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너무 화가 난 라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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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너무 화가 난 라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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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너무 화가 난 라틸
2022.04.27.
자신도 로드라면 언젠간 각성을 할지도 모르기에, 라틸은 집중해서 현재 도미스의 감각을 느끼려고 해보았다.
하지만 도미스는 자기가 한 행동에 자기가 더 놀라서 후들후들 떨더니, 난간을 붙잡고 거기에 온몸을 기댔다.
너무 놀라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예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런 도미스의 눈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휙 사라졌다. 누구였는진 모르겠지만, 누군가 이 장면을 본 게 틀림없었다.
도미스는 그쪽으로 뛰어가려 했으나 아까 목을 졸려서인지, 아니면 너무 놀라서인지,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제발 좀 움직여. 제발 좀!]
도미스가 속으로 외쳐도 다리는 돌덩이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도미스는 쓰러지듯 주저앉아 울었다.
“여기서 뭐해?”
그런 도미스를 발견한 건 커다란 물걸레와 양동이를 나눠 들고 이동하던 하녀 안야와 그녀의 파트너였다.
“안, 안야 씨.”
도미스가 후들후들 떨면서 바라보자, 안야는 도미스의 목에 난 자국을 발견하고는 눈이 벌게져서 물었다.
“누구야? 누가 이랬어?”
“손, 손님이. 어떤 손님이.”
도미스는 중얼거렸으나, 그 손님이 자기가 걷어차자 펑 터져버렸단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뒷말은 잇지 못했다.
자신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안야가 그걸 알 리 없으니까.
그때. 하녀 안야와 한 조였던 다른 하녀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도미스. 무조건 2인 1조로 다니라고 했잖아. 너 앨리랑 한 팀 아냐? 앨리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여깄어?”
안야도 그 말을 듣자 다른 하녀 생각이 났는지, 놀라서 도미스에게 물었다.
“맞다. 앨리는?”
도미스는 울상을 짓고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다른 하녀는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달려들 듯 도미스를 붙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같이 있었는데 네가 그걸 왜 몰라? 어디서 헤어졌는진 알 거 아냐!”
“놓고 얘기해. 애 놀랐잖아! 목에 안 보여?”
안야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떼어놓았지만, 다른 하녀는 그래도 화난 얼굴로 도미스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저 하녀가 앨리란 하녀랑 친한가?’
그 반응을 본 라틸이 인간관계를 짐작해보는 사이. 도미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이상한 가면 쓴 사람이 날 놀라게 해서…… 내가 비명을 질렀어요. 그때 손님 중 한 분이 날 데리고 도망쳐줬고…… 앨리는…… 모르겠어요. 앨리를 찾아보려고 돌아왔는데 그 손님이 날 찾아와 죽이려고 해서…….”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른 하녀가 들고 있던 양동이 물을 도미스에게 부어버렸다.
“그걸 말이라고 해?! 네가 똥 싸 놓고 너 혼자 튀었단 거야?!”
“도, 도망치려던 게 아니라, 나는-.”
“어쨌든 도망친 거잖아! 앨리 어떻게 됐냐고 앨리!”
다른 하녀가 양동이로 도미스를 내려치려고 하자, 안야는 그녀의 팔목을 잡고 꺾듯이 힘을 주었다.
“그만해! 애 목 안 보이냐고!”
안야가 이를 내밀고 으르렁대자, 다른 하녀는 양동이를 떨어뜨리며 짧게 비명을 질렀다. 보기보다 하녀 안야는 힘이 꽤 센 것 같았다.
안야는 한숨을 내쉬고서 도미스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올라가자. 넌 좀 쉬어야 해.”
“안야 씨, 앨리가…….”
“네 탓이 아니야. 그 빌어먹을 손님이 너도 앨리도 죽이려 했잖아. 네 탓이 아니야!”
* * *
다시 장면은 바뀌었고, 도미스는 다른 하녀, 하인들과 함께 벽에 딱 붙어 2열로 서 있었다.
하녀장은 하녀들에게 규칙을 알려줄 때처럼, 그들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차갑게 말하고 있었다.
“손님 중 하나가 실종되어서 랑스터 백작님이 몹시 화가 났다.”
라틸은 도미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녀장은 정해진 데로 빙글빙글 도는 시계 속 사람처럼, 하녀와 하인들이 선 복도 끝에서 끝을 왔다 갔다 이동하며 ‘딱 딱 딱’ 하는 발소리를 위협적으로 냈다.
“그리고 하인 네 명과 하녀 한 명도 실종되었지. 내가 그토록 당부하고 당부하고 당부했는데, 결국 또 사라졌어.”
느릿하게 걷던 하녀장은 정확히 도미스의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도미스는 그녀의 딱딱한 옆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녀장님이 뭘 아시는 걸까? 아니면 앨리가 나와 있다가 사라진 걸 질책하시려는 걸까?]
‘앨리 이야기는 했는데 보라색 가면 이야기는 하녀장한테 안 했나 보구나. 하긴. 걷어찼는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단 말은 하기 어렵겠지.’
그 순간. 하녀장이 정면을 보며 그녀를 불렀다.
“도미스.”
도미스는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였으나, 하녀장은 어느 때보다도 서릿발 같은 눈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네가 마지막에 사라진 손님과 함께 있었다고 안야 아가씨께 들었는데.”
‘그 의붓동생 짜증 나네. 무시당했다고 그걸 고새 일렀냐. 기르골은 자기가 잘 달래겠다고 가더니 말을 한 거야 만 거야?’
도미스는 주저하다가 거짓말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말이 돼? 조안에게 들었다. 네가 앨리 이야기를 할 때 손님 이야기도 했다면서.”
“저는…… 그게…… 어떤 손님이 절 쫓아온 건 맞지만 전 도망쳤어요, 하녀장님. 이후 일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도미스.”
“네.”
“넌 거짓말쟁이구나.”
“!”
“너 때문에 앨리가 사라졌고 손님 한 분도 사라졌다. 랑스터 백작님은 곤란한 처지에 빠졌어.”
도미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마음에 반은 죄책감으로 반은 억울함으로 물드는 걸 라틸은 생생히 체감했다.
죄책감은 사라진 앨리에게, 억울함은 먼저 이쪽을 죽이려 한 그 보라색 가면을 향한 마음 같았다.
하지만 하녀장은 이 일로 몹시 화가 났는지, 아까 규칙을 알려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쌀쌀맞게 지시했다.
“내가 널 좋게 본 게 실수였어. 오늘 밤 당장 짐을 싸서 나가도록 해라.”
“하, 하녀장님!”
“어차피 넌 나가려 했잖아.”
“하지만 오늘 밤이라니…… 아직 준비가…….”
“넌 준비해 나갈 시간이라도 있지. 앨리에겐 이제 그 어떤 기회도 없다, 도미스.”
도미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하녀장은 보기도 싫다는 듯 정면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미스가 입술을 꽉 깨무는 바람에 라틸은 덩달아 입술이 아려왔다.
“그래도 안야 아가씨가 너그러워서 이 정도 선에 그치는 거다. 원래 백작님은 이보다 더 화났었어. 안야 아가씨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라. 평생.”
차갑게 명령을 내린 하녀장이 앞으로 걸어가자, 하녀 안야가 도미스와 하녀장을 번갈아 보다가 인상을 찌푸리고 하녀장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 * *
다시 화면이 바뀌었을 때.
도미스는 울면서 짐을 싸는 중이었다. 하녀 안야가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하녀장을 쫓아가더니. 아직 안 왔나 보네. 그럼 시간이 많이 지나진 않은 건가?’
도미스가 옷을 챙기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창가를 보았고, 덕분에 라틸도 지금이 깜깜한 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 늦은 시간에 쫓겨나는 것이다. 심지어 이 시대에는 괴물들이 밖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는데.
‘아니 몇 시간 있다 쫓아내면 뭐 난리라도 나나?’
라틸은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여기서 도미스를 도울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열심히 손을 움직이던 도미스가 갑자기 주춤하더니, 황급히 자신이 사용하던 서랍장을 꺼내 옆에 놓고 안을 마구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 돈? 내 돈이 다 어디 갔어?]
도미스가 뭘 하나, 생각하던 라틸은 그 소리에 덩달아 놀랐다.
[엄마가 준 보석도 없어! 모아둔 돈도 없고!]
‘그게 없으면 어떡해? 잘 찾아봐!’
도미스는 서랍장을 다 뒤지고, 쌌던 옷까지 다 풀어 헤쳐 확인했지만 돈과 보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동전조차 단 하나도 없었다.
라틸은 도미스가 평소 어디에 돈을 두는지 몰랐기에 그녀가 좀 더 잘 찾아보길 바랐지만, 도미스는 늘 같은 장소에 돈을 두었던지 당황해서 손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그때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반쯤 열린 문틈으로 하녀 몇 명이 도미스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웃어대고 있었다.
‘쟤네가 가져갔나 봐!’
[저 애들이야!]
도미스와 라틸은 동시에 저 하녀들이 일부러 도미스의 돈과 보석을 훔쳐 갔단 걸 깨달았다.
도미스는 벌떡 일어나 그녀들에게 다가갔지만, 하녀들은 돌아서더니 까르르 웃으면서 복도를 달아났다. 마치 재밌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돌려줘! 무슨 짓이야! 돌려줘!”
도미스가 화를 내면서 외쳤지만, 하녀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보면서 웃고 뛰기만 했다.
복도를 지나 계단까지 갈 즈음. 마침내 도미스는 개중 한 명의 옷을 확 잡아당겼고, 그 하녀는 웃어대다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한 명이 넘어지자 다른 이들은 웃으면서 달아나길 멈추더니 무서운 얼굴로 다들 노려보았다.
도미스는 달려온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분노로 숨을 차면서 요구했다.
“훔쳐 간 거 다 돌려줘. 너희는 도둑 아니잖아. 왜 이런 짓을 해?”
그 말에 대답한 건 아까 하녀 안야와 한 팀이었던 하녀였다.
“너 때문에 앨리는 사라졌어. 말이 사라진 거지, 죽었을지도 몰라. 너 때문에 손님 하나도 죽었어. 그런데 너는 그냥 여기서 쫓겨나는 걸로 끝낸다고?”
“여기서 규칙을 어긴 애들은 다 죽어서 나갔어. 근데 네가 어긴 규칙에 앨리가 죽고 너만 무사히 나가다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니?”
“이 정도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냐? 규칙대로라면 네가 죽었어야 하는 건데?”
라틸은 하녀들이 모두 다 화난 표정인 걸 알아보았다. 그녀들은 정말로 증오심에 가득 차 도미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애들은 앨리랑 친한 애들이야.]
그 하녀들을 보며 도미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라틸은 저 애들이 앨리랑 친하건 말건 도미스가 다 때려 부수고 나가길 바랐지만, 도미스는 앨리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 정도에서 끝내는 걸 우리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꺼져, 도미스!”
“당장 나가!”
“나가서 얼어 죽어 버리라고!”
하녀들이 악담을 마구 퍼붓기 시작하자, 도미스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곧 그녀는 마음을 다시 다잡고서 협상을 시도했다.
“보석은…… 돌려달라 안 할게. 그럼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받은 돈이라도 돌려줘.”
“하하하하! 너 진짜 뻔뻔하다?”
“살아서 나갈 수 있는데 감사해야지, 도미스?”
하지만 하녀들은 전혀 돌려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보석은 앨리 가족들한테 보낼 거야. 너 때문에 죽었으니까. 그리고 돈은 너 같은 애를 봐주는 우리가 나누어 가질 거야. 너 때문에 앨리가 죽어서 우리 마음이 아팠으니까!”
“그런 게 어딨어!”
“어차피 이 보석도 다 네가 훔친 거였잖아! 이 도둑! 살인자!”
도미스가 붙잡아 넘어졌던 하녀가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도미스의 팔을 잡고 확 계단 아래로 확 끌어당겼다.
하지만 도미스는 끌려가는 대신 그녀를 뿌리쳤는데, 도미스를 당기려던 자기 힘에 도미스가 뿌리치는 힘까지 더해지자 그 하녀는 오히려 자기가 계단을 구르고 말았다.
“아!”
휘청이던 하녀는 계단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더니 그대로 미동이 사라졌고, 그녀의 품 안에서는 숨겨둔 보석 몇 개가 튀어나왔다.
놀란 도미스가 그쪽으로 다가가려는 찰나.
“너!”
“또!”
“살인자! 죽어!”
이를 보고 더욱 분노한 하녀들이 도미스에게 동시에 달려들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이며 옷을 잡고 마구 끌며 할퀴기 시작했다.
“하지 마! 놔!”
도미스가 버둥거리며 밀치려 했지만, 하녀들은 눈앞에서 자신들의 친구가 잘못되자 완전히 악에 받쳐서 도미스를 놓지 않았다.
반면 도미스는 또 자기가 세게 밀었다가 누군가 계단에서 구를까 봐 제대로 힘을 제대로 주지도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난간 부근까지 오게 되었을 때. 그들은 도미스를 힘주어 난간 아래로 밀어버렸다.
“칼라인.”
몸이 아래로 떨어지며 주위의 배경이 빠르게 변하는 사이. 도미스는 아주 작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아무 생각도 없이 본능적으로.
‘퍽’ 하는 소리가 뒤에서 나며 곧 몸은 추락을 멈추었으나, 도미스에게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도미스? 도미스? 도미스!’
라틸이 속으로 외쳐보았지만, 도미스에게서는 아무 생각도 더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뒤. 감기지 않은 눈앞으로 똑같은 검은 구두를 신은 검은 발들이 여러 개 나타났다.
라틸은 덩달아 가물가물해져 가는 의식 너머로 하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 어떡해? 피가…….”
“숨을 안 쉬어!”
“시체를 치워야 하는 거 아냐?”
“하녀장님한테 가서 말하면 돼. 도미스가 조안을 공격해서 우리가 막으려다가 이렇게 된 거라고. 다 사실이잖아!”
* * *
의식이 끊어진 것과 동시에 라틸은 자신의 안락한 침대에서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라틸은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서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뭐야? 도미스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되잖아? 도미스는 칼라인이랑 같이 막 싸움도 하고…… 그러지 않았어?’
라틸은 머리카락을 부여잡고서 풀지 못한 분노로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다가, 결국 창가로 가 창문을 쾅 열었다.
그리고 저 아래쪽에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던 대신관과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