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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나한테는 (104/210)


#104. 나한테는
2022.08.28.


아서가 싱긋 웃더니 손수건을 가슴 포켓에 넣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 레이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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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밖에 좀 나가자.”

그를 따라 얼떨결에 일어난 레이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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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없으시다면서요?”

아서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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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낼게.”

아서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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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서 혼자 나갈 자신이 없어. 길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찾아오기는 어떻게 찾아오셨는데요…….

아서가 레이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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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당신이 말한 ‘당신만 아는 비밀 장소’인가?”

레이나가 결국 약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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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서는 좀 아쉬운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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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한테 안내받을 기회를 놓쳤네. 다른 데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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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은 여기뿐이긴 하지만…….”

그에게 소개해 줄 수 있는 다른 장소는 있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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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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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침묵에서 멀진 않다는 대답과 우물쭈물하는 망설임이 읽혔다.

아서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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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 줘. 거긴 나만 알게.”

그가 레이나를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얇은 숄만 걸친 그녀의 팔을 살짝 문지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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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좀 더 걸쳐. 따뜻하게. 아직 계속 비 오고 있으니까.”

레이나는 잠시 고민하듯 침묵하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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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갈아입으시면요.”

결국 아서도 웃으며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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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아무거나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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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서에게 입을만한 옷을 찾아다 건네주었을 때,

그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레이나의 스크랩북과 신문 기사 위로 스치고 있었다.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레이나는 아서가 옷을 받아 갈아입는 사이 얼른 그것을 감추었다.

다행히 아서는 스크랩북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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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상황이라는 건…… 그 해결사 길드의 의뢰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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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루칸이 얘기했나?”

아서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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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있었던 것처럼 지내고 있어도 돼. 거의 다 정리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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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잭’이 받은 의뢰가 엎어진 이유는 저희가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트리스탄이 상세 보고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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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그분’을 내놓으면 이 일에 대해 침묵하겠다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걸 거절하지 못한 줄리어스가 의뢰를 진행하길 포기한 것이리라 추정됩니다.」

보고를 받은 아서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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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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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서가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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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뢰 내용. ‘납치’였어? ‘암살’이 아니고?」

트리스탄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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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의뢰 내용은 납치였다고 합니다. 날짜와 시간을 지정했고 그 시간에 줄리어스 저택에서 외출하는 금발의 하녀를 납치해 달라고 했다 합니다. 하지만 ‘해결사 잭’이 의뢰를 맡으려 했다는 것만 봐도 상당한 금액이었을 거고, 사실상 암살과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는 상태긴 합니다.」

아서는 잠시 침묵했다.

뭔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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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스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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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 인력을 늘릴까요?」

아서가 시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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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자네에게 맡기지. 그리고 그녀를 상대로 한 ‘의뢰’에 대해 좀 더 알아봐.」

이어진 말은 트리스탄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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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의뢰를 받은 다른 자가 또 있을 거다.」

눈이 커진 트리스탄이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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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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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다른 의뢰가 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아서의 말은 추정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정보가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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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아서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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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로 들었다. 그녀에 대해 ‘암살’ 의뢰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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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들었다’고?

언제? 어디에서?

트리스탄은 놀라서 그를 바라보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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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요? 들으셨으면서 그걸 그냥 두셨습니……까……?」

말하다 말고 트리스탄이 말꼬리를 흐렸다.

본능적으로 짚이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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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길.

야영 중이던 어느 날 새벽.

사령관 막사의 문이 걷히고 아서가 걸어 나오더니 겉옷을 걸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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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출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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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얼떨떨하여 트리스탄이 반문하자, 아서는 검을 차고 의장을 갖추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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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에 먼저 가 있을 테니 카일과 함께 군을 이끌고 따라와.」

트리스탄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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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술이 덜 깨셨나?

그들은 승전 이후 귀환하던 도중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아서가 황태자의 황명을 거절하지 못해 진탕 술을 마신 이튿날이었다.

아서가 그 정도로 술을 마신 것도, 취한 것도 처음 봤기 때문에, 트리스탄은 아직 그가 취해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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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각하. ……각하!?」

순식간에 의장을 갖춘 아서가 진짜로 말에 오른 직후에야 트리스탄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총사령관이 이렇게 군을 두고 이탈해 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가 술에 절어 군을 이탈해 혼자 달려가다 낙마라도 해 버린다면?

술을 마시라는 게 거역할 수 없는 황명이었다고 해도 그게 정상 참작이 될까?

트리스탄은 기함해서 아서의 앞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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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전쟁에서 승리하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귀환하던 총사령관에게 그런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게 무슨 끔찍한 대참사란 말인가.

아찔해진 트리스탄이 그를 뜯어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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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각하! 이렇게 취하신 채로는 말 못 타십니다! 낙마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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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

트리스탄이 말에게 걷어차일 각오로 그를 뜯어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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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각하. 혼자는 못 가십니다! 군은 어떡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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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는 못 간다. 오래 걸려. 군은 카일에게 맡기겠다.」

뭐라고요?

누구한테 뭘 맡겨?

트리스탄은 아서가 발로 말 허리를 박차자 기겁했다.

그는 거의 몸을 던져서 말을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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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잠깐만요!」

아서의 눈은 그를 쳐다보지 않은 채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뭔가 있구나.

트리스탄은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기를 포기하고 방법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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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저희가 같이 가겠습니다!」

트리스탄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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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발이 필요한 문제라면 기사들과 함께 말을 이끌고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 높은 인원들만 함께 먼저 출발하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날이 밝으면 우선 그들과 함께 출발하시고, 남은 사람들은 뒤따라오라고 하시면 되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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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는 그제야 눈빛을 아래로 향하며 멈추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뜨는 짧은 침묵 끝에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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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하지만 날이 밝기까지 기다릴 순 없다.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는 인원만 십 분 후에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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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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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모르고 기사들을 깨워 출발하면서도 트리스탄은 조금 달리다 보면 아서가 술에서 깨고 정신을 차리는 거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아서는 그대로, 진짜로 줄리어스 영지까지 달려와 버렸다.

군대를 끌고 정상적으로 왔다면 일주일이 걸렸을 거리를.

단 하루만에.

그를 따라잡기 위해 기사들은 정말 죽을 뻔했다.

평소처럼 싱긋 웃으며 발들이 느려졌네, 농담을 하는 아서는 취한 것 같지 않고 침착해 보였고,

트리스탄과 케이는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뜻이 있으시겠거니 하고 따랐다.

아서의 최측근 기사들은 알고 있었다.

아서에게는 다른 기사들이 모르는 모종의 수단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서가 이유를 말해 주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를 할 때도 그냥 거기에 따랐다.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아서의 지시에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까.

그리고 아서는 말 그대로 줄리어스에 쳐들어가듯 귀국했다.

후작가가 허둥지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 열심히 준비를 한 듯 곧 개선군에 대한 화려한 환영식이 꾸려졌다.

아서는 싱긋 웃으며 줄리어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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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를 먼저 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티나 줄리어스 앞에서 아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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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는 나랑 결혼한 여자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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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아서를 떠올리며 트리스탄은 멍하니 아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퍼뜩 고갤 저었다.

그럴 리가.

거리가 얼마였는데 거기서 그걸 ‘들어’?

그가 사용하는 오러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어도,

트리스탄도 그가 운용할 수 있는 오러의 청각 범위는 대충 알고 있었다.

절대 닿을 거리가 아니었다.

그때가 아니었겠지.

트리스탄이 상식적인 판단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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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뭘 어디서 어떻게 들으신 겁니까? 어떤 상황이었던 겁니까? 관련자가 누군지는 확인하지 못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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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는 입을 다문 채 깍지 낀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트리스탄은 정말로 넋을 잃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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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그 말만 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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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스탄은 할 말을 잃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아서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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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말이 안 되는 건 알아. 어떻게 그 거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건지. 수도에 가면 알아볼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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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그녀의 말을 곱씹어본다.

돈. 명예. 나를 따르는 사람들.

출정하기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얻어서 돌아왔다.

그런데도 왜.

나는 당신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차라리 당신이 오직 돈 때문에 나한테 온 거였으면,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없을 만큼 내가 당신을 만족시켜 줄 수 있었을 텐데.

화려한 삶을 원했으면, 그것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혹시 신분 상승을 원했으면, 좀 더 위험하더라도 나는 모험해 볼 생각도 있었는데.

당신이 오직 나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원할 만큼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당신이 바라는 건 당신의 나이 든 할머니와 조용한 평화뿐인가.

당신이 바라는 재력이라 봐야 겨우 삼십 골드 정도일 뿐이어서,

그거 내가 해 줄 테니, 당신의 인생을 내게 적선하라 할 수도 없게.

당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만 당신에게 가족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비겁함이

때때로 발목까지,

가끔 무릎까지

어떨 때는 가슴까지 파도친다.

아차 하는 순간 휩쓸릴까 가만히 뒷걸음친다.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망정 그렇게까지 비열할 수는 없어서.

당신에게 속아 내 마음이 여기까지 온 값을 치러달라 하고 싶어서 하지 못한 말이 목에 걸린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사기 결혼 아니었어.

당신은 나를 속이는 데 성공한 적이 없어.

내가 맹세한 건 당신이었어.

나한텐 결혼이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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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혼에 이의가 있으신 분은 지금 손을 들어 말씀하시고, 그러지 않으실 것이면 영원히 침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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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나 기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젊어서 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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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그대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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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서로를 남편과 아내로 맞이하여 섬기고 아끼며 사랑하겠습니까.」

 
비록 처음 만난 그 순간은 아니었어도.

그 개선식의 밤.

당신을 다시 만난 순간 그렇게 되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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