자도 웬만하면 안 엮이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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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이 먼저 시비만 안 건다면 안 엮이지.”

악시안이 결국 1분을 넘기지 못하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자, 클라인은 발끈해서 째려보았지만, 곧 시원스레 넘겨 버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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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엮일 거다. 난 이제 사소한 데 신경 쓰지 않아. 큰 목표를 두고 달려가며 여기 생활을 즐겨야지. 이런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소중한 거거든. 필요 없는 일엔 화내면서 진을 빼지 않아.”

바닐과 악시안은 놀라서 클라인을 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뒤끝 없는 클라인을 보는 게 처음이었다.

누군가 문을 노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들은 10분 정도는 더 놀라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문을 노크하고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클라인은 누가 온 건지 알아차리고서 바닐에게 눈짓했다.

시선을 받은 바닐은 얼른 문으로 걸어가 열어주었다.

들어온 사람은 라틸의 비서 중 하나로, 클라인에게 포섭되어서 여러 가지 필요한 소식을 전해 주는 이였다.

클라인은 화장대에서 돌아앉으며 바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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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슨 소식이 있나?”

위험한 정보를 주고받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끈은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은 법이라, 저 비서는 꼭 전해야 할 정보가 있을 때만 다녀갔다.

비서가 직접 왔다는 건 그만큼 급한 소식이 있단 뜻이니, 클라인이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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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새 후궁이 들어온답니다, 황자님.”

클라인은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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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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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후궁이요. 온실을 통째로 주실 거라 하셔서 내일 즈음부터 공사에 들어갈 겁니다.”

클라인은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 늦은 박자가 더 위태롭게 여겨져서, 바닐과 악시안은 걱정스레 클라인을 보았다.

잠시 뒤. 머릿속이 진정된 건지 마침내 클라인이 벌떡 일어나며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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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또 어떤 새끼야! 또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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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비서는 겁먹어 움츠렸으나, 클라인은 비서 옆을 그대로 지나가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얼결에 따라 나간 비서는 클라인이 하렘 밖으로 걸어가는 걸 보자 자신은 얼른 다른 방향으로 피했다.

클라인은 씩씩거리면서 본궁을 향해 계속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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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이제 평화롭게 사신다면서요.”

바닐이 뒤를 쫓아가며 다급히 불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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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전쟁이다. 무슨 소리야?”

클라인은 가치관이 5분 만에 송두리째 바뀌어 있었다.

본궁 앞까지 순식간에 와서 계단을 오르는 클라인을 막은 건 악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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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잠시만.”

악시안이 붙잡자 클라인은 이를 내밀며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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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 마라. 패대기칠지도 몰라.”

그래도 악시안은 클라인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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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로 가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업무 중에 방해하면 폐하께서 싫어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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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움츠려 있던 바닐도 얼른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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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 생각도요. 황자님, 이미 카리센 일로 많이 시간을 내셨는데 여기서 더 번거롭게 했다간…….”

황제 이야기가 나오자 클라인의 버둥거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닐과 악시안은 제발 황자가 진정하길 바라며 간절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보자 다가 공작에게 잡혔을 때의 일이 떠올라 클라인은 결국 짜증스럽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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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 알았다고!”

클라인이 확 돌아서 걸어가자 바닐과 악시안도 일단 안도하고서 얼른 따라갔다.

그러나 자기 방에 돌아와서도 클라인은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내내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는 식사도 굶고 방 안만 빙글빙글 돌면서 계속 시계를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공식 업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시 뛰어나갔다.

이번에는 바닐과 악시안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저 황제가 클라인의 질투를 귀엽게 받아주기만을 바랄 뿐.

그런데 황제를 만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과 먼저 부딪쳤다.

라틸의 방으로 가고 있는데, 뜻밖에도 다른 방향에서 라나문이 오고 있던 것이다.

두 개의 길이 맞닿는 지점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말없이 눈인사만 하고 자기들 갈 길을 갔으나, 계속 방향이 같다 싶더니 결국 라틸의 방 앞에서 또 마주치고 말았다.

사실 진즉에 목적지가 같다는 건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복도의 끝에는 라틸의 방과 시녀들의 방, 근위기사들의 대기실 정도뿐이니까.

그래도 설마 설마 하면서 계속 걸어갔는데 빼도 박도 못하고 방앞에서 마주치자, 두 후궁은 우뚝 멈춰 서서 서로를 불과 물처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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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왜 여기 있지?”

열이 받은 클라인은 불이었고 차갑게 가라앉은 라나문은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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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인을 보러 오는데 무슨 상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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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인? 무슨 소리야, 내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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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라. 임시후궁인 황자님보단 정식후궁인 제 쪽이 그 호칭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요.”

발끈한 클라인은 라나문의 얄밉게 아름다운 눈동자를 노려보다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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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폐하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나중에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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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긴히 나눌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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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해라. 내가 먼저 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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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도착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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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다리가 너보다 기니까 먼저 도착한 건 나나 다름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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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짧은 건 대어 봐야 안다지만, 안 대어 봐도 보이는 게 있지요. 그게 황자님과 제 다리 길이입니다. 무모한 말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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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빙 돌려 꼬아대는 건 여전하구나. 하긴. 귀족 출신들은 그런 거 잘하지. 돌려 말하는 거. 직접 말할 용기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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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은 예절과 용기를 구분하지 못하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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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쉴 새도 없이 주고받는 말들에 뒤에 선 시종들의 표정만 점점 어두워졌다.

하지만 두 후궁은 조금도 비킬 마음이 없는 듯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라나문은 차가운 성격이지만 자존심이라면 클라인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덜하지 않았다.

상대하기 싫어서 넘어가 주는 게 있고 물러서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라나문이 생각하기엔 지금은 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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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은 폐하께서 새 후궁을 들이는 일로 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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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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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라면 돌아가시지요. 황자님은 말을 못 하니 폐하의 언변에 바로 넘어갈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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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보라고!”

그때 라틸은 다가 공작과 대신관, 게스타를 어떻게 만나게 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잠겨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다 라나문과 클라인이 만들어내는 소란에, 라틸은 마지막 계단에 한 걸음을 건 채 멈추어 섰다.

소란스러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라틸은 힘들이지 않고 두 후궁이 자기 방 앞에서 싸워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걸 본 라틸의 눈동자는 커다래졌고, 가장 위쪽 계단에 올려두었던 발은 쓱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서 라틸이 올라오던 자세 그대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자, 서넛은 덩달아 뒤로 가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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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어디 가십니까?”

라틸이 작게 ‘쉿 쉿’ 하고 수신호를 하자 서넛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이라, 라틸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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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넛 경 귀에도 들렸을 거 아닙니까. 그럼 내가 왜 도망가는지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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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갈 일을 안 하셨으면 좋으셨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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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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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들이 가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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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들을 편드시겠다? 내 나이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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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폐하를 지키는 사람이지, 무조건 폐하가 옳다 편들지 않습니다. 전 간신이 아니니까요.”

라틸은 서넛을 째려보면서도 계속해서 몸을 뒤로 빼다가, 마침내 계단 두 개를 내려오자 얼른 몸을 돌려 다른 쪽 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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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짜로 어디 가십니까?”

서넛이 쫓아가며 물었지만, 라틸은 단단히 골이 났는지 제대로 말해주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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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혀 보시지요 충신.”

라틸이 찾아간 곳은 지붕 위였다. 출입금지구역이라 출구 앞에 경비병들이 서 있었지만, 황제가 들어가겠다는데, 감히 막을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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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라.”

경비병들이 얼른 문을 열고 물러서자, 라틸은 지붕으로 나가 난간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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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합니다.”

걱정이 된 서넛이 따라오며 말렸지만, 라틸은 안 뛰어내릴 거라 말하고서는 난간을 잡고 위태로워 보이게 섰다.

그나마 가장 평평한 지붕을 밟고 서자 저녁 바람에 머리카락이 마구 날렸다.

라틸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모아서 쥐자 서넛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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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어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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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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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서넛은 검집에 걸어둔 끈을 빼내서 라틸에게 묶어주었다.

라틸은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있었으나, 서넛이 손가락을 움직여 머리카락 사이를 만져대자 느릿한 움직임에 괜히 어색해져서 눈을 굴렸다.

그러다 라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뱉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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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소식에 다들 싫어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라나문까지 바로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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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셨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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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은 어찌어찌 달랠 수 있겠는데. 라나문은…… 대하기 좀 어렵습니다.”

머리를 다 묶은 서넛이 잠시 주저하다가 손을 뒤로 뺐다.

라틸은 머리가 잘 묶였나 확인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손을 머리 뒤로 뻗다가, 아직 다 빠져나가지 못한 서넛과 손가락이 부딪쳤다.

라틸은 그러려니 했지만, 서넛이 손을 과하게 흠칫하는 바람에 얼결에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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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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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안 아픕니다.”

라틸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나문 이야기를 꺼내놓고 보니 정말로 걱정이었다.

라나문이랑 가까워져야 하는데. 이번 대적자가 자신에게 푹 빠지게 할 거라 선언까지 해 놓고서는 제대로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으니 영 신경 쓰였다.

아니, 이 와중에 새 후궁을 들이게 되었으니,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더 화나지 않았을까?

머리가 복잡해져서 라틸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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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일이 있나 봅니다, 주인.”

그러다 바로 앞에서 들려온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자, 라틸이 잡은 난간 맞은편에 칼라인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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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인!”

라틸은 기겁해서 그를 불렀다.

칼라인은 난간 바깥쪽으로 있었다. 그가 선 공간은 발바닥만큼 좁아서, 본인은 안정적으로 서 있지만 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게다가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카락이며 옷이 마구 날려서 더욱 불안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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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기 있어?”

얼른 칼라인의 손을 잡고 끌어주던 라틸은, 칼라인이 “새 후궁이 온단 소문이 있던데.”라고 말하자마자 놀라서 삐끗하고 말았다.

라틸이 휘청이자 손을 잡고 있던 칼라인이 더욱 위태롭게 흔들려서, 라틸은 기겁해서 눈이 커다래졌다.

다행히 칼라인은 한 손으로 난간을 잡아 균형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난간 너머의 라틸을 받쳐주었다.

본인은 조금도 놀란 기색이 아니었지만, 라틸은 순간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충격에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쳐다보자, 칼라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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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절 떠밀려다 실패하신 겁니까? 이 화제를 꺼내며 죽여 버리겠다, 이런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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