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하녀와의 계약결혼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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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하녀와의 계약결혼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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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하녀와의 계약결혼 <1부 완결>
2022.05.01.
“제가 아서 경의 심기를 거스른 건지……. 제가 없을 때도 그 정도 수준의 경계를 언제나 유지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숨 막혔습니다.”
“…….”
후작 부인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레이나가 그 정도로 감시당하고 있다고?
후작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구나. ……자네가 실수한 건 없을 거야. 원래 그 정도는 아닌데. ……일이 좀 있었어.”
“일이요?”
“그것 때문에 경계를 산 모양이야. ……자네 말마따나 원래 방문하던 의사가 아니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고.”
“원래 아버지께서 가실 땐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까?”
후작 부인이 지친 얼굴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래. 원래 기사는 있어 봤자 한 명 정도였지. 기사 앞에서 난감하지 않게 우리 쪽 시중 하녀가 그 애를 돌봐 주기도 했고.”
테일러가 차분하게 자신이 본 상황을 전했다.
“제가 갔을 땐 시중 하녀가 없었습니다. 기사만 둘이었습니다. 게다가 진료를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막더군요. 진료를 보기 전에 시중 하녀를 부르지 않아도 되냐고 여쭤봤지만, 기사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
후작 부인은 생각에 잠겼다.
테일러에겐 그 이상 말해 주지 않았지만, 후작 부인은 레이나가 버섯 편식 첩보 쪽지를 보내온 후의 실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서의 식사에 대놓고 버섯이 올라갔던 그 일.
그걸로 레이나가 곤경에 처했나 하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설마 정말로 아서에게 심각한 버섯 알레르기가 있는 건가?
레이나가 전처럼 쪽지를 넘기기 어렵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걸 어쩌지…….
“…….”
차라리 확 미움을 받아서 내쳐졌으면 좋았으련만.
그럼 우리만 좋을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렇게는 또 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우리에 대해 털어놓으라고 고문당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한동안 몸을 사리라고 말해야 하나?
가만.
설마…….
그럼 이거, 로렌슨 선생이 전달책이라고 의심을 사고 있는 거 아니야?
기사들이 의사 진료에 그렇게 예민했던 이유가 설마…….
이거 잘못하면 로렌슨 선생이 돌아왔다가 해코지당할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테일러라서 그나마 만나게 해 준 건가?
“…….”
머리가 지끈거렸다.
빨리 어떻게든 아서랑 해결을 봐야 하는데…….
그놈의 참전 용사 보상…….
그때, 테일러가 은근히 아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아서 경은 레이나한테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
테일러는 눈썹을 찌푸린 채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제가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크리스티나 아가씨께도 이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요?”
“…….”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테일러의 말에 울컥한 후작 부인은 꾸욱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이내 좀 더 솔직하게 화가 난 얼굴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게나 말이다.”
다시 한숨을 내쉰 후작 부인은 침착하게 표정을 정돈하고 물었다.
“레이나가 자네한테 따로 쪽지를 건네거나 한 건 없었나? 꼭 그런 게 아니어도, 무슨 말을 전하고 싶어 하는 낌새가 있었다거나.”
“네. 그런 건 없었습니다.”
테일러는 한동안 침묵하다 물었다.
“……혹시 레이나가, 그동안 아버지께 무슨 쪽지를 건네고 있었던 겁니까? 후작 부인께 전해 드릴……?”
부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래. 그런데 아무래도 그걸 들킨 모양이야.”
테일러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제가 보기에도 그쪽에서 눈치챈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두 기사가 바짝 붙어서 저와 레이나를 양쪽에서 지켜보더군요.”
“…….”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대체 왜 이러나 했는데…….”
그리고 테일러는 짧은 틈을 두고 이마를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환자를 보며 그런 식으로 감시당해 본 건 처음이라서요. 레이나는 사실…… 저를 보자마자 울기까지 했습니다.”
후작 부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울어? ……하아.”
후작 부인은 지끈거리는 옆머리를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나는 완전히 틀렸구나.
후작 부인은 앞으로 레이나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다고 생각하며 기대를 버렸다.
“…….”
그 애를 더는 못 써먹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레이나가 좀 아까워졌다.
할머니한테 딱 좋게 공을 들여놔서 다루기 쉬운 애였는데.
쯧.
대신 후작 부인은, 로렌슨 선생 대신 테일러를 써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에 희망을 걸었다.
“아서 쪽에선 자네를 어떻게 보는 것 같아?”
* * *
「……임기응변 능력과 판단력이 필요할 일들이 있을 게다.」
「내가 너를 시험해 봐도 되겠느냐.」
* * *
【 존경하는 아버지께. 】
【 테스트는 잘 마쳤습니다. 】
【 아버지 말씀대로 임기응변이 필요한 일이 있었습니다만 잘 해결했고, 】
【 제가 돕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올 수 있는 환자는 기꺼이 돕기로 했습니다. 】
【 아서 경께서 며칠 더 저를 봤으면 하신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
【 아버지께선 ‘아가씨’는 제게 맡기시고 천천히 돌아오셔도 됩니다. 】
【 후작 부인의 서면 허락을 첨부합니다. 】
【 사랑을 담아. 】
【 아버지의 아들, 테일러 올림. 】
* * *
“…….”
아버지 앨빈 로렌슨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뒤.
펜을 내려놓은 테일러는 조용히 케이의 말을 곱씹었다.
「레이디는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고 목숨 건 정쟁 따위에 휘말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잖아요?」
“…….”
「숨겨지지 않던데요.」
「아서 경만큼이나.」
“…….”
글쎄.
나를 파악했다면,
‘레이디는 어차피 억지로 거기 있는 거잖아요?’
따위로 말하는 게 훨씬 간단했을 텐데.
레이나가 아서 경의 곁을 떠나는 게 더 행복할 이유에 ‘레이나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
과한 생각일까?
저택을, 그것도 자신의 사비로 해 준다는 제안은 확실히 놀라웠지만,
설령 그게 진심이더라도 그런 걸 받을 생각은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살 집이라면.
테일러는 자신의 힘으로 해낼 예정이었다.
다만 테일러에게 케이의 제안이 의미 있었던 것은,
자신의 욕심이 오히려 레이나를 고통에 빠뜨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테일러가 스스로 물러설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
파렴치한이 아니라고?
‘아서 줄리어스’가 케이 경 말대로 레이나를 놓아줄 만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렇게 안 되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라리 레이나에게 부탁하는 것이 빨랐을 것이다.
아서 경에게 불행과 고통을 호소해 달라고.
놓아달라고 하라고.
하지만 왜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나를 끌어들이려는 걸까?
「레이디가 거짓 연기에 소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시던데요.」
“…….”
테일러는 들어온 아서를 멍하니 바라보던 레이나의 눈빛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전해 주려고 모아 두었던,
그녀가 남몰래 소중히 아껴 수집하곤 하던 책상 위의 소식지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모아 놓은 것이었다.
“…….”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 *
다음날, 주말의 늦은 아침.
아무리 기다려도 침실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 두 사람이 무탈한지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들어온 케이는 침대에 앉아 서로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는 아서와 레이나를 발견했다.
어찌나 곤히 자는지. 아서마저도 케이가 들어온 줄도 모른 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케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 주었다.
밤새 가을비가 내리고, 하늘은 새파랗게 개어 있었다.
비 냄새가 묻어 있는 청량한 가을바람이 들어왔다.
차례로 몇 개의 창을 연 뒤 몸을 돌린 케이는,
서로에게 기대앉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
물음표며 느낌표를 여기저기 적어 놓은 낙서 가득한 한 장의 종이가,
펜촉이 마른 펜을 헐겁게 쥐고 잠든 레이나의 손 밑에 놓인 채 바람에 팔락이고 있었다.
둘이 같이 보고 있었던 듯한…….
아니, 가만. 아서 경은 못 읽잖아?
“…….”
순간 흠칫했지만 케이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쓰고 있는 걸 함께 보며 대화했다면, 뭐라고 쓴 건지 알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아서의 눈썰미와 기억력이라면.
……그래. 각하께서 어련히 잘 하셨으려고.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어가 맨 위에 보여서, 케이는 멈칫하고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혼인 계약서?’
“…….”
가까이 다가간 케이의 시선이 종이 위에 머물렀다.
팔락.
바람에 날린 종이가 거의 떨어지기 직전, 케이는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케이는 잠든 레이나에게 한 번 시선을 두고 그것을 훑어보았다.
“…….”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 진짜 계약서는 아니었다.
서명은커녕 누구의 이름도 없었고, 어느 쪽이 갑인지도 불분명했다.
종이 위에는 아무렇게나 적혀 있는 물음표와 정의되지 않은 단어들, 낙서들이 가득했다.
“…….”
그러나 왠지, 보면 안 될 것을 본 것 같아.
케이는 그것을 외면하고 도로 레이나의 손 아래 살짝 놓아 준 뒤 물러났다.
【 혼인 계약서 】
이렇게?
갑과 을은 혼인에 있어서 아래와 같이 합의함을 서약한다.
하나. 갑과 을은 혼인이 유지되는 기간 동안 서로의 좋은 남편, 좋은 아내로 성실하게 임한다.
둘. 갑은 을의 할머니의 안전을 보장하고 언제든 만날 수 있게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준다.
(면접 교섭권?)
언제 한 번 업어 드리기. 약속.
셋. 갑은 하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예쁘게 꾸민다. 주제 넘는다는 생각하기 없기. !!갑의 꽃단장에 있어서 을은 최혜국 대우(?)를 요구할 수 있다.
→ 최혜국 대우?? 그게 뭐예요?
넷. 갑과 을은 항상 결혼반지를 착용한다. 단, 반지를 할 수 없을 땐 손수건으로 대신할 수 있다.
다섯. 외박할 땐 꼭 미리 얘기한다. 단, 딜런 경 일 같은 건 예외!
여섯. 금전적 보상은 추후 협의. 일단 갑이 을에게 주급 30골드.
-진짜요? 이건 좀 내리셔도 돼요.
일곱. 헤어지게 될 경우, 작별 인사는 꼭 한다. 인사 없이 사라지지 않기.
―<하녀와의 계약결혼> 1부 완결.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