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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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2023.03.12.
제국 수도. 줄리어스의 타운하우스.
하녀가 급하게 가져온 소식을 들은 마틸다는 너무 놀라서 의자의 팔걸이를 콱 틀어쥐었다.
“……뭐? 아서가……?”
정말 내가 들은 소식이 이게 맞나?
믿을 수 없어 하는 마틸다에게 또 다른 하녀가 달려와 최신 발행의 신문을 건네었다.
마틸다는 다급하게 그것을 받아 읽었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아서가 살리아 반(反) 종전 세력에게 피습당해 실종?!’
믿을 수가 없었다.
마틸다는 아서를 처리해 달라고 비밀리에 해결사를 고용한 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고용한 해결사들은 믿음직하지 않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이유로 진행은 지지부진, 착수금을 계속 늘려 요구하면서 실랑이만 하고 그 어떤 성과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틸다가 자신이 한 의뢰의 결과로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착수금만 받고 해결사들이 사라져 버린다거나, 아서가 몇 번의 하잘것없는 공격을 받고 모든 일이 흐지부지된 뒤 아서의 비아냥을 마주하게 된다거나 하는 암담한 결말뿐이었다.
설령 운이 좋아 아서에게 해를 입히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아서가 어느 정도의 부상을 당하는 정도로나 생각했지, 아예 실종돼 버린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는 전쟁에서 전설적인 업적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후작과 아서의 처우에 대해 다투면서도 아서가 스스로를 기가 막히게 지킬 거라던 후작의 말에는 마틸다도 내심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차례의 폭탄 테러가 동반된 피습 이후 실종이라니, 이건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뜻 아닌가?
마틸다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초조하게 거실을 서성였다.
정말 자신이 보낸 해결사들이 한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착수금이나 늘려 달라고 투덜대던 놈들이, 일 처리를 너무 거하게 해 버리지 않았나!
게다가 착수금 없이 놈들을 움직이기 위해 완수 보상금을 자신의 개인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걸어 버렸는데……!
마틸다가 안절부절못하며 부채를 잡아 뜯었다.
애초에 의뢰를 보내면서도, 마틸다는 과연 해결사가 아서와 직업 군인들을 당해낼 수 있기는 한 걸까 의심했었다.
이렇게 불쑥 세상이 들썩일 결과를 맞닥뜨리게 되리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럭 겁까지 났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건가? 진짜 아서가 죽은 거면?
돈에 눈이 뒤집힌 놈들이니 성공했다면 반드시 완수 보상금을 받으러 올 텐데……!
지불할 돈도 없는 데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 버리니 그들이 찾아올 일 자체가 두려워졌다.
무서운 놈들이라는 것도 갑자기 실감이 났고, 남들에게 꼬리가 잡힐지도 모른다는 것도 겁이 났다.
‘줄리어스’가 지불할 돈이 없다고 하면 놈들은 거짓말이라 여길 것이다.
폭로전까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게다가 그림이 너무 심각하지 않은가?
살리아 반 종전 세력의 습격이라니!
그건 결코 그녀가 바라지 않은 그림이었다.
적국의 습격처럼 보도가 나와 버렸으니 잘못 엮이면 반역이나 내통으로 몰릴 수도 있는 사안인데……!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마틸다는 순간 멈칫했다.
……적국의 공격?
등골이 서늘해졌다.
‘가만. 그럼 이건……. 전쟁의 연장 아냐?’
황제가 개선식을 열어 주고 공식적으로 군을 해산하기 전에는 원칙적으로 종전이 아니다.
얼어붙어 있던 마틸다는 다급하게 몸을 돌려 안토니오 줄리어스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서랍들을 뒤적이며 혼인 계약서를 찾기 시작했다.
‘아서가 전사하면 혼인 무효화.’
분명 그런 조항이 있지 않았나?
그건 곤란했다.
아서가 그냥 죽는 것과 전사하는 것은 다르다.
원래 그 조항은 아서가 전사하면 후작에게 유리한 조항이었다.
하지만 아서가 재단을 만들며 이미 줄리어스의 재산 상당 부분을 흡수한 데다 적국 배상금과 황실의 돈까지 받아 엄청난 부자가 된 지금, 결코 이 혼인은 무효화 되어선 안 됐다.
그럼 아서의 유산은 로아스 자작가나 황실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마틸다는 다급하게 후작의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급보에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저택으로 돌아온 안토니오 줄리어스가 허겁지겁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마틸다!”
그리고 집무실을 뒤지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막 후작의 혼인 계약서를 찾아낸 마틸다가 흠칫하며 몸을 일으켜 그를 쳐다보았다.
“여보!”
“…….”
아서의 소식에 대해 아내와 상의하러 온 후작이 엉망이 된 집무실과 마틸다를 당황해서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꼴이지?
후작이 검지를 들어 마틸다를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다, 당신……. 당신 아서 소식 못 들었…….”
말을 이으려던 후작이 입을 다물었다.
곧 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마틸다와 아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놓고 다투었던 일들이 몹시도 불길한 색채로 그를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
후작의 얼굴에 이내 믿을 수 없는 분노가 떠오르며 그가 소리를 질렀다.
“마틸다!! 당신 설마!!”
“아니야!”
몹시도 낭패한 듯한 마틸다의 얼굴, 엉망이 된 자신의 방, 그리고 그 손에 들린 혼인 계약서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마틸다는 이미 그 하녀 애한테도 비슷한 짓을 하지 않았나!
그때도 저렇게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발뺌하더니!
기어코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었구나!
“살리아?! 살리아라니, 이 미친 여편네가!”
후작이 숨넘어갈 듯이 발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사위가 총사령관에 남편이 황제를 매일 만나는데 안주인인 당신이 적국과 내통을 해!?”
그의 요약을 듣자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사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남편에게 자신이 했던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적국과 내통만은 정말로 아니었다.
그것만은 억울했다.
무슨 방법으로 살리아와 접촉할 수 있는지조차 마틸다는 알지 못했다.
“당신 살리아를 끌어들여 살인 청부를 했어?!”
경악한 마틸다가 계약서를 틀어쥐고 발을 굴렀다.
“아니야, 아니라니까!!”
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야!
뭔가에 심각하게 휘말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 * *
아서가 피습, 실종됐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황실에서 사람이 와서 후작을 불러 데려갔다.
제국민들은 경악에 휩싸였고, 축제를 기다리던 귀족들은 당황해서 입을 가렸다.
순조롭게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서가 나타나는 순간 세상 모두가 주목할 수 있도록.
카일이 활약하는 순간 여론이 반전되기 딱 좋도록.
* * *
그리고 아서는 낯설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한가롭게 방치되었던 것이 몇 년 만인가.
공식적으로 완전히 누구도 찾지 않는 며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벽하게 잠적해야만 카일이 모든 걸 준비할 수 있을 며칠…….
트리스탄이 좀 더 뭔가…… 자주 찾아오거나 중간중간 소식을 전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입을 것과 덮을 것, 치료할 것, 먹을 것 따위의 보급품만 간간이 밧줄에 바구니를 매어 슬그머니 내려줬을 뿐…….
공식적으로 숨어 있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소리쳐서 상황을 묻거나 전할 수도 없는데.
물건만 전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방치되고 있는 거지?
아서는 점점 속이 탔다.
몸은 편했는데 정신은 탈탈 털리고 있었다.
아서는 첩보랍시고 ‘아서 경은 버섯을 편식합니다’ 따위나 적어 보내던, 그동안 순진하게만 보아 왔던 레이나의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운 면모를 새로이 발견하며, 숨기려고 했던 것들을 모조리 털리고 있었다.
레이나가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저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 저를 통해 아서 경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 살리아. 이 세 개 세력의 연합이고, 저를 해치면 아서 경이 잘못되는 이유에는 아서 경의 ‘오러’가 연관돼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당신은 저한테 그걸 숨기고 있는 것 같고요.”
“…….”
“살리아부터 말하자면 폭탄을 사용했고, 살리아 말을 사용했고. 아서 경을 해치는 일에 확실한 목적이 있어 보였어요. 그러니 다른 세력일 수 없어요. 제게 출생의 비밀 따위가 있다고 해도 살리아가 거기에 얽힐 이유는 없으니까요. 오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으니 같은 목적을 가진 세 세력이 엮인 거죠?”
“…….”
꿈인가?
꿈이겠지?
아서는 거의 현실이 아닌 걸 보는 얼굴로 레이나를 보고 있었다.
“아서 경에게 앙심을 품고 있고 적국 왕족 인질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걸 생각했을 때 반(反) 종전 세력 외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고……. 저를 통해 아서 경을 해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오러 때문인 것 같아요. 맞나요? 그게 아서 경이 저한테 말해 주지 않는 내용이구요.”
“…….”
이런 게 현실일 리 없어.
아서는 도저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입을 떼었다.
“……당신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레이나가 입술을 삐죽였다.
“당신 이야기 많이 찾아봤다고 했잖아요.”
“그냥 신문 자주 찾아본 안목이 아닌데.”
“……그래요?”
레이나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 말 들으니 좀 기분 좋네요.”
그냥 찾아본 게 아니라 수집광적으로 찾아 모으기도 했고,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에 대해선 내가 직접 분석하기도 했었다.
아서에 대한 근거 없는 비관이나 평가절하 기사를 본 날에는 갑자기 에너지가 솟구쳐 씩씩대며 혼자만의 반박 평론을 한바닥씩 쓴 적도 있었다.
신문사에 투고하려다가 그냥 스크랩북에 끼워 두는 걸로 참았지만…….
아서의 역사가 담긴 스크랩북을 만들면서 레이나는 나름대로 그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 있다고 자부했다.
‘개인적인 아서’에 대해선 몰라도 ‘공적인 아서’에 대해서만큼은 레이나 자신만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스크랩북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남한테는 못 보여 줄 내용들이었다.
나 혼자 보는 일기 같은 거란 생각에 너무 쓸데없는 글들을 많이 적어 두어서 창피했으니까.
그런 걸 적지만 않았으면 나중에 아서 박물관 같은 게 생겼을 때 기증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아서는 애써 아닌 척했지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
말을 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제 ‘개인적인 아서’도 좀 아는 것 같기도 했다.
“……케이한테 들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 당신을 스카웃하고 싶어 할 것 같아서.”
“……그런가요?”
아서가 살짝 레이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가 다시 아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편해 보였다.
레이나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아서 경.”
“응.”
“‘오러’에 문제 있는 거죠? 근데 저한테 말 못 하시는 거고요.”
“…….”
아서가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골랐다.
레이나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아서가 크게 움찔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레이나와 닿는 게 두려운 것 같았다.
“…….”
레이나는 거의 진실에 근접해 있었다.
거의 죽을 뻔했던 중상이었던 아서의 상처가 너무 빨리 나았다.
그 정도 상처가 그렇게 빨리 괜찮아질 리가 없는데도.
그동안 보도로 전해졌던 아서의 초인적인 전쟁 능력과, 선황제 알렉산더 루사익 2세의 전쟁 신화에서도 어렴풋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서가 말했던 황실의 기밀이라는 것도 힌트가 되었다.
그리고 레이나는 아서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초점이 잡히는 것이 전과 다르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아서의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그 문제 저하고 가까이 있으면 해결되는 거 맞아요?”
“…….”
아서가 대답하지 못한다.
레이나가 옆에 가까이 붙으려고 했다.
아서가 황급히 팔을 들어 레이나를 막았다.
“아니? 그런 거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