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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공작 부인의 분노 (107/210)


#107. 공작 부인의 분노
2022.09.08.


아그네스가 루모스의 호텔로 돌아오고 얼마 후.

공작 부인께 인사 올리고 싶다며 루모스 상단의 주인이 찾아왔다.

아그네스는 이례적으로 친히 스위트룸의 응접실로 그들을 불러들여 인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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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작 부인. 머무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공작 부인은 함께 들어온 후계자에게 스치듯 시선을 두었다가 상단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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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제가 이후 일정이 있어 시간을 많이 내지는 못할 듯해 미안합니다.”

상단주는 실망하지 않고 능숙하게 예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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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씀을요. 이렇게 초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계시는 동안 편히 머물러 주신다면 무엇보다도 큰 자랑이 될 것입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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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공작 부인은 부드럽게 웃어준 뒤 뒤쪽에 서 있는 루모스의 후계자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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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를 안내해 주신 분과 잠시 대화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공작 부인의 지목을 받은 후계자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손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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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씀이십니까?”

공작 부인은 모두를 물리고 상단 후계자와 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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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계자는 무슨 일인가 긴장했다.

아버지에게는 저만의 비법이 있는 양 말을 아꼈지만, 사실 공작 부인이 루모스의 호텔을 택한 이유도, 저를 지목한 이유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누이.

시종일관 온화한 태도임에도 그녀에게선 크리스티나 줄리어스 이상의 위압감이 들었다.

신분 자체로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되는 상대였다.

문이 닫히자 공작 부인의 자색 눈이 그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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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 부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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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리스티나가 근래 그대들의 상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당신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겠죠.”

칭찬하는 인사치레 같기도 하고 뼈가 있는 말 같기도 했다.

후계자는 긴장해서 예를 표하며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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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레이디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줄리어스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되어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작 부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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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크리스티나의 명령으로 아서 경의 실종된 정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었기에 후계자는 적당히 둘러대기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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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사소한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영지에 들어와 있는 상단들의 분위기를 살피는 일과 의상실을 둘러보는 일, 그리고 또…….”

공작 부인은 눈매를 접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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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리스티나가 아서의 기사들이나 저택 내부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이유가 있을 테지요.”

후계자는 순간 멈칫했다.

공작 부인이 그렇게 말하니 자신이 굉장히 수상하게 느껴졌다.

공작 부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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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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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공작 부인은 어디까지 알고 묻는 건가?

공작 부인의 미소 띤 자색 눈이 당황한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한 그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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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는 내가 아끼는 조카입니다. 아서의 아내라면 나에게도 가족과 마찬가지지요. 깨끗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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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곤 생각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하는 일은 납치된 여자를 무사히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레이디 크리스티나가 입조심 하라고 한 일이었기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아끼는 조카에게 다른 여자가 있어 조카며느리가 마음고생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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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후계자가 대답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머뭇거리자, 잠시 기다려준 공작 부인이 여상한 태도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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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한 질문이었다면 여기까지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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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황급히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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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제가 레이디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될까 두려웠을 뿐입니다. 공작 부인, 저는…….”

후계자는 기를 쓰며 실수가 되지 않을 말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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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리스티나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이디 크리스티나께서는 안타까운 피해자이실 뿐…… 죄가 없습니다.”

그러자 공작 부인은 딱히 그에게서 대답을 얻어낼 생각조차 없다는 듯 무심하면서도 친절한 눈빛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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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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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한 후계자가 불안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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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아그네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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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서의 대모이고 두 사람 결혼의 증인입니다.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 있다면 어차피 알게 될 터. 굳이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만 가 보세요. 대화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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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객을 당한 후계자는 흠칫했다.

후계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딱히 줄리어스의 오랜 가신이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레이디 크리스티나에게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입 다문다고 공작 부인이 멋진 충성심으로 이해해 줄 정도의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대로 황실의 대모나 다름없는 공작 부인의 눈 밖에 난다면 레이디 크리스티나가 그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호의를 보일 수 있을까?

게다가…….

아서 경이 외도를 하고 있고, 혼인의 증인이자 아서 경의 대모께서 그걸 아시길 원한다면…….

레이디 크리스티나에겐 나쁜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자존심이야 잠시 상하겠지만, 결국 공작 부인이 해결해 줄 테니 말이다.

독실한 신자인 공작 부인은 신성한 혼인을 훼절하는 자들에게 결벽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크리스티나는 ‘세상 모두가 다 알도록 자랑하고 싶지 않으니 입조심 하라’ 했지.

그렇다면 신성한 혼인을 수호하시는 공작 부인이 아시게 되는 정도의 일은 그에 해당하는 케이스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황제의 누이인 그녀 앞에서 그가 빠져나갈 틈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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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화를 마친 후계자는 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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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다시 말씀 올리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침묵의 미덕에 눈이 멀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잠시 망각한 듯합니다.”

혼인 맹세의 순결을 수호하는 정의의 가치.

그리고 크리스티나 줄리어스보다는 아그네스 펄 공작 부인이 더 높은 사람이라는 더 근원적인 가치 말이다.

공작 부인은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후계자는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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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무엇을 듣고 싶으십니까?”

공작 부인이 부드럽게 입매를 올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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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것 전부 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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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단 청년과의 자리를 거의 박차고 나오다시피 한 공작 부인은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속눈썹을 떨었다.

뭐?

아서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고, 심지어 그게 크리스티나 줄리어스의 하녀였다고?

아서가 크리스티나를 외면한 채 대놓고 그 여자를 끼고 다녔고, 그 여자가 얼마 전 저택 한복판에서 납치를 당해 아서가 찾고 있어?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그 여자를 해코지했다는 의심을 받거나 아서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그 여자를 무사히 되찾으려고 쉬쉬하며 애쓰고 있고?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독실한 신자인데다 오라비로 인해 여러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공작 부인은 외도하는 남자를 경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화가 난 적은 없었다.

아서가 그랬다니 더 화가 난 건가?

내가 후원한 조카가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아서의 오러를 보고 멋대로 가졌던 기대가 배신당해서?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공작 부인은 이런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아서가 자신의 가장 중요하고도 영광된 순간에 자신의 위업을 스스로 망쳐버릴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그네스는 정말로 화가 났다.

마리아 황후, 줄리어스 일가, 데릴사위라는 입장, 그를 신뢰한 민중들…….

그게 사실이라면 그 모든 것이 아서를 물어뜯으며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공작 부인은 마차에 앉아 화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시녀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숨을 죽이고 어쩔 줄 몰라했다.

공작 부인은 그의 말을 곱씹으며 형형한 눈빛으로 창문 밖을 노려보았다.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잘못 알았을 것이다.

아서는 부실한 자신의 입지와 자길 둘러싼 권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평생 그런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후폭풍에 민감했고 언제나 신중했다.

여자관계도 깨끗했다.

그런 아서가, 그렇게 무책임한 짓을?

이런 일에 있어서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고 있다.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하기 마련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서가 벌써?

그는 아직 제대로 된 권력을 갖지 못했다.

이제야 간신히 어둠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위험한 칼날 위에 갓 첫발을 디뎠을 뿐이었다.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

차분하게 달려가는 마차 안에서 머리가 식기 시작하자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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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번 양보해 다른 여자가 생길 순 있다.

그러나 그런 신중한 성격에, 데릴사위인 아서가 자신을 5년 기다린 아내에게 보란 듯이 그랬을 리가?

그리고 크리스티나 줄리어스가 뭐가 아쉬워서 다른 여자가 생긴 아서의 눈치를 본단 말인가?

신 앞에서 성스러운 혼인 맹세를 한 당당한 부인이.

부실 보급 때문에?

그렇다면 더 이상했다.

아서는 부실 보급 건에 대해 언론 앞에서 후작을 직접 해명해 주었다.

후작에게 참전 용사 보상 같은 대가를 받아냈다는 걸 알 수 있는 정황이었지만, 그렇다면 아서는 스스로를 결백한 상태로 유지해 둔 채 그런 일들을 진행했어야 옳다.

부실 보급은 공분을 살 만한 일이지만, 아서가 크리스티나를 그런 식으로 모욕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소식지를 온통 뒤덮은 추문 앞에 그 모든 일들은 사소한 일로 치부될 것이다.

아서가 그런 결과가 초래될 일을 할 리 없었다.

이상했다.

공작 부인은 굳은 얼굴로 창밖을 보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나 머리가 뜨거워진 나머지 ‘아서의 상황’과 ‘크리스티나 줄리어스’, ‘아서의 외도 추문이 터졌을 때 따라올 후폭풍’에만 집중하게 되고 말았다.

거리에서 본 그 여자에 대한 것은 일시적으로 머리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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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 부인의 시녀들은 무서운 분위기에 조용히 침묵했다.

공작 부인은 대체로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권위적이기도 했다.

또한 신의를 배반한 사람 앞에선 무섭도록 서릿발 같아지는 면도 있었다.

그 상단의 후계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기에 저렇게 화가 나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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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추어 섰다.

그들은 줄리어스 사원에 도착했다.

공작 부인은 마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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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와 크리스티나가 공개적으로 참석한다 알려진, 추모 미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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