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 부름 (131/210)


#131. 부름
2022.12.01.


황제 그레이엄은 화려한 황제기가 꽂힌 금빛 수레 열두 대를 보내 정식으로 개선장군 아서를 황성으로 불러들였다.

부우우우―!

줄리어스의 개선 광장에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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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총사령관―! 줄리어스의― 아서는―! 예를 갖추고― 나와―! 영예로운 황명을― 받으시오―!”

아서가 정중히 한쪽 무릎을 꿇고 황제의 명을 받들자 줄리어스 광장이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목소리가 우렁찬 전령이 쩌렁쩌렁한 소리로 개선장군의 공훈을 치하하고, 황태자 카일의 형제이자 구국의 영웅인 ‘아서 줄리어스’의 개선식이 황제의 이름하에 거행되리라 소리쳤다.

* * *

【 ‘아서 경 개선식’ 1월 신년제에 거행! 】

― 신년제에서 ‘아서 경’의 작위 수여식과 ‘줄리어스 후작’ 선제후 임명식이 거행되는 것으로 확정!

― 아서 경, ‘신년제’에 맞추어 12월 중 수도로!

【 황제의 부름 – 황금 수레 열두 대의 의미 】

― 황실 인원에게만 허락되는 의전, 공작위 수여를 암시!

― ‘후작가의 후계자’, 돌아오면 ‘공작’!?

― 아서 경에게 수여될 가능성이 높은 작위는?

【 작위 수여 받는 평민 출신 기사들 화제! 】

― 평민 가운데서는 플람베르의 명예로운 기사

‘트리스탄 고트프리트’
, 붉은 협곡 전투의 설욕

‘루칸 러쉬만’
등이 포함

― 특집 예고 : 아서 경의 명예로운 기사들

* * *

가뜩이나 인기가 높았던 와중에 성대하고 인상적인 장면까지 연출하며 황제가 그를 불러들이자 사람들은 아서를 더욱 우상처럼 추앙하기 시작했다.

후작이 거래처들을 줄 세워 만나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저택과 광장에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비명 같은 환호를 질렀고 그의 옷자락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었다.

아서 특수를 활용하며 무시무시한 금권을 휘두른 후작보다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 선언하고 공무만 수행하는 아서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인파로 인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자 아서는 공개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중단했다.

수석 참모 케이는 기사들을 재소집해 군을 재정비하고 참전 용사들이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도록 행실을 주의하라 단속했다.

반면 크리스티나는 사원의 감사 미사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 조용히 미사를 보고 기도를 올렸다.

크리스티나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고 자신의 행동에 그 어떤 설명도 붙이지 않았지만, 소식지와 신문들은

‘아서를 위해 5년 동안 지속해온 크리스티나의 기도가 오늘도 변함없다.’

해석하며 크리스티나의 품위 있는 내조가 훌륭하다고 칭송했다.

후작이 영지 전체에 화려하게 축제를 베풀고 막대한 금액을 보상한 것으로 자신의 후의를 드러낸 것과 달리, 크리스티나는 유가족이나 참전 용사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소개되면 말없이 큰돈을 써 그들을 챙겨 주는 것으로 후작과 비교된다는 찬사를 받았다.

크리스티나가 행한 일들은 전부 기사로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다.

뜸할 만하면 한 번씩 숨겨 왔던 크리스티나의 미담이 드러났다.

아서의 유명세와 결합하며 크리스티나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동안 은근히 소문이 나쁘던 그녀가 사실은 이렇게나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반전에 열광했다.

아서의 신화와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는 사뭇 잘 어울렸다.

그리고, 루모스 상단을 비롯해 몇몇 상단들이 그런 크리스티나의 선택을 받아 독점적으로 줄리어스 저택에 출입하며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줄리어스의 첫 번째, 두 번째 등, 줄리어스 후작이 엄선해 줄 세워 놓은 순번표는 ‘개선식을 앞둔 크리스티나 줄리어스의 직접 초대’ 앞에서 빛이 바랬다.

사실상 그 순위를 빌미로 상단들로부터 폭리를 취하고 온갖 계약서를 유리하게 조율한 후작의 약속을 딸이 무용지물로 만드는 폭력적 행보였지만 후작에게 줄을 서기 위해 많은 출혈을 감수한 상단들은 난처하고 당황해하면서도 내색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닫은 채 그녀와 대화할 기회를 잡으려 크리스티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어차피 크리스티나 줄리어스의 행보는 아서의 영광과 ‘참전 용사 재단’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거기에 직접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상단은 없었다.

역시 내조의 여왕이라며 크리스티나는 입 하나 벙긋하지 않고 훌륭한 레이디라는 칭찬을 몰아받았다.

* * *

크리스티나 줄리어스와의 자리는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루모스 상단주와 후계자는 하얗게 질려 말을 잃었다.

줄리어스 저택에서 상단주들이 모인 식사 자리는 마치 경쟁입찰을 하는 경매장 같았다.

어떤 면에서 크리스티나 줄리어스는 줄리어스 후작보다도 더했다.

루모스도 작은 상단은 아니었지만,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거대 상단들 사이에 끼어 등이 터지는 신세가 되고 나자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워 후계자는 그만 크리스티나 줄리어스 앞에서 서운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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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저희 루모스 상단만 초대를 받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 다른 뜻은 아닙니다. 동료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라서…… 기쁘네요.”

난처해 땀을 뻘뻘 흘리며 루모스의 후계자가 하는 말에, 크리스티나가 냉정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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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루모스 상단에게만 부담시키기엔 버거운 짐이라 생각되어서요.”

루모스는 크리스티나 줄리어스가 협력을 요구한 재단 후원금을 단독으로 다 채워내지 못했다.

크리스티나가 다른 상단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그것이라면 할 말이 없긴 했다.

크리스티나 줄리어스는 여러 상단들을 끌어들여 아서가 설립하려는 재단을 후원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모두 크리스티나의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경매장을 방불케 하는 미친 듯한 경쟁입찰이 벌어진 것이었다.

크리스티나의 성질을 맞춰주며 온갖 티가 나지 않는 궂은일을 도맡아 그녀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 루모스로서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루모스와 함께 같은 자격으로 초대받는 상단이 이렇게 많다는 건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쩔쩔매며 그는 다른 상단들도 크리스티나를 위해 ‘많은’ 일을 하며 헌신하고 있냐고 물었지만, 크리스티나는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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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공작 부인께 입을 함부로 놀렸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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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모스의 후계자가 입을 딱 다물었다.

크리스티나가 냉랭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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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도 ‘어디에’ 줄을 설지 고민하는 모양이던데. 뭐. 이해해요. 나도 동반자로 여러 상단을 고려하고 있으니까.”

크리스티나가 부드럽게 그를 깔아보며 눈을 가늘게 좁히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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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잘해요.”

 

* * *

……이번엔 제대로 전해졌나 보네.

렘브란트는 턱을 괴고 레이나와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 서로 눈을 마주치면 웃는 시간이 생겼다.

오랜 친구 사이인데도 서먹하게 굴던 레이나가 그를 받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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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의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워졌지만 언뜻언뜻 그녀 쪽을 바라보는 눈빛에 조금 더 따뜻한 기색이 보였다.

둘 사이에 뭔가 합의된 진전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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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브란트는 레이나가 숨어 있던 산장을 처음 찾아가 그녀와 재회했던 날을 떠올렸다.

할머니가 없다는 소리에 그녀가 의자를 밀치며 일어나고.

한참을 할머니를 찾아 산을 헤매고.

결국 사라졌던 할머니를 테일러 로렌슨이 무사히 찾아 모셔 왔을 때.

할머니를 방 안에 모신 후, 완전히 하얗게 지쳐 복도에 웅크려있던 그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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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만나라고 해 놓고, 미안해.」

 
레이나가 했던 그 말은 둘 사이의 염문의 실체를 어렵지 않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가 마음이 있고, 그녀가 밀어내는군.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했다는 건, 테일러 로렌슨이 마음이 있었고 그걸 표현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는 거겠지.

어떻게 되려나 했는데, 그녀가 의지할 데 없이 어려운 상황에 힘이 되어 주는 그에게 흔들리다 마침내 마음을 연 모양이었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나가 테일러에게 하려던 말인데 자신에게 전해진 바람에 조금 신경 쓰였었다.

어렵사리 나온 말이었던 것 같아서.

내가 끼어들어 뭔가 중요한 일이 무산된 거라면 미안하니까.

하지만 테일러와 레이나를 보니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해결됐구나 싶었다.

오래 보지 않았지만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그녀의 성격상 그런 과거를 숨기고 다시 결혼하려고 할 사람이 아니었다.

테일러 로렌슨이 레이나에게 마음이 있다면 레이나에게는 다시 없을 남자였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 생각하며 렘브란트는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묵묵히 아서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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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니면 됐다. 너 때문에 아까는 아주 곤란했어. 아서가 부인을 꽤 좋아하는 모양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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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싸고도는 아서의 태도는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데가 있었지만 아서의 조치는 이상적이었다.

아서는 그녀를 비밀리에 보호하고 있었으며, 줄리어스로부터 차단했고, 테일러 로렌슨을 그녀의 곁에 있게 했다.

합리적으로 그녀와 할머니를 보호할 수 있는 좋은 사람에게 맡기는 조치였다.

그리고 아서는 직접 나서지 않고 자신의 신뢰하는 부하를 보내 그녀를 위한 후일을 도모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걸로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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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의 가신으로 있을 줄 알았던 테일러 씨가 갑자기 여길 떠나 자기 영지에서 결혼을 했다면 레이나 양과 연관 있다는 걸 의심받을 겁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진행하되 레이나 양은 이름을 바꾸고 적당한 신분을 새로 만드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케이의 말을 프랜시스가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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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진행하시겠다면 그건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케이는 수도로 가야 하기도 하고 개선식 때문에 이래저래 바빠서 진행도 불가능할 거예요. 제가 하죠. 포드의 먼 사촌 아가씨쯤으로 신분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펄 공작 부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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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쪽으로 하지요. 포드라면 아서와 연관 있다는 것이 짐작될 것 같으니. 내가 적당한 북부 귀족을 추천해 주겠습니다. 독실하고 믿을 만한 집안이 몇 있어요. 레이나를 양녀로 들이게 하지요. 북부 지방의 귀족들은 중앙 귀족과 교류도 적고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많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 적당할 거예요.”

테일러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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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당장 저희가 결혼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이곳은 위험하니 일단 제 영지로 가서 한동안 안전하게 지내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레이나는 귀족이 될 의향이 없다고 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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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일러 옆의 레이나는 말없이 두 손으로 쥔 찻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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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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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네?”

레이나는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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