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85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돌아온다는 파랑이의 말이 떠올랐다.
“왜 우리는 못 만지는 거야?”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쳇. 빈정 상해. 얼마나 대단한 게 태어나는지 지켜 볼 거야.”
박혁진과 아이들이 토라졌다.
말은 틱틱거리지만 여전히 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누나 잠깐만.”
이준은 박정연에게 알을 돌려받았다.
웅웅.
사신기를 재차 주입했다.
포근한 기운이 알을 감쌌다.
그러자 알이 움찔거렸다.
기분이 좋은 듯 반응을 보이는 알.
알을 감싼 사신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지말고 본좌의 구역으로 오는 게 어때?]
이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흑염마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을 부화시키는데 가장 좋은 곳은 본좌가 있는 지옥지대다, 작은 주인.]
“너도 이 알이 파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준의 말에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파랑이!?”
“이 알에서 파랑이가 태어나는 거야?”
“아직 몰라. 파랑이라고 믿고 싶어.”
아이들은 이준이 얼마나 파랑이를 좋아했는지 안다.
항상 이준의 곁을 지켰던 몬스터였다.
이준에게는 파랑이가 반려견이었다.
[절대종도 세 가지 이상의 원소를 갖는 경우는 없다. 모두 하나의 원소를 정점으로 가지고 있거나 두 가지 원소를 사용할 뿐이지. 그 알은 신기하게 모든 원소를 보이고 있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준이 땅을 박찼다.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흑염마조가 있는 남쪽으로 향했다.
박정연이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모두 여기 있을 거야? 알에서 어떤 몬스터가 태어날지 안 궁금해?”
이에 진경수가 대답했다.
“궁금해 미칠 것 같아. 당분간 선생님을 따라다닐래.”
“저도요.”
박혁진을 비롯한 아이들이 빙그레 웃었다.
어떤 몬스터가 태어날지 호기심도 들었고, 정말 파랑이가 태어날지 궁금하기도 했다.
“가보자.”
팟-
모두가 경공을 펼쳐 금역의 남쪽으로 향했다.
이준은 이미 흑염마조가 있는 지옥지대에 도착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돼?”
[알을 바닥에다 놔.]
그는 흑염마조의 말대로 알을 바닥에 내려놨다.
화르륵!
알 주위로 노란 화염이 일어났다.
성스러운 불꽃, 성화였다.
[확실히 보통 놈이 아니군. 알 상태에서 성화를 버텨내는 놈은 없어.]
알은 태어나기 전 상태였다.
가장 약할 때란 소리.
한데 테구르가 가져온 알은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다.
좌우로 움직이며 고온의 화기를 느끼고 있는게 아닌가.
[큰 주인에게 듣기론 파랑이를 얻었을 때는 굉장히 약했다고 하던데.]
“기숙사에서 키우다가 죽을 뻔했어. 바깥 환경은 게이트처럼 마기의 농도가 굉장히 옅었거든.”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이준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제는 과거가 됐다.
[한데 이놈은 애초부터 강해. 어떤 놈이 태어날지 모르지만 기대되는군.]
흑염마조는 성화의 화력을 더욱 높였다.
높은 기운을 얼마나 더 버티는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천천히 해.”
[작은 주인도 부화하는 걸 보고 싶잖아.]
“그렇긴 한데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만약 태생부터가 절대종이라면 여러 가지를 실험해보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데?”
[성화와 흑염을 버티게 하거나 한빙옥과 뇌령을 맞게 하거나. 여러 방법이 있다.]
“만약 모두 버티면 어떻게 되는 거야?”
[무시무시한 괴물이 태어나는 거지.]
“괜찮네.”
강하면 강할수록 좋은 게 바로 몬스터였다.
특히 절대종을 곁에 둔다는 건 여러 개의 군단을 갖는 것과 같았다.
[이 알이 파랑이란 생각이 들면 마음을 모질게 먹어라.]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게 태어나게 해줘.”
[그러지.]
흑염마조가 불꽃을 화려하게 피웠다.
성화와 흑염이 동시에 타올랐다.
지옥지대의 기온이 미친 듯이 높아졌다.
숨을 못 쉴 정도.
이준과 흑염마조가 있는 남쪽으로 경공을 펼치던 박정연이 멈춰섰다.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너무 뜨거워서 다가가지 못했다.
뇌신공으로 급히 몸을 보호했으나.
엄청난 화기로 인해 피부가 따끔거렸다.
* * *
알은 지옥지대를 떠나 청룡의 영역으로 왔다.
콰릉!
하늘에선 천둥 번개가 쳤다.
뇌성벽력과 함께 한줄기 벼락이 바닥을 강타했다.
쾅!
벼락이 강타한 자리에는 알이 놓여 있었다.
보통의 알이라면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을 터.
파란 줄무늬의 알은 이번에도 강력한 뇌기를 버텨냈다.
[즐기고 있군. 변태 아니면… 미친놈이 태어날 것이다.]
청룡이 질렸다는 듯 말했다.
“둘 다 이상한데?”
[주작의 흑염과 성화, 내 뇌령까지 버티며 좋다고 하는 녀석이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야.]
흑염마조와 청룡이 항복했다.
자신들의 기운을 써가면서 알을 깨웠다.
하지만 부화하기는커녕.
되려 단단해지기만 했다.
마치 더 해 보라는 듯.
사신수를 농락하는 게 아닌가.
이준은 절벽 위에 놓여 있는 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줄무늬가 바뀌었어.”
파란색이던 무늬가 바뀌었다.
무늬는 점점 짙어졌다.
[이제 현무에게 가 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이준은 알을 들고 북쪽으로 향했다.
현무는 그가 올 것을 알고 이미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현무 앞에 놓여 있는 사각형 모양의 얼음.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이준은 사각형 얼음 안에 알을 살며시 놓았다.
[시작하겠다.]
현무의 눈이 하얗게 빛났다.
그러자 얼음 안에서 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였다.
알 표면에 맺힌 서리.
반응이 없던 알이 좌우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여태껏 보았던 반응 중에 가장 컸다.
“괴로워하는 거야?”
[흠.]
현무가 생각에 잠겼다.
강력한 한기를 낮췄으나.
알은 더욱 좌우로 움직였다.
[소름 끼치는 놈이야.]
“뭔데?”
[한기를 더 낮춰달라는 것 같다. 이런 놈은 처음이야. 태어나기도 전에 자아를 가진 것도 모자라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라니.]
목숨을 걸고 사신수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어지간한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시도도 하지 못했다.
[감히 내 극음지기를 상대로 도발하다니 오기가 생기는군.]
현무의 눈이 하얀빛으로 번들거렸다.
사각형 모양의 얼음에서 폭발적인 한기가 흘러나왔다.
좌우로 흔들리던 알도 꼿꼿하게 멈춰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벌써 일주일.
극한의 기운이 알을 자극했다.
[이래도 버틴단 말이냐.]
무지막지한 한기가 알을 향해 쏟아졌다.
얼음 앞에 있던 이준도 사신기를 이용해 몸을 보호했다.
아니었다면 얼음덩이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그때였다.
알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설마 깨어나는 건가?”
이준은 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알.
그 사이에선 빛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깨어날 듯 말 듯.
알의 상단은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부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되나?”
알은 아직 백호에게 가지 않은 상태.
주작과 청룡, 현무의 기운만을 받았다.
백호의 기운을 받지 않았다.
“슬슬 마무리 지어봐.”
[어이가 없군. 사신수의 기운을 버티는 놈이 있을 줄이야.]
현무는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자신의 차례에서 알을 부화시키지 못해 자존심에 금이 갔다.
[꼴도 보기 싫다. 데리고 빨리 사라져라.]
현무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이준이 얼음 속에 든 알을 꺼냈다.
“대단하네.”
그는 백호가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말도 못 하고 작았던 백호는 어느새 어엿한 사신수가 되어 있었다.
이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면 전성기의 힘을 보유했을 테지만.
한번 죽고 다시 태어나서 이전만큼은 강하지 않았다.
[이제 슬슬 깨어나지?]
백호가 알을 보자 꺼낸 첫마디였다.
하나 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강제로 깨어나게 해줘? 다른 녀석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너와 같이 다시 태어난 신수다. 네 과정을 진즉에 겪었다 이 말이지.]
백호의 말에 알이 움찔했다.
[다 놀았으면 이제 나와.]
하지만 그뿐이었다.
알은 여전했다.
껍질을 깨고 나올 생각이 없었다.
[이준. 내게 알을 던져.]
“안 깨지겠지?”
[사신수의 힘을 버틴 놈이다. 바닥에 떨어진다고 깨졌으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
백호의 말에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은 백호를 향해 알을 던졌다.
백호가 땅을 박찼다.
그리곤 주둥이를 활짝 열어 알을 으깨버렸다.
“헉!”
이준의 눈이 커진 순간.
백호의 입에서 빛이 뿜어졌다.
* * *
“쳇. 한참 재밌었는데.”
빛에 의해 감겼던 눈을 뜬 이준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봤다.
백호의 입에는 앙증맞은 몬스터가 잡혀 있었다.
“파랑이구나!”
청호의 모습을 하던 파랑이는 없었다.
대신 드래곤이 모습을 보였다.
녀석이 파랑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바로 꼬리였다.
드래곤의 꼬리가 열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게 아닌가.
전혀 징그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고 귀여웠다.
“파랑아!”
“빨리 만났네, 주인님.”
꼬마 드래곤의 모습을 한 파랑이가 백호의 입에서 빠져나와 이준에게로 날아갔다.
이준이 파랑이를 품에 안았다.
“다른 모습이라도 귀엽네.”
“당연하지. 이 세상에 나보다 깜찍한 몬스터는 없을 거야.”
생김새도 다르지만 성격도 좀 달랐다.
더욱 장난스럽다고 해야 할까.
말투도 거침이 없었다.
간혹 자기보다 강한 몬스터를 보면 쫄던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의 파랑이는 오만해 보였다.
‘파르가의 성격과 파랑이의 성격이 합쳐진 것 같네.’
흑룡왕은 용신족의 정점답게 오만했다.
썰렁한 개그도 간혹 했으나.
입이 무거운 성격을 가졌다.
반면에 파랑이는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지녔었다.
때로는 용맹했고 때로는 겁쟁이였다.
몬스터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강아지.
그게 파랑이였다.
“내가 다시 만난다고 했지?”
“이렇게 빨리 만날지 몰랐어.”
“난 신과 달리 소멸을 하지 않아. 백호 저 녀석처럼 말이야.”
사신수와 흑룡왕 파르가의 공통점이었다.
완전한 소멸이 없는 것.
사신수와 흑룡왕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게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용신소생은 사용할 수 없어. 용계에서 힘을 회복하지 못하면 영영 사용하지 못할 거야.”
용신의 소생.
흑룡왕이 가진 최고의 무기였다.
하나의 층계를 살릴 수 있거나.
만드는 게 가능한 힘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네가 죽고 용계는 통합됐어.]
“어디로?”
파랑이가 화들짝 놀라 했다.
용계의 주인은 파랑이였다.
다른 곳으로 통합됐다고 하니 절로 관심이 갔다.
백호가 배시시 웃기만 할 뿐.
가르쳐주지 않았다.
“주인님은 용계가 어디로 통합됐는지 알아?”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야.”
이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계가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흡수됐다면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는 용계가 흡수됐다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
[네가 깨어났으니 곧 알게 될 거야.]
“저 궁금증을 자아내는 말투 싫어.”
파랑이가 고개를 휙 돌렸다.
영락없이 아이가 삐진 행동이었다.
누가 파랑이를 흑룡왕 파르가라고 생각할까.
“파랑아 나 할 말 있는데.”
이준이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뭔데 뭔데?”
“이제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파랑이라고 불러.”
“그건 안 될 것 같아.”
“왜?”
“너 몸을 봐. 무슨 색이야?”
“아, 검은색이구나!”
그랬다.
파랑이는 파란색이 아닌 검은색 몸을 가지고 있었다.
흑룡왕의 몸에 열 개의 꼬리만 더해진 것뿐이다.
[홀홀홀. 파랑이가 검둥이가 됐구나.]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어쩌죠? 이름을 바꿔야 할까요?”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 검둥이를 보고 파랑이라고 부르면 정신 나갔다고 볼 것이다.]
무극자 사부의 말에 이준이 파랑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파랑아. 앞으로 검둥이 하자.”
“파랑이도 싫은데 검둥이라니! 절대 안 돼! 똥개 이름 같잖아.”
파랑이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파랑이의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허! 어른이 이름을 지어주는데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어디서 떼를 쓰는 것이냐!]
무극자 사부의 호통은 파랑이를 잔뜩 긴장하게 했다.