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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일그러지다 (247/367)


247화. 일그러지다
2022.07.10.


타시르의 천골 부분부터 털이 풍성하고 보송보송한 동물 꼬리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아니, 내려와 있다고 해야 할까. 라틸은 눈을 비볐다. 그러나 다시 봐도 그건 분명 동물 꼬리였다.

얘도 혹시 종족의 비밀이라거나, 그런 게 있는 건가. 라틸은 넋을 놓았다. 그 뒤에서 히얼란은 괜히 자기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막상 장본인인 타시르는 아주 담대하고 태연했다.


“너 지금…… 그게 무엇이냐?”

라틸이 멍하게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드십니까?”

타시르가 웃으면서 하는 질문에 라틸은 황당해서 입을 쩍 벌렸다.


“마음, 에 들고 말고를 떠나서 이게 무슨!”

라틸은 기가 차서 타시르 앞으로 달려가 꼬리를 잡고 쭉 당겼다. 이거 뭐냐고 묻기 위해서. 그러나 당기자마자 꼬리는 ‘핑’ 하고 빠져버렸고, 라틸은 붕어눈이 돼서 비명을 질렀다.


‘내가 꼬리를 뺐어! 타시르 꼬리를 뽑았어!’

당황한 라틸의 뒤에서 히얼란도 같이 박자에 맞춰 비명을 질렀다.


“미안. 일부러 뽑으려던 게 아니라-.”

아직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지 못한 라틸은 황망해서 재빨리 사과했다. 그러다가 꼬리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게 타시르의 엉덩이란 걸 발견하자,

눈 큰 붕어가 되어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건 왜 드러내!”

“전후 관계를 똑바로 해야지요, 폐하. 저는 꼬리로 잘 가리고 있었는데, 폐하가 이렇게 만든 겁니다.”

“내가 언제! 내가…… 내가 그랬네. 그래도!”

라틸은 탐스러운 꼬리를 들고서 당황해 쩔쩔매다가, 일단 꼬리로 다시 타시르의 엉덩이를 가려주려 시도했다.

그러다가 타시르가 돌아서려 하자, 라틸은 계속 뒤돌아 있으라고 그의 등짝을 찰싹 치면서 항의했다.


“대체 뭐 하고 있던 거야? 이 꼬리는 뭐고 바지는 왜 벗고 있어?”

“꼬리가 드러나게 바지 입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폐하. 그래서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한 다음 바지를 리폼하려 했죠.”

바지를 이제야 리폼한다는 걸 보니 일단 진짜 꼬리는 아닌가 보다. 자신이 타시르의 꼬리를 뽑은 게 아니란 걸 알자, 라틸은 조금 안심해서 물었다.


“뭐야 이 꼬리? 대체 이게 뭔데?”

라틸이 꼬리를 잡고 흔들자, 통통한 꼬리가 손안에서 펄떡였다. 촉감도 어찌 이런 걸 구했을까. 라틸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시르는 뒤돌아선 채 고개만 반쯤 뒤로 돌려 흐뭇하게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라틸은 코웃음을 쳤다.


“마음에 드냐고? 이런 게? 내가 이런 걸 좋아할 거 같아?”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입꼬리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게 돌아선 타시르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인지, 아니면 이 상황이 웃겨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라틸은 힘주어 입가를 내리려 했으나 잘되지 않자, 이런 얼굴로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해봐야 더 우습기만 할 것 같아서 마지못해 수긍했다.


“조금 귀엽긴 해.”

‘정말로 폐하, 이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도련님이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특이한 취향이신가 봐.’

‘그냥 도련님 엉덩이가 마음에 드시는 거 아냐?’

문을 다 안 닫고 벌어지는 일이라, 히얼란과 호위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으나, 라틸은 꼬리가 준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터라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죠? 귀엽죠?”

그러다가 타시르가 또 돌아서려는 걸, 라틸은 ‘으악’ 비명을 지르며 돌려세웠다.


“그대로 있어라.”

“뒷모습을 좋아하시는군요.”

“아니야. 앞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앞도 만족하실 텐데요.”

라틸은 무어라고 말하려다가, 타시르의 뒷모습을 힐긋 보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타시르는 정말로 뒷모습이 예쁘긴 예뻤다.

다리에 붙은 적당한 근육이나 길쭉하게 쭉 뻗은 종아리며 허리에서부터 내려오는 선 같은 것 등.

그의 날개뼈를 본 라틸은 얼굴에 열이 올라와서 히죽히죽 웃었다. 표정을 엄숙하게 하고 싶은데 그게 잘되지 않았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이런 걸 보고 있자니, ‘황제 자리 만세’라고 외치고 싶었다.


“넌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짐은 네가 이러면 참 곤란해.”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위엄있게 내려 시도하는데, 그 순간. 타시르가 꼬리를 앞으로 들고 휙 돌아서더니, 꼬리 끝의 보드라운 털로 라틸의 볼을 톡 두드리고서 눈웃음을 지었다.

길쭉하고 시원한 눈매가 가늘게 휘어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라틸은 잠시 자신이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는 걸 잊고 말았다.

나 이런 거 좋아하나 봐. 라틸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말았다.

그러다가 타시르가 침대로 저벅저벅 걸어가 엎드리자, 라틸은 실에 묶인 것처럼 그 뒤를 따라갔다.

그래도 완전히 다가가진 못하고서 주춤 두 걸음을 두고 선 라틸에게, 타시르가 손을 까딱하며 웃었다.


“내 꼬리. 도로 붙여줘요, 부인.”

라틸의 머릿속에서 설탕을 꽉꽉 눌러 채운 폭탄이 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 * *



“황후 폐하. 타리움에 다녀온 사절단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아이니는 머리만 남은 헤움에게 이것저것 먹을 걸 챙겨줘 보다가, 방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포크를 내려놓았다.


“흑사신단과 대적자 관련한 일로 보낸 사절단이 왔나 봐.”

헤움은 힘없이 눈을 깜빡였다. 목이 잘린 부작용일까. 식시귀가 된 후로도 곧잘 말하던 헤움인데. 목이 잘린 후로는 가끔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지길 반복했다.

이따금 생전처럼 말을 잘 하다가도, 이따금 이렇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만 움직였다. 아이니는 그 모습을 가슴아파 바라보다가, 일어나면서 헤움의 목을 상자에 담고 그 위에 위장용 천을 덮었다.


“답답해도 참아야 돼.”

그래도 혹시나 몰라 상자 뚜껑을 느슨하게 닫아둔 아이니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당부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내 말을 어길 수도 있어. 그런 사람이 오면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어야 해. 절대로 들키면 안 돼.”

다행히 헤움 황자는 정신이 멍할 때도 의사소통은 되었다. 그가 눈을 깜빡이자, 아이니는 천을 다시 잘 덮어준 다음, 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폐하께서는?”

“먼저 홀로 가셨습니다.”

“그래.”

아이니는 아까의 슬픈 표정을 지우고서 사절단이 있을 홀로 걸어갔다.

홀 안에 들어서자, 사절단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 하이신스 황제가 있었다. 아이니는 하이신스에게 까딱 묵례를 하고서 그의 옆으로 가 섰다.

그러나 사절단이 한 보고는 생각보다 훨씬, 아주 많이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타리움의 황제는 흑사신단에 대해 조사하고 싶거든 수사관을 타리움으로 직접 보내라 하셨습니다.”

“뭐라?”

아이니는 무표정하게 서 있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 나라에서 수사를 어떻게 방해할 줄 알고 수사관을 보내란 거지?”

“타리움 쪽에서도 같은 이유를 들었습니다, 폐하. 여기에 용병들을 보냈다가 제대로 수사를 할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요.”

“!”

“합당한 증거가 있다면 수사에 협조하겠지만, 황후 폐하께서 실종된 기간 동안 흑사신단 용병들은 그곳 수도에 나타난 식시귀를 처리하는 일로 무척 바빴다고 했습니다. 자리를 아예 비워야 했을 정도인지라, 그들이 황후 폐하를 납치했단 주장을 믿기가 어렵다 하였습니다.”

사절단의 설명에 아이니는 분노로 혈관이 파랗게 튀어나왔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식시귀’란 단어 때문이었다.

라트라실 황제는 수도에 나타났다가 잡힌 식시귀가 헤움 황자인 걸 분명 알 텐데. 자기가 직접 죽이게 한 그 식시귀 이야기를 굳이 꺼내 전달했다는 건, 이쪽을 도발하려는 뜻이 분명했다.

그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에서도 냉정하게 나갈 수밖에. 아이니는 냉정하게 호흡을 가다듬고서 차갑게 말했다.


“흑사신단에서 나를 잡으려 한 건 그들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니의 말에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이신스 역시 인상을 찌푸리고 옆을 보았다.


“사람이 아니라니, 황후?”

“말 그대로입니다, 폐하.”

아이니는 작게 대답하고서, 사절단 쪽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니 대적자인 나를 없애고 싶었겠지. 나는 라트라실 황제가 이 일에 연관이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사조차 진행하지 못하게 한다면, 글쎄. 연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군.”

그 무시무시한 내용에, 하이신스가 재차 끼어들었다.


“황후. 용병들이 뱀파이어인 게 확실하오?”

“전부 다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다수 끼어 있는 건 확실합니다.”

하이신스의 표정이 굳자, 아이니는 무뚝뚝하면서도 이성적인 태도로 그에게 충고했다.


“폐하께서 저를 싫어하시든 아니든, 우리는 카리센을 위해서는 한 편이 되어야 합니다. 타리움이 뱀파이어들로 이루어진 용병들을 두둔하고 감싼다면, 우리는 그들의 저의를 의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제가 싫더라도 타리움이 뱀파이어와 손을 잡을 경우 우리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해 우선 생각하세요.”

사절단에게 휴식한 후 다시 타리움으로 가란 지시를 내린 뒤. 아이니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는 칼라인을 사랑했고, 칼라인을 지키고 싶어했고, 흑사신단 뱀파이어들 중엔 전생에서 친했던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왜 그들이 뱀파이어라고 말해버린 걸까. 칼라인만큼 사랑한 건 아니지만, 개중 몇몇은 친구가 분명한데.

이성과 마음이 따로 노는 괴상한 느낌에 속까지 메슥거리더니, 침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 복잡한 마음이 완전히 저릿저릿한 두통으로 변해, 한쪽 골머리를 번개로 지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했다.


“으…….”

아이니는 눈살을 찌푸리고 문가에 기대어 쪼그려 앉았다. 왜 갑자기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지만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칼라인을 사랑하잖아. 그에게 해를 끼쳐선 안 돼. ‘나’는 칼라인을 사랑하잖아. 그에게 해를 끼쳐선 안 돼.

뇌에 대고 계속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더욱 괴로웠다. 아이니는 약을 가져오라 말하기 위해 문에 기대어 조심히 다리에 힘을 주었으나,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옷장 안에서, 아이니가 만들어 준 작은 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헤움은 쓰러진 아이니의 어깨와 목 사이에 새까만 연기가 들러붙은 걸 발견하고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건 대체?’

게다가 그 연기는 단순히 아이니에게 들러붙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녀를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마다 기절한 상태로도 아이니가 괴로워하자, 헤움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누구 없느냐! 황후가 쓰러졌다! 황후가 쓰러졌어!”

그 소리를 들은 시녀와 호위들은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문가에 기절한 아이니를 발견하고 놀라 “황후 폐하!” “황후 폐하!” 하고 외쳤댔다.


“의사를! 서둘러! 빨리!”

“이쪽으로 눕혀라! 얼른!”

시녀들은 아이니를 침대 위에 눕혔고 호위 두 명이 의사를 부르기 위해 뛰쳐나가는 사이.

호위 한 명이 마른침을 삼키고서 방 안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황후 외엔 아무도 없어야 할 방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헤움은 눈을 질끈 감았다.

* * *



“황후 폐하. 괜찮으십니까?”

아이니는 익숙한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녀들 쪽을 보며 물었다.


“이게 무슨…….”

“황후 폐하께서 쓰러져 계셨어요.”

“궁의가 말하길,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셨다고 합니다.”

아이니는 눈썹을 찌푸리고서, 흑사신단에 뱀파이어가 있단 소리를 한 내내 무섭도록 아프던 관자놀이를 눌렀다. 지금은 그 통증이 거의 없었다.


‘대체 뭐였지.’

한숨을 내쉰 아이니는 시녀의 부축을 받아 상체를 일으켰다.


“헤움 황자님 망령이 황후 폐하를 공격한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다 괜찮으니 안심하세요, 황후 폐하.”

그러다가 시녀들이 하는 이상한 소리에, 아이니는 관자놀이에 손을 댄 채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시녀 하나가 겁먹은 얼굴로 옷장 쪽을 눈으로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 안에 헤움 황자님의 목이 들어 있었답니다. 지금은 처리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황후 폐하.”

그 말에 아이니의 눈이 커다래졌다.


“뭐? 무슨 소리야? 처리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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