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2화. 수업 시간 (231/367)


232화. 수업 시간
2022.05.18.


칼라인이 오자 라틸은 클라인과 시종장을 내보낸 다음 하이신스가 보낸 편지 내용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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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센 황후가 흑사신단에 자기가 납치됐다 했다던대.”

칼라인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대번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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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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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다.”

라틸은 그가 혹시 자기가 의심받고 있다고 오해할까 봐 얼른 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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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니 황후는 여기서 아예 다른 모습으로 지냈잖아. 그런데 납치하고 뭐고 할 게 있나.”

게다가 아이니 황후와 같이 다니던 흑사신단 용병들이 공격한 건 오히려 이쪽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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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그런데 툴툴거리다 보니, 칼라인이 이쪽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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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그 시선이 좀 묘한지라 라틸이 재차 묻자, 칼라인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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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그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서요.”

라틸은 ‘처음’이란 말에 첫 만남의 당시를 떠올렸다.

얼굴 보고 뽑은 후궁이라, 두근두근해서 그를 찾아간 날을.

난데없이 ‘주인’이라 부르기에 얼마나 놀랐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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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이 기억나십니까? 전 주인이 나타났을 때 천사가 다가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칼라인이 말한 ‘첫 만남’은 라틸이 떠올리는 첫 만남과 전혀 달랐다.

그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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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저런 거짓부렁을?’

도미스를 처음 만났을 때도 저렇진 않았다

미화를 시켜도 저런 모양으론 안 나올 텐데 싶을 만큼 다르다.

라틸은 그를 황당해 쳐다보았다.

그런데 칼라인은 오히려 그 표정에 안색이 환해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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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기억이…… 납니까?”

아차, 라틸은 혀를 찼다. 일부러 도미스와의 첫 만남 얘길 한 거구나. 그것도 엉터리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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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백 살 먹은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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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얘길 싫어하는 칼라인이 눈썹을 찌푸리자, 라틸은 홱 돌아서서 다시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힐긋 고개를 들어 보니 칼라인이 힘없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입가만 힘이 없을 뿐. 눈에는 열기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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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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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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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억이 돌아오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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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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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날 때마다 화내줬으면 합니다.”

무슨 소리야? 라틸이 편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쳐다보자, 칼라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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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돌아오면 화날 일이 많을 겁니다. 그때 ‘전생 일이니 화 안 내야지’ 하지 마시고, 그냥 화나면…… 화내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라틸은 “화났어.” 하고 말한 다음 칼라인의 손을 잡고 손등을 찰싹 아프지 않게 쳤다.

도미스가 추락하고 있을 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일을 떠올리면서.

물론 지금은 그 일로 화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칼라인 본인은 여러 가지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웬걸. 그러고서 보니 칼라인이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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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칼라인 변태 같아.’

그걸 보니 재미있어서 이번에는 손바닥을 찰싹 아프지 않게 치자, 칼라인의 입술 끝이 재차 올라왔다.

어깨도 살짝 아프지 않게 쳐봤더니 그래도 칼라인이 웃고 있어서, 라틸은 신이 나서 칼라인의 엉덩이도 찰싹찰싹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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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칼라인도 웃지 않았다.

그가 얼어붙은 걸 본 라틸은 황급히 손을 내리고 정색한 다음 편지를 집고서 “음…….” 하고 신중한 척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칼라인이 희미하게 웃었지만, 라틸은 그건 보지 못했다.

대신 라틸은 편지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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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랏일 얘기하지. 칼라인. 넌 아이니 황후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알겠어?”

말을 하다 보니 정말 이상해서, 라틸은 인상을 찡그리고 시선을 들었다.

그때 이미 칼라인은 평소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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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말 이상해. 아이니 말이다. 처음 만났을 땐 멀쩡했거든?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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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때문에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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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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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사람 기억은 아니지만, 기억 자체가 가짜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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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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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대화를 나누어 봤는데…… 없던 일을 상상해 기억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단 건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자기 기억을 나누어 줬단 거겠지요.”

라틸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이 도미스일 수밖에 없단 걸 떠올리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도미스가 아이니한테 그 기억을 주입한 건가? 왜?

라틸은 다시 하이신스의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거기엔 놀라운 내용이 하나 더 있었다. 아이니가 자신이 대적자라 주장한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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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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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인. 대적자도 환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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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적자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아니, 대적자 본인이라도 아마 모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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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혹시 아이니 전생이 대적자여서, 도미스가 ‘너도 한 번 엿 돼봐라’라는 심정으로 기억을 주입했을지도 모른다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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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칼라인. 전 로드가 아이니에게 가짜 기억을 심은 거라면, 내가 그 기억을 도로 회수할 순 없느냐?”

그러면 아이니도 이 기행을 그만둘 테니 서로서로 편해질 것 같은데.

하지만 칼라인은 이번에도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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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기억을 넣을 수 있었으니 뺄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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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라틸은 편지를 접어 책상에 내려두고서 한쪽 팔로 머리를 괴었다.

하이신스가 미리 이런 일들을 알려주어서 너무 고맙긴 한데. 딱히 미리 대처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칼라인에게 흑사신단 납치 이야기는 했지만, 대적자 이야기는 꺼내기도 애매했다.

‘아이니가 자기가 대적자라 주장한대’라고 하면 칼라인과 서넛은 어떻게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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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자는 꼭 날 죽여야 하나? 대적자가 날 안 죽이려 들면 나도 대적자를 안 죽이고……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나?’

 

* * *

그날 점심 식사를 할 무렵.

라틸은 타시르를 만났지만, 그 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식사 예절을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그쪽으로 붕 떠버린 탓에 몸에 밴 예절을 입으로 풀이해주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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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한 식기는 다음 음식에는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야. 그런데 음식을 여러 개 주면서 식기는 한 세트만 주는 곳이 더 많거든. 이럴 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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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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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져오라고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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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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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리고 이렇게 말랑한 음식을 먹을 땐 포크랑 스푼을 포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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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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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네. 푸딩 맛있어. 네가 데려온 하인이 만든 후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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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딩이요?”

타시르는 라틸이 헛손질하는 걸 구경하면서 연신 웃고 있었다.

가끔 제대로 설명을 하다가 옆으로 새는 모습이나, 시범을 보이려면서 엉뚱한 식기를 집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렇다고 다 엉터리라 하기엔 옳은 설명도 부분 부분 있긴 해서, 타시르는 ‘정말 예법을 모르는 사람이 폐하께 배우면 큰일 나겠구나’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나자, 라틸은 입가를 냅킨으로 닦으면서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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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운 대로 정어리 요리를 먹어봐.”

타시르는 라틸의 멍한 정신조차 깰 만큼 완벽하게 정어리 반 토막을 먹었다.

라틸은 계속 입가를 냅킨으로 누르면서 건성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뒤늦게 깜짝 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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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너. 잘하잖아?”

반쯤 넋이 나가 있긴 해도 라틸도 알았다. 오늘 자신이 좋은 선생이 아니었단 걸.

그런데 타시르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황당했다.

타시르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조금도 꿇리지 않는 태도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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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후계자로 온갖 나라를 돌아다니는 제가 설마 식사 예법을 모르겠습니까? 폐하와 함께 있고 싶어서 못하는 척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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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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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사랑스럽습니다. 머리 굴리는 것 좀 보세요. 아,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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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당한 태도에 라틸이 입을 벌리자, 타시르는 자른 정어리 조각을 라틸의 벌어진 입 사이로 넣어주며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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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폐하는 생각보다 못하시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번엔 제가 알려 드릴까요?”

라틸은 입안에 정어리를 넣은 채 타시르의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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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폐하!”

 

* * *

타시르와의 일 때문에 저녁때 라나문에게 간 라틸은 그에게 춤을 가르칠 준비를 하면서도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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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문이 애초에 나한테 춤을 배우겠다고 한 것도 타시르를 따라 한 거지. 그러니 춤을 가르쳐달란 말에 처음부터 진심은 없었을 거잖아. 혹시…… 얘도 일부러 못 추는 척하는 거 아냐?’

어디 한번 잘 지켜보자. 만약에 얘도 날 가지고 노는 거라면 나도 똑같이 가지고 놀아 주겠어.

라틸은 속으로 단단히 결심하고서, 라나문을 데리고 바닥이 미끄러워 춤추기 좋은 방으로 간 다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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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선 손을 잡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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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저도 할 줄 압니다.”

라나문이 차갑게 말하고서 라틸의 손 아래에 자신의 손을 두더니, 잠시 주춤하다가 손가락 끝을 잘 잡았다.

너무 힘을 주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정도로.

라틸은 얼결에 그의 입술을 보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턱을 들어 올리고서 라나문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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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서야지.”

그를 코앞에 두고 서자 부드러운 옷의 프릴이 살짝 코끝에 닿아 간지러웠다.

라틸은 재채기를 할 뻔한 걸 가까스로 참고서, 라나문에게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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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날 보면 안 되고 오른쪽을 보고서 서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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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는 저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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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넌 몰라. 넌 상체를 오른쪽으로 같이 돌리잖아. 상체는 날 보고 머리만 돌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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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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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고 있으니까 이러지.”

자꾸 머리와 상체가 같이 움직이는 라나문에게 가까스로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게 한 라틸은 그가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잡도록 한 다음, 같이 발을 내딛게 하며 또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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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오른쪽으로 발을 내디뎌야 해. 알았느냐? 하나 둘…… 아니, 셋까지 세면 하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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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을 셀 차례였는데 폐하가 안 세니까 이렇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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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둘에 발을 내디뎠는데 내가 셋까지 어떻게 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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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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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내 허리 잡고.”

라틸은 라나문을 어르고 달래서 드디어 춤을 시작했으나, 그가 10분 안에 발을 열다섯 번이나 밟자 결국 성질이 나서 춤을 멈추게 하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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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문. 솔직하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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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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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이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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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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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 감각이란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 정도로 못 출 수가 없어. 이게 진짜로 못 추는 거라면 넌 박자 감각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 맞지?”

타시르 일을 떠올리며 라틸이 강하게 추궁하자 라나문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러나 둘은 아직 춤추는 자세를 취한 상태였다.

즉, 라나문의 손은 라틸의 허리를 감싸고 있고 라틸은 라나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나문이 물러나자 둘은 곧 균형을 잃고 같이 엎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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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라나문은 바닥에 완전히 ‘쿵’ 소리가 나게 뒤로 넘어갔고, 라틸은 라나문을 쿠션 삼아 그 품에 안기며 넘어졌다.

세상이 반쯤 뒤집히고 나자, 라틸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자신은 옆으로 누워 있고, 라나문의 가슴에 귀를 대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서 느껴지는 라나문의 옷 감촉에, 라틸은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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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나문이 내려오란 소리를 하지 않고 있자 라틸은 얼굴이 조금 더 붉어져서, 역시 라나문이 춤을 못 추는 척한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아니라면 이렇게 기회를 딱 잡고서 누워 있을 수가 없지.

하지만 사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좋다고 히히 웃으면 위엄이 없어 보일 것 같아 웃진 않았지만.

라틸은 괜히 코웃음을 치면서 라나문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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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있다가, 일부러 춤을 못 추는 척했단 고백을 들은 다음에 나도 좀 놀려야지, 그러고 나서…….’

생각을 멈춘 라틸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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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소리가?’

라나문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놀란 라틸은 고개를 들었다가 기겁해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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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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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무슨 소린가, 사블레 후작? 우리 라나문이 어떻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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