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하이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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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화. 하이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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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화. 하이신스
2022.09.04.
아이니에겐 하이신스가 갔는데? 그런데 어떻게……?
“위에 위에! 하이신스! 네 형 있다, 네 형!”
라틸이 초조하게 말했다. 클라인은 놀라서 위를 쳐다보았다.
“형님이-.”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가 뛰어나갔고, 라틸도 소파를 뛰어넘어 훌쩍 따라갔다.
두 사람이 동시에 어딘가로 뛰어가자, 근처에 있던 카리센 경비병들과 타리움 근위병들이 덩달아 뛰었다.
“폐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클라인은 계단을 빠르게 뛰어가면서 라틸에게 물었다.
오자마자 엉망인 라틸의 방을 보고, 라틸은 바닥에 쏟아진 음식을 먹었냐 다그치고, 위층에선 뭔가 떨어지고 창문은 박살 나고.
심지어 그 소란이 일어나는 곳에 자기 형이 갔다고 하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영 모르겠는 눈치였다.
“누가 타리움 사람들의 수프에 뭘 탔다.”
“독이요?”
“독보다 심한 거.”
먹는 사람 입장에선 독이나 좀비 수프나 자기를 죽이는 건 같다지만, 이후 벌어질 일들은 천지 차였다.
독을 먹은 사람은 혼자 죽지만 좀비 수프를 먹은 사람은 좀비가 되어 다른 사람을 죽인다. 그 피해 규모가 훨씬 달랐다.
“범인이 누구든 미쳤어.”
“독보다 심한 게 뭔데요? 그걸 말해줘야지요.”
“좀비 수프.”
“예?”
“마시면 좀비가 되는 수프.”
“!”
“확실한 건 아냐. 겉으로 그랬던 거고. 중간에 대신관 부적을 갖다 대니까 변화가 멈추고 기절했거든.”
클라인이 조용해졌다. 라틸이 힐긋 옆을 보자 기가 막힌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다 보니 아예 말도 나오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지. 황당하겠지. 라틸은 속으로 혀를 찼다. 범인이 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랬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들에게도 큰 피해가 올 텐데, 그걸 감안하고 공격했단 거 아닌가.
“내가 황제가 되니 다들 긴장되나 보다.”
“네?”
“위대한 황제는 많은 견제를 받기 마련이지.”
“…….”
“대답, 클라인.”
“그럼요 그럼요.”
긴장을 풀기 위해 일부러 헛소리를 나누는 사이, 마침내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라틸은 몸을 옆으로 틀어 복도를 뛰어가면서 벽 여기저기에 튄 피를 보고 속으로 욕을 뱉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피가 튀었는데 아무도 없단 것 역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라틸은 잠시 미끄러질 뻔했다.
“!”
옆으로 확 쏠리는 몸을 커다란 손이 받쳐주었다.
“폐하. 괜찮습니까?”
곁에서 바짝 붙어 오던 클라인이었다.
“어. 그래.”
라틸은 그의 팔을 잡고 균형을 잡으며 아래를 보았다. 피가 튄 건 벽만이 아니었다. 바닥의 색이 어두워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아래 역시 끈적한 피가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조심해서 가야겠습니다.”
“그래야겠다.”
라틸은 신발 밑창을 피가 안 튄 카펫에 대고 직 문질렀다. 여기서부터는 무작정 뛰기도 애매한 구간이었다.
이후 속도를 좀 늦춰서 다시 이동했으나 안쪽에서 들려오는 ‘쾅’ ‘쾅’ 하는 소리와 작은 비명에, 라틸과 클라인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 황급히 다시 뛰었다.
그러나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라틸을 향해 검을 세게 휘둘렀다.
“!”
라틸은 자신의 검으로 그걸 막고서 옆을 튕겨 나간 이를 보았다. 좀비인가 싶었으나 사람이었다. 얼굴 여기저기에 피가 튄 근위병이 헉헉거리며 뒤로 밀려났다가 놀라서 묻고 있었다.
“타리움 황제?”
얼마나 놀랐던지 ‘폐하’라는 말까지 생략되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출입을 막고 있어서요!”
라틸은 대답 대신 정면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하이신스. 그가 탁자 위에 검을 쥐고 서 있고, 그 곁으로 근위병 몇이 기괴한 모양새로 있었다.
머리가 잘린 근위병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다리가 잘리거나 부러진 근위병은 바닥을 기어서도 이동하고 있어 몹시 기괴했다.
“하이신스!”
라틸이 놀라 부르는 순간. 하이신스가 이쪽을 보더니 눈이 커다래져 외쳤다.
“들어오지 마 라틸!”
무슨 뜻인지 알기도 전에 천장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라틸은 바닥을 구르면서 자신에게 달라붙은 걸 주먹으로 쳐서 떼내고 얼른 일어나 균형을 잡았다.
“저 사람?”
라틸에게 수프를 가져다준 카리센 하녀였다. 수프를 안 먹은 하녀가 왜 저 꼴인진 모르겠으나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라틸은 덤벼드는 하녀 좀비를 때려눕히고서 클라인을 보았다. 클라인은 검을 들고 근위병 좀비들과 싸우고 있었다.
왜 복도가 조용하나 했더니. 그나마 하녀 좀비와 근위병이 입구 부근을 막고 있어서 좀비들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일부는 나갔을지도 몰라.’
라틸은 넘어져도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하녀 좀비를 연달아 공격하면서 아이니를 찾았다.
“아이니 황후는?”
라틸은 하이신스 쪽으로 가서 그에게 몰려드는 좀비들을 같이 쳐냈다.
“검을 가지러 갔다. 대적자의 검인가 하는 그거.”
“여기 두는 거 아냐?”
“다가 공작이 가져갔어.”
“아니 그걸 왜?!”
버럭 묻자 하이신스가 얼굴을 구겼다.
“내가 준 게 아니니 모르지. 평소엔 황후 방에 뒀으니까.”
라틸은 자신의 다리를 물어뜯으려는 근위병 좀비의 머리를 뻥 걷어차면서 다급히 물었다.
“근데 그 검은 왜? 그 검이 있으면 뭐 효과가 있는 거야? 그건 왜 가지러 갔는데?”
“있길 바라야지.”
그래도 뭔가 명색이 대적자의 검이니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간 건가. 생각해보니 그럴듯해서, 라틸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머리를 드는 좀비들을 탱탱탱 두드려주었다.
그러다 한 번씩 라틸은 클라인을 보고서 안심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깽판을 칠 때부터 믿는 구석이 많으리란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클라인은 몸이 빠르고 반사신경이 대단했다.
게다가 남들은 좀비에게 몸이 안 닿으려고 최대한 길쭉한 물건을 들고 상대하는데. 클라인은 겁이 아예 없는 건지 검으로 베다가 안 되면 몸으로 박치기를 해서 날려버렸다.
“네 동생 세네.”
하이신스과 동선이 가까워졌을 무렵 라틸이 이걸 두고 감탄하자, 하이신스는 땀을 닦아 말고서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면 너한테 보내지도 않았다. 제 목숨은 누구보다 잘 챙길걸.”
“근데 창밖으론 뭐가 떨어진 거야?”
“좀비.”
“어…… 그러면 더 문제가 커질 텐데.”
“하체만 떨어진 거라 괜찮아.”
하이신스가 눈으로 상체만 남은 하인 좀비를 가리켰고, 라틸은 커튼 뒤쪽에 있어 못 보고 있던 그 좀비를 이제야 보고는 속이 울렁거려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문밖에서 “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하이신스가 안도해서 중얼거렸다.
아까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병사가 무조건 공격을 하더라니. 들어올 때는 저렇게 신호를 보내서 사람이 들어온단 표시를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문가를 지키던 병사가 달려드는 좀비를 떨쳐내고 황급히 문을 열자, 칼을 뽑아 들고 선 아이니가 보였다.
라틸은 안심했으나 그 뒤로 탐탁지 않은 인간도 보여서 도로 표정을 굳혔다. 하이신스도 작게 혀를 찼다.
“저 인간은 왜 온 거지.”
아이니의 뒤에는 다가 공작이 있던 것이다. 그의 호위들 역시.
그들은 방 안의 난장판을 보고서 뒤로 주춤 물러났지만, 아이니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황급히 그녀의 양옆으로 서서 지키려 했다.
라틸은 아이니가 검을 세워 드는 사이 다가 공작이 자신을 빠르게 흘겨보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걸 따질 때도 아니라 라틸은 덤벼드는 좀비를 발로 차면서 아이니에게 외쳤다.
“아이니 황후! 목을 베기 힘들면 심장을 찔러 봐요!”
목을 베는 건 훈련을 하지 않은 사람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웬만한 상처로는 계속 일어나는 좀비가 상대라면 더더욱.
그러니 아예 심장을 노려보라 조언한 것이다. 일반 검으로는 심장을 찔러도 소용없겠지만 그래도 대적자의 검은 혹시 모르니까.
아이이는 ‘쟤가 왜 여기 있지?’ 하는 눈으로 라틸을 보았으나,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을 치켜세웠다.
라틸은 숨을 조금 고르면서 그녀의 검이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
마침내 결연에 차 검을 쥔 아이니가 좀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을 채 다 휘두르기 전. 먼저 달려든 좀비 때문에 오히려 검이 튕겨 나가 버렸다.
‘저런 무슨!’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문제는 그 앞에 커다랗게 올라온 좀비의 손이었다. 무기를 놓치고 눈이 커다래진 그녀를, 다행히 옆에 서 있던 호위가 감싸고 바닥을 굴러 구해냈다.
놀랍게도 다가 공작은 그사이에 누구보다 재빠르게 검을 주우러 가 있었다.
‘저 인간은 또 왜 저렇게 날래?’
라틸은 아이니에게 다시 소리 질렀다.
“검을 쥐고 놓치지 마요! 부러지는 검 아니니까!”
사실 부러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단 이렇게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말이었다.
아이니는 라틸을 쳐다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그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 라틸은 안 되겠다 싶어서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검! 나한테 줘요.”
라틸은 의자를 건너뛰어 그쪽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검 안 뺏으니까 여기선 나한테 줘요.”
아이니는 질색을 했다.
“나는-!”
“그쪽은 검술을 안 배웠잖아요.”
라틸은 급하게 말하면서 아이니를 향해 덤비려는 좀비를 걷어차고 자신의 평범한 검으로 턱을 꿰뚫었다.
“아!”
아이니는 탄식을 뱉으며 뒤로 물러나며 소파 등받이를 집었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니 정도의 대처도 대단한 것이었다. 라틸의 말처럼 그녀는 검술을 배우지도, 그렇다고 다른 무술을 배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력과 잠재적인 능력만으로 여기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은 아예 좀비를 향해 아이니처럼 검을 휘두르는 시도도 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의 아이니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르골은 라틸이 문짝을 부술 정도로 강한 걸 보면서도 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니가 기르골의 훈련을 받는다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은 아니었다.
“자존심 싸움할 때 아니잖아요. 언제까지 문을 막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은 문을 닫아두고 있지만 곧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리면 사태는 더 커져요.”
“그건 괜찮아요. 오지 말라고, 오는 길에 명령은 내렸어요. 길목에 다들 서 있어요.”
다행히 대처는 어느 정도 하고 왔는지 아이니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라틸의 협상을 받아들였다.
“검을 맡길게요.”
그 모습에는 라틸에게 술을 건네면서 친구라고 소개해 줄 때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라틸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니는 다급히 다가 공작을 불렀다.
“아버지!”
그 사이에도 사방에선 술래잡기와 사냥을 섞어 둔 것 같은 모양새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버지! 검을 타리움 황제에게 줘요!”
그러나 다가 공작이 검을 주려 하지 않았다. 다가 공작은 검을 잡고서 고개를 젓더니 아이니에게 일갈했다.
“속지 마라, 아이니! 타리움 황제는 이걸 계기로 너한테서 검을 뺏어가려는 거다!”
“아버지!”
아이니가 버럭 외치자 다가 공작은 아이니에게 외쳤다.
“이쪽으로 와라! 속지 마! 저 여잔 대적자가 아냐! 너다! 네가 해야 한다!”
“아버지!”
라틸은 혀를 차고서 검을 가져가기 위해 직접 나섰다.
“오지 마!”
다가 공작이 당황해서 달아났지만 라틸은 덤벼드는 좀비의 등을 밟고서 그쪽으로 뛰어가 검을 뺏어 쥐었다.
그러고서 다가 공작을 향해 이를 들이미는 좀비를 베자 놀랍게도 검에 베인 좀비는 풀썩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신의 발치에 좀비가 쓰러지자 다가 공작이 뒤에서 작게 욕설을 뱉었다.
라틸은 화가 나서 검 손잡이로 다가 공작의 머리를 ‘빡’ 소리가 나게 때렸다.
“!”
놀란 다가 공작이 화를 내기도 전에 라틸은 얼른 근처의 다른 좀비를 벴다. 일단 끈질기게 일어나는 상대를 영구히 눕힐 수 있게 되자 사태는 빠르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라틸은 살아남은 병사들과 클라인, 하이신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끝도 없이 방 안을 날뛰며 돌아다니던 이들을 전부 다 쓰러뜨렸다.
“후. 하.”
라틸은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사태가 마무리되자 긴장감이 풀리면서 팔이 저릿저릿해졌다
“라틸!”
“폐하!”
하이신스와 클라인이 동시에 라틸에게 다가오자, 라틸은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내저으며 욱신거리는 허리를 폈다.
“괜찮아. 너무 뛰어서.”
그러고서 라틸은 타리움 근위병들과 클라인, 하이신스 등이 무사한 걸 보자 안심해서 웃었다.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
그 소리가 끝나는 순간. 하이신스가 옆으로 쿵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