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 사건의 전말 (85/210)


#85. 사건의 전말
2022.06.23.


며칠 전.


“……납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놀란 기사들 앞에서 루칸이 트리스탄에게 보고했다.


“네. 어떤 놈이 길드에 정보를 팔았습니다. ‘줄리어스 저택에서 일하는 금발의 하녀’를 납치해 줄 사람을 구한다는 익명의 값비싼 의뢰가 있었다고요.”

기사들은 굳은 표정이 되었다.

줄리어스 저택에서 일하는 금발의 하녀.

높은 확률로 ‘레이나 아스타린’이었다.

설마하니 정말로 암살 시도가 있었던 건가?

루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해결사가 매칭된 이후 의뢰인이 선금을 지불하지도 않고 나타나지도 않아 파투가 났다고 합니다.”

“…….”

기사들 모두가 아서의 말을 떠올렸다.


「줄리어스는 가능하면 좋은 분위기로 내 입을 막고 싶어 할 테니 어지간하면 안 그럴 테지만,」


「제거하려는 시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염두에 두고 보호해.」

 
젠장. 줄리어스 놈들.

해결사까지 동원했다니…….

아서의 통찰이 옳았음을 깨달은 기사들은 언제나 아서 옆에서 쩔쩔매며 불안에 떨던 ‘레이나’를 떠올리고 긴장했다.

그녀는 중요한 증인이었다.

레이나 덕분에 그 까다로운 줄리어스가 얼마나 고분고분하게 굴고 있는지는 모두가 체감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야 ‘레이나’가 있어서 협상이 수월하다 정도의 감상이지만, 줄리어스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존재가 목 밑에 들어와 있는 칼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경호 인력을 더 늘려야 하나?


“의뢰 시점은?”

“저희들이 돌아오기 불과 며칠 전이었습니다.”

짧은 침묵 후, 케이가 물었다.


“루칸. 그 정보를 어디서 샀지?”

루칸이 그를 향해 대답했다.


“저 있던 용병 길드에서요. 음지에서 해결사 길드도 겸하고 있습니다.”

케이가 다시 물었다.


“자네는 오 년 동안 전장에 있었던 데다가 군 소속인데 해결사 길드가 자네한테 정보를 팔았어? 의뢰 내용도 상당히 상세한데. 그쪽 세계는 정보의 기밀 유지를 중시하지 않나?”

믿을 만한 정보냐는 질문이었다.

루칸이 씩 웃었다.


“자세히 설명하긴 애매합니다만, 어떤 유명한 해결사가 ‘의뢰를 파투 낸 사람’을 저격하는 방식입니다. 맡은 놈이 ‘해결사 잭’이라고 하니 믿을 만한 정보입니다.”

‘해결사 잭’이라는 말에 리오넬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루칸의 말에 신뢰성이 있다는 걸 납득한 얼굴이었다.

루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마 ‘그 여자’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만간 이 정보에 접근 가능해질 겁니다. 의뢰인은 재수가 없었죠.”

그리고 누군지 참 쌤통이라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덧붙였다.


“뭐, 솔직히 그런 거금을 불렀으면 평범한 놈이 붙진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어야 하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케이는 조용히 턱을 만지작거렸다.


“…….”

납치 의뢰가 있었다는 소문이 날 거란 말이지?

어쩌면 이거……. 활용할 수 있겠는데?

* * *

같은 정보는 프랜시스를 통해 렘브란트에게도 도달했다.

아서 경이 영지에 돌아오기 전.

‘해결사 잭’이 ‘줄리어스 저택의 금발 하녀 납치’ 의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렘브란트는 가만히 침묵했다.

뒤이어, 그녀가 언제쯤 저택을 나설 테니 그때 납치를 실행해 달라고 했다는 의뢰 내용이 이어졌다.

프랜시스는 말을 마친 뒤 덧붙였다.


“……아무래도 의뢰에서 가리키는 게 그 여자인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금발의 하녀’ 납치 실행 일자와, ‘레이나 아스타린’이 저택에서 사라졌다는 시점이 일치합니다. 어쩌면 지금쯤,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렘브란트는 굳은 얼굴로 찻잔을 바라보았다.

프랜시스가 말을 이어갔다.


“하녀들은 ‘레이나 아스타린’이 레이디 크리스티나의 몸종으로 지목을 받은 이후 사라졌다 했습니다. 대부분이 심부름을 갔겠거니 하더군요. 가까운 친구가 없으니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걸 보고서도 그저 일을 관뒀겠거니 하는 정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

“표면적으로는 바깥에 심부름을 보내고, 해결사 길드에는 저택을 나서는 그녀를 납치해 달라는 지시를 내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렘브란트는 계속 말이 없었다.

프랜시스가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다 물었다.


“혹시 저번에, 그 하녀를 마음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 위험한 경쟁자가 있다는 말씀이 이 일과 연관이 있습니까?”

퍼뜩 고개를 든 렘브란트가 잠시 후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위험한 경쟁자는…….

하지만 프랜시스는 그녀가 뒷세계의 해결사 따위와 엮여 있기라도 한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렘브란트가 담백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의뢰는 엎어졌다면서요. 그럼 ‘해결사 잭’이 그 의뢰를 수행하지는 않았다는 뜻 아닙니까?”

어쨌든 렘브란트는 레이나가 아직 아서의 보호 하에 있고 무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프랜시스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의뢰는 틀어졌더라도 다른 의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동시에 여러 곳에 의뢰를 맡겼을 겁니다. 운 없게도 이쪽에서 수임한 녀석이 ‘해결사 잭’이라 파투 난 의뢰 내용을 멋대로 폭로해 버릴 거라곤 생각 못 한 것 같지만요.”

돈 많은 의뢰인들은 동시에 여러 곳에 의뢰를 맡기고 응한 해결사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그걸 미리 고지하지 않는 건 매너 없는 짓이지만.

해결사에게 거액을 턱턱 내며 일을 맡기고, 거기서도 돈까지 많은 의뢰인들이란 대체로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가 더 막 나가느냐의 싸움이라면 해결사들이야말로 만만치 않은 놈들이기에, 가끔 ‘해결사 잭’ 같은 거물들은 이런 식으로 매너 없게 구는 의뢰인의 정보를 폭로하여 의뢰인들을 골탕 먹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해결사 잭’쯤 되면 어차피 길드나 의뢰인이 두렵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

렘브란트가 난감한 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동안, 프랜시스가 뒤를 이어 말했다.


“아마 ‘해결사 잭’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낸 거겠죠. 최대한 조사해 보겠습니다.”

……이런.

아무래도 프랜시스는 정말 레이나가 다른 해결사의 의뢰로 제거당했다고 믿는 것 같았다.

프랜시스가 시신 수색 따위의 헛고생을 하며 조사의 방향이 틀어지는 건 렘브란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렘브란트가 찌푸린 이마를 문질렀다.


“…….”

어쨌든 사람들 사이에서 행방이 묘연한 레이나의 납치나 실종이 어떤 소문으로 흘러가는지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나 아스타린’은 살아 있습니다. 조사는 계속 진행해 주세요.”

렘브란트가 손을 내리며 다소 피로한 얼굴로 웃고는 말을 이었다.


 


“후작을 만나 봐야겠네요.”

 

* * *


 
그리고 그날 밤.

케이는 아서에게 상의했다.


“레이디를 슬슬 안전한 곳으로 모실까 하는데요.”

“…….”

“‘납치’가 어떨까 싶습니다. 루칸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그리고 케이는 아서에게 루칸이 가져온 정보를 보고했다.


“…….”

이 정도는 예상한 건지.

아서는 놀라지도, 싸늘해지지도 않고 차분하게 들은 뒤 피식 웃었다.


“……그녀가 사라지면 모두가 줄리어스의 짓이라고 생각하겠군.”

케이가 태연하게 답했다.


“네. 물론 저희도 그분이 사라지면 그렇게 믿을 거고요.”

아서는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표정엔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후작 쪽에선 억울하겠군.”

케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하게 말했다.


“네, 뭐. ‘야반도주’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내일 적당히 신뢰 표명하고 오지.”

케이가 웃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아.”

케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납치되실 예정이라는 건 레이디께도 말씀드리는 게 좋을까요? 송구하지만 제 의견은…….”

케이가 말하고 싶은 ‘송구한 의견’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적군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는 걸 부드럽게 말하고 싶은 것일 터였다.

……그래.

부인이 거짓말에 재능있진 않지.

아서가 어쩔 수 없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놀라게 하진 말고.”

“네.”

케이가 이어 말했다.


“내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내일?”

아서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내일은 후작의 요청으로 그들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었다.

케이가 답했다.


“그 외엔 아서 경 보호 하에 있는 아가씨가 실종되실 수 있을 만한 날이 딱히 없을 것 같아서요.”

후작은 나름대로 허심탄회하고 좋은 분위기를 잡고 싶은 건지, 줄리어스 교외의 사냥길을 그들의 만남 장소로 잡았다.


“내일이 그나마 가장 납치가 벌어질 만한 개연성이 있는 날입니다.”

즉, 줄리어스가 증인을 납치하는 음모를 꾸몄다면서 아서가 그들을 의심하기 적합한 날이었다.


“…….”

케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서 경께서 자리를 비웠을 때 일이 벌어졌다는 쪽이 후작을 몰아가기 좋을 것 같습니다. 경께서 저택을 비우는 순간을 노려 날치기했다는 식으로요. 저택 경비하는 상주 기사 인원을 늘려야겠다는 주장 함께 들어갈 겁니다.”

“…….”

“계획범죄 아니냐고 몰아가며 의심하는 티를 내면 후작은 제 결백을 증명하려고 애쓸 겁니다.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이런 누명으로 아서 경과의 사이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더 초조해하며 펄쩍 뛰겠죠. 레이디의 실종은 더 좋은 협상 재료가 될 겁니다.”

“…….”

아서가 물끄러미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는 눈썹을 올리며 뻔뻔하게 말했다.


“……이런 걸 원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한 번 더 틀어쥐라 하신 분은 각하이신데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시고. 억울하네요.”

“내 눈빛이 뭐?”

“독한 놈이라는 눈빛인데요.”

“내 편이어서 다행이라는 눈빛이었어.”

“그렇습니까?”

아서는 담담하게 웃었다.

내일…….

내일 가는구나.

* * *

그리고 케이는 테일러를 만났다.


“테일러 씨.”

“네.”

“내일 레이나 양을 납치할 예정입니다.”

“……네?”

케이는 담담하게 읊었다.


“내일 아서 경께서 줄리어스 후작 각하를 만나러 가신 사이, 기사들의 기강이 잠시 흐트러질 예정이며, 그때 아가씨가 납치되실 예정입니다.”

테일러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하다가 테일러는 무언가 깨달은 듯 말을 멈추었다.

케이가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늦으신다는 테일러 씨의 전언을 듣고 놀란 아가씨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요청하시고, 초조해하는 아가씨의 걱정을 보다 못한 저는, 테일러 씨와 함께 논의하여 미리 예정해 두었던 할머님 방문 일정을 앞당길 예정입니다.”

“…….”

“그 과정에 일시적으로 호위에 공백이 생길 예정이고, 그 틈에 탈취된 마차는 아가씨와 함께 행방불명될 겁니다.”

“…….”

테일러는 가만히 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내일…….”

“네. 테일러 씨께서는 내일 할머님과 함께 집에서 편안하게 시간 보내고 계시다가, 할머님께서 편찮으셔서 아가씨 진찰에 늦는다는 소식만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 후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테일러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호위 공백이라는 건…….”

케이가 눈 하나 깜짝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호위는 안전하게 붙여서 보낼 겁니다. 복면 쓴 납치범으로 위장해서 붙어 있을 거지만요.”

“…….”

케이가 덤덤히 그의 침묵에 대꾸했다.


“걱정 마세요. 저희도 그분을 보호해야 할 이유라면 충분하니까.”

미친 사람인가…….

아니……. 의도는 알겠는데.

원래 군인들이란 작전을 이런 식으로 하나?

테일러가 그를 보고 있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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