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제2화
“신랑 입장입니다요!”
박혁진이 주변으로 손을 흔들었다.
함박웃음을 띤 채 앞으로 걸어갔다.
“엇!”
도중에 넘어질 뻔했다.
“재한테 지안이를 맡기는 게 맞을까?”
이 결혼을 물릴까 고민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늦으셨어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이지안이 옆으로 다가왔다.
“미안. 어떤 멍청이 좀 데리고 오느라.”
“저 어때요?”
그녀가 드레스 입은 모습을 자랑했다.
“노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요즘은 다 이렇게 입어요.”
오프숄더 형태의 드레스였다.
윗 가슴이 드러나 있었고 기장은 무릎 위까지 올라왔다.
이걸 미니 드레스라고 하나.
아무튼 노출이 상당했다.
“드레스 고를 때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혁진이 자식 음흉해가지고는.”
“꼰대.”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분명 꼰대라고 들었는데.”
“잘못 들은 거예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테구르가 이지안을 불렀다.
“다음은 제 주군이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영광을 지닌 존재이며 사신수의….”
녀석의 아부는 결혼식에도 빠지지 않았다.
끝날 줄 모르는 말에 이준이 테구르의 말을 잘랐다.
“테구르.”
“억. 죄송합니다요. 파천제의 동생이신 신부 이지안 님이 입장하십니다요!”
이준이 이지안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
드레스를 입으니.
청순함이 넘치다 못해 폭발했다.
결혼식에 참여한 하객들의 시선은 이지안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와…”
“웃으니까 더 예뻐.”
드레스가 날개를 달아줬네.”
“오늘만큼은 설화가 가장 예쁘다.”
이 자리에는 중소 가문의 대표들도 참석했다.
평소에 그녀를 흠모하던 후기지수들이 눈물을 흘렸다.
“흑흑. 님은 갔구나.”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낙이었건만.”
“뇌제만 아니었어도.”
이준과 이지안이 박혁진의 앞에섰다.
“흐흐. 형님. 감사합니다.”
박혁진이 능글맞은 얼굴로 말했
다.
이 결혼 지금이라도 물릴까,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이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지안의 손을 박혁진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신부 측 자리로 가서 앉았다.
사형준이 뒤에 가서 섰다.
“권왕께서도 오셨으면 좋았을 겁니다.”
“지안이를 볼 면목이 없으시다는데 억지로 자리에 앉혀서 뭐해.”
권왕은 이지안이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가주에서 쫓겨난 후였다.
평생을 가주 전에서 보내야하는형벌.
그 또한 옛날의 과오를 받아들였다.
건물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이지안이 직접 찾아갔지만, 딸의 얼굴을 볼 낯이 없다고 했다.
결국 권왕은 그녀를 보지 않았고 결혼식도 불참하게 됐다.
“어차피 지안이한테는 없는 존재였어. 내가 겪은 아품을 지안이는 겪게 하고 싶지 않아.”
이준에게는 가족이란 단어의 따뜻함이 없었다.
화산의 사선과 싸울 때 권왕이 나서서 도와줬지만 그뿐.
그에게 입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오히려 화만 났다.
뒤늦게 재능을 개화하니.
그제야 아들 대접을 해주는 게 아닌가.
그 후로는 아버지란 작자를 보지 않았다.
아마도 마음의 상처가 전부 치료되어야지만 용기 내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죄송합니다.”
“사 단주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저 또한 주군을 무시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다 지난 이야기는 그만 꺼내고 봉팔이는 왜 안 보여.”
“아, 그게….”
때마침 테구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으로 축가가 있겠습니다요. 절대 무적의 소유자 무극단의 부단주 김봉팔 님입니다요!”
“재가 왜?”
“축가를 부르겠다고 아가씨께 졸랐습니다.”
“결혼식 망칠 생각이야? 끌어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과가 부단주의 축가입니다.”
“지원자가 많았다며?”
“부단주가 몰래 음공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원자 중에 가장 잘 불렀다는 개소리는 아니지?”
“…맞습니다.”
“아. 골때리네. 설마 음공을 몰래 배웠을 줄은 몰랐어.”
“저도 그렇습니다.”
곧이 김봉팔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축가 1순위로 항상 선정되는 노
래.
마크탑의 marry you였다.
간질간질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듣고 싶지 않았으나.
천무의 심법인 신수호심공으로 음공을 펼치니.
그 옛날 음악대장이라는 가수 뺨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습니까.”
“뭐 들을만 하네.”
이준이 제지를 안 하자.
김봉팔은 눈치 볼 사람도 사라졌겠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간드러지는 노래를 자랑했다.
* * *
1, 2부로 나누어진 식이 끝났다.
박혁진과 이지안은 참석한 귀빈들에게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다.
검제 박춘식이 이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사돈.”
“사돈 어르신.”
“호칭이 어색하오.”
“익숙해져야지요.”
“항상 내 손주를 잘 보아주어 감사하오.”
“별말씀을요.”
“철혈검가와 사신가가 혈맹으로 묶였으니 무림맹은 더욱 견고해질 게요.”
박춘식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손주의 결혼.
그것도 파천제의 동생과 이어졌다.
가문끼리의 동맹보다 더 끈끈한 게 바로 혈맹이었다.
피로 이어진 것만큼 강한 유대감은 없었기 때문.
이지안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져서 더 기대가 됐다.
증손주는 어떤 재능을 타고났다.
아빠와 엄마 양쪽의 재능을 모두 타고난다면 그보다 더한 경사는 없었다.
“그리고 말이오, 사돈.”
“말씀하세요.”
“큼. 난 겹사돈도 찬성하는 사람이오. 그렇게 꽉 막힌 인간이 아니란 소리요.”
박춘식이 은근슬쩍 압박을 가했다.
박정연과의 관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세기의 썹이었다.
이준이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이 욕심 가득한 늙은이야. 손자 하나로 모자란 거냐.”
“심호, 또 너냐 하아.”
박춘식이 한숨을 푹 쉬었다.
박정연과 이준의 관게를 꺼낼 때마다 나타는 훼방꾼.
이제는 지겨울 정도였다.
“파천제. 춘식이 손녀 말고 빙검후 어떠시오? 내가 보기에는 신기지가와 혈맹을 가진 것도 좋다고 생각하오만.”
“괴개께서는 신기지가의 편이셨어요?”
“오늘부터 신기지가를 지지할까 하오. 아니면 혈마의 딸은 어떻소?”
정심호의 말에 저 멀리 있던 류한길이 달려왔다.
“영감이 어쩐 일로 내 편을 드는 거요.”
“춘식이가 잘되는 꼴은 못 본다.”
저 빌어먹을 독쟁이 새끼가!”
박춘식이 처음으로 체통을 내려놨다.
매번 방해하는 훼방꾼 때문에 폭발하기 직전이었는데.
이젠 대놓고 다른 가문을 지지한단다.
참을 수 없는 도발이고 검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한 번 해볼테냐, 춘식아.”
“내가 못할 줄 알고?”
박춘식과 정심호가 소매를 걷으며 한판 붙을 기세였다.
검왕과 철왕은 각자의 아버지를 말렸다.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고정하세요."
“아버지. 제발 참아주세요.”
류한길은 뒤로 슬쩍 물러나며 이준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잇값도 못하는 영감님들이시지 않습니까?”
“정정하니 보기 좋아요.”
“하하. 파천제께서 웃으시니 저도 좋습니다.”
“가을이는 금강권문의 무공을 몇 성까지 익혔어요?”
“이제 5성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 는다고 고민이 많지 뭡니까.”
“무공만 봐줄 겁니다.”
이준은 류한길의 의도를 바로 간파했다.
딸인 류가을과 이어주는 걸 포기하지 않은 류한길이었다.
“아무렴요. 다른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물론 자세 교정을 위해선 과감하게 터치하셔도 됩니다.”
악의가 없었다.
탐욕과 욕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주인. 다른 손님도 맞이해야지. 여기에만 있을 거야?”
파르가의 부름에 이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참석한 모두가 이준을 보고 있었다.
저들은 무림맹의 수뇌부가 모여 있어서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아차.”
“여긴 내가 정리할 테니까 가봐."
“정리할 게 뭐가 있어?”
“있으니까 가.”
“알았어.”
이준이 자리를 떴다.
“파천제님, 저도….”
류한길이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넌 남아.”
흑룡왕 파르가의 말에 류한길이 우뚝 섰다.
“나 말입… 니까?”
“그래 너. 그리고 너희들까지.”
사람 머리통만 한 파르가가 테이블 위에 앉았다.
녀석의 목소리는 박춘식과 정심호에게도 또렷하게 들렸다.
용언.
드래곤의 목소리는 좌중을 휘어잡는 힘을 가졌다.
심지어 흑룡왕인 파르가의 용언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날고 긴다한들.
파르가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잘 들어라.”
파르가의 눈이 검게 번들거렸다.
“주인이 의중을 드러내기 전에 너희끼리 왈가왈부하지마.”
박춘식과 정심호의 등줄기에 땀이 가득해졌다.
드래곤의 경고.
블랙급 보스 몬스터의 위협?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파르가는 절대종에 속한 드래곤의 왕.
작심하고 경고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른 것이다.
“너희는 주인이 정하는 대로 따라 행동하면 돼. 그게 가문을 오래 유지하고 보존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파르가에게 압도되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박혁진과 이지안이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신혼여행 어디로 간다고 했지?”
“스위스. 몇 번을 말합니까, 형님.”
“깜박했다.”
“이제 저희 가도 되죠?”
“몸 조심히 다녀와.”
“오빠. 갔다와서 봐요.”
“그래."
이지안이 인사를 한 후 차에 탔다.
박혁진이 운전석에 타자.
박춘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떡두꺼비같은 증손자를 만들어 오거라.”
“할아버지도 참.”
“결혼도 했는데 뭐 어떠냐.”
“몰라요. 저희 이제 갑니다.”
차가 출발했다.
결혼식이 완전히 끝났다.
남은 사람들도 차례 차례 돌아갔다.
“준아.”
박정연이 이준에게 팔짱을 끼었다.
“우리도 데이트하자.”
“어디? 설마 놀이동산? 나도 갈래.”
진경수가 눈치 없게 끼어들었다.
그의 복부를 정예나가 사정없이 때렸다.
퍽-
“억.”
“눈치 좀 챙겨.”
“으으. 다 같이 놀면 좋잖아.”
“그렇긴 합니다. 이준 형님도 오랜만에 뵈서….”
이준은 항상 게이트 안에 있었다.
게이트가 사라진 세상이 왔지만.
그는 수련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천극자가 남긴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게이트에서 생활했다.
그의 기운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이 게이트뿐이었으니까.
그래서 1년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오랜만에 다 같이 놀아볼까?”
이준은 박정연의 마음도 모른 채.
함께 놀이동산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싸!”
“예나도 갈 거지?”
“정연아 내가 미안해. 눈치 없는 남친 둬서.”
“네 탓이니. 진경수 저 머저리의 잘못이지.”
“내가 뭐.”
“하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모두 놀이동산 가는 거지?”
진경수의 말에 한지유가 고개를 저었다.
“전 어제 무리하게 수련해서 빠질 게요. 그럼 이만.”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도 빠졌다.
“지유 집에서 같이 자기로 해서… 다음에 같이 놀아요.”
“지유야 같이가!"
네 명이 빠졌다.
그래도 남은 인원은 꽤 있었다.
“우리끼리라도 놀자.”
"오예!”
이준은 자리를 떠난 한지유의 뒷모습을 보았다.
‘쓸쓸해보이네.’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
결혼식 내내 마주치지 않았던 그녀였다.
끝나고 겨우 얼굴을 봤는데 바로 자리를 뜬 게 아닌가.
수련은 핑게고 고민이 있는 모습이었다.
“선생님. 안 오고 뭐하세요.”
“통째로 빌려서 노는 거 처음이라 설레.”
모두가 들떠 했다.
한지유에 대한 생각을 접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준아. 빨리 가자.”
박정연이 손목을 낚아채며 경공을 펼쳤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게 얼마만인가.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꽤 있었
다.
‘나 구해준다고 항상 끌고 다녔었는데 말이야.’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