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치료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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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화. 치료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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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화. 치료법을 찾아서
2022.09.18.
타리움에 도착하자마자 라틸은 마차에서 하렘으로 곧장 뛰었다.
“어이쿠…… 우리 폐하께서 후궁들이 얼른 보고 싶으신가 보구먼.”
시종장은 라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대기하다가, 라틸이 하렘으로 가버리자 머쓱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뒤쪽의 마차에서 들것에 묶인 사람 넷이 나오자 시종장의 표정은 1차로 굳었고, 사절단 대표가 “하이신스 황제가 쓰러졌습니다.”라며 다가오자 완전히 얼었다.
“뭐라고?”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괜찮으신가?”
“대신관님이 하이신스 황제를 구할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고, 아마 그래서 뛰어가셨을 겁니다.”
시종장은 사절단들을 데리고 황급히 본궁 안으로 들어갔다.
“서넛 경은? 왜 안 보이지?”
“폐하께서 따로 명령을 내리셔서요. 도중에 어디로 갔습니다.”
서넛은 뱀파이어인 만큼 빠르게 타리움의 수도에 먼저 간 것이지만, 사절단들은 이런 사실까진 몰랐기에 이 정도로만 설명했다.
시종장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한탄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군.”
“시작은 아주 좋았습니다. 폐하와 라나문 님 모두 ‘대적자의 검’을 뽑으면서 다들 놀랐지요…….”
* * *
시종장이 사절단들에게 그간의 설명을 듣는 사이, 라틸은 당장 대신관부터 찾아갔다.
“폐하?”
대신관은 카리센에 간 라틸이 갑자기 달려 들어오자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얼굴이 환해졌다.
“네 덕에 몇 명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내 근육이. 예뻐.”
“예?”
라틸은 대신관을 잡고 양 뺨에 연달아 입을 맞춘 다음,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부터 바쁘게 물었다.
“좀비에 물렸는데 아직 좀비가 되진 않은 사람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네?”
대신관은 영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가능해?”
라틸이 거듭 묻자 대신관은 떨떠름해서 대답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카리센에서 일이 생겼다. 어떤 미친 새끼가 수프에 뭘 탔어. 그걸 먹고 우리 사절단 네 명이 좀비로 변해가. 하이신스 황제랑.”
“세상에!”
놀라는 소리는 뒤에서 백화가 낸 것이다. 그가 라틸이 왔단 소리에 차를 타서 가져오다가 뱉은 탄식이었다.
라틸은 소파에 앉았다. 백화는 가져온 카모마일 티를 라틸 앞에 놓아주며 물었다.
“그럼 다 죽었습니까?”
대신관은 왜 차를 시종인 구벨이 가져오지 않는가 싶어 어리둥절해졌으나, 일단 백화가 한 질문이 자신도 궁금했기에 입을 다물고 라틸을 보았다.
“대신관 부적을 가져다 대니 변화가 멈추었다. 하지만 변화가 멈추는 대신 다들 깨어나질 않아. 깊은 잠에 든 것처럼.”
백화가 대신관의 앞에도 찻잔을 놓아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대신관님?”
대신관은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해본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폐하. 일단 부적이랑 성수를 챙겨서 환자들에게 가보겠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 * *
“좀비에 물린 사람들은?”
라틸이 본궁 복도를 걸어가며 묻자, 카리센에서부터 쭉 라틸을 따라 온 근위병과 다른 근위병이 자연스럽게 교대해 서며 한 방향으로 손을 내밀었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백화는 대신관의 뒤에서 따라가며 그 모습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여기입니다.”
근위병은 본궁 안에 있긴 하지만 가장 외따로 떨어진 문 앞으로 걸어가 멈추어섰다.
만약을 대비해서인지 그 방 앞에는 경비병 열 명이 주르륵 서 있었다.
“궁의들도 가까운 방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혹시라도 나빠질 경우 달아나거나 투입되기 쉽도록요.”
“잘했다. 문을 열어라.”
라틸이 지시하자, 문의 양옆에 서 있던 경비병이 동시에 양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라틸은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의 중앙까지 걸어가며 보니, 내부에는 튼튼한 침상 네 개를 제외하면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움직임을 쉽게 하도록 다 치워둔 것 같았다.
침상은 좌우로 두 개씩 놓여 있고, 거기에 기절한 사절단들이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었다.
사절 한 명당 네 명씩 붙어 있던 병사들이 라틸을 보자 동시에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폐하.”
“수고가 많다.”
라틸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대신관을 돌아보았다.
“자이신. 할 수 있겠느냐?”
대신관은 파랗게 핏줄이 튀어나온 이들을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자신의 커다란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해보겠습니다.”
라틸은 순간 그에게 ‘때리진 말고’라고 말할 뻔했으나, 대신관이 치료하러 와서 당연히 환자를 때리진 않으리란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때리지 마’라고 하면 자신이 대신관을 모든 걸 주먹으로 해결하는 이상한 대신관으로 여긴단 티가 나니까.
그래. 저 주먹은…… 그러니까 그거겠지. 결의를 다짐하는 주먹.
“정화!”
“으악!”
그러나 생각을 거두자마자 대신관이 가장 가까이 있던 환자를 퍽 내리쳤고, 라틸은 예상한 것보다 더 짧게 외쳤다.
“예?”
대신관이 주먹을 여전히 꽉 쥔 채 라틸을 돌아보았다.
라틸은 당황해서 버럭 외쳤다.
“아직 사람이잖아! 왜 때리는 거야!”
“신성력을 최대한도로 불어넣어 봤습니다. 악한 기운이 빠져나가도록요. 외상만 입은 게 아니니까 충격이 깊숙이 뼈와 장기에까지 닿도록…….”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신관에게 얻어맞은 사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왈칵 튀어나왔다.
“거보세요. 저게 바로 악한 기운입니다.”
그걸 본 대신관은 활짝 웃으며 설명했고, 라틸은 쏙 들어간 환자의 심장 부근을 보며 목 뒤를 짚었다.
“세게 맞아서 입으로 피 토한 거잖아!”
분명 뼈가 부러졌음이 틀림없다. 라틸은 기가 막혀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근위병들 역시 라틸과 비슷한 반응이었으나, 라틸은 곧 이상한 장면을 발견했다.
“어?”
대신관이 내려친 부위 위주로 정말 파랗게 튀어나온 핏줄이 들어가고, 피부색이 푸르스름한 빛에서 혈색 도는 빛으로 돌아오고 있던 것이다.
“어어?”
이게 된다고?
라틸이 황당해서 그걸 보고 있자니, 백화가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뼈는 부러졌지만 딱 그 부분 좀비화는 치료됐군요. 얻는 것과 잃는 것이 같다니, 완벽한 균형이네요.”
이게 균형이라고? 라틸은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대신관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웃으며 라틸을 보았다.
“보십시오, 폐하! 신은 이처럼 완벽하십니다!”
“…….”
라틸은 주먹으로 맞은 부분과 그 주위로만 멀쩡해진, 하지만 뼈가 부러져서 심장 부근 형태가 좀 이상해진 환자를 내려다보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예? 어째서요?”
“사람이 되자마자 죽을 거 같아서.”
다행히 부러진 부위는 대신관이 바로 신성력으로 치유해 주었다.
라틸은 하이신스를 치료하러 가서 그를 두드려 때리는 대신관과, 경악해서 대신관을 잡으러 달려오는 카리센 근위병들을 떠올리자 머리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정말 다른 방법이 없다면 이렇게 해서라도 고쳐야 한단 건 알고 있었다. 다행히 치료 과정에서 다친 부분은 대신관이 바로 치료해주는 것 같으니.
‘일단…… 게스타한테 가서도 물어보자. 그래도 다행이다. 대신관이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
라틸은 성기사들은 대적자들과 한패로 활동한 반면, 역대 다른 대신관들은 그 싸움에 참전하지 않은 이유가 새삼 궁금해졌다.
대신관이 나서지 않아도 대적자가 승리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전에도 생각한 거지만…… 로드가 대신관의 적은 아닌 거 아닐까?
* * *
대신관이 좀 더 쓰러진 이들을 살펴보고 싶다고 해서, 라틸은 그를 두고 빠져나와 다시 하렘으로 걸어갔다. 게스타에게 가서 흑마법으로 좀비화를 막을 수는 없는지 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걸어가던 도중, 파란 물줄기가 쏟아지는 분수대 근처를 지날 즈음. 위급한 와중에도 이상한 걸 느끼고 돌아서서 물었다.
“왜 자꾸 따라오느냐?”
백화에게.
아까 백화가 따라올 때는 대신관 때문에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대신관이 환자들 곁에 남았는데도 백화가 따라오자 이제야 좀 이상하게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백화는 대수롭지 않은 듯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도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폐하.”
“그런가.”
“예.”
아닌데. 분명 따라오는 거 같았는데. 라틸은 고개를 기웃했으나, 백화도 대신관의 거처 근처에서 지내는 건 맞기에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이후 백화는 본인 말처럼 자기가 지내는 곳으로 갔고, 라틸은 게스타의 숙소를 찾아갔다.
흑마법사인 것과 성격이 조용한 건 그리 상관관계가 없는 듯, 게스타는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고 청초해 보였다.
“돌아온 당일에 저를 찾아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폐하.”
게다가 이렇게 나오자, 라틸은 ‘볼일 있어 왔는데’라고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라틸은 게스타와 얼결에 식사까지 같이 한 후에야 본론을 물어보았다.
“게스타.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절 네 명이 좀비로 변하다가 멈췄어.”
“들었어요……. 며칠 전에 서넛 경이 칼라인 님을 찾아왔는데 그때 들었어요…….”
역시 뱀파이어와 흑마법사는 한패구나. 라틸은 속으로 생각했으나, 이들은 적군이 아니라 이제 아군이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하기가 쉽겠다. 어때, 게스타? 좀비화가 진행되는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게스타는 쑥스러운 듯 라틸의 눈치를 살피다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건 힘들어요, 폐하.”
“아예 방법이 없어?”
게스타가 주저했다. 치료 방법은 없지만 생각나는 게 있는 듯해서, 라틸은 그의 팔을 잡고 살짝 흔들었다.
“말해봐라. 뭐든 좋으니까.”
“폐하께서 절 이상하게 생각하실까 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말해봐라.”
“식시귀로 만들 수는 있어요, 폐하……. 별로 제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지만요…….”
“식시귀는 시체가 깨어난 거잖아?”
“네…….”
“그들은 아직 살아 있는데?”
“네…….”
“그럼 일단 죽인 다음에 바꾼단 거지?”
“네에…….”
게스타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라틸은 “음.” 하고 중얼거리다가 난색을 보였다.
“그건 좀 곤란할 거 같다. 그래도 산 사절들을 어떻게 죽여. 그리고 식시귀도 그래. 이성이 있긴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고 살잖아.”
“시체를 먹는 거예요, 폐하.”
“어쨌든 몬스터인 거잖아.”
몰래 시체를 먹고 사람 흉내를 내면서 산다고 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식시귀인 걸 밝힐 수도 없었다. 어느 누가 자기 가족과 친구의 시체를 먹는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겠는가.
식시귀로 바꾸어 이전처럼 살게 한다 해도 여기에 흑마법사가 있단 걸 눈치 챈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식시귀와 흑마법사를 곁에 두고 있으면 ‘어둠의 제국’ 같은 이미지가 될 수도 있을 터. 기껏 로드인 걸 숨긴 효과가 없다.
하렘엔 뱀파이어와 흑마법사가 살고, 호수에는 피인어들과 이상한 것들이-.
“아, 게스타. 므라딤이 그러던데. 호수 안쪽에 뭐 이상한 게 물고기처럼 떠다닌대. 혹시 네…… 뭐, 그런 거야?”
“위험하지 않아요, 폐하. 달리 보관할 곳이 없어서 그냥 거기 뒀을 뿐이에요.”
“그게 대신관을 공격한 적이 있지 않아?”
“그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폐하.”
“네가 부리는 것들 아냐?”
“다는 아니에요. 그리고 혹시 옮기라는 말씀을 하실 거라면 좀 더 생각해주세요. 너무 먼 곳에 두면 나중에 위급한 상황이 올 때 폐하를 지킬 수 없잖아요…….”
피인어들의 수장인 므라딤도 그 이상한 것들이 적의 없이 그냥 흘러다니고 있다고 하긴 했다.
라틸은 잠시 생각하다가, 일단 그 부분은 나중에 좀 더 확인하기로 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 집무실로 간 다음 시종장에게 지시했다.
“사블레 후작. 대신관이 하이신스 황제를 치료할 방법을 찾아냈으니, 그쪽으로 우리가 가거나 그쪽에서 하이신스를 우리한테 데려오거나 하라고 전해줘요.”
“예? 찾았습니까?”
“아뇨, 아직. 근데 가는 날짜 있잖아요. 거기 도착할 즈음에 찾을 거 같아서.”
라틸은 좀 더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거기서 거절할지도 모르니까, 가는 길에 사람들한테 소문내면서 가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