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가면의 장점과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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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가면의 장점과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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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가면의 장점과 단점
2022.12.25.
왜 여우 가면이 둘이지? 라틸은 숨을 죽이고서 똑같은 가면을 쓴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곧 머릿속에 기르골이 여우 가면의 지하성을 공격했던 일이 떠올랐다.
저런 정교한 가면을 하나만 가지고 있을 리 없으니, 그때 기르골이 예비 가면 같은 걸 하나 챙긴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왜 여우 가면이 둘일 수 있단 건가?
아니.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여우 가면과 함께 그 성에서 지낸 사람 누구라도 여우 가면 흉내를 낼 수 있다.
‘한패는 절대 아니야.’
저 분위기 좀 보라지. 누가 봐도 적대적인 분위기다. 표정이 반이나 가려졌는데도 그게 이 위쪽에서도 느껴진다.
그때. 여우 가면 하나가 씩 웃더니 다른 하나의 여우 가면을 휙 잡고서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
라틸은 놀라서 허리를 숙였으나, 가면이 벗겨진 여우 가면은 눈 깜짝할 사이 아예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라틸은 눈을 비볐으나, 여우 가면 하나는 이미 다른 가면을 가지고 달아났고, 다른 하나는 아예 사라져 있었다.
‘뭐 하는 작자들이야?’
그렇게 멍하게 있으려니, 이 모든 상황이 그저 기가 막히고 헛웃음만 났다.
“안녕 로드.”
그러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라틸은 깜짝 놀라 돌아섰다. 그곳에 진짜 여우 한 마리가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 저 아래에 있던 여우 가면이 어느새 라틸의 뒤에 있는 것이다.
라틸은 당황해서 아까 여우 가면이 있던 쪽과 지금 여우 가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우 가면 아래로 드러난 입꼬리가 재밌다는 듯 올라갔다.
라틸은 여우 가면의 손도 쳐다보았다. 여우 가면의 손은 빈손이었다.
라틸은 혼란스러워졌다. 상대 가면을 들고 달아난 쪽이라면 저 손에 여우 가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면을 뺏긴 쪽이라면 가면을 쓰고 여기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여우 가면은 자기 가면 딱 하나만 가지고 있다.
“아깐 못 볼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로드.”
여우 가면이 한숨을 섞어 중얼거리는 말에 라틸은 반사적으로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왜 둘이야?’라는 신호였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가면 두 개가 사라졌다 했더니. 누군가 가져가서 저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여우 가면은 라틸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서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라틸은 여전히 저 여우 가면이 진짜 여우 가면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
“절 보고 싶어 하셨다고요, 로드.”
그러나 라틸이 자신을 경계하건 말건 여우 가면은 태연히 묻기만 했다.
라틸은 힐긋 다시 베란다 아래를 곁눈질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얼마든지 물으시지요.”
“그 전에. 우리 첫 만남부터 얘기해 봐.”
“첫 만남?”
“가면 쓴 사람이 둘이었잖아. 네가 내가 찾는 가면이란 걸 어떻게 알겠어.”
여우 가면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태연히 말했다.
“제가 도와드렸지요.”
“구체적으로.”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로드.”
여우 가면이 속삭이던 말이 다시 들려오자 라틸은 그제야 경계심을 약간 누그러뜨렸다.
저 말이 맞다. 누가 가짜 흉내를 내든, 저런 말까지 따라 할 수는 없었다.
“맞아.”
라틸은 인정하고서 커튼을 슬쩍 들춰서 누군가 근처에 없나 확인했다.
다행히 이쪽으로는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라틸은 커튼을 도로 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목소리를 아까보다 더욱 낮추어 물었다.
“전에 틀라가 가짜 로드로 있을 때. 그 지하성을 준비한 게 너였다고 들었는데. 맞아?”
“예. 지금은 옮겼지만요. 아까운 일이죠. 정말 좋은 곳이었는데. 하지만 로드가 갈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어두웠거든요. 로드는 밝은 곳을 좋아하니까요.”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
라틸이 미심쩍게 쳐다보자 여우 가면이 자기 가면에 달린 탱탱한 수염을 손으로 튕기며 물었다.
“그걸 물어보려 했습니까, 로드?”
“아니. 아낙차에 대해 물어보려 했어.”
“아낙차. 가짜 로드의 모친.”
여우 가면이 미소 지었다.
“열정적이고 영리했지요.”
“혹시 아낙차가 지하성에 머물 때, 흑마법을 익혔어?”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다가 공작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었는데 죽었단 소식이 없어서. 대신 아낙차, 틀라 모자와 손을 잡은 거 같아. 두 가지 시기가 너무 절묘하게 맞으니 의심이 간다.”
“성에 있을 때 도서관을 자주 들락날락했습니다. 심심해서인가, 이것저것 공부해보려 시도했지요.”
여우 가면의 순순한 대답에 라틸은 아낙차와 다가 공작 연합에 관해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 라틸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아낙차의 흑마법 실력은 어느 정도야?”
“걸음마 정도죠.”
“별로란 거야? 다가 공작이 죽었다면, 아낙차가 깨울 수 없어?”
“당시 제가 봤을 땐 그 정도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아낙차는 아닌가? 라틸은 미간을 찡그렸으나 여우 가면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으니 실력이 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사이에 죽은 다가 공작을 깨울 정도로 실력이 늘려면…… 꽤 재능이 있어야 하겠지만요.”
라틸은 심장이 철렁했다. 적의 뛰어난 재주는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럼 아낙차든, 다른 흑마법사든 어쨌든 다가 공작과 한패라고 가정할 때 말이야.”
“네.”
“거기에 다른 흑마법사가 끼어들 수 있어?”
“끼어들다니요?”
“방해를 한다거나.”
여우 가면이 고개를 기우뚱하고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라틸이 머리를 들이밀자, 그의 수염이 뺨에 닿아 간지러웠다.
라틸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하다가, 여우 가면이 자신을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었다.
여우 가면은 그런 라틸은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흑마법에 대한 건 흑마법사에게 물어보면 될 겁니다, 로드.”
아래층에서 무언가 소리가 나자마자 여우 가면은 작별도 없이 사라졌다.
라틸은 잠시 놀라 우두커니 있다가 한숨을 내쉬고서 벽에 기대어 섰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자마자 다시 여우 가면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라틸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자 여우 가면은 빙그레 웃고서 당부했다.
“아까 본 게 있으니 잘 구분하시겠지만. 절 흉내 내려는 자가 있는 듯하니 조심해요, 로드.”
말을 마치자 그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라틸은 그가 서 있던 허공을 향해 손을 휘휘 저어보았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 * *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 같진 않았다. 말을 잘 하던데.
하지만 사람이 올 때마다 숨는 걸 보면 부끄러움이 많은 것도 같고?
근데 가면까지 쓰고서 왜 숨는 거지?
라틸은 게스타를 찾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2층에서 아래층을 샅샅이 보았기에, 라틸은 1층 홀로 가자마자 바로 게스타로 추정되는 가면을 찾아갔다.
구석에 박혀 있던 그 다람쥐 같은 사람.
라틸이 다가가자 그 사람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았다. 멀뚱히 쳐다보는 꼴이, 전혀 라틸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러라고 평소와 다르게 입었긴 하지만.
“이리 와.”
라틸이 손을 내밀며 지시하자 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그래. 얘기 좀 하자.”
라틸은 게스타가 겁이 많고 소심한 걸 알기에 일부러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손을 뻗자 다람쥐 같은 사람은 당황하면서도 손을 잡았다. 라틸은 그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로 가야 흑마법 얘기를 해도 괜찮을까.
‘빈 발코니를 찾아봐야겠네.’
역시 그쪽이 제일 적당한 것 같아. 결정을 내린 라틸은 그를 이끌고서 계단으로 걸어가자니, 칼라인이 라틸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가면을 써도 티가 났기에 알 수 있었다.
라틸은 그에게 손을 젓고서 게스타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가 빈 발코니를 찾아냈다.
가면을 써도 쑥스러운 건지 게스타는 라틸이 그를 발코니로 밀어 넣자 당황해서 허둥댔다.
라틸은 그를 안쪽에 집어넣고서 자신의 가면을 들어올려 얼굴을 보여 달랬다.
“나야. 그만 허둥대라.”
얼굴을 보자마자 게스타는 다행히 움직이던 걸 멈추었다.
“폐하……?”
하지만 멍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 이번에는 라틸이 커튼을 치려다 말고 굳었다. 뭐야 이 목소리?
게스타 목소리가 아니었다.
라틸은 굳어서 커튼 자락을 잡고 섰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상대는 아직 가면을 쓰고 있었다.
‘설마?’
라틸은 다가가서 한 손으로 그자의 가면을 들어올렸다. 드러난 얼굴은 조랭이떡이었다.
“너!”
라틸이 당황해 입을 벌리자, 윌랑 왕자는 수치스럽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고서 라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한탄하듯 내뱉었다.
“타리움의 폐하께선 용맹하지만 사내의 미색을 많이 보고, 잘생긴 사내라면 몇이든 다 가지고 싶어 하신다니. 이미 많은 후궁을 두셨는데도 저한테까지 손을 뻗치시는 겁니까?”
라틸은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가면을 놓아버렸다.
늘어났던 고무줄이 수축하며 윌랑 왕자의 얼굴에 찰싹 붙자 왕자가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라틸은 손을 내리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구석에 쪼그리고 있기에 당연히 게스타인 줄 알았더니. 이놈은 왜 또 여기 있는 거야?
“공부는? 공부는 어쩌고 여기 온 거냐?”
“제가 하루 스물네 시간 늘 공부만 하는 줄 아십니까?”
“해!”
“초대장이 왔습니다!”
“누가 너한테-.”
엄마가 보냈구나. 엄마한테 맡겼지. 라틸은 끙 소리를 냈다.
엄마는 당연히 초대장을 보냈을 것이다. 황궁에서 지내고 있는 외국 왕자 아닌가. 안 보내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이상하긴 한데…….
라틸은 한숨을 내쉬고서 팔짱을 끼고 윌랑 왕자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사람을 잘못 보고 데려왔다’라고 하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저 왕자가 아주 몹시 많이 민망해질 거다.
라틸은 저 조랭이떡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윌랑이 아직 카리센과 타리움 중 어느 쪽에 붙으려 할지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는데 먼저 척을 질 마음은 없었다.
결국 라틸은 왕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알리는 대신 못된 표정을 지으며 잔소리했다.
“너한테 손을 뻗치는 게 아니라, 네가 공부 안 하고 있으니 혼내러 온 거다.”
왕자는 황당해서 입을 쩍 벌리고 항의했다.
“폐하께서 제 공부를 왜 그렇게 신경 쓰시는데요?”
“우리나라에 유학 왔으니까. 우리나라에 유학 와놓고서 놀다가 돌아가면 우리나라의 체면이 깎이니까.”
실제로 타리움은 외국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가장 많이 유학을 오는 나라이니 아주 틀린 주장도 아니었다.
라틸은 항의하듯 쳐다보는 왕자에게,
“공부해. 놀지 말고. 당장 들어가서 공부해.”
단호하게 말한 다음 발코니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커다란 기둥에 기대어 서서 이쪽을 빤히 보고 있는 타시르였다.
가면을 아예 벗고 있는 타시르.
입꼬리 한쪽이 쭉 올라간 걸 보니 라틸이 실수로 엉뚱한 사람을 데려왔다가 무마하고 있단 걸 알아챈 게 분명했다.
민망해진 라틸은 괜히 타시르에게도 잔소리했다.
“가면은?”
타시르는 반대쪽 손으로 심플한 가면을 들어 보이고서 씩 웃었다.
“이러고 있어야 폐하가 찾아주실 듯해.”
가벼운 말투에 라틸은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웃음이 나왔다. 타시르는 늘 상대하는 이를 이렇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찾길 바랐느냐?”
라틸이 타시르 쪽으로 다가가며 묻자, 주위를 지나다니던 이들이 모두 둘을 힐긋거렸다.
둘 다 가면을 벗고 있으니 모두 황제와 후궁을 알아본 것이다.
“모두가 그럴 겁니다.”
“넌 날 어떻게 찾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