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클라인은 참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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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화. 클라인은 참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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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화. 클라인은 참지 않아
2022.07.27.
“정화 작업을 어떻게 하는데?”
“사실 본격적으로 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부적이나 성수, 이런 걸 다 동원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음. 그렇구나.”
라틸은 당황해서 주저했다.
칼라인은 예전에 클라인이 가지고 있던 대신관의 부적을 훔친 적이 있었다. 그 성격에 그런 짓거리를 한 걸 보면, 대신관의 부적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대신관이 다친 칼라인과 서넛을 신성력으로 치료해주려 했을 때 둘 다 치료를 거부하지 않았던가.
‘어쩌지? 해야 하나?’
하지만 하자고 했다가 칼라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된다고 하자니, 그것도 이상하잖아.’
그렇지만 반대하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로드가 아닌 황제라면, 대신관의 이런 주장에 잘됐다며 하라고 시킬 것이다. 분명. 아니 오히려 권장하겠지.
라틸은 정말로 곤란해졌다. 정화 작업을 하지 말라고 하자니 자신이 이상해 보였고, 하라고 허락하자니 후궁의 반 정도는 쓸려나갈 것 같아 염려되었다.
“폐하?”
기르골이야 뭐 알아서 할 것 같고, 무엇보다 하렘에 있지도 않다. 피인어들도 호수 안에서 알아서 숨을 것 같으니…….
‘문제 되는 건 게스타와 칼라인인가. 견딜 수 있냐고 물어봐야겠다.’
“폐하?”
그 전엔 대답을 피해야지, 결정한 라틸은 작정하고서 일부러 대신관의 목덜미에 코를 묻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근육이. 좋은 냄새가 나는데.”
난데없는 애정행각에 대신관이 부끄러운지 얼굴이 벌겋게 되어 중얼거렸다.
“그, 그렇습니까?”
“왜 갑자기 이런 냄새가 나지?”
“실은 사용하는 입욕제를 바꿨습니다.”
“그래? 향 때문에 바꿨어?”
“그냥 다 써서 바꾼 거지만…….”
라틸은 그의 목덜미를 핥아 보았다. 대신관의 정신을 돌리기 위해 꺼낸 말인데. 이렇게 하자 진짜로 맛있는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특히 핏줄 있는 위주로 시원한 향이 유난히 짙었다. 라틸은 그쪽을 혀로 재차 핥았고, 대신관은 주먹을 쥐고 몸을 떨었다.
“손바닥 줘봐.”
라틸은 그 손동작을 발견하자, 그게 또 귀여워서 손을 요구했다.
“손바닥. 응?”
대신관이 어리둥절해서 손바닥을 주자, 라틸은 이번에는 그의 손바닥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이번에는 꽃향기 비슷한 게 올라왔다.
라틸은 그의 몸에서 나는 각양각색의 향기가 참 좋다고 생각했으나, 그 생각을 하자마자 흠칫했다.
보통은 몸 별로 각기 다른 향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손바닥에서 나는 냄새는 꽃향기에 가깝고, 목덜미에서 나는 향기는 맛있는 향이었다. 지금 손바닥에서 나는 이 좋은 향이 아니라.
그러나 목욕을 하면서 입욕제를 부위별로 쓸 리는 없었다. 그러면 목에서 나는 이 달콤한 향기는…….
‘피 냄새인가? 혹시 나, 피 냄새가 맛있게 느껴지는 건가?’
* * *
다음날.
라틸은 오전 업무가 끝나자마자 게스타와 칼라인을 불렀다.
그리고 시종에게 말해 방 주위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막은 후, 서로가 여기 오는지 몰랐단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둘에게 어제 일에 관해 물었다.
게스타는 쑥스러워하면서 대답했다.
“좀 더 작은 사이즈 새도 있어요, 폐하.”
‘몇 마리 있냐고 물어본 게 아닌데.’
라틸은 평소처럼 부끄러움이 많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게스타를 보자 어제 일이 환상처럼 여겨졌지만, 그래도 재차 확실히 물었다.
“게스타. 전에 네 정체가 뭔지 안 궁금하냐고 물었지. 이젠 그냥 말해주면 안 될까?”
다행히 어제 일로 이미 마음을 먹은 듯 게스타는 순순히 대답했다.
“마법사예요, 폐하.”
“한 글자 뺀 거 같은데.”
내내 조용하던 칼라인이 말을 조금 덧붙이기는 했지만,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피인어도 그렇고 흑마법사도 그렇고. 왜들 자기들 앞글자를 다 빼고 다니는 건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인?”
“그럼 칼라인 님도 앞으로 파이어라 하고 다니시던가요…….”
라틸은 칼라인과 게스타가 살짝 말다툼하는 걸 보며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스타는 흑마법사구나.
뱀파이어는 확실히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듣는 건 또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라틸은 아무리 봐도 흑마법사 티가 나지 않는 게스타를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물었다.
“그럼 혹시 네가 좀비…… 같은 걸 만들고 그래?”
게스타는 딱 잘라서 부정했다.
“좀비는 몬스터예요, 폐하. 흑마법사들과 관련 없어요.”
“카리센에 있을 때. 식시귀가 된 거기 황자가 좀비들이랑 같이 나타났는데.”
“둘 다 시체이니 서로 공격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좀비는 이성이 없어서, 한패가 되고 뭐고 할 수 없어요. 폐하.”
“로드 편 아니었어?”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좀비는 누구 편도 아니에요. 하지만 좀비가 노리는 건 사람들이니까, 사람들이 보기엔 뱀파이어나 좀비나 마찬가지겠죠.”
이윽고 게스타는 주저하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폐하. 전 처음부터 흑마법사가 되려던 게 아니에요. 책 읽는 걸 좋아하고 학문을 좋아하다니 보니 빠진 거예요…….”
그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칼라인은 게스타의 말에 아주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게스타가 ‘마법사’라고 했을 때는 바로 ‘흑마법사’라고 정정해준 반면, 이번에는 그런 정정은 없었다.
‘진짜로 우연히 흑마법사가 된 건가?’
이것도 궁금했지만, 당장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기에 라틸은 다시 화제를 넘겨 대신관의 정화 작업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너희가 싸울 때 대신관이 어두운 기운을 느꼈다고, 하렘 안을 한번 정화하고 싶다던데. 괜찮겠어?”
일부러 ‘너희 때문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게스타는 별 반응 없이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 어두운 존재가 아니라 상관없어요, 폐하.”
반면 칼라인은 예상대로 주저하다 털어놓았다.
“저는 좀 곤란합니다.”
이후 라틸은 시종을 불러 므라딤을 불러오라 했으나, 시종은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 그냥 돌아왔다.
결국 라틸이 직접 호숫가로 찾아갔는데, 뭘 어떻게 한 건지 라틸이 호숫가에 가서 “므라딤?” 하고 부르자 대번에 므라딤이 나타났다.
라틸은 므라딤을 데리고 인적이 없는 곳에 가서, 그에게도 칼라인에게 한 것과 같은 질문을 했다.
‘어쩐지 면담하는 기분인데.’
하지만 므라딤은 게스타나 칼라인처럼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겠소. 그런 걸 받아본 적이 없어서 말이오.”
라틸은 대신관이 전에 선물해 준 부적을 슬쩍 꺼내며 물었다.
“이게 대신관이 만들어 준 부적이다. 한 번 대봐도 될까?”
“그러시오.”
므라딤이 흔쾌히 팔을 내밀었고, 라틸은 그 위에 슬쩍 부적을 가져다 대보았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므라딤의 다리가 눈 깜짝할 사이 갑자기 꼬리 지느러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아프진 않은지 므라딤은 본인도 놀라 탄성을 뱉었다.
“굉장하군.”
라틸 역시 놀라서 부적과 므라딤의 꼬리 지느러미를 번갈아 보았다.
신기했다. 대신관은 이 정도의 힘이 있는데, 왜 예전에는 대적자와 로드의 싸움에 굳이 나서지 않았던 걸까? 싸움이 벌어지는데도 나서지 않았다는 건…….
‘로드를 죽이는 게 대신관의 의무는 아닌 건가?’
그 사이, 므라딤은 몇 번 더 감탄하더니 자신의 꼬리 지느러미를 다시 사람의 다리 형태로 만들었다.
라틸은 무의식중에도 그 광경이 신기해서 멍하게 바라보다가, 뒤늦게 눈동자를 황급히 위로 올렸다.
하지만 인간들과는 가치관이 조금 다른 건지, 므라딤은 아무렇지 않게 주섬주섬 바지를 입으면서 태연히 제안했다.
“아픈 건 아니지만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니, 정화 작업인지 뭔지를 하는 동안 나는 동족들을 데리고 물 안에 숨어 있겠소.”
* * *
클라인은 라틸이 하렘에 들어왔단 소리를 듣고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나 웬만한 데에도 라틸이 보이지 않자, 그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 위주로 라틸을 찾아다녔다.
“그냥 본궁으로 가시는 게 빠를 텐데요, 전하.”
“이런 곳에 계신다면 혼자 있고 싶으시단 걸 텐데. 나중에 오시지요.”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순간도 있잖아. 그럴 때 일지도 몰라. 그럴 때 내가 나타나는 거지. 짠!”
클라인의 자신만만한 말에 악시안과 바닐은 서로를 쳐다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황제에 대한 클라인의 감정이 대체 어떤 형태인지,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제를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있냐면 그건 또 애매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황제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런데 황제에게 관심을 쏟는 건 본인이 더한 것 같고.
그러던 순간. 갑자기 클라인이 “윽.” 하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곧 바닐과 악시안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인어라던 므라딤이 아랫도리를 안 입은 채 황제와 마주 서서 대화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황제는 또 심각하게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고.
그걸 본 클라인은 치를 떨다가, 확 돌아서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저런 흉하고 망측하고 예의라곤 1g도 없는 노출증 물고기가 국서로 온다고? 말도 안 된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황자님. 후궁으로 올 수도-.”
“그것도 싫다!”
씩씩거리던 클라인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분노가 같이 쑥쑥 자라나는 듯, 제 방에 돌아올 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이를 갈았다.
“더는 못 참겠다. 나는 당연히 내가 국서가 될 거라 생각하고 여기 온 건데. 폐하께선 국서는커녕 다른 사내들이나 계속 받아들이시고. 이게 말이 돼?”
“진정하시지요, 전하.”
“내가 진정하게 생겼느냐? 네 아내가 갑자기 두 번째 남편 세 번째 남편, 네 번째 남편을 데려와도 너는 진정할 거냐?”
“전 아직 미혼이지만, 제 아내는 황제가 아닐 겁니다, 전하. 저와 미래의 제 아내는 아마 오붓하게 둘이서 살지 않을까요?”
바닐이 악시안의 등짝을 찰싹 내려치자, 악시안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클라인은 악시안의 눈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선을 넘어 폭발해 있었다.
“돌아갈 거다! 카리센에 돌아갈 거다!”
악시안은 떨떠름해서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면 폐하께서 이제 안 찾으실 텐데요.”
“어차피 지금도 안 찾는데 무슨 상관이냐!”
차갑게 외친 클라인이 짐을 싸기 시작하자, 바닐이 ‘네 주둥이가 만든 결과이니 네가 해결해라’라고 악시안을 협박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악시안은 눈썹을 찌푸리고만 있을 뿐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왜 안 말려?”
그게 이상해 바닐이 작게 묻자, 악시안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전에는 멀쩡하던 카리센과 타리움의 사이가, 클라인 전하 때문에 엎어질 수도 있으니 참으라 했던 거지. 하지만 지금은 황후 폐하 때문에 이미 분위기가 좋지 않아.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남는 거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 지금은.”
“!”
“전하보단 나라가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하가 싫은데 마음 상해가며 여기 머무는 건 원치 않아.”
바닐은 악시안의 숨겨놓았던 진심에 혀를 내두르며 충고했다.
“그런 마음가짐은 주둥이를 놀리기 전에 짚어줬으면 좋겠어, 악시안.”
그 사이. 짐을 빠르게 싼 클라인이 갑자기 눈을 흉흉하게 빛내더니, 악시안을 불러 명령했다.
“악시안! 이리 와 봐.”
악시안은 클라인이 자기에게 화풀이를 할 거라 생각하고서 천천히 걸어갔다.
바닐은 황자가 악시안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려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클라인이 한 말은 뜻밖이었다.
“넌 머리가 좋지?”
“어느 정도는요.”
“그럼 생각해 봐. 내가 뭘 가지고 카리센에 돌아가야, 폐하께서 날 잡으러 카리센까지 쫓아오실까?”
악시안은 떨떠름하게 물었다.
“완전히 후궁 관두고 돌아가는 거 아니십니까?”
“뭐?”
클라인의 표정이 흉흉한 먹물 오징어처럼 변했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