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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후궁부터 들이겠습니다 (1/367)

1화. 후궁부터 들이겠습니다2020.03.01.

16551065361181.png“경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라틸이 입을 열자,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머리에 쓴 황금의 관, 어깨에 걸친 붉은 색의 웅장한 망토, 손에 쥔 호화로운 왕홀…… 그들의 시선이 어디에 닿는지, 라틸은 또렷하게 느꼈다. 이제 그녀는 황제였다. 그녀를 손가락질하던 그 누구도 정면에서 반항할 수 없는 황제. 라틸은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쾌감을 느꼈다. 하이신스…… 이 개자식. 그래. 이 느낌 때문에 너는 날 버렸을까?

16551065361181.png“경들의 말이 옳아. 황가의 안정은 탄탄한 후계자들에게서 오는 법. 빨리 국서를 맞이하라는 경들의 말, 충분히 이해해.”

아트락시 공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는 일찍이 라틸을 지지하면서 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확신했다. 라틸의 입에서 자신의 아들 라나문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 라나문은 가문, 얼굴, 능력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공신이니, 라나문 외에 그 누가 이 젊은 황제의 배우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아트락시 공작은 승리에 찬 미소를, 공작파들은 기쁘지만 조금 아쉬운 얼굴을, 공작의 적대 세력과 중간파들은 씁쓸한 얼굴을 하던 그 순간.

16551065361181.png“그래서, 우선 후궁들을 들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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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입에서 그들의 기대를 한순간에 박살내는 말이 튀어나왔다. 웃고 있던 공작도, 다양한 표정이던 기타 대신들도 다들 똑같이 황당한 얼굴로 라틸을 올려다보았다. 후궁? 게다가 한 명이 아니라 들? 다들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라틸은 그들을 위해 친절하게 풀어서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16551065361181.png“우선은…… 한 다섯 명 정도만 들이지.”

쥐 죽은 듯 조용하던 홀이 그 말 한마디에 시끄러워졌다. 다들 이 신황이 내뱉은 뜻밖의 언사에 놀라서 웅성거렸다. 후궁을 다섯 명 들인다고?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아트락시 공작은 기가 막혀서 반대했다.

1655106536121.jpg“지금까지 여황제들이 몇 있으셨지만, 다들 국서 한 분만을 두셨습니다. 암암리에 정부라 소문난 남자들은 많았지만 대놓고 후궁을 들인 분은 아무도 없으셨는데, 어찌하여…….”

16551065361181.png“지고지순한 순정파라 이름난 5대 황제 트라시슈는 후궁이 다섯 명 있었고, 11대 황제 아인트라는 후궁이 여섯 명 있었소, 아트락시 공작. 기타 등등은 평균 열다섯 명의 후궁을 두었지. 좀 바람기 있다 싶은 역대 황제들은 스무 명 이상의 후궁들을 두었네만.”

1655106536121.jpg“하지만……!”

16551065361181.png“다들 두는 후궁을 왜 나는 못 둔단 말이오. 나도 역대 황제였던 분들처럼 최소 다섯 명 이상은 후궁으로 두어야겠소.”

대신들의 입이 주먹만큼 벌어졌다. 그들은 당당하게 하렘을 차리겠노라 선언하는 황제를 패닉에 빠져 바라보았다. 라틸은 눈 속에 경악을 박아 넣은 귀족들을 한 번 주르륵 훑어보고서, 비웃듯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16551065361181.png“황제가 황후 하나만 두면 외척세력이 지나치게 힘을 키우니, 힘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다른 후궁들을 받아야 한다 주장한 건 늘 대신들이 아니었소?”

다들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역대 모든 대신들이 그런 주장을 펼쳤다. 라틸은 장난치듯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16551065361181.png“경들 역시 내가 후궁을 여럿 두는 편이 좋을 텐데? 그래야 황제 며느리를 둘 경쟁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겠소?”

그 말에 이번에는 반응이 다시 나뉘어졌다. 아트락시 공작은 더욱 얼굴을 구긴 반면, 반대파들은 구겼던 얼굴이 약간 펼쳐졌다. 확실히. 황제가 이대로 정실 남편을 한 명만 둔다면 국서는 백 퍼센트 아트락시 공작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후궁을 여럿 들인다면…… 어쩌면 그들에게도 권력의 끈을 잡을 기회가 올지 몰랐다. 그러다 황제와의 사이에 후계자라도 태어나는 날에는……! 대신들의 눈빛이 탐욕에 빛나기 시작하자, 라틸은 속으로 작게 웃었다.

16551065361181.png‘하이신스. 네 나라에도 내 후궁을 뽑을 사자를 보내지. 이번엔 네 손으로 내 남자가 될 이들을 골라봐. 내가 느낀 비참함을 똑같이 느껴볼 차례야. 너도.’

화이력 517년, 황제 라트라실 타리움 치세 1년. 하렘을 선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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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화이력 511년. 타리움 제국의 황태자는 라틸의 오빠인 레안이었다. 레안은 모든 귀족들이 추종하고 모든 백성들이 기대하는 왕재였고, 어머니는 대귀족 출신의 황후로, 그의 앞길은 탄탄했다.

1655106536121.jpg“황제가 된다면 지고의 현군이 될 것이요, 학자가 된다면 내 뒤를 이을 인재로다!”

대현자가 레안과 대담을 나눈 후 제자들에게 감탄한 이야기는 이미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반대로, 대현자가 이런저런 당돌한 질문을 던지는 라틸에게 ‘패왕의 재목’ 이라며 한탄한 이야기에 대해선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에게 있어 라틸은 그저 레안의 동생이자 많은 황녀 중 하나일 뿐이기에. 라틸 역시도 대현자가 자신에게 남긴 말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오빠를 존경했고 사랑했고, 오빠가 만들어갈 세상을 기대했다. 오빠와 황위 다툼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 게다가 라틸이 꿈꾸는 미래는 황제가 되어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바로, 연인인 하이신스와 결혼해 이웃나라인 카리센의 황후가 되는 것.

16551065361181.png“이게 뭐야?”

16551065392712.png“반지.”

16551065361181.png“풀인데?”

16551065392712.png“직접 만들어 봤어. 백성들은 이렇게 논다길래.”

16551065361181.png“너희 나라 백성들은 돈 없구나…….”

16551065392712.png“아니야. 운치라고. 손 줘봐.”

라틸이 눈을 깜빡일 뿐 손을 내밀지 않자 하이신스는 라틸의 손을 잡아끌고는 손가락에 풀로 만든 반지를 직접 끼워주었다.

16551065392712.png“의외로 예쁘다…….”

16551065392712.png“그렇지?”

16551065361181.png“응.”

하얀 꽃을 보며 생글생글 웃는 라틸을 바라보다가, 하이신스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16551065392712.png“사랑해, 라틸.”

16551065361181.png“……나도.”

라틸은 하이신스를 보며 활짝 웃었다. 성품만큼 부드러운 갈색 머리와 단정한 이목구비, 오묘한 회색 눈동자를 가진 이 아름다운 연인이, 그녀는 너무나 좋았다. 타리움 제국에 유학을 온 그가 황실에 인사를 온 날. 라틸은 아직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하이신스는 라틸과 눈이 마주치자 사르르 웃었고, 라틸은 그 미소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의 고백을 받았을 때는 심장이 미쳐 날뛰는 기분이었다. 연인이 된 후로는 더욱 행복했다. 두 사람은 말다툼조차 한 적이 없었다. 하이신스는 하늘이 라틸을 위해 마련해 준 영혼의 반쪽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렇게 2년 동안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굳건하게 다졌다. 그러나 5년을 예정했던 하이신스의 유학은 예상 외로 빨리 끝났다. 그의 이복동생인 헤움 황자가, 하이신스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반란을 꾸민 것이다. 하인신스는 급하게 카리센으로 돌아가기 전, 라틸에게 약속했다.

16551065392712.png“떨어져 있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내 마음속에 여자는 평생 너 하나뿐이야.”

16551065361181.png“하이신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널 돕고 싶어!”

16551065392712.png“안 돼, 라틸. 나도 너와 헤어지는 건 싫어. 하지만 너무 위험해.”

라틸의 눈물을 닦아주며, 하이신스는 몇 번이고 반복해 속삭였다.

16551065392712.png“꼭 황위에 올라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사신단을 보낼게. 널 아내로 맞이하게 해 달라고 네 아버님께 정식으로 요청할 거야. 기다려줘.”

라틸은 하이신스가 탄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날 이후 라틸은 하루에 두 시간씩 꼭꼭 신전으로 가서 기도했다. 제발 하이신스가 무사하기를. 반란을 일으킨 이들에게 죽거나 다치지 않기를.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기도하진 않았다. 하이신스를 믿으니까. 그의 사랑을 신뢰하기에 그가 변절한 거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라틸은 카리센에서 어떤 소식이 들려올까, 늘 귀를 기울였다. 외교를 담당하는 대신들을 만나면 카리센의 소식을 꼭꼭 물었다.

16551065361181.png“아직도 전쟁 중이에요? 언제 끝난대요? 하이신스는 지금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그 갸륵한 정성이 통해서일까. 2년 후, 타리움 제국에는 카리센에 새로운 황제가 즉위했단 소식이 전해졌다. 새로운 황제의 이름은 하이신스 카리센. 젊은 황제의 탄생이었다. * * *

1655106536121.jpg“그렇게 좋으세요?”

유모가 놀리는 투로 물었으나 라틸은 그저 좋아서 배시시 웃었다.

16551065361181.png“응. 안 좋겠어?”

하이신스가 무사히 황제 자리에 올랐으니 이제는 두 사람이 결혼할 일만 남아 있었다. 하이신스가 즉위한 지 어느새 두 달이 지났지만, 청혼 사절단이 늦게 오는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새로 황제 자리에 올랐으니 우선 정국을 안정시켜야겠지. 청혼 사절단이 당장 오지 못하더라도 서운해 할 일이 아니었다. 미래의 황후라면 나라를 위해 이 정도는 인내해야 하지 않을까?

1655106536121.jpg“하긴. 두 분이 함께 서 계시면 정말 보기 좋았지요.”

16551065361181.png“정말? 그랬어?”

1655106536121.jpg“예. 그야말로 선남선녀였습니다.”

화사하게 웃은 라틸은 책을 펼쳤다. 제왕학 책이었다.

16551065361181.png“하이신스가 자리를 잡을 동안 나는 더 많이 공부해둘래. 황후가 되면 내가 복지나 문화 같은 걸 맡게 되잖아. 황궁도 꾸려가야 하고. 많이 알아둬야 해.”

1655106536121.jpg“기특하셔라.”

16551065361181.png“그렇지?”

1655106536121.jpg“우리 제국에도 황녀님 같은 분이 황후로 오셔야 할 텐데…….”

유모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1655106536121.jpg“황태자님께선 여자엔 관심이 없고 책만 읽으시니.”

16551065361181.png“뭐 어때. 나도 그런걸.”

1655106536121.jpg“황녀님께선 연애도 하시고 무술도 익히시면서 책을 읽으시지만, 황태자님은 그야말로 주야장천 책만 읽으시니 문제지요.”

16551065361181.png“그건 그래.”

라틸은 킬킬 웃으면서 책을 한 장 넘겼다. 그러면서도 눈은 빼곡한 글자를 빠르게 훑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하이신스가 보고 깜짝 놀랄 정도로 공부해 두고 싶어서, 오히려 시간이 촉박하게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카리센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신단이 찾아왔다. 라틸은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히 방에서 나와 알현실로 달려갔다. 타리움 제국의 알현실은 옥좌가 있는 곳을 제외한 삼면이 탁 트여 있기에 문에 귀를 대고 엿듣지 않아도 사신이 보고하는 걸 엿들을 수 있었다.

1655106536121.jpg“황녀님?”

16551065361181.png“쉬잇.”

갑작스럽게 황녀가 다가오자 당황한 근위병에게, 라틸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서 충분히 대화가 들릴 만한 거리에 있는 커다란 기둥 뒤로 다가가 몸을 숨겼다. 사절단과 부황은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새 황제가 즉위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선대 황제가 그러셨듯 앞으로도 두 나라가 무궁한 영광을 함께 하기를 빈다 등등. 그러던 중 드디어 황제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16551065361181.png‘내 얘기야! 날 신부로 달라고 할 거야!’

라틸은 비명이 터지려는 입을 두 손으로 막고서 귀를 기울였다.

1655106536121.jpg“그러니 트리움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도 카리센에 축하 사절을 보내시어 새로운 황제 부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나 사신의 입에서 나온 결혼 이야기는 라틸이 기대해온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라틸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새로운 황제 부부? 축복해 달라고?

1655106536121.jpg“……결혼을 하는가. 신부는 누구지?”

1655106536121.jpg“다가 공작의 영애이신 레이디 아이니입니다.”

레이디 아이니라니? 그건 또 누구야? 신부가…… 내가 아니야? 뒤통수가 얼얼하다. 라틸은 넋이 나가 허공을 쳐다보았다.

16551065361181.png‘내 이름이 아이니였던가?’

순간 미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라틸은 입술을 깨물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도.

16551065361181.png‘사절단이 중간에 바뀐 건 아닐까?’

라틸과 하이신스의 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부황은 축하한단 인사만 건네고 있었다. 라틸은 결국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다.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1655106536121.jpg“황녀님? 세상에! 황녀님. 왜 그러세요?”

놀란 유모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라틸은 한참을 끅끅거린 후에야 눈물을 닦으며 털어놓았다.

16551065361181.png“유모! 하이신스가…… 하이신스가 딴 여자랑 결혼한대!”

1655106536121.jpg“네? 그럴 리가요! 황녀님께서 뭘 잘못 아셨겠지요!”

유모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1655106536121.jpg“그분이 황녀님을 얼마나 따라다녔는지 모두가 다 아는데, 무슨. 황녀님에게 청혼하는 사절을 보냈단 이야기를 잘못 들으신 게 아니에요?”

16551065361181.png“아니야. 신부 이름까지 들었는걸. 아이니라고 했어.”

그제야 유모도 눈을 커다랗게 떴다. 라틸은 다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16551065361181.png‘충격…… 배신자. 나쁜 놈. 썩을 놈. 쓰레기.’

라틸은 창가에 위험하게 앉아 파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저 하늘 아래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게 바로 2년 전인데. 바람이 불어서 하이신스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면, 라틸은 웃음을 터트렸다. 손을 뻗어서 그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그러고 나면 머리카락에 잠시 가려졌던 하이신스의 오묘한 회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눈동자는 애정으로 가득했다.

16551065361181.png‘하이신스……’

하지만 이젠 다 끝나버렸다. 하이신스는 자기 나라의 영애와 결혼하겠다 결심했고, 그 사실을 외국에 사절단을 보내어 알렸다. 트리움 제국에만 사절단을 보냈을 리 없으니, 온갖 나라가 이 소식을 들었겠지. 외국에 발표할 정도면 결혼은 이미 확정된 일일 터.

16551065361181.png‘마음이 변한 걸까. 이젠 날 사랑하지 않게 되었나.’

쓸쓸해진 라틸은 눈을 감고 창틀에 이마를 쾅쾅 찍었다.

16551065361181.png‘이럴 줄 알았으면 하이신스의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해달라고도 빌걸.’

너무 승전보만 빌었나봐. 생각하니 열이 받는다. 부작용인가? 라틸은 훌쩍거렸다. 하이신스가 황위 쟁탈전에서 다쳤단 소식과 승리한 후 배신했단 소식 중 어떤 게 더 마음이 아플까?

1655106536121.jpg“세상에! 황녀님! 위험하게 이게 무슨 짓이세요!”

16551065361181.png“위험하지 않아, 유모. 부실공사를 한 게 아니라면.”

1655106536121.jpg“바람이 세게 불면 어쩌려구요.”

16551065361181.png“난 바람에 휩쓸릴 무게가 아니야.”

1655106536121.jpg“황녀님은 그렇게 무겁지 않아요.”

16551065361181.png“내 고민도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틸은 울적하게 중얼거리며 다시 창틀에 머리를 기댔다.

16551065361181.png“그리고 하이신스는 개자식이야…….”

그때였다. 유모가 갑자기 주위를 휙휙 살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인데도.

16551065361181.png“뭐 해?”

이상해서 묻자, 유모는 품 안에서 슬쩍 편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1655106536121.jpg“자요, 황녀님.”

연한 푸른색을 띤, 고급지로 싼 편지였다.

16551065361181.png“뭐야?”

라틸은 힘없이 편지를 받아 살폈으나, 거기엔 보내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16551065361181.png“익명이잖아. 이걸 왜 나한테 줘?”

1655106536121.jpg“아까 사절단 사람들 중 하나가, 황녀님에게 몰래 전달해 달라 하였습니다. 하이신스 님이 보낸 편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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