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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696화 (696/705)

외전 제3부 90화

사선을 넘나드는 긴장감.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설레기까지 했다.

흑암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압박감이었다.

신계에서 태어나 단 한 명만이 전륜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그는 바로 천극자.

신계에서 태어난 자가 아닌 인계 출신의 신선제.

천극자를 마주치자 떠오르는 한 가지의 감정.

생애 처음으로 든 감정이 바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곧 공포로 바뀌었다.

천극자의 눈을 바라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몸이 얼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백안에 호승심은 가차 없이 부서졌다.

벌거벗은 느낌.

백안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신왕이란 체면이 어떻든 간에 말이다.

그에게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 이후.

자신을 긴장시킨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때와 같은 긴장을 느끼게 하는 자가 눈앞에 있었다.

천극자가 키운 남자.

가장 두려웠던 자의 제자였다.

“날 이렇게 긴장시킨 놈은 천극자 이후로 네가 처음이야.”

패기를 줄기차게 뿜어내던 설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부님께 긴장감을 느꼈나?”

“등골이 오싹했어. 도망치지 않았다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이상하군. 흠.”

주변을 가득 메운 파천멸기가 말끔히 사라졌다.

설극은 기세를 풀고 생각에 잠겼다.

손으로 턱을 매만지다가 이내 중얼거렸다.

“사부님한테 두려움을 느꼈다는 건 백안을 봤다는 건데 용케도 안 죽고 살아 있어.”

천극자 사부의 백안을 본 자는 모두가 죽었다.

인자하던 사부가 가차 없어질 때가 바로 백안을 열었을 때였다.

백안은 신살의 무공 중에서도 정점에 있었다.

“백안을 보는 자는 사부님이 살려두지 않았을 텐데.”

지옥계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염라대왕이 백안을 보자 뒤로 물러났다.

만약 염라대왕이 물러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소멸하고 말았으리라.

그만큼 천극자 사부의 백안은 무서웠다.

백안을 보고 살아남았다는 게 신기했다.

“네 말대로 죽을 뻔했지. 정말 간발의 차이였어. 조금만 깊었다면 소멸했을 거야.”

전륜이 상의를 거칠게 젖혔다.

그러자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옆구리부터 목까지 사선으로 길게 그어진 상처.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지.

상처가 붉었다.

“사부님이 만든 상처가 맞군.”

전륜의 몸을 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

풍신검결에 당한 상처였다.

상처 주변에 꽃과 같이 붉게 난 건 혈염창에 당한 것.

천극자 사부는 두 무공을 섞어 전륜을 소멸시키려 했다.

아마 천극자 사부는 전륜이 죽었을 거라 여겼을 터다.

두 개의 무공이 합쳐진 심득이 담겨 있는 공격이었다.

누가 버틸까.

도망가다 죽었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천극자 사부가 간과한 게 있었다.

끈질긴 생명력.

전륜의 살고자 하는 의지였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어. 정말 한 끗 차이였거든.”

“사부님을 대신해 내게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흑암은 그랬겠지. 난 아니야.”

전륜이 도를 뽑아 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설극을 향해 도를 겨눴다.

“난 오로지 무(武)가 좋다. 날 긴장시키고 설레게 해 줄 만한 호적수를 찾아다닐 뿐이야.”

“내가 네 호적수라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군.”

“네가 가장 근접한 존재지.”

“만약 아니라면?”

“그럼 이곳에서 죽는 수밖에.”

전륜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비무는 생사결인가?”

“당연하잖아. 목숨을 내놓고 싸우지 않으면 재미없어.”

“그건 나와 같은 생각이군. 나 또한 생사결 아니면 하지 않는다.”

설극이 두 팔을 늘어트렸다.

주먹에 파천멸기를 집중시키며 기수식을 취했다.

“시작하려면 빨리하지.”

“원하던 바야.”

전륜도 신왕기를 도에 담았다.

두 사람은 기수식을 취한 채.

서로만 바라볼 뿐.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바람이 스치는 찰나!

팟-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염라대왕이 신왕성에 도착했다.

콰아아앙!

신왕성 일대가 무너질 듯 진동했다.

굉음은 덤이었다.

“벌써 시작했구나.”

염라대왕의 옆에는 삼두도 함께 있었다.

[저게 왕급 이상의 무력을 가진 자들의 싸움….]

삼두는 넋을 놓고 봤다.

그조차도 저들의 신형을 눈으로 따라가는 게 힘들었다.

부딪히는 소리와 잠깐씩 보이는 걸로 추측했다.

쾅!

[대왕. 파천혈신의 기운이 검은색에서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본왕도 보고 있다.”

염라대왕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싸울수록 옅어지는 색깔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천극자의 기운을 닮아가는 건가? 천살성도 지니지 않고 내부에선 역천이 웅크리고 있는데?’

역천이 있는 이상 설극은 천극자의 기운을 가질 수 없었다.

한데 저 현상은 뭐란 말인가.

정말로 천극자의 기운을 닮아가는 건지 현재로선 알지 못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전륜의 발에 한 대 얻어맞은 설극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설극이 곧장 일어났지만.

몰아칠 기회를 놓칠 전륜이 아니었다.

전륜이 도가 들리지 않은 반대편 손을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염제의 인!”

설극의 바로 위.

하늘에서 ‘염(炎)’자 모양의 화염이 떨어졌다.

콰앙!

다시 한번 폭음이 들려왔다.

[끝난 겁니까?]

“아직이다.”

염라대왕의 대답이 끝나자.

허공에 수십 갈래의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은 공간을 찢으며 전륜을 향해 진격했다.

“천극자의 무공을 완전히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자기식대로 바꿔서 따라 하고 있구나!”

염라대왕이 입을 떡 벌렸다.

설극이 언제 이렇게까지 성장했는지 소름이 돋았다.

신계의 시간은 인계의 시간과 다르게 빨리 흐른다지만.

아직까지도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니, 기가 막혔다.

보면 성장해 있는 게 정말 괴물 같았다.

서걱!

전륜의 어깨가 베였다.

깊게 상처가 났는지 피가 피부를 타고 꽤 많이 흘러내렸다.

[신왕이 일방적으로 이길 줄 알았는데….]

삼두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었다.

설극과 전륜의 싸움을 뇌리에 전부 담기 위해 한시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어엇!?]

무언가를 본 삼두가 화들짝 놀랐다.

염라대왕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전륜이 공격을 피할 걸 알고 미리 다음을 준비했다.

“파천멸진!”

패천기공의 사공.

파천멸진이 펼쳐지며 일대를 장악했다.

신왕기가 아우성치며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파천멸진은 신왕기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는 설극의 차례구나.”

그전에는 전륜이 몰아쳤다면 지금은 설극의 턴이었다.

설극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파천멸기.

허공에 가득한 파천멸기가 전륜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흐읍!”

전륜의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파천멸기의 영향이었다.

그래도 명색에 신왕이라 그런 건지.

여전히 자기 몸을 제어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파천멸기에 제압당해 스스로 무릎을 꿇었으리라.

“크흐. 이거야. 날 긴장시키는 기운.”

전륜이 무형도를 만들었다.

쌍도를 만든 그가 설극을 향해 쇄도했다.

파천멸기는 그가 움직이는 길을 막았다.

퍼석!

전륜은 쌍도를 움직여 장애물을 부쉈다.

겹겹이 쌓인 파천멸기를 수십 번의 도질로 찢어버렸다.

“후욱…! 후욱…!”

하나 전륜은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이 공간은 설극의 영역.

호흡을 빨아들여 신왕기를 돌려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륜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였다.

화르륵!

검은 공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날아왔다.

위험했다.

까아아앙!

쌍도를 들어 불꽃을 막자.

무형창이 쌍도 앞에서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무형창의 회전이 멈추려는 순간.

앞에서 내력의 소용돌이가 밀려왔다.

쿵!

파동이 전륜의 전신을 강타했다.

“푸우웁!”

전륜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창백해진 얼굴.

도를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입가에는 미소가 떴다.

“젠장. 이렇게 몰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전륜이 몸을 뒤로 뺐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 포기했다.

대신 그동안 감췄던 기운을 꺼냈다.

그동안은 전륜의 기운만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흑암의 기운까지 선보인 것이다.

일렁이는 검은 공간.

전륜의 기세에 공간이 불안했다.

“어쩔 수 없이 흑암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이제 좀 거칠 거야.”

쿵.

전륜이 진각을 밟았다.

검은 공간이 크게 휘청이더니 이내 주변이 밝아졌다.

무형도 수 자루가 전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염제의 기”

무형도가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전륜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푸스스.

전륜의 발밑이 녹으며 용암을 만들어 냈다.

멀리서 그의 모습을 본 삼두가 염라대왕에게 물었다.

[저게 십왕의 진짜 모습인 오도전륜대왕입니까?]

“맞다. 구천지옥의 마지막 심판을 담당하던 열 번째 왕. 오도전륜대왕이다.”

전륜은 신왕성 주위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 * *

설극의 내부가 요동쳤다.

상대의 기운에 반응한 것.

나가서 미쳐 날뛰자고 재촉했다.

설극은 최대한 마음을 다스렸다.

상대는 신왕.

이전은 장난이라도 경고하듯.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신왕이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나 그렇군.”

패천멸진을 펼쳐서야 신왕의 진면목을 끌어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자신의 패배였다.

고개를 내려서 활짝 핀 손을 보았다.

“땀이 맺힌 건가.”

전륜의 기세에 손이 축축해졌다.

몸이 경직되기도 했다.

상대로 인해 위축됐달까.

하지만 이내 혼원신공으로 긴장을 풀었다.

긴장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니.

호승심이 올라왔다.

진면목의 전륜과 싸우고 싶었다.

순수한 무인의 욕심.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무를 겨뤄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자가 신왕이 되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는군. 후우우.”

설극이 심호흡을 했다.

혼원신공이 혈맥을 타고 빠르게 달렸다.

정방향이 아닌 역방향.

역천을 끄집어내는 운공법이었다.

옅었던 파천멸기가 빨갛게 변했다.

상대도 진면목을 보였다.

자신도 가진 패를 전부 까야 할 때.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는 역천이었다.

이준의 천살성이 혼원신공 속 사신기에서 발현됐다면 자신은 혼원신공 자체.

역천마신지체에서 발현됐다.

역천은 자신의 파괴적인 면모의 자아였다.

오직 살육밖에 없었다.

“큭.”

설극이 신음했다.

핏줄이 굵게 튀어나왔다.

역천은 일어나면서 그의 기혈을 파괴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공이 흐르는 길을 더 넓힌 것.

역천은 자기 맘에 들게 기혈과 혈맥을 맞췄다.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

전부를 개방한 상태.

특히 상단전은 왕의 권능을 사용할 때처럼 열어버렸다.

“크흡!”

설극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고통을 참았다.

역천은 미친 괴물.

깨어난 김에 정상적인 이성을 아예 없애버리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극은 절대 이성을 놓지 않았다.

이성을 잃고 전륜을 이긴다 하더라도 남는 게 없지 않나.

과연 미친 상태로 신선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주경아를 찾아간다면?

그녀를 다치지 않게 한다면 기적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을 놓지 못했다.

“너는… 내 부속품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역천이 미쳐 날뛰었다.

설극의 등 뒤에 핀 붉은 아지랑이가 거칠게 일렁거렸다.

자기를 거부하냐며 분노했다.

전륜은 앞을 보더니 이상함을 느꼈다.

“갑자기 내상을 입었어?”

입가 아래로 흐르는 피가 보였다.

그러다 설극의 뒤에서 일렁이는 악마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기운이 강대해졌는데 내상을 입은 건 저 괴물 때문인데. 어이.”

전륜이 설극을 불렀다.

하지만 역천과 싸우고 있는 설극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날 실망시킬 거냐. 그 불안전한 힘 가지고 덤비겠다는 소리야?”

전륜이 뭐라든 설극은 역천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네 맘대로 하려면… 다음은 없다. 아예 널 죽이고 말 것이다.”

섬뜩한 말.

역천이 분노를 토해내다 말고 서서히 잠잠해졌다.

“…그렇지. 너는 말만 잘 들으면…된다.”

역천은 잠시 설극의 뜻을 따라주기로 했다.

녀석 또한 전륜을 이기고 싶었으니까.

아니 죽여버리고 싶었다.

뭔데 자기 앞에서 강한 척 호승심을 드러내는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설극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역천이 조용해지자.

설극이 전륜에게 입을 열었다.

“많이 기다렸다. 대신 널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

설극의 신형이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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