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 데뷔탕트 (2) (197/210)


#196. 데뷔탕트 (2)
2023.07.16.


【 데뷔탕트의 시작을 알리는 알현의 날, 명백한 퀸은 레이디 크리스티나였다! ― 목격자들의 생생한 인터뷰 수록! 】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었겠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황제 폐하 부처께서 유일하게 부드럽게 웃으며 칭찬한 사람이었고, 미소 지은 영웅의 시선은 자신의 신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죠.



 
【 드디어 베일 벗은 아서 경의 신부! 그녀에 대한 소문의 진상은? 】

― 다들 기억하고 있겠지만, 파티 없는 사교계에서 그동안 ‘베일에 싸인’ 퀸이었던 그녀에겐 많은 부정적인 소문이 있었습니다.

― 가시 많은 장미라느니, 까탈스러운 얼음 공주라느니. 아서 경과 쇼윈도 부부라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 하지만 단번에 그 모든 소문을 불식시켜 주더군요.

― 누구나 그녀를 보면 우아하고 품위 있을 뿐만 아니라 상냥하고 좋은 레이디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겁니다.

― 행사를 마치고 떠나며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는 젊은 레이디들에게 모두 상냥하게 미소 지어 주었고, 상대에게도 축복의 말을 돌려주었습니다. 하인들에게도 친절하셨고요.

― 자매 역시 우애가 아주 돈독해 보였습니다.

― 바로 다음이 자기 순서인데 손에 든 꽃이 심하게 망가진 걸 알고 어쩔 줄 몰라하던 다른 레이디에게 남몰래 자기 꽃을 건네주기도 했다더군요. 안쪽에 있던 하인이 귀띔해 주었습니다.

― 사실 레이디가 두 분 폐하 앞에서 물러나 아서 경의 에스코트를 받아 나가며, 긴장했는지 살짝 드레스 자락을 밟아 비틀거렸는데,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부축해 주는 아서 경과 마주 보며 민망한 듯이 웃는 모습이 아주 사랑스러웠습니다.

― 뒤에서 황제 폐하 부처와 황태자 전하께서도 못 본 척하고 웃어주셨죠.

― 이번 데뷔탕트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을 겁니다.

―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매료시켰어요.

― 데뷔탕트 무도회에서 두 분의 첫 춤이 기대됩니다.

* * *



“이것 좀 보세요! 온통 아가씨 얘기예요!”

브로디가 신나 하며 신문들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성공적이에요. 신문들도 아주 우호적이라고요!”

“…….”

레이나는 긴장한 채 신문을 받아들었다.


“그것 보세요! 제가 다들 좋은 의미로 난리날 거라고 했죠!? 걱정할 건 하나도 없다고 했잖아요! 빨리 봐요, 빨리!”

브로디가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것을 들으며 레이나도 신문을 확인했다.


“…….”

브로디는 옆에서 다른 신문의 대목을 읽어 주며 들떠서 재잘거렸고, 옆에 있던 이사벨 포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무사히 데뷔를 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축하해요. 당신이 설명하며 걱정했던 것보단 잘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기사로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잘했는데요?”

“…….”

신문 기사를 통해 본 자신과 아서의 모습은 낯설었다.

자신에게는 식은땀 나는 한순간이었는데.

그렇게 다정하게 보였다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다.

어느새 신문 너머의 세상에 뛰어들어 있다는 것이 새삼 와닿았다.

꽃을 건네준 건 어떻게 안 거지?

상대 레이디 외엔 가까이 있던 궁정 하인 한두 명밖에 못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철저하게 입이 무거운 줄리어스의 하인들에게 익숙해져 있어서 이렇게 소문이 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신문 어디에도 조롱이나 비난은 없었다.

그녀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동생과 언니가 헷갈리더라는 말도.

소식지와 신문 기사들을 대부분 확인한 레이나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금 상기된 얼굴을 손등으로 눌렀다.

긴장감이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기쁜 마음보다는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이사벨 님이 마지막에 치맛자락 밟기 쉽다고 주의 주셨는데, 말씀하신 그대로 실수해 버렸네요.”

이사벨은 웃으며 어깨를 짚고 격려해 주었다.


“알현의 날에 실수를 단 하나도 하지 않고 나오는 사람은 없을걸요. 그 정도는 실수도 아니에요.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레이나가 신문을 만지작거렸다.

기사로 읽으니 그날의 긴장감과 낯선 두근거림, 손을 잡아 주던 아서의 미소가 생생하게 기억에 되살아났다.


“…….”

그리고 레이나는 안도감이나 낯선 기분과는 별개로 머릿속으로 신문사의 이름과 기자들의 이름을 확인하며 신중하게 여론을 헤아렸다.

대부분 아서와 그녀에게 우호적인 기사들이었지만, 레이나는 표면에 쓰인 말만 보고 쉽게 들뜨지 않았다.

이미 그들이 5년 동안 어떤 기사들을 썼는지 알고 있었고, 아서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쉽게 조롱과 찬양의 양극단을 오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서가 가진 바꿀 수 없는 특징은 황제의 아들, 그러나 가문의 뿌리나 기반이 없는 사생아라는 것이다.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있기에 아서의 명성이나 인망은 여론에 쉽게 좌우되었다.

공을 세우면 황제의 아들이라며 한도 끝도 없이 추켜올려지고, 실수를 하면 역시 근본 없는 사생아라 그렇다며 그동안 세운 모든 공적이 다 깎아내려졌다.

그것이 아서가 실수하면 안 되는 이유였다.

지금은 추켜올려지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였다.

다수의 여론을 거슬러 비난받고 싶지 않으니 겉으로는 칭찬하면서도, 내심 실수만 하라며 물어뜯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악어들이 있을 테니까.


“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 축하한다는 편지들이 무척 많이 왔어요.”

이사벨이 살펴보고 조언했다.


“음……. 이건 표면적으론 축하지만, 신문사네요. 인터뷰를 요청하는 편지들일 수도 있겠는데요.”

레이나는 신중하게 신문사와 기자의 이름을 살폈다.

과거 적대적이었거나 조롱조로 기사를 썼지만, 승전 이후 아서에 대한 여론이 좋아지자 슬그머니 태도를 바꾼 신문사, 혹은 기자.

아서를 칭찬하는 듯하지만, 황태자와의 관계나 황후의 불편할 심기를 고려했을 때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게 묘사하곤 하는 신문사 혹은 기자.

얼핏 보면 다른 기자들에 비해 호들갑 떨지 않으며 인색하게 평가한 듯하지만, 아서의 평가가 좋지 않았을 때도 쉽게 비난하지 않았으며, 태도가 신중했던 기자나 언론사가 모두 섞여 있었다.

* * *



“역시 애가 쓸만하다니까.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보지.”

후작은 ‘줄리어스’의 이야기가 절반은 차지한 신문들에 흡족해하며 손에 든 페이지를 넘겼다.

식식대며 걸어온 후작 부인이 그의 손에서 신문을 가로챘다.


“당신 대체 지금 뭘 보고 히죽대는 거예요?”

“아, 왜 또? 다 잘 되어가고 있는데.”

“뭐가 잘 되어가? 온통 그 계집애 얘기뿐이고 우리 애한테는 아무도 관심 없는데?! 잘 된 거예요?! 이게 맞아요?”

“…….”

“걔가 잘 돼야 우리 크리스티나도 잘 되는 거라며! 그런데 지금 그렇게 되고 있어요? 누가 당신 딸인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진짜 크리스티나인 ‘율리아나’의 이야기는 아주 조금만 실렸다.

【 함께 인사 올린 레이디 크리스티나의 자매 율리아나 줄리어스도 자못 아름다웠다. 】

【 레이디 크리스티나는 상냥하고 다정하게 동생을 바라보았다. 자매의 우애가 돈독해 보였다. 】


“…….”

후작은 쇄도하는 축하 편지와 관심에 기분이 좋았고, 아내의 협조도 얻어야 했기에 그녀에게도 한껏 너그러워진 목소리를 내었다.


“이 사람, 참. 내가 그럴 리가 있겠어?”

이제 크리스티나를 잘 포장해서 좋은 혼맥을 따내야 하는데.

아무렴 내가 그 애의 가치를 잊었겠는가 말이다.


“여보. 이게 다 우리 눈치를 봐서 가족사에 대해서 말을 아낀 거 아니야. 당신은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애가 지금 너무 관심을 받아도 안 좋은 상태인데. 지금은 조용조용히 가는 게 맞지.”

“…….”

“이제 알현의 날만 지난 건데. 아무렴 무도회도 나가고 하면 점점 더 우리 애가 주목을 받겠지. 나는 애가 너무 눈에 띌까 봐 걱정인데. 당신 우리 딸한테 자신 없어?”

후작 부인은 말없이 식식거렸다.

후작의 말은 얼핏 맞는 소리로 들렸지만, 마틸다는 그 여우 같은 것이 후작과 황제를 구워삶아 견제 없이 제 실리를 챙기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그 사이에 우리 애는 아서에게 밀려나서 이런 신세가 되었다는 걸 공개적으로 말하지도 못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후작은 너그럽게 웃으며 부인을 달래듯 말했다.


“나도 당연히 우리 애가 더 귀하고 더 이쁘지. 하지만 지금 ‘레이디 크리스티나’보다 동생이 훨씬 고급지게 예쁘더라, 레이디 크리스티나의 동생 율리아나가 아서의 아내보다도 주목을 끌었더라……. 이런 소리가 신문에 실리겠어? 그러길 바라? 그럼 괜히 이래저래 수상하다는 시선만 끌 텐데?”

“…….”

너그럽게 가자, 너그럽게. 으응?

후작은 마틸다의 어깨를 잡고 확신 어린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어차피 남의 떡에 대한 관심은 잠깐이야. 무도회가 시작되면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결혼 시장에 나온 미혼 레이디들에게 쏠리게 돼 있어! 그럼 우리 애가 가장 먼저일 거고!”

“…….”

후작이 짝 손뼉을 마주치며 마틸다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지! 혹시 당신, 두 번째 사윗감으로 점찍어 둔 사람은 없어? 나는 좀 욕심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야…….”

“…….”

후작 부인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눈썹을 꿈틀하자, 후작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카일 황태자나 렘브란트 경 어때?”

헛소리하고 있네.


“퍽이나 되겠군요!”

“왜 안 돼? 실제로 하녀가 아서랑 사랑에 빠졌는데! 당신은 참 줄리어스의 안주인이라는 사람이 배포가 작아서―.”

마틸다는 화가 난 나머지 후작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방을 나왔다.


“악!”

후작의 고통에 찬 비명이 복도에 울렸다.

* * *

쾅!

마틸다는 식식거리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후작의 말에도 맞는 면이 있었다.

나름대로 신문사는 ‘줄리어스’의 눈치를 보아서 우리에게 잘 보이겠답시고 그 애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겠지.

사람들이 뭘 모르다 보니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손을 놓고 있다간 그 여우한테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아서와 크리스티나의 차이가 더더욱 벌어지겠지.

조바심이 났다.

뭐라도 나서서 우리 아이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마틸다는 쇄도하고 있는 초청 카드와 축하 인사, 인터뷰 요청들을 떠올렸다.

축하 인사로 포장한 인터뷰 요청이 그들의 저택에도 적지 않게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뭐라도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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